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61화 (261/265)

제261화

새하얀 달빛이 반짝인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그 달빛에 마드리드의 목울대가 절로 출렁거렸다.

‘죽는다.’

저 달빛을 머금은 칼날이 조금만 움직여도 목이 베인다.

그렇게 되면 천 년을 기다려 다시 한번 얻은 육체를 잃는 것이다.

마드리드는 그 사실에 깊은 두려움을 느끼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계획은 완벽했다.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드래곤을 몰래 거두어 그 심장을 되찾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천 년 전 사라진 괴물인 악마들을 다시 복원시켰다.

그뿐만이 아닌, 아더 바이에른이 강제로 혈통에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모든 배역과 배우들도 공들여 준비했다.

그 결과 자신은 날개를 되찾았고 세상은 천 년 전 암울하던 그 시절과 똑같이 혼란에 휩싸였다.

‘여기까지의 과정만 놓고 보면… 빈틈은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잘못된 걸까.’

곰곰이 고민했지만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림은 그려졌지만 마지막 퍼즐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답을 말해줄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

그 탓에 마드리드가 입술을 깨문 순간이었다.

아더 바이에른의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남길 말씀 있으세요?”

“…!”

마드리드가 눈을 치켜떴다.

달빛을 두른 칼을 쥐고 있는 아더 바이에른이 보였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마드리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언이라도 남기란 말이냐?”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당신은 사람이 아니니깐 유언 정도는 남기게 해줄게요.”

마드리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승리를 장담하는 군….”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까지 와서 승리를 장담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요?”

마드리드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더의 말대로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들이 틀어막혔다.

이런 상황에서 추하게 발악하는 것은 서로에게 시간 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세상은 불공평하다.

태어날 때부터 존엄의 가치가 정해지고 계급이 정해져 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 나뉘고 신분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천사는 그 모든 것들의 위에 군림한다.

입꼬리를 올린 마드리드가 대답했다.

“죽여라.”

“……?”

“추하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 죽여라… 아더 바이에른. 이번 전쟁은 네 승리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갑자기 정신이 회까닥 도셨나?’

삶에 집착하지 않은 성격으로는 안 보였는데, 이제와서 순순히 목숨을 내놓는 마드리드의 모습에 아더는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마드리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의 마법은 혈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자랑하던 군대는 바깥에 있는 아더 바이에른의 [인연]들이 박살을 내놨다.

즉, 천 년을 걸려 준비한 마드리드의 패는 모조리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아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죽으세요.”

이 말과 함께 칼을 움직였다.

동시에 마드리드가 눈을 치켜떴다.

“….”

스르륵, 움직인 달빛이 마드리드의 목을 지나 바닥으로 향했다.

그 찰나의 시간에 마드리드가 입을 뻐끔거렸다.

허나 이미 목이 잘린 그의 입에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천천히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다음 생에는 부디 좋은 천사로 태어나세요, 마드리드 씨.”

이 말과 함께 마드리드의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툭…

힘없이 떨어진 마드리드의 얼굴이 바닥을 구른다.

그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아더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짧게 묵례했다.

그리고 뒤늦은 한숨을 토해내며 생각했다.

‘끝났다….’

복수도 원한도 전쟁도.

그 모든 일의 주범이라 밝혀진 마드리드를 죽였다.

그 사실에 아더는 기쁨보다는 왠지 모를 허탈감을 느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

그들 중에는 유일하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몰랐다.

만약 이 불길한 예감이 맞다면 이번 전쟁은 승리라 부를 수 없었다.

‘희생 없는 전쟁의 승리는 없다 해도… 난 그 희생조차 없이 만들기 위해 달려왔으니깐.’

그 탓에 아더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할 때였다.

갑자기 오른쪽 볼이 따끔거렸다.

“……?”

눈을 끔뻑인 아더가 오른쪽 볼을 긁었다.

허나 따끔거리는 감각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낀 아더가 눈을 내리깔았을 때였다.

제 볼을 뚫고 자라난 눈알이 보였다.

“오?”

낮은 탄성을 터트린 아더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혹시 마드리드 씨?”

이 말에 눈알이 대답했다.

“정답이다 아더 바이에른.”

대답을 들음과 동시에 아더의 손이 움직였다.

볼에 돋아난 눈알을 잡아떼기 위해서였다.

허나 한 박자 늦고 말았다.

“……!”

무언가 머릿속을 관통했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고장 난 전구 마냥 깜빡거렸다.

