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48화 (248/265)

제248화

하이네스가 긴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와 동시에 앞에 앉아 있던 지니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말은….”

“네 맞아요.”

하이네스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우리 엘프 왕국을 멸망시킨 건 바이에른. 당신이 모시는 주인의 선조. 정확히는 천사죠.”

“….”

“천년 전 이 땅을 지배했던 건 인간도 짐승도 아니었어요. 가장 고귀하고 완벽에 가까운 존재인 엘프였죠. 그 엘프들을 멸망시킨 게 바로 바이에른이에요.”

지니가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질문했다.

“인간들을 위해서요?”

하이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간들을 위해서요.”

“….”

“이제 이해가 가시나요? 제가 왜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는지?”

지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하이네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당신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진실도 모른 채, 적의 수장을 돕고 있었으니깐. 그러니 지니… 제 손을 잡아요. 저는 마지막 엘프. 당신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어요.”

가느다란 손이 요사스럽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지니의 눈동자도 크게 흔들렸다.

‘조금 전 이야기… 정말일까?’

진짜로 하이네스의 말대로 아더의 선조가 엘프 혈족들을 말살시켰을까?

그뿐만이 아닌 대륙에 존재하는 다른 종족들도 모두 죽였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선조의 원수와 함께 지냈던 거 아닐까?

외면 하고 싶은 진실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 속에서 점차 다가온 하이네스의 손길이 지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제 꿈은 이미 망해버린 엘프 왕국을 다시 세우는 거예요. 그 왕국의 첫번째 주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지니. 바로 당신이 될 수 있어요.”

지니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가 엘프라서요?”

“네. 당신이 엘프라서요.”

“….”

“아직도 고민이 많은 얼굴이네요. 제 말을 믿지 못하는 건가요?”

정곡을 찔린 지니가 당황해 대답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사이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 보던 하이네스가 빙그레 웃었다.

“조금 더 강한 충격이 필요한 것 같네요. 원래라면 나중에 이야기 해 줄 생각이었지만… 지금 말씀드릴게요.”

하이네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당신의 주인, 아더 바이에른은 조금 전에 죽었어요.”

“…!”

“칸 마드리드. 한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힘썼던 천사가 마침내 대륙을 파멸로 몰아넣은 천사의 혈육을 쓰러트린 거예요.”

지니의 입이 벌어졌다.

“공자님이… 죽었다고요?”

“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마요.”

하이네스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 선택지는 단 한 하나뿐이에요. 당신과 똑같은 핏줄을 가진… 그리고 먼 미래의 선조이기도 한 저 말이에요.”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하이네스가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침묵을 하이네스가 여유롭게 바라보던 그 때였다.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공자님 그랬어요.”

“…?”

“제가 거짓말을 할 때면 귀가 쫑긋거린다고요. 그리고 하이네스, 지금 당신 귀가 엄청나게 쫑긋거린다는 거 알고 있어요?”

지니의 말에 하이네스의 눈이 커졌다.

허나 곧 침착히 대답했다.

“저는 엘프입니다. 그것도 천 년을 한 하이엘프.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아요.”

“그래요? 그럼 설명해봐요.”

지니가 품속에 넣어둔 권총을 꺼내들며 눈을 부라렸다.

“그 대단하신 하이엘프가 왜 저 같은 미천한 깡패를 이렇게까지 원하는지.”

“….”

“왜 대답 못 해요? 이건 거짓말로도 설명이 안 되나 보죠?”

하이네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흠칫 놀란 지니였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의 이 변화로 하이네스의 말이 거짓이라는 게 판별이 났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하이네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왕이 백성을 원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

지니가 한 발자국 물러서며 대답했다.

“그 왕이 왜 백성을 모두 잃었을까요?”

“천사 때문이에요.”

“그럼 그 천사가 왜 당신은 죽이지 않았을까요? 백성을 죽였다면 왕도 분명 죽여야 하는데?”

하이네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백성을 버린 왕.”

“……?”

“그게 바로 저예요. 살고 싶어서 도망쳤고, 숨어서 천 년을 지내왔어요.”

이 말과 함께 하이네스가 두 손을 펼쳐 들었다.

