소설리스트

9. 나 어떡해? (3) (9/204)

#9. 나 어떡해? (3)2020.10.21.

주방장님의 갑작스러운 물음.

“니래 빠스 할 줄 아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다.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큭. 목소리가 너무 컸나?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옥수수나 고구라면……요.”

고윤수 주방장님은 날 빤히 쳐다보다가 헛웃음을 흘리시더니 말씀하셨다.

“고구마로 한번 해보라우.”

눈이 번쩍 띄었다. 여태껏 요리는 내 몫이 아니었다. 메인 쪽은 주방장님이, 서브를 비롯해 애피타이저나 디저트 등은 김진호 셰프가 해왔다. 거기에 준석이 형이 옆에서 도왔고. 주방장님이 출타 중일 때를 빼곤 아무리 바빠도 그랬다. 밑반찬의 경우에만 가끔가다가 안성댁도 한 팔 거들었을 뿐 사실상 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주방장님과 김진호 셰프, 준석이 형. 세 사람이었다. 그리고 식재료를 다듬거나 손이 모자랄 때 돕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난 얼른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열, 열심히 하겠습니다!”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시는 주방장님을 뒤로 한 채 부리나케 뛰어나간 나는 창고에서 고구마를 꺼내왔다. 빠스라……. 고구마를 씻으며 레시피를 떠올렸다. 흔히들 맛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 맛탕과 빠스는 조금 다르다. 굳이 말하면 빠스는 중국식 맛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스가 맛탕과 다른 점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면서 손으로 만져도 소스가 묻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고 들었다. 깨나 견과류를 뿌리는 등 중국 특유의 요란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것과 함께 맛탕처럼 찐득거리는 소스의 식감을 지닌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만들 것은 표면이 엿처럼 단단하게 굳은, 그러면서도 얇게 도포된 듯한 소스에 버무린 중국식 빠스다. 오랜만에 요리다운 요리를 한다는 기쁨에 콧노래가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참으며 고구마를 씻고 껍질을 깎아낸 후 막 깍둑썰기를 하려는 때였다.

“기래 썰면 아이된다.”

칼 손잡이를 잡은 내 손을 두툼하고 거친 손이 감싸고 있었다.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며 주방장님의 얘기를 들었다. 아무리 어깨너머로 배운 나라지만, 그래도 주방에서 장화 신고 물질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런 내게 설마 칼질부터 가르치실 리는 없을 터였기에. 아니나 다를까. 주방장님이 팁을 던져주신다.

“지난번에 내래 말한 거이 아이 들었나? 음식이란 보자마자 위가 쪼그라들 정도로 맛깔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기라믄 어드래 해야겠네?”

“냄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혀 차는 소리가 날아들었다.

“냄새만 좋다고 되갔어? 옛말에도 있디 안칸?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석둑, 석둑. 주방장님의 손이 이끄는 대로 힘을 빼고 고구마를 갈랐다. 은빛 칼날이 고구마를 세로로 두 번 쪼개자, 네 토막이 나온다. 그걸 또 한데 모아 이번엔 가로로 세 토막. 그런데 직각으로 자르는 게 아니라 사선으로 친다.

“보라우. 곱디 않네?”

합이 열두 토막. 마지막에 사선으로 자른 것 때문에 한 개의 고구마가 열두 개의 새끼 고구마로 나뉜 것 같았다.

“이래하믄, 거진 비슷한 크기가 돼서 같이 튀겨도 덜 익거나 타는 거이 없는 거이야. 알갔어?”

“예!”

신바람이 절로 날 수밖에 없었다. 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훔쳐 배우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아니 요리 하는 것 자체도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는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주고 있었다.

“얼마나 담가야갔네?”

주방장님의 표현대로라면 곱디고운 고구마 조각들을 찬물에 담그자, 다시 물어오신다.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20분 정도.”

“어찌 그러네?”

“그 정도는 담가놔야 전분이 완전히 빠져서 튀길 때 바삭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렇지. 제대로 알고 있구만. 계속 하라우.”