입술을 깨문 아더가 중얼거렸다.

‘아 젠장… 방심했다.’

뒤늦은 후회가 찾아옴과 동시에 깜빡이던 전구가 꺼졌다.

그 순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은 옛 과거가 잔상처럼 피어올랐다.

* * *

마드리드는 생각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공들여 준비한 계획은 실패했다.

준비해둔 모든 패는 막혔고 천 년 만에 되찾은 육체와 날개는 또 다시 잃어버리고 말았다.

허나 그렇다 해서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제 목표가 실패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천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날개… 그리고 지금 네 눈앞에는 또 다른 날개를 가진 육체가 있다.’

아더 바이에른.

자신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 바이에른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육체와 날개를 가진 육체가 말이다.

그 탓에 마드리드는 기꺼이 목을 내주었다.

‘마법은 기적. 강하게 소망하고자 하는 것을 이뤄주는 주문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아더 바이에른의 육체를 원한다.

인간은 이 욕망을 그저 욕망으로 그치겠지만 천사는 이 욕망을 기적으로 뒤바꿀 수 있다.

그랬기에 마드리드는 제 목을 내어주는 대신 아더 바이에른에게 제 피를 뒤집어 씌웠다.

‘내 피는 마력 그 자체. 그 피에 닿은 아더 바이에른은 절대로 내 마법에서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마드리드의 예측은 정확했다.

레오 바이에른의 육체를 잃은 대신 아더 바이에른의 육체와 영혼에 접촉한 것이다.

목숨을 건 도박.

그 도박이 성공으로 끝난 순간 마드리드는 영혼이 떨릴 만큼의 강한 오르가슴을 느꼈다.

‘신께서 날 버리지 않았다!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라는 계시인 게 분명해!’

이제 남은 건 이 육체의 원주인인 아더 바이에른의 영혼을 먹어 치우는 것.

그리고 영혼을 먹어 치우기 위해서는 아더 바이에른이란 인간의 가장 깊숙한 기억에 자리잡은 인격을 지워야 했다.

생각을 끝마친 마드리드는 곧바로 눈을 감았다.

“…!”

영혼이 날아간다.

세상이 뒤바뀌고 보이는 모든 시각과 오감이 뒤틀린다.

그 기묘한 감각 속에서 마드리드는 푸른 하늘을 날았다.

아더 바이에른이란 인간의 정체성이 담긴 기억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나타났다.

[너는… 누구지?]

케인 도르문트.

아더 바이에른의 혈통을 일깨우기 위해 준비한 배역이었다.

그 배역을 바라보며 지금 보다 훨씬 어려진 아더 바이에른이 해맑게 웃는다.

[아더 바이에른. 바이에른 가문의 후계자요.]

이 말과 함께 아더 바이에른이 케인 도르문트의 칼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다시 장면이 뒤바뀐다.

이번에 등장한 것은 한 고집이 세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 노인을 향해 조금 전보다 성숙해진 아더 바이에른이 까닥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용병이 되고 싶어서 찾아왔는데요.]

이 말과 함께 다시 한번 장면이 바뀐다.

아더 바이에른이 아케인 대학에 입한 일.

아더 바이에른이 하늘 섬 조직을 만난 일.

아더 바이에른이 다시 돌아와 케인 도르문트에게 칼을 겨눈 일.

아더 바이에른이란 인간이 경험하고 살아온 모든 것들이 흐릿한 그림이 되어 펼쳐진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마드리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계획대로였다.’

아더 바이에른이 케인 도르문트에게 원한을 품은 일.

아더 바이에른이 아케인으로 떠나 바이에른의 혈통의 힘을 키운 일.

아더 바이에른이 케인 도르문트를 죽이고 진짜 바이에른의 혈통을 깨우친 일.

모든 게 자신의 계획, 그림대로 완벽히 그려졌다.

‘그리고 이제 그 공들여 준비한 마지막 과실을 먹어치울 일만 남았다.’

웃음을 터트린 마드리드가 느긋이 기다린다.

과연 아더 바이에른이란 인격이 자리잡은 기억은 어디일까.

케인 도르문트를 죽일 때?

아니면 제 소중한 숙부를 잃었을 때?

그것도 아니면 첫사랑이란 감정을 느꼈을 때?

그렇게 마드리드가 기대와 흥분.

그리고 설렘을 느끼며 아더 바이에른의 기억을 계속해서 바라 볼 때였다.

