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58화 (158/265)

제158화

축제가 열렸다.

“와아아아-!”

“마시고 죽어!”

“죽고 마셔!”

“죽어서도 마셔!”

아케인 역사를 뒤져보아도, 전에 없던 거대한 축제였다.

노점 상들은 모든 술과 음식을 공짜로 풀었고, 7년만에 아케인의 밤하늘에 폭죽이 쏘아졌다.

“역사적인 날이야!”

“오늘을 즐기지 못하면, 다음은 없어!”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 그냥 죽어보자고!”

거리 곳곳에서 흥겨운 노래가 울려퍼졌고,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광경을 우유를 홀짝이며 지켜보던 아더는 생각했다.

‘뭔가 익숙한걸?’

흥과 자유가 살아넘치는 도시, 아케인.

지금의 광경만 놓고 보면 자신이 알던 그 도시로 마침내 돌아온 듯했다.

그 탓에 아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을 때였다.

지니의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공자님 여기서 뭐해요?”

그녀의 질문에 아더가 잔을 들어올렸다.

“우유 마시는데요?”

지니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축제에 웬 우유에요? 윌렛 어르신에게 술 배우셨잖아요?”

“아, 배웠는 데 제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우유가 더 맛있어요.”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이해가 안 가는데, 공자님답네요.”

이 말과 함께 지니가 아더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더는 다시 시선을 돌려, 폭죽이 터지는 광장을 바라보았다.

슬슬 취기가 올랐는지, 몇몇 사람들이 캠프 파이어 앞에서 춤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때, 지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위기 좀 잡아 보려 했는데, 안 되겠네요.”

“…?”

“축제면 즐겨야죠. 이리 와요 공자님.”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손을 덥썩 붙잡은 지니가, 어딘가로 향했다.

그 순간 조금 전까지 보던 캠프파이어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

불타오르는 불길을 앞에 두고 몇몇 커플이 춤을 췄다.

짝을 이루지 못한 사내들은 서로의 손을 잡었다.

그 반대편에서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어울리는 그 축제의 장을 지켜보던 때, 지니가 입고 있던 가죽 자켓을 홀렁 집어던졌다.

그 순간 단조롭지만, 아주 예쁜 붉은 드레스가 드러났다.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질문했다.

“…갑자기 옷은 왜 벗어요 지니?”

“왜 벗긴요. 저도 이날 하루쯤은 즐겨도 되지 않겠어요?”

지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춤 춰봤어요 공자님?’

“아뇨. 한 번도 안춰봤어요.”

“다행이네요. 저도 한 번도 안춰봤거든요.”

“…?”

“뭘 하건 초보끼리 해야 재밌죠. 제 손 잡아봐요.”

아더가 어떨결에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지니가 자연스레 아더를 캠프 파이어로 이끌었다.

그 모습을 아더가 잠시 홀린 듯이 바라보던 떄, 지니가 엉성한 모양새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지니 몸치였군요?”

“초보라 했잖아요.”

“그런 것치고도 너무 못 추는데요?”

아더의 말에 지니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주변을 훔쳐보았다.

다들 춤 실력이 그저 그랬는데, 그 중 유독 잘 추는 커플이 눈에 띄었다.

그 모양새를 잠시 훔쳐본 아더가 지니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악력에 지니가 흠칫 놀란 그 때, 그녀의 허리가 90도로 꺽여졌다.

“…!?”

지니가 입을 벌렸다.

그 사이 꺾여진 지니의 허리를 제 손으로 받치던 아더가 씩 웃어보였다.

“시작 할게요.”

“…??”

이 말과 함꼐 아더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입을 벌린 지니가 그 춤 사위에 속속무책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썩 나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꼬이던 스탭은 물론이고, 하기 어려운 동작마저도 아더의 손에 몸을 맡기니 손쉽게 재현됐다.

그 탓에 경악한 지니가 중얼거렸다.

‘무,뭐야? 왜 이렇게 잘 추는 거야?’

처음 추는 거 맞나?

이런 춤 사위는 재능만으로 되는 게 아닌데?

그 사이 아더는 점점 익숙해지는 스탭 속에서 생각했다.

‘쉽네 이거.’

처음에는 이들 중 가장 춤을 잘 추는 커플을 보고 따라한 거지만, 점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춤이라는 거… 검을 휘두르는 거랑 비슷하잖아?’

단지 차이가 있다면, 손에 들린 것이 칼이 아니라 파트너라는 거였고 그 파트너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는 것이었다.

이미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는 아더에게 있어, 이 작은 차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탓에 발걸음을 점점 더 가벼워지던 그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캬아-!! 뭐야 저 커플! 엄청나잖아!”

