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마드리드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는 의문을 품었다.
‘인간에게 마법과 칼을 가르치자고?’
천상.
오로지 하늘만이 가지고 있는 문명.
그랬기에 학문이라 불렀으며 지성이라 읽었고 오로지 선택받은 자들만이 취할 수 있는 특권.
그런데 지금 눈앞의 천사가 그 특권을 인간들에게 가르치자 제안했다.
‘저 친구 정신이 나갔나? 대체 왜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는 거지?’
헛웃음을 터트린 마드리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인간에게 천상의 학문을 가르친단 말인가?
설령 가르친다더라도 인간이 그 학문을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그래서 마드리드는 바이에른의 의견에 반대했다.
하지만 바이에른의 고집도 대단했다.
[아니, 왜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
그 고집은 마드리드가 여태 보아온 그 어떤 고집보다 단단하고 꺾기 힘들었다.
[일단 시도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는 거지.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도 없잖아?]
하지만 마드리드의 고집도 쉬이 꺾이지 않았다.
[그래. 네 말처럼 검과 마법을 인간에게 가르친다 치자. 하지만 저 열등한 종족이 이 학문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마드리드는 매우 이성적으로 바이에른을 설득했다.
[아니? 절대 이해 못 해. 왜 천상의 학문이 천상의 학문이겠어? 그만큼 이해하고 힘드니깐 천상의 학문이지. 그러니 괜히 시간 낭비 말고 다른 방법을 찾자고 바이에른.]
그런 마드리드를 바이에른은 감정적으로 설득했다.
[이 친구 답답하네.]
[…?]
[그러니깐 일단 시도나 해보자고. 되면 좋고, 안 되고 나쁘지 않고. 이 쉬운 말이 이렇게 어려워?]
마드리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이렇게나 설득했는데, 끝까지 저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다니!
결국 참지 못한 마드리드가 바이에른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끝까지 이럴 거야!?]
바이에른이 어깨를 으쓱였다.
[끝까지 그럴 생각.]
[좋아! 그럼 내기를 하자고!]
바이에른의 눈이 커졌다.
[내기? 갑자기 무슨 내기?]
[만약 네가 인간들에게 칼을 가르치면 나도 순순히 마법을 가르치는 데 협조할게.]
[오호? 만약 실패하면?]
[그때는 사과해!]
마드리드가 팔짱을 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린 것에 대한 정중한 사과! 그게 이번 내기의 조건이야 바이에른!]
바이에른이 탄성을 터트렸다.
‘너무 좋은데?’
내기를 졌을 때 잃는 것이 고작 사과라니?
차라리 앞으로 자신의 말을 복종할 것이라는 이런 실용적인 조건을 걸었으면 고민이라도 했을 텐데.
바이에른은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생각했다.
‘마드리드 저 친구…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멍청한 게 마음에 들어.’
하지만 바이에른은 이런 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약한 척을 하며 은근히 간을 봤다.
[사과라니… 흠. 이렇게 되니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되어버리잖아?]
마드리드가 콧대를 세우며 도발했다.
[그래서 안 할 거야?]
[…아니. 해야지. 여기서 물러서는 것도 내 자존심이 걸린 일인데.]
[좋아! 그럼 기한은 일주일!]
마드리드가 턱짓으로 지금 바이에른이 서 있는 곳을 가리켰다.
[일주일 뒤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 만약 일주일 뒤에 내가 납득할 만한 검술을 인간이 구사하면 내기의 승리는 네가 가져가는 거야 바이에른!]
바이에른이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받아들이지 마드리드. 누가 일주일 뒤에 웃는지 두고보자고.]
* * *
두 천사가 내기를 한 가운데 일주일이 지났다.
그 가운데 마드리드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어떻게 인간들이 검술을 배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마법이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것이라면, 검술은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것.
그 이치를 받아들인 순간 자기내면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하는 육체 단련의 극의가 검술이다.
마드리드는 그러한 검술을 멍청한 인간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승리를 의심하지 않던 와중 마침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바이에른은 약속대로 3명의 인간을 데리고 왔다.
몸에서 악취가 나고 피부는 썩어 문드러졌으며 총기라고는 없는 눈동자를 가진 인간 3명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드리드가 비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이 인간들이 검술을 구사할 수 있다 믿는 거야 바이에른?]
바이에른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은. 바로 보여줄까?]
[…그래! 한 번 보여 줘봐!]
바이에른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3명의 인간들을 향해 눈짓했다.
그 눈짓에 비루한 인간들이 손에 들려있던 조잡한 목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후웅-!
바람이 갈라지고 묵직한 울림이 귓가를 때렸다.
그 울림에 마드리드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3명의 인간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쉬익-!
어설프고 엉성한 아주 조잡한 검무.
