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03화 (203/265)

제203화

검은 날개를 단 인간.

그 인간으로부터 라 하르칸은 두려움을 느꼈다.

‘뭐지 이 존재는?’

어둠 속에서 태어난 그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수 많은 드래곤들에게 둘러쌓여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생존의 욕구를 느꼈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설풍과 함께 등장한 이 인간을 마주한 순간, 난생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 라 하르칸이었다.

‘절대로 평범한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악마?’

검은 날개는 악마의 상징이다.

그럼 지금 눈앞에 있는 인간은 악마일까?

라 하르칸은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악마의 외형과 비슷하지만, 그렇다 해서 악마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인간의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검은 날개를 달았음에도 악마가 아니라 인간... 이 무슨 기괴한 존재란 말인가.’

라 하르칸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온 그 때, 칸 마드리드가 다시 질문했다.

“선택하거라 사악한 드래곤아. 여기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지, 아니면 날 따라 세상을 거머쥘지.”

이 말에 라 하르칸의 세 개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였다.

자연스레 칸 마드리드와 시선이 마주쳤다.

검은 날개를 닮은 검은 눈동자는 제 시선과 마주쳤음에도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그 사실에 라 하르칸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드래곤들조차, 이 눈과 마주하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하등한 인간이 두려움에 떨기는 커녕 이토록 태연하다니.

라 하르칸이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 인간이야 말로 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르겠군.’

생각을 끝마친 라 하르칸이 대답했다.

[그래… 죽을 봐에는 발버둥이라도 치는 게 낫겠지.]

스르륵, 다 죽어가는 몸뚱이를 일으킨 라 하르칸이 칸 마드리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너에게 내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 인간.]

이 말에 대답을 기다리던 칸 마드리드가 입꼬리를 올렸다.

“잘 선택했다 라 하르칸. 그 남은 인생, 아주 값지게 써주마.”

* * *

칸 마드리드와 손을 잡은 라 하르칸은 천천히 망가진 육체를 회복시켰다.

‘너의 몸은 특별하다. 존재 자체가 지워지지 않는 한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육체.’

그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자신보다 제 육체에 대해 더 잘 알았다.

‘그런 육체가 낫기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시간과 휴식 뿐. 잠시 잠들어라 라 하르칸. 긴 동면기를 끝내면, 너의 육체는 나아있을 것이다.’

그가 제공해준 안식처.

또 다른 말로는 레어라 부를 수 있는 신전에서 라 하르칸은 잠들었다.

그렇게 수 백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깨어나니 칸 마드리드의 말대로 육체의 상처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그 사실에 라 하르칸이 기쁨의 포효를 터트린 순간, 칸 마드리드가 어떻게 알았는지 홀연히 나타나 속삭였다.

‘깨어났구나. 나의 드래곤아.’

칸 마드리드의 말에 라 하르칸이 포효를 멈추며 대답했다.

[딱히 너의 드래곤이 된 적은 없는데?]

‘나와 손을 잡은 이상 너의 육체 눈 혼. 그 모든 것이 내것이다.’

라 하르칸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만하도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구나.]

낮은 하울링을 터트린 라 하르칸이 질문했다.

[이제 나는 뭘 하면 되지?]

‘힘을 길러야지.’

칸 마드리드가 눈빛을 번뜩였다.

‘내가 알려주는 곳으로 가서 동면에 든 드래곤들을 사냥해라. 그리고 너의 잃어버린 힘과 권능을 되찾아와라.’

라 하르칸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내 머릿속을 드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어찌 이리 잘 안단 말인가.]

안 그래도 평생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굶주림이 다시 느껴지던 참이었다.

이 굶주림을 멈출 수 있는 건 오로지 같은 드래곤의 피와 심장뿐.

그리고 눈앞의 인간은 그 사실을 절묘하게 잡아내 가장 필요한 조언을 해주었다.

‘잠이 든 드래곤의 위치. 이 얼마나 멋진 정보란 말인가?’

그랬기에 라 하르칸은 칸 마드리드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칸 마드리드의 말에 따라 잠이 든 드래곤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잡아먹은 드래곤들의 숫자가 늘어날 수록, 라 하르칸의 힘은 점차 되돌아왔다.