“이봐, 자리 좀 만들어줘!”

“어이 형씨! 메인으로 와! 주변에서 맴돌지 말고!”

술에 취한 남정네들이 아더를 알아 보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호응 덕일까, 춤을 추던 커플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연스레 아더와 지니가 메인 자리에 서게 됐다.

화르르륵-!

그 순간 절묘하게 피어오른 캠프파이어의 불꽃이 아더를 포함한, 춤을 추는 이들을 따스히 보듬었다.

그 광경에 환호성이 터져나오던 때, 저 멀리 옥탑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윌렛이 중얼거렸다.

“…청춘이군.”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안젤리나가 중얼거렸다.

“부럽네요. 저 젊음이.”

“…시장께서는 아직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어머 제가요? 못해도 어르신이랑 비슷한 연배일텐데.”

“…….”

윌렛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안젤니라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나쁘게 봐도, 30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은 그녀였다.

그 사이 안젤리나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마법사의 나이는 눈으로 가늠하면 안 되는 법이죠 어르신.”

정신을 차린 윌렛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때, 광장에서 쏘아져 올라간 폭죽이 밤하늘을 뒤덮었다.

파앙-!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안젤리나가 중얼거렸다.

“오늘 밤이 끝나면, 많이 바빠지겠죠?”

그녀의 말에 윌렛이 대답했다.

“그럴 겁니다. 아마 무수히 많은 압력이 들어 올테니.”

윌렛의 담담한 대답에 술잔을 쥔 안젤리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케인 총독부의 괴멸.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도르문트가 다시 아케인으로 쳐들어올 구실을 준 셈이지.’

그리고 케인 도르문트는,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13귀라는, 제 수족을 잃어버린 대가를 받아낼 것이다.

그 대가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아케인의 '멸망’

‘믿기지 않지만, 그 미치광이 사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그 탓에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그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동맹군을 만들고 든든한 후원자를 둬야 했다.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안젤리나는 무조건 해낼 생각이었다.

“하하하-!”

다시 웃음을 되찾은 저 시민들을 슬픔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서는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각오와 함께 안젤리나가 술잔을 기울일 때였다.

옆에 있던 윌렛이 툭 하고 중얼거렸다.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시장님?”

그의 말에 안젤리나가 대답했다.

“무슨 제안이죠, 어르신?”

“아케인의 미래에 관해서입니다.”

“…?”

“이제 아케인은 둘 중 하나입니다. 이대로 멸망하거나, 아니면 전의 영광을 되찾거나.”

이 말과 함께 윌렛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미래를 위한… 투자 한 번 해볼 생각인데 들어보시겠습니까?”

안젤리나의 눈이 커졌다.

* * *

축제는 계속 됐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웃음소리가 거리를 뒤덮었다.

지칠 법도 한데, 아케인 시민들은 계속해서 그 분위기를 즐겼다.

D구역의 거지도, A구역의 부호도.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가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하지만 무엇이건, 끝이 있는 법이다.

축제는 성대한 폭죽 쇼와 함꼐 막이 내렸고, 사람들은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렇게 다시 일상이 찾아왔을 때, 윌렛이 아더를 호출했다.

축제에 흠뻑 젖어 있던 아더가 그 호출에 채비를 하고서 윌렛의 방을 찾았다.

“음…? 시장님고 함께 계시네요?"

아더의 말에 윌렛의 옆에 있던 안젤리나가 손을 흔들었다.

“축제는 잘 즐기셨나요, 공자?”

“네. 엄청 재밌더라고요. 시장님은요?”

“저야 뭐, 첫날 빼고는 일만 했죠.”

아더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도 좋지만 쉬엄쉬엄하셔야죠.”

“저도 그러고 싶네요… 마음 같아서는 얼른 은퇴를 하고 싶은데.”

이 말과 함께 안젤리나가 힐끔 윌렛을 바라보았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윌렛이 그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왔나, 아더 바이에른.”

아더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인사에 윌렛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질문했다.

“물? 커피? 아니면 우유?”

“우유로 주세요.”

윌렛이 별말하지 않고, 우유를 들고와 잔에다 따라주었다.

그 후 아더의 맞은 편에 앉아 시가에 불을 붙였다.

“쥴리랑도 축제에 어울렸나?”

“쥴리요?”

“그래. 많이 기대한 모양이던데?”

윌렛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울리기 보다는 다 같이 바베큐 파티를 했죠.”

“천사의 집 아이들이랑?”

“네. 거기서 아케인 두 교수님하고도….”