하지만 그것은 마드리드 본인이, 알고 있던 천상의 학문이라 불리던 검술이었다.
그 탓에 마드리드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인간이….]
바이에른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기의 승리. 내가 한 게 맞지?]
마드리드가 황급히 정신을 차린 뒤 질문했다.
[바, 바이에른? 어떻게 한 거야?]
[무슨 일이라니?]
[어떻게 인간들이 검술을 구사할 수 있게 만든 거냐고!]
바이에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쉽던데?]
[뭐?]
[뭘 딱히 그런 게 아니야. 멧돼지를 잡아다 던져준 뒤 내가 한 행동을 따라 하라고 하니깐 금방 습득하던데?]
마드리드의 입이 다시 경악해 벌어졌다.
‘무, 뭐? 진짜로 그런 걸로 인간이 검술을 습득했다고?’
제아무리 거짓말을 하지 않는 천사의 말임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허나 또 눈앞의 결과물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때 바이에른이 툭 중얼거렸다.
[역시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어. 인간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그냥 이 날개… 하나뿐이야.]
정신을 차린 마드리드가 질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혼잣말이야. 그것보다… 마드리드?]
[왜?]
[약속을 지켜야지?]
[?]
마드리드가 눈을 끔뻑였다.
[무슨 약속…!]
마드리드의 신체가 움찔 떨렸다.
그 반응에 바이에른이 씩 미소 지었다.
[내기에서 졌으니 약속대로 마법을 가르쳐야지?]
[….]
[어라? 설마 거짓말을 하는 천사가 될 거야?]
마드리드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천사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만약 이 규율을 어기고 거짓말을 하는 순간 천사의 자격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 탓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마드리드였지만 답은 하나뿐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마드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기는 내기니깐. 인간들에게 마법을 가르치겠어.]
바이에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제대로 가르칠 거지?]
[날 뭘로 보는 거야? 한번 한 약속은 제대로 실행하는 천사야!]
[좋아. 그럼 믿고 있을게 마드리드.]
마드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 동안 넌 뭘 하고 있게 바이에른?]
[나? 흠 글쎄….]
말을 흐린 바이에른이 눈빛을 반짝였다.
[한 번 찾아보려고.]
[뭐를?]
[인간들이 살만한 땅.]
[?]
바이에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한번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 인간들의 나라를 만들어봐야겠어. 그것도 아주 거대한 나라를.]
&
레오 바이에른이 이야기를 중단했다.
그는 약간의 갈증을 느꼈는지 어디서 꺼내들었는지 모를 물병으로 목을 축였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아더가 눈을 굴리며 질문했다.
“진짜에요?”
레오 바이에른이 입가를 닦으며 대답했다.
“뭐가 말이냐”
“지금 그 이야기요.”
“그럼 진짜지.”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제국을 건설했다고요?”
“제국을 건설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안 했는데?”
“이야기 흐름상 그렇잖아요?”
레오 바이에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너무 뻔한 전개였나. 뭐, 네 말대로다 아들아. 두 천사… 정확히는 바이에른이라 불리는 천사는 나라를 만들었어. 그게 바로 이 제국이다.”
아더가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그럼 이 나라의 시초는 마드리드가 아니라 바이에른이었군요?”
“아니. 그건 아니다.”
“……?”
“마드리드는 이 나라의 시초가 맞아. 바이에른은 나라를 만들었을 뿐 나라를 다스리지는 않았으니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라를 만들고 다스리는 것에 차이가 있나?
보통 시초라 불리는 사람은 나라를 만든 사람 아닌가?
그 때 레오 바이에른이 눈웃음을 지으며 질문했다.
“이제 내 이야기에 흥미를 좀 느끼느냐?”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조금은요? 그런데 이 속박 좀 풀어주시면 안 되요?”
“당연히 안 되지. 우리 아들이 언제 내 미간에 총을 겨눌 줄 모르는데.”
아더가 입맛을 다셨다.
그 사이 레오 바이에른이 다시 의자의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두 천사는 나라를 만들었어. 정확히는 바이에른이 찾은 이 땅에 깃발을 꼽은 거지…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얼마 가지 못했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두 천사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어.”
“…갈등이요?”
“그래. 그것도 아주 심한 갈등이었지… 둘 사이가 갈라질만큼.”
아더가 질문했다.
“그 갈등의 원인이 뭔데요?”
레오 바이에른이 웃었다.
“인간.”
“네?”
“인간 떄문에 두 천사는 싸웠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레오 바이에른의 목소리가 자조적으로 변했다.
“한 명의 천사는 인간 떄문에 남으려 했고, 한명의 천사는 인간 떄문에 하늘로 돌아가려했어. 그게 두 천사가 처음으로 갈라진 계기였단다.”
&
피비린내가 점차 심해졌다.
“막아-!”