결국 그 숫자가 열을 넘어가자, 라 하르칸은 자신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힘을 대부분 회복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돌아왔다! 내 힘! 내 권능!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라 하르칸이 다시 한 번 기쁨에 찬 포효를 터트린 그 때, 이번에도 칸 마드리드가 귀신 같이 나타났다.

두 번이나 똑같은 일을 겪은 탓에 라 하르칸은 더는 놀라지 않았다.

대신 제 앞에선 칸 마드리를 향해 낮은 하울링을 토해냈다.

[고맙구나. 날개를 단 인간아. 네 덕에 나는 잃어버린 권능을 되찾았다.]

이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 라 하르칸이 세개의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 보답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마. 무엇을 원하느냐?]

라 하르칸의 말에 칸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라 하르칸. 이 어리석은 드래곤아. 어찌 네가 잃어버린 힘을 다 되찾았다고 단언 할 수 있는 것이냐?’

[…?]

‘드래곤은 본디, 드래곤 하트가 있기에 드래곤이라 불리는 법.’

[…!]

‘너는 잃어버린 네 심장을 되찾야만 비로소 진짜 힘을 되찾는 것이다.’

라 하르칸의 주둥이가 살짝 벌어졌다.

어찌 이 인간이 제 하트의 비밀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큰 충격을 받은 라 하르칸은 생각했다.

‘도대체 이 인간의 정체는 무엇이지?’

인간의 몸으로 수 백년을 살고, 검은 날개를 달고 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재주와 힘은 자신의 눈으로도 감히 파악하지 못했다.

‘설마 신이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신이 왜 인간의 형상을 한 채 나타난 말인가?

그 탓에 라 하르칸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이 말에 칸 마드리드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이길래, 저 같은 것에게 이런 과부한 선물을 주시는 겁니까?]

칸 마드리드가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손을 뻗어, 라 하르칸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라 하르칸의 입에서 낮은 하울링이 터져나온 그 때, 칸 마드리드가 입을 열었다.

‘신이다.’

[…!]

‘그래… 이 세상 말로하면 신이지.’

칸 마드리드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 세상의 지배자. 그것이 바로 나의 정체다.’

그 순간 세상이 일렁거렸다.

동시에 숨죽여 숨겨진 진실을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그렇게 된 거였구나.’

모든 진실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 * *

눈을 뜬 아더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

검은 천장과 그 천장 사이에 떠오른 빛이 보였다.

잠시 그 빛을 바라보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고마워요. 진실을 보여줘서.”

이 말에 빛이 대답했다.

[진실을 모두 깨달으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까?]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빛이 설명했다.

[본디 그 어떤 존재건 눈앞에 닥친 시련과 난관에 눈을 돌리기 마련입니다.]

“…….”

[그리고 천사께서는 지금 시련과 난관에 드셨습니다. 그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으실 겁니까?]

빛의 질문에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도망치면 뭐가 달라지나요?”

[…?]

“눈앞의 시련 난관, 이런 것들을 피할수 있으면 도망치고 싶은데… 시련과 난관이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피할 수 있다면 시련과 난관이라 불리지 않았을 테니깐.”

아더가 씩 웃어보였다.

“그럴 바에는 피할 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즐길래요. 그게 제 정신을 위해서도 좋을 테니깐.”

빛이 잠시 침묵하다,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언어유희군요.]

“오. 이번에 잘 눈치채셨네요. 이게 농담이에요.”

[기억해두겠습니다. 인간의 농담은 이런 것이라고….]

말을 흐린 빛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 빛씨. 몸이 조금 작아지셨는데요?”

아더의 질문에 빛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는 사념체입니다. 라 하르칸… 그 괴물에게 잡아먹힌 드래곤들이 모여 만들어진 남겨진 혼령. 지금 전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전했으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요.]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할 일을 마쳤으니… 이제 하늘로 올라간다, 이 말이군요?”

[예.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천사시여.]

“…아니에요. 저야말로 감사해요. 제게 이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까지 지상에 남아계신 거잖아요?”

빛이 웃음을 터트렸다.

[천사께서는 참으로 상냥하시군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상냥하다고요?”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와 배려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천사께서는 저 같은 빛에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지요.]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음… 상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듣기에는 좋은 말이네요. 항상 미쳐있단 말만 들었는데.”