시작된 아더의 설명을 윌렛이 시가를 태우며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설명하던 아더가 문득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어?… 그런데 어르신하고는 못 즐겼네요."

윌렛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같은 늙은이하고 축제를 즐겨서 뭘 하겠나?”

“에이, 축제에 나이가 어딨어요. 지금이라도 술 한잔 할까요?”

“됐네. 이미 축제가 다 끝난 마당에 술은 무슨….”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윌렛이 서류 몇 개를 가지고와 아더 앞에 내밀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질문했다.

“이게 뭐죠 어르신?”

“아케인 열차가 다시 움직인다는 문서네”

“…!”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그 반응에 윌렛이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 도시에 자네를 묶어두고 싶지만… 자네에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그의 질문에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야 할 일이 있죠.”

그 의지를 확인한 윌렛이 운을 땠다.

“그 일이… 도르문트와 관련이 있나?”

“…?”

아더가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는 데,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은 윌렛이었다.

‘…이럴 때는 조금 무섭군.’

하지만 운을 띄웠는데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윌렛은 시가를 태우는 척, 하며 짐짓 여유를 부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왜 물으시는 거에요 어르신?”

“별 뜻은 없네. 그저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확인이요?”

“그래 확인.”

윌렛이 긴 연기를 내뿜었다.

“만약 목표가 같다면… 아케인을 한 번 거둬보는 건 어떤가?”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르신?”

“쉽게 말해서 이거네.”

윌렛이 씩 미소지었다.

“자네에게 '아케인'이 힘을 실어주겠단 거네.”

* * *

윌렛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케인이 저한테 힘을 실어주겠고요?”

“그래.”

“…무슨 힘을 말이죠?”

“바이에른과 도르문트과의 분쟁에 대한 모든 것.”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윌렛이 눈빛을 반짝였다.

“어차피, 아케인은, 도르문트 총독부에게 반역을 든 이상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

“살아남던가, 죽이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그런 상황에서….”

말을 흐린 윌렛이 씩 웃어보였다.

“바이에른… 아니. 그 바이에른의 후계자인 자네와 힘을 실어주는 건 최선의 선택이라 볼 수 있지.”

정신을 차린 아더가 순수히 감탄했다.

“오… 도르문트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손을 잡자?”

“그런 셈이지.”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듣다 보니 매력적인 제안이네요.”

“…그래서 자네 생각은?”

“흠… 흥미가 가긴 한데, 이거 하나만 짚고 넘어갈게요.”

아더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어르신은 제가 왜 도르문트와 대적한다 생각하시는 거에요?’

윌렛이 방긋 웃었다.

“자넨 날 뭘로 생각하나?”

“네?”

“난 아케인 최고의 브로커네. 여기서 내 눈을 피해갈 수 있는 정보는 없어.”

“…….”

“자네 행적에 관해 다는 알지 못하더라도, 굵직한 것들은 이미 머릿속에 있지. 정 원한다면, 한 번 쭉 나열해 보겠네.”

윌렛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네요. 흠….”

그 반응을 지켜보던 안젤리나가 입을 열었다.

“공자, 이건 바이에른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에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질문했다.

“어째서죠?”

“아케인이 7년 간, 숨죽여 있었다고는 해도, 아케인. 이 도시는 여전히 대륙에서 손꼽히는 상업 도시에요.”

안젤리나의 눈빛이 반짝였다.

“만약 공자가 아케인을 거둬들인다면, 이 도시의 거대한 재정을 손에 넣는 거에요. 그건 분명 바이에른에게 도움이 되겠죠.”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호…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죠. 그러니 이건 둘 다에게 이득이 되는 조건이에요. 공자의 선택에 따라 둘 모두에게 기회가 될지도 모르고.”

“흠….”

말을 흐린 아더가 고민에 잠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젤리나와 윌렛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거부 할 수 없는 제안일 테지.’

‘이건 아케인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아더 바이에른. 그에게도 결코 나쁜 조건이 아니다.’

이 도시를 거둬들이는 것만으로, 바이에른의 위상은 더없이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아케인은 그 바이에른의 위상에 힘입어 케인 도르문트를 견제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모두에게 엄청난 이득이 떨어지는 상황.

제정신을 가진 이라면, 이 제안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그 탓에 윌렛과 안젤리나가 자신만만하게 아더의 대답을 기다릴 때였다.

침묵하던 아더가 마침내 입을 열고서 선언했다.

“좋아요 결정하겠습니다.”

“…!”

윌렛과 안젤리나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기대감을 숨기지 않은 눈빛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방긋 미소지었다.

“죄송하지만 어르신.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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