“놈들이 올라오려 한다!”
“성벽이 점령당하면 모든 게 끝이다! 어떻게 해서건 저지시켜!”
그 피비린내의 주인은 인간과 괴물이었다.
시체의 산을 쌓은 괴물.
그 시체의 산위를 장식한 인간.
몇 명이 죽었는지, 또 몇 명이 죽어가는지 모를 난장판 속에서 카셀이 숨을 몰아쉬었다.
‘몇 시간이 지난 거지?’
전투는 싸움이 시작된 뒤로 쉼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단 일분. 단 일초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악마들이 몰려온 탓이었다.
덕분에 카셀의 육체도 만신창이였다.
입고 있던 갑옷은 이미 찢어진지 오래고 얼굴과 어깨에는 악마들의 살점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만약 그가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어도 안 이상할 체력의 한계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쌓아놓은 결과물은 꽤 나쁘지 않았다.
[끼에에에엑-!]
뻥뚫린 성문을 향해 덤벼드는 괴물들이 주춤 거리며 물러났다.
[끼에에엑-!]
괴성을 지르는 그들은 카셀을 향해 두려움을 내비쳤다.
그 모습에 카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 놈들도 공포를 느끼는 모양이군?”
[끼엑-!]
괴물들의 대답에 카셀이 시선을 돌렸다.
전투가 시작된 뒤로 끊임없이 덤벼들던 괴물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 시체의 숫자가 몇 인지는 눈으로 샐 수 없을 정도였다.
‘지성이 없는 괴물이라 할지라도, 이 광경을 보면 겁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건가.’
생각과 함께 카셀이 칼을 고쳐잡았다.
상황이 어떻건 놈들이 겁을 먹었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그 짧은 틈에 체력 회복은 물론이고 같이 싸우는 기사들의 체력도 회복시킬 수 있으니깐.
그 생각을 카셀은 천천히 입을 열어 주변의 기사들에게 전했다.
“아놀드. 지친 기사들에게 조금 쉬어두라 말하게. 놈들이 겁을 먹었어.”
“…….”
“아놀드? 왜 대답이 없나?”
다시 한 번 불렀지만, 줄곧 같이 싸우던 아놀드란 이름을 가진 기사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 탓에 의아함을 느낀 카셀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아놀드라 불린 기사 대신 낯선 병사가 창을 꼬나쥐고 있는 게 보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카셀이 질문했다.
“…아놀드는 어디가고 당신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소?”
병사가 겁에 집려 대답했다.
“그,그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경의 옆을 지키라는 명을 받고….”
말을 흐리는 병사가 딸꾹질을 했다.
그 모습에 카셀이 입을 다물었다.
겁에 질린 병사의 눈에 피범벅이가 된 제 모습이 보였다.
‘이런 내 모습에 겁을 먹은 것인가. 아니면 괴물들을 보고 겁을 먹은 것인가.’
어쩌면 둘다 일지 몰랐다.
그리고 이 젊은 병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취를 감춘 아놀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었거나, 부상을 당했거나.
그 용맹한 바이에른 기사가 전장을 이탈한 이유는 이것 하나 뿐이었다.
생각과 함께 카셀이 중얼거렸다.
‘지친 건 괴물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였군.’
그랬기에 더욱 이 자리를 비켜줄 수 없었다.
“레버쿠젠의 영광을 위하여-!”
이곳도 격전이지만 지금 전장 한복판을 휩쓸고 다니는 레버쿠젠 기사단.
전장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 성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상념을 끝마친 카셀이 그렇게 다시 칼을 들었을 떄였다.
갑자기 악마들이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엑-!]
지켜보던 카셀의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내지른 악마의 비명이 여태 내뱉던 비명과는 뭔가 달랐기 때문이다.
‘…뭐지? 이건 꼭 합창을 하는 것 같은….’
그 때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악마들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그 이변에 카셀이 신체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 떨린 그 때 누군가 그 사이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깜짝 놀란 카셀이 중얼거렸다.
“사람?”
이 말에 악마들 사이로 걸어나온 사내가 대답했다.
“그럼 자네는 괴물인가? 피를 흠뻑 뒤집어 쓴 게 인간보다는 괴물을 닮았군.”
“….”
카셀이 정신을 차리고 질문했다.
“…당신, 누구요?”
이 말에 사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전장을 칼을 든 이는 한 종류 뿐이지.”
대답을 한 사내가 등뒤에 매달아 놓은 거대한 검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싸움을 찾아 해매는 나찰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네.”
카셀의 시선이 좁혀졌다.
“나랑 싸우겠단 거요?”
“그래. 젊은 소드마스터여.”
사내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20년만에 소드마스터의 피를 취할 기회야.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주게.”
소드마스터 사냥꾼.
할리버가 전장에 난입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