그 순간 대기가 갈라지며 무언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니의 눈이 커졌다.

‘정령? 아니 그런데 저건….’

외형은 정령인데 느껴지는 기운은 정령이라기보다는 악마에 가까웠다.

그 탓에 지니의 표정이 굳어진 가운데 하이네스가 천천히 허공을 날아오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숨어 지내고 싶지 않네요, 지니. 제 말을 따르지 않을 거라면 강제로 따르게 해드리죠.”

지니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고상한 척하더니 결국은 이 꼴이네요. 역시 착한 척하는 놈들의 말은 무조건 의심해 들어봐야 한다니깐.”

* * *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점점 생명이 꺼져가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 가느다란 숨결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엘퀴네스.”

아더의 부름에 허공이 뒤틀렸다.

그와 동시에 푸른 빛 머릿결의 여인이 놀란 표정으로 그 틈새로 걸어나왔다.

[아니… 아더? 절 어떻게….]

“설명은 나중에.”

[…?]

“지금은 이 남자부터 치료 좀 해주세요.”

아더의 말에 푸른 머릿결의 여인.

엘퀴네스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더와 함께 하면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던 사내가 파리한 안색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잠시 그를 지켜본 엘퀴네스가 곧 시선을 돌려 다시 아더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날개를 단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어느 사이엔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엘퀴네스가 아는 아더 바이에른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아더 바이에른이 아니었다.

‘…뭐지? 아더에게 위화감이 느껴져.’

그 위화감이 위험한 쪽이냐 하면 아니었다.

신성스럽고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이 지금의 아더에게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기이한 변화를 잠시 지켜본 엘퀴네스가 중얼거렸다.

‘아더의 저 변화가 지금의 날 소환하게 만든 건가?’

고민하던 엘퀴네스였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더의 부탁대로 눈앞의 남자를 살리는 게 급했다.

그렇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를 살리기 위해 엘퀴네스가 천천히 힘을 끌어올릴 때였다.

허공을 바라보던 아더가 탄성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아, 엘퀴네스 부탁하나만 더 해도 돼요?”

엘퀴네스가 레온을 치료하며 대답했다.

[네 얼마든지요.]

“치료가 끝나면 지니에게 가줘요.”

[…?]

“지금 지니도 싸우고 있거든요. 가서 그녀에게 힘을 보태줘요, 엘퀴네스.”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또 다른 누군가를 소환했다.

땅의 상급 정령 노움이었다.

까만 피부색의 청년이 잠시 주변을 바라보다 뒤늦게 아더를 발견했다.

그리고 엘퀴네스처럼 눈을 치켜떴다.

[아니… 아더? 아더 맞아?]

아더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럼 아더죠. 그것보다 노움 씨? 노움 씨도 엘퀴네스에게 힘을 좀 보태주겠어요?”

[무, 뭐를?]

“나중에 지니 씨를 도와주세요. 지금 지니에게는 당신들이 필요해요.”

노움이 커진 눈을 끔뻑였다.

허나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빙그레 미소지은 아더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화악-!

흩날리는 깃털과 함께 아더가 하늘로 비상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퀴네스와 노움이 중얼거렸다.

[뭐지….]

[맞죠? 뭔가 이상하죠?]

[어… 평소의 아더하고는 달라….]

말을 흐린 노움의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왜… 저렇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우리가 아는 미친놈 같지가 않은데?]

이 말에 엘퀴네스가 침묵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 사이 하늘로 날아오른 아더는 생각했다.

‘오… 뭔가 차분해졌어.’

황자, 레온 마드리드의 혈통을 흡수했다.

그 속에서 새로운 날개를 얻을 수 있었다.

전에 있던 날개보다 훨씬 크고 빛나는 그런 날개였다.

허나 레온의 혈통으로 얻은 것은 단순히 달라진 날개뿐만이 아니었다.

시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차분해졌다.

느껴지는 감각도 정돈이 되었다.

항상 뭔가 어긋난 광경을 보아온 탓일까.

이 변화가 무척이나 크게 다가온 아더였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이런 잔잔한 감각… 정말 나쁘지 않아.’

이 말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먹구름이 끼인 하늘.