흐뭇한 표정이셨다. 그게 기분이 좋아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요리를 해나갔다. 주방장님께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십 분 정도 지난 뒤에 물에서 건져낸 고구마를 채반에 걸러 완전히 물기가 빠질 때까지 놔두었다. 그동안 기름을 살폈다. 온도계를 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쇠젓가락을 살짝 담가 기포가 올라오는 걸 확인한 난 물기가 완전히 빠진 고구마를 기름 솥단지에 넣었다. 귀를 기울이자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고구마가 튀겨지며 나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다. 어느 나라의 왕이 뛰어난 요리사 한 명을 시험하기 위해, 아니 골려주기 위해서였던가. 아무튼, 나무토막 하나를 던져주며 맛있게 조리해오라고 했단다. 어처구니없는 명령이었지만, 요리사는 순순히 받아들였고 그 결과 그날 저녁 왕은 나무토막을 튀긴 요리를 먹게 되었다지. 그리고 엄청 맛있다고 감탄했다나 어쨌다나. 그만큼 튀김이란 맛있다. 정말이지 어지간한 식재료는 한껏 달궈진 기름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그냥 맛있어진다고 보면 된다. 하물며 생으로 먹어도 달고 고소한 고구마야 말할 것도 없지. 봐라. 시시각각 기름에 튀겨지며 수분이 날아가 노랗게 익다 못해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 정도로 황금빛을 띠기 시작한 저 고구마를.

“언제까지 기카고 있을 거네? 전부 다 타서 숯덩이가 되면 건질 거이네?”

아차차! 기름 속에서 섹시하게 헤엄치며 뇌쇄적으로다 날 홀리고 있던 고구마의 자태에 너무 넋 놓고 있었나? 얼른 기름 솥에서 튀겨진 고구마들을 건져냈다. 그런 뒤 기름 망에서 기름이 빠지게 놔두곤 이번엔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웍에다가 설탕과 올리고당, 식용유 등을 넣고 약불로 끓여주었다. 비율은 1:1:1. 바삭한 식감과 함께 단단한 표면을 유지하기 위한 비율이다. 그렇게 소스가 완성되는 동안 고구마 역시 완전히 기름이 빠지고 적당히 식어 있었다. 이제 소스를 담은 웍에 고구마를 넣고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다 됐습니다.”

공개 오디션에 나온 가수 지망생처럼 한껏 긴장된 표정으로 주방장님께 말씀드리자, 고윤수 주방장님은 젓가락으로 빠스 한 조각을 집어 드셨다. 그러곤 잠시 날 바라보셨다.

16561215597042.jpg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이 넘어간다. 픽하고 웃으신 주방장님께서 빠스를 입에 넣으시는 게 보였다. 파삭. 듣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오물거리며 빠스를 씹고 계시는 주방장님. 아이 씨. 왜 이렇게 입이 마르는 거야. 미치겠다. 긴장돼서. 오디션장에서 벌벌 떨다 못해 더듬기까지 하는 가수 지망생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젠장. 이러다가 주저앉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아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서 있기조차 버겁다. 그때였다.

“진호야.”

주방장님이 김진호 셰프를 부르셨다.

“예. 주방장님.”

“이거이 후식으로 내가라우.”

부르르.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번엔 긴장해서가 아니다. 감격해서였다.

“아, 니래 수고했다.”

“가, 감사합니다!”

허리를 깊게 숙여 보이는 내 어깨를 주방장님이 한차례 두드려주곤 돌아서셨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있던 내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맺혀 있었다. *** 이 집이 저택이라곤 해도 생각보다 넓지는 않다. 아무래도 서울, 그것도 청담동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볼 법한, 그야말로 성처럼 넓은 부지를 마련하긴 어려운 까닭이다. 그렇다곤 해도 담장 안에 있는 건물이 한 채뿐인 건 아니다. 대부분의 식구들이 한곳에서 생활하긴 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강형식도 그중 하나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그는 현재 다른 가족들과는 떨어져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가끔 식사를 하러 온다고는 하는데, 내가 여기 온 뒤로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이 건물이라고 했는데…….”

아, 지금 내가 찾아가고 있는 곳은 강형식이 머무르는 곳은 아니다.

“아!”

비행기 수납고처럼 생긴 건물을 돌아가자, 강형식이 보인다. 말이 수납고지, 사실상 주차장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터였다. 왜냐면 이곳은 강형식이, 정확히는 강 회장이 젊은 시절부터 수집해놓은 차들을 보관하는 곳이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건물 한쪽에는 차량을 정비할 수 있는 시설까지 되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어느 동네엘 가나 볼 법한 차량 정비소를 떠올리면 된다. 강형식은 그곳에 있었다. 짙은 회색 정비복을 입고서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문짝을 날개처럼 펼치고 있는 붉은 색 차에 매달려 있었다. 한 손에는 렌치를, 또 한 손에는 나로선 절대 알 수 없는 부속을 들고서. 오늘은 출근 안 하고 이곳에 있다고 하더니만. 나 참, 실장이고 나발이고 간에 재벌 3세도 사람이니까 월차를 쓰는 거야 이상할 거 없지만, 그 월차를 차량 정비에 소모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하긴 사람마다 좋아하는 건 다른 법이니.