갑자기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그와 동시에 부유하던 몸은 물론이고 세상이 반전된다.

그 기이한 현상 속에서 마드리드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기억이다. 이 기억에 아더 바이에른의 인격이 자리잡고 있어!’

생각과 함께 마드리드가 망설임 없이 그 기억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르륵…

새까만 하늘.

벼락이 내려치는 우중충한 날씨.

그 속에서 피에 흠뻑 젖은 한 사내가 피를 토하고 있었다.

“…하하.”

그런데 피를 흘리는 그 사내는 희한하게도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눈을 치켜뜬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아더… 바이에른?”

웃음을 터트리는 사내는 아더 바이에른이었다.

헌데 그 아더 바이에른의 가슴에 칼이 꽂혀 있었다.

검은색 묵빛의 칼에 가슴이 관통당한 아더 바이에른은 미친놈처럼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 하….”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나쁘게 하는 그 자조적인 웃음에 마드리드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을 때였다.

누군가 웃음을 터트리는 아더 바이에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마드리드는 다시 한번 눈을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케인… 도르문트?”

자신이 준비한 배역.

아더 바이에른의 혈통을 각성시키기 위해 준비한 꼭두각시.

그런데 그 꼭두각시가 무표정으로 아더 바이에른 곁으로 다가가더니 묵색의 검을 가볍게 뽑아내 버렸다.

그리고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여기까지다. 아더 바이에른.”

“….”

“이제 그만 곱게 죽어라. 너는 날 이길 수 없다.”

이 말과 함께 케인 도르문트가 몸을 돌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마드리드가 움찔 몸을 떨었다.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왜 아더 바이에른이 케인 도르문트에게 죽어가고 있단 말인가?

저 케인 도르문트를 죽인 건 다름 아닌 아더 바이에른, 본인이 아니던가?

‘내가 모르고 있는 상황… 이라고?’

곰곰이 고민한 마드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제 명령이라면 목숨마저도 기꺼이 내놓는 케인 도르문트가 왜 아더 바이에른을 죽인단 말인가?

그 탓에 마드리드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휩싸였을 때였다.

솨악-!

먹구름이 낀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쏟아졌다.

그 비를 맞으며 천천히 죽어가던 아더 바이에른이 천천히 하늘로 향해 손을 뻗었다.

“마지막까지 구차하게 가네···”

말을 흐린 아더 바이에른이 웃는다.

그와 동시에 마드리드가 느끼는 위화감도 천천히 커졌다.

“죽더라도 어머니와 여동생을 그런 꼴로 만든 놈들은 꼭 죽이고 싶었는데···”

아더 바이에른이 입맛을 다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드리드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느껴지는 위화감이 불안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공포가 되었다.

그때 아더 바이에른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렇게 죽을 거였다면, 가족들이랑 같이 죽이지 그랬어요, 신님?”

이 말과 함께 아더 바이에른의 육체가 거칠게 떨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묽은 피가 왈칵 터져나왔다.

지켜보던 마드리드는 비명을 지르고 심정을 애써 억누르며 소리쳤다.

“뭐냐 이건-!!!”

몸을 부르르 떤 마드리드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이게 대체 뭐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기억에 아더 바이에른의 인격이 담겨있단 말이냐!”

이를 간 마드리드가 몸을 움직였다.

죽어가는 아더 바이에른을 향해 달려나가기 위해서였다.

지금 이 기억이 가짜인지 진실인지 확인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저 죽어가는 아더 바이에른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 확신과 함께 마드리드가 아더 바이에른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였다.

무언가 제 가슴팍을 관통했다.

푹.

눈을 치켜뜬 마드리드가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검면에 새겨진 글귀가 번뜩였다.

[진실을 목도한 순간, 흔들리지 마라.]

잠시 침묵한 마드리드가 숙였던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네 놈이 여기 왜 있는 거지?”

마드리드의 질문에 그의 가슴팍을 꿰뚫은 검이 한 바퀴 회전했다.

극심한 통증을 느낀 마드리드가 밀랍인형 마냥 바닥에 쓰러졌다.

그 사이 마드리드의 가슴팍을 꿰뚫은 검을 뽑아낸 누군가가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여기 왜 있긴 이 자식아.”

검은 머리칼의 사내.

레오 바이에른이 웃음을 터트렸다.

“널 죽이려고 백 년을 이곳에서 기다렸으니깐 여기에 있지, 이 악마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