그 하늘의 정중앙에 선 사내가 보였다.

이제는 레오 바이에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천사 마드리드였다.

그 타락한 천사가 하늘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뒤늦게 아더를 발견하고서 눈을 치켜떴다.

“…아들? 그 날개는 뭐냐?”

그의 질문에 아더가 비행을 멈추며 대답했다.

“음… 뭐라 설명하기 힘드네요. 일단 그냥 날개기는 한데… 뭔가 좀 특별한 날개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을 흐린 아더가 씩 웃어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네요. 천사 마드리드 씨? 이제야 당신하고 제대로 붙어보겠네요.”

* * *

아이린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바이에른 기사 중 한 명이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자리를… 피하십시오. 아가씨.”

말을 끝마친 그가 피를 왈칵 토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광경에 아이린의 안색이 파리해지고, 조금 전 피를 토한 기사의 가슴팍에 상처를 낸 중년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수준이 높군. 그리고 용맹해. 하지만 딱 그 정도인 것 같군.”

이 말과 함께 사내가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대도(大刀)를 치켜들었다.

“역사 속에서 주인을 지키다 숱하게 죽어나간… 그 기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 특별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아이린이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질문했다.

“당신은 인간인가요?”

“누구? 나?”

“예. 당신은 인간인가요?”

검은 대도의 주인.

할리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인간이라… 정의를 묻는다면 인간이고 본질을 묻는다면 인간은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인간이었던 시절은 약 500년 전. 이제 막 칼을 잡고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섰을 때다.”

할리버가 대도를 어깨에 걸쳤다.

“그 경지에 들어서고 초월자가 된 나는 인간의 영역을 탈피했지. 그런 나에게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애매할 수밖에 없군. 인간의 껍데기를 취하고 있으나 그 본질은 인간은 아니니.”

아이린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할리버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허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눈앞의 사내는 위험했다.

입가는 웃고 있는데 눈은 공허한 그는 조금 전까지 바이에른 기사단을 잔인하게 도륙한 인간이 짓는 표정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사람을 베었는데, 저런 표정이라고? 미친 게 분명해.’

그 탓에 자리를 벗어나 달아나야 했지만 아이린은 그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저 사내에게 무슨 수를 쓰건 달아날 방도 따위는 없다.

그 생각과 함께 아이린이 품속에 고이 간직하던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할리버가 눈을 치켜떴다.

“오? 죽으려고?”

아이린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대답했다.

“적에게 붙잡혀 끌려가느니 차라리 죽어 끌려가는 게 낫습니다.”

“흐음… 그래? 뭐 상관없다. 그자가 내게 명한 건 아이린 바이에른이지, 시체가 아닌 아이린 바이에른은 아니니까.”

할리버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죽어 볼 테면 죽어보라는 식으로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아이린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삶은 왜 이런 걸까.’

아이린 바이에른.

그녀의 삶은 항상 끌려다니는 쪽이었다.

철이 든 뒤로 그녀는 항상 도르문트 일가에게 끌려다녔다.

그 삶은 지옥과도 같았으며 아마 제 오빠인 아더 바이에른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그렇게 살다 갔을 것이다.

허나 간신히 구원을 받은 뒤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항상 끌려다녔고 지금 마지막 순간에도 변함이 없었다.

눈앞의 사내는 자신에게 죽음마저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아이린은 터져 나오는 한숨과 분노.

그리고 슬픔을 감추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아아…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렇게 먼저 가는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오라버니 미안해요.

조금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가버려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고한 아이린이 결국 결심을 굳혔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적에게 끌려간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게 죽는 게 훨씬 낫다.

그 생각과 함께 아이린이 손에 들린 단검을 목에 찔러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을… 거두십시오.”

이 말에 아이린이 감았던 눈이 치켜 떠졌다.

“살고 싶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스스로 그 삶을 끊으려 하십니까.”

아이린의 맞은편에 있던 할리버가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놀랍다는 듯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저 꼴이 아직 살아있다고…?”

그 속에서 아이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검을 지팡이로 의지한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아이린이 눈물을 왈칵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카셀 나의 기사.”

카셀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지키러… 왔습니다. 마이 레이디(My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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