아더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요. 좋은 말씀해주셔서. 그럼 이제 가시는 건가요?”

빛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할일은 다마쳤습니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을 흐린 빛이 갑자기 폭발했다.

깜짝 놀란 아더가 뒤로 주춤 물러난 그 때, 가슴 팍의 고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왜 고리가?’

우연이라 하기에는 단순한 진동이 아니었다.

갑자기 공명을 시작한 고리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아더가 당황한 그 때, 새하얀 빛이 무언가로 뭉쳐져 아더의 앞에 내려앉았다.

“……!”

그 결정체를 확인한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드래곤… 하트?”

착각인가 싶어, 다시 바라보았지만 아니었다.

아케인에서 보았던 그 하트의 조각과 똑같은 기운이 눈앞의 결정체에서 느껴졌다.

그 탓에 아더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그 때, 빛이 인사했다.

[제가 남겨드리는 선물입니다. 부디 뜻을 이루소서 천사시여.]

마지막 유언을 남긴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빛이 모여 만들어진 결정체가 박동을 시작했다.

두근두근-!

그 거친 두근거림을 정신을 차린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드래곤 하트는 최고의 영약.’

이 심장을 먹기만 한다면, 그 어떤 칼잡이도 단숨에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알려진 최고의 영약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바로 마나.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밟았지만, 그 마나는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심장을 먹으면….’

마침내 그 마지막 퍼즐 조각까지 완성이 되는 것이다.

생각을 끝마친 아더가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고마워요, 빛 씨. 아니 이 세상의 수호신 드래곤.”

눈빛을 번뜩인 아더가 눈앞의 결정체를 집었다.

“당신들이 남겨준 심장으로… 당신들을 죽인 그 괴물을 반드시 죽일게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빛의 결정체를 망설임없이 집어삼켰다.

꿀꺽.

목울대가 출렁이며, 잠시 세상이 정지했다.

그 이변에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 순간, 뱃속으로 부터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올랐다.

“……!”

아더가 무게중심을 잃고서 걸음을 비틀거렸지만, 뱃속으로 부터 솟구쳐 오른 기운은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뱃속을 벗어나 온몸으로 퍼진 뜨거운 기운이 강제로 온몸을 휘감았다.

그 거침없는 마나의 질주에 아더가 입꼬리를 부르르 떨었다.

‘엄청난 양이야… 이 마나만 제어 할 수 있으면.’

소드마스터를 상징하는 10개의 고리를 달성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달성 할거야. 그러니 제어해야 해.’

눈빛을 번뜩인 아더가 가부좌를 털었다.

그리고 곧바로 온 정신을 집중해 질주하는 마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드래곤 하트의 마나라 그럴까.

아니면 폭발적으로 늘어난 마나의 양 탓일까.

처음으로 아더는 마나의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통제가 어렵다 뿐일지, 통제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돼!’

긴 한숨을 내어쉰 아더가 모든 잡념을 버리고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더의 모든 정신과 감각이 마나에 집중되었을 때였다.

어둠 너머.

그 광경을 몰래 지켜보던 존재가 낮은 하울링을 토해냈다.

[…새끼 드래곤도, 치열한 전투 끝에 먹는 드래곤도 잠에 든 드래곤보다 맛이 없었다.]

이 말과 함께 숨죽여 때를 기다리던 라 하르칸이 거체를 움직였다.

[그러니 잠에 든 천사도 분명 맛있을 것이다. 너를 집어삼키고 내 굶주림을 채우리라.]

두 장의 검은 날개를 펼친 라 하르칸이 쏜쌀같이 날아올라 명상에 빠져든 아더를 노렸다.

온 정신이 마나에 집중되어 있던 아더는 그 기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라 하르칸의 날카로운 어금니가 아더의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붉은 검선이 그 앞길을 가로막았다.

쾅-!

깜짝 놀란 라 하르칸이 물러섰다.

그 사이 회색머리칼의 사내가 붉은 대검을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존재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네놈은 참 비겁하구나 라 하르칸. 상대가 가장 약한 때만 노려 그 목숨을 취하려 하다니.”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앞을 가로막은 카셀이 거칠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내 주군에게서 썩 멀어져라! 사악한 괴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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