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2화
마드리드가 피를 왈칵 토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 바이에른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역시 이곳에서는 천사인 네 놈이라 할지라도 살아날 수 없는 모양이군?”
마드리드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여유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것 말고는 지금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눈앞의 사내는 자신이 몇십 년 전에 먹어 치우지 않았던가?
그 육체를 빼앗고 영혼 그 자체를 녹여 없애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영혼과 육신을 빼앗긴 레오 바이에른이 멀쩡히 살아나 제 눈앞에 서 있었다.
그 있을 수 없는 일에 마드리드가 입술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넌… 분명… 내가… 영혼을 먹어 치웠을 텐데.”
레오 바이에른이 어깨를 으쓱였다.
“먹어 치웠지.”
“……?”
“그래서 그 전에 영혼을 쪼개 이곳저곳에 숨겨놨다. 네놈이 내 육체를 차지하는 순간 영혼을 잡아먹을 게 뻔하니까.”
마드리드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뒤늦게 한 사실을 떠올렸다.
레오 바이에른은 천사인 자신을 위협할 정도로 엄청난 마법사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영혼을 나누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도 있었다.
지금 저기서 죽어가는 아더 바이에른은 대체 뭐라 말인가?
레오 바이에른이 아더 바이에른의 내면에 있는 건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지금 저 장면은 도저히 납득 할 수가 없었다.
끊어지려는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은 채 고민하던 마드리드가 눈을 치켜떴다.
“…네 놈 설마.”
말을 흐린 마드리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래를… 조작한 것이냐?”
그의 앞에 선 레오 바이에른이 대답했다.
“조작이 아니다.”
“…?”
“최선의 미래를 선택한 것뿐이지. 너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미래를 말이야.”
마드리드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된다! 어찌 인간이 미래를 조작한단 말이냐!”
레오 바이에른이 빙그레 웃었다.
“마법은 기적.”
“…?”
“그런데 그 기적 중에서 최고의 기적이 무엇인지 아나? 바로 모성(母性)과 부성(父性)이다.”
마드리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모. 부모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식들.”
“…….”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기적이나 마법을 뛰어넘는 부모자식 간의 정(情)…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이자 기적이다, 마드리드.”
마드리드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개소리 하지 말아라, 레오 바이에른! 그딴 것이 내가 다루는 마법보다 위대할 리 없다!”
레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넌 안 되는 거다. 제 욕심을 위해 너의 후손들을 잡아먹는 네가 이걸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이 말에 마드리드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우웅-!
움직이지 않는 육체이자 영혼을 억지로 일으키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살아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 년을 기다려 날개를 얻었으니, 이번에도 천년을 기다려 다시 날개를 얻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지금 상황에서 살아나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마드리드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시작할 때였다.
제 목에 겨누어진 묵색의 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아주 그리운 옛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먼 훗날. 내 친구가 잘못되었을 때 이 검을 쥔 자가 그 친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길.]
마드리드의 발버둥이 멈추었다.
동시에 그의 입에 나직이 벌어졌다.
“바이에른…?”
이 말에 레오가 마드리드의 목 끝에 겨눈 칼을 천천히 치켜세웠다.
그 순간 환한 빛이 터지며 마드리드의 눈앞에 여러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
그의 실험으로 죽어간 마드리드 황가의 후손들.
악마를 탄생시키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아이들.
더 나아 그의 계략으로 희생된 생명과 인간.
한때 자신을 찬양하던 인간들의 고통과 울분이 담긴 그림이었다.
입을 다문 마드리드가 그 지옥도를 묵묵히 지켜보던 그 때 레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진실을 목도한 순간, 흔들리지 마라….”
“….”
“천 년 전, 당신의 친구가 남긴 말입니다. 당신의 죄에서 도망치지 마십시오, 천사 마드리드.”
마드리드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벌인 일이 죄란 말이냐?”
“예, 죄입니다.”
“난 마땅히 인간들에게 받은 원한을 돌려주었을 뿐이다.”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원한을 생겼다 하여 그 원한을 돌려주는 것이 과연 구원자가 할 일입니까?”
“…!”
“그 원한마저 품고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세상을 구하러 내려온 천사가 할 일 아닙니까? 마드리드?”
마드리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하늘에서 지상으로 자신을 내려보낸 옛 주인의 말씀을 떠올렸다.
[지상을 구원하거라 마드리드. 그것이 네가 짊어져야 할 운명이자 업이다.]
그 기억을 천천히 되새기던 마드리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짊어져야 할 운명이자 업이… 제 목숨이었던 겁니까 주이시여.’
대가없는 구원은 없다.
희생없는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과 아픔 속에서 지어지는 진정한 낙원.
한 평생 몸에 새긴 그 격언을 오랜만에 떠올린 마드리드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화악-!
마드리드의 육체가 회색 빛 재가 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다시 눈을 뜬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세상을 구하러 이곳에 내려왔다….”
말을 흐린 마드리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맑은 그 눈물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 그의 육체는 완전한 재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세상을 파멸시키는 악마에 지나지 않는구나…. 그것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더냐 바이에른?”
마드리드의 마지막 유언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 울림을 조용히 지켜보던 레오가 중얼거렸다.
“마지막 순간 당신은 진짜 천사였습니다, 마드리드….”
빙그레 미소 지은 레오가 고개를 돌렸다.
솨악-!
재가 섞인 비를 맞으며 죽어가는 누군가가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는 가슴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 떨림을 애써 숨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렇게 거리가 가까워지고 비를 맞으며 죽어가는 사내의 곁에 마침내 도착한 레오가 손을 뻗었다.