“여어!”

뭐라고 부를까 망설이다가 되지도 않는 인사를 건넸다. 아, 진짜 머쓱하네.

“응? 뭐냐, 그건?”

한데 이 자식은 그런 내 심정 따윈 조금도 개의치 않고서 내가 들고 있는 도시락에만 눈길을 준다.

“흐흐흐. 글쎄 뭘까?”

슥슥. 녀석이 한쪽에 렌치를 내려놓고서 장갑을 벗는다. 그러곤 내게 다가와 손에서 도시락을 빼앗듯 낚아챘다.

“먹을 거냐?”

“다른 용도가 있으면 써먹어 보든가.”

달칵. 락을 풀고 뚜껑을 열자 도시락 안에 먹음직스럽게 담겨있던 빠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맛있겠네.”

“야이! 손도 안 씻고!”

“뭐 어때? 장갑 끼고 했는데.”

“그럼 손에 묻은 그 기름은 뭐고?”

“어? 언제 묻었대?”

“헐. 진짜 너…….”

녀석은 손에 묻은 기름을 바지춤에 슥슥 닦아내곤 다시금 도시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이전에 이미 그의 입은 빠스를 씹는 중이었고.

“맛있네.”

우걱거리는 가운데서도 할 말은 다 하네.

“그치? 큭큭큭.”

“뭐야? 그 징그러운 웃음은?”

계속해서 빠스를 집어먹으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쳐다보던 강형식은, 이내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픽하고 웃었다.

“뭔가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뭐, 이 정도면 자랑할 만도 하네.”

난 말은 안 했지만, 기분이 좋아져서 한층 어깨를 펴며 웃어 보였다. 그런 내게 강형식이 묻는다.

“이거 맥주 안주로 딱인데? 어떻게? 한 병 할래?”

“안 돼. 알잖아? 저녁 식사 남았다는 거.”

“아, 그런가? 그럼 어쩐다?”

“너나 마셔.”

“그럴까? 그럼?”

녀석은 정비소 한쪽에 놓아둔 작은 냉장고에서 수입 맥주 한 병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보란 듯이 뚜껑을 따곤 마시기 전에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나 혼자 마셔서 미안한데?”

“그러라고 가져온 건데, 뭘.”

“근데 진짜 맛있다. 장사해도 되겠어.”

“진짜?”

“그렇다니까.”

빠스를 안주 삼아 입속으로 맥주를 들이부으면서 강형식은 기분 좋게 말하고 있었다.

“근데, 너 왜 전화 안 하냐?”

“응?”

“뭐야? 잊어먹은 거야?”

“……뭘?”

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강형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물론 손으로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빠스를 집어먹고 있었지만.

“걔 삐치면 장난 아닌데…….”

걔? 누굴 말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까똑! 냉장고 위에 올려두었던 강형식의 핸드폰에서 톡이 울렸다.

“어? 와……. 얘도 양반 되긴 글렀다.”

누군가 싶기도 했지만, 이내 관심을 거두었다. 어차피 나하곤 상관없는…….

“어쩔래?”

“……?”

“하연이가 너랑 통화하고 싶다는데.”

“누구?”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강형식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난번에 명함 받았잖아?”

“아! 그 여자…….”

“걔가 너한테 꽂힌 모양이더라고. 왜 지난번에 네가 좀 멋졌잖아.”

“멋지긴 개뿔.”

별의별 게 다……. 아무래도 재벌 3세들에겐 당시의 내 모습이 좀 신선하게 다가왔던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여자 참……. 취향 한번 희한하네.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였다. 강형식이 묘한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그러더니 묻는다.

“얘 별명이 뭔지 아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레오파드.”

그게 뭐? 하는 시선을 보내자, 강형식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덧붙였다.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눈빛으로.

“한번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가거든.”

대꾸하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 나더러 뭘 어쩌라고?”

“아니. 그냥 그렇다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녀석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