“아들.”
이 말과 함께 레오가 눈물을 터트렸다.
“너무 늦었구나… 많이 힘들었느냐?”
* * *
꿈을 꾸었다.
아주 기분 나쁜 꿈이었다.
제 손에 목이 떨어진 케인 도르문트에게 가슴이 꿰뚫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아더는 중얼거렸다.
‘…아니 꿈이 아니야.’
이건 없었던 일이 아니다.
지금이 아닌 과거의 자신은 케인 도르문트의 검에 가슴을 찔러 허무하게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기적 같은 기회를 얻어 다시 과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쪽이 진실이야. 케인 도르문트를 죽인 아더 바이에른이… 오히려 꿈일지도 몰라.’
죽음이 코앞에 닥친 순간 주마등이 스친다고 하던가?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자신이 기억하는 이 모든 것들이 주마등일지도 몰랐다.
사실 아더 바이에른은 과거로 돌아오지 못했다.
벙어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케인 대학을 가지 못했고 이안 도르문트를 죽이지 못했으며 흰 수염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은 죽음에 이른 아더 바이에른이 소망한 말도 안 되는 꿈.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 옳을지도 몰랐다.
‘그래… 맞아. 어떻게 사람이 과거로 돌아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생각과 함께 아더의 신체가 움찔 떨린다.
그와 동시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고개를 숙이니 가슴팍을 찌르고 있는 검이 보였다.
검은색 칼날의 검.
케인 도르문트의 검이었다.
그 순간 아더는 깨달을 수 있었다.
“하하….”
지금까지 경험하고 본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고.
“그래… 맞아… 역시 과거로 돌아가는 게 말이 안 돼….”
진짜 아더 바이에른은 비참히 죽어가고 있었다.
복수에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은 채 싸늘한 시체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아더는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까지 구차하게 가네···”
말을 흐린 아더 바이에른이 입맛을 다셨다.
“죽더라도 어머니와 여동생을 그런 꼴로 만든 놈들은 꼭 죽이고 싶었는데···”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손을 뻗었다.
“…차라리 이렇게 죽을 거였다면, 가족들이랑 같이 죽이지 그랬어요, 신님?”
적어도 가족들이랑 같이 죽였으면, 이런 고통은 맛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 순간 아더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옅은 맥박을 이어가던 심장의 박동이 점차 느려진다.
두근… 두근…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더는 그 죽음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그 죽음과 마주했다.
‘이제 데려가세요. 너무 지쳤어요. 이제 가족 곁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싶어요.’
생각과 함께 아더가 눈을 감으려던 순간이었다.
하늘로 뻗은 손에서 뜨거운 온기가 느껴진다.
그 낯선 감각에 아더의 죽어가던 육체가 벌떡 일어났다.
“어라?”
탄성과 함께 아더가 감았던 눈을 치켜떴다.
그 순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남자가 눈물을 터트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 버지?”
이 말에 눈물을 터트리던 남자가 대답했다.
“너무 늦었구나… 많이 힘들었느냐?”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아버지가 맞아.’
눈앞의 사내는 천사 마드리드가 아니다.
자신이 아는 그 장난기 많은 아버지.
레오 바이에른이었다.
그 본능과 감각을 넘어선 확신에 아더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아버지-!”
그 순간 세상이 붕괴된다.
콰앙-!
비가 내리던 하늘은 우주가 되고 아더가 쓰러져 있던 바닥은 거대한 별이 되었다.
그 신비로운 세상 속에서 레오가 중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구나….”
말을 흐린 레오가 눈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그러니 직접 보여주마.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말과 함께 세상이 다시 반전된다.
콰앙-!
그 세상 속에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시작은 레오 바이에른.
역대 바이에른 가문의 후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의 이야기였다.
* * *
레오 바이에른은 천재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하늘에 선택받은 천재였다.
그가 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뤄졌고,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엄청난 괴짜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그의 성격에 모두가 그를 꺼려했다.
딱 두 사람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한 사람은 홀란 레버쿠젠.
저 북부를 지키는 천재 칼잡이였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마드리드 황가의 또 다른 천재.
칸 마드리드였다.
“이봐 레오. 자넨 마법을 뭐라 생각하나?”
일반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재능을 가진 세 사람.
특히 칸 마드리드와 레오 바이에른은 서로에게 끌리는 부분이 많았다.
“마법? 흠… 세상을 속이는 거짓 아닌가?”
“거짓? 난 반대라 생각하는데.”
“반대? 뭐라 생각하는데?”
“기적.”
“……?”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기적… 그게 바로 마법이라 생각하네.”
이 말과 함께 칸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마법을 잘만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나는 그 일을 직접 해보려고 하네.”
칸의 말에 레오는 생각했다.
‘또또… 괴짜 병이 도졌구만, 이 친구.’
하지만 굳이 반박을 하거나 말리지 않았다.
사실 레오도 똑같은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을 사용하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조금 더 풍요롭게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질병을 고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레오는 그 시간과 노력에 인생을 갈아 넣는 성격이 아니었다.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다 가야지.’
그랬기에 레오는 제 친우의 말도 안 되는 꿈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돕지는 못하겠지만 응원 정도는 해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칸 마드리드니깐.”
이 말에 칸이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말뿐인 응원이라도 고맙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청년이었던 레오는 사내가 되고 사내가 된 레오는 어른이 되었다.
세상 무서울 게 없던 그는 어느 사이엔가 세상이 조금 두려워진 나이가 되었고 그런 와중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당신 진짜 재수 없는 거 알아요?”
요넬 바이에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을 깨우쳐 준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