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노움?”
흰 수염의 저주에서 벗어난 뒤, 줄곧 보이지 않던 두 정령.
그 중 한명인 땅의 상급 정령인 노움이 놀랍게도 눈앞에 있었다.
그 탓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릴 때, 노움이 황급히 소리쳤다.
[사, 살려줘 아더! 죽기 싫어 제발!]
“…….”
입을 다문 아더가 중얼거렸다.
‘뭐지…? 왜 갑자기 노움이 나타난 거지?’
흰 수염의 저주에서 풀려난 순간부터, 줄곧 정령들을 소환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눈앞의 노움은 물론이고, 운디네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더는 그 이유를 지니 때문이라 짐작했다.
그녀의 특별한 혈통 덕에 정령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문제가 생긴 게 그쪽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더의 예측은 빗나갔다.
다시 만난 그녀는 제 파트너인 실프와 여전히 두터운 유대를 자랑했다.
그 탓에 다시 고민에 빠졌지만, 연달아 터지는 사건 덕에 잠시 정령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아더였다.
그런데 윌렛이 숨을 거둔 직후, 갑자기 노움이 나타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 상황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을 때, 노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서 애원했다.
[아더… 아더… 제발 살려줘. 나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 노움? 제가 왜 노움을 죽여요?”
아더의 질문에 노움이 딸꾹질을 하며 대답했다.
[가, 갑자기 칼을 휘둘렀잖아!]
“그건 노움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렇죠.”
[….]
“생각해보세요. 이런 야밤에, 갑자기 수풀이 흔들리는 데 어느 누가 칼을 안 휘두르겠어요?”
아더의 대답에 노움이 눈의 커졌다.
‘어… 생각해보니 그렇네?’
놀랍게도 아더의 말이 맞았다.
어느 누구라도 이런 야밤에 수풀이 흔들리면 예민하게 반응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순 상식을 떠올리지 못한 건 그간 보여 준 아더 바이에른의 광기 때문이었다.
‘투, 툭하면 칼질을 해서 누구를 썰어버리니깐 그렇지!’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오해한 게 맞기에 할 말이 없어진 노움이었다.
머쓱해진 노움이 머리를 긁적였다.
[…….]
“…….”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고, 아더와 노움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던 중,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노움.”
[…응?]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네요.”
아더의 말에 노움의 눈이 커졌다.
‘어, 어?’
그 아더 바이에른에게 이런 상냥한 말을 하다니?
그 탓에 당황한 노움이었지만, 곧 침착히 대답했다.
[어… 나도 아더.]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설명을 좀 해봐요.”
[뭐를?]
“그간 왜 안 나타난 거예요? 혹시 계약에 문제가 생겼나요?’
아더의 질문에 노움이 눈빛을 빛냈다.
[나야말로 묻고 싶어 아더. 대체 어디를 갔던 거야?]
이 말과 함께 노움이 설명을 시작했다.
지난 7년 전 일이었다.
그날 괴물 같은 흑마법사.
흰 수염과의 거친 격전은 아더 혼자만이 겪은 게 아니었다.
아더를 대신해 흰 수염이 소환한 괴물과 맞서 싸우던 노움과 운디네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운석이 떨어지더라고!]
그 순간 노움은 물론이고 운디네도 정령계로 역소환당했다.
한계 이상의 육체적 데미지를 입어, 강제로 소환당한 것이었다.
[정령계의 시간으로는 30년. 인간의 시간으로는 거의 1년 동안 꼼짝도 못 했어….]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때는, 아더의 존재감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줄 알았어 아더가. 그런데 희한하게 또 계약은 아직 멀쩡하더라고.]
그 탓에 노움은 나름 힘을 써서, 아더를 찾기 위해 대륙 곳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아더 바이에른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정령계로 돌아갔는데, 돌연 아더 바이에른의 기운이 느껴진 것이었다.
[처음엔 믿지 못했지… 인간의 시간으로는 거의 7년만에 아더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깐.]
노움이 이 말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난… 그 사악한 흑마법사인 줄 알았어. 그자라면 정령과의 계약에도 간섭이 가능하니깐… 아더를 죽인 그 흑마법사가 날 해코지라 하려드는 줄 알았어.]
그 탓에 마피아가 된 지니의 거처에서 아더가 소환했을 떄, 응답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말로 아더 바이에른이 맞는지, 확인한 뒤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노움의 설명의 끝마쳤고, 모든 상황을 파악한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노움도… 많은 일이 있었네요.”
[…맞지. 많은 일이 있었지.]
노움의 대답에 아더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움찔 놀란 노움이 자신도 모르게 물러선 그때, 아더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노움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 갑작스러운 접촉에 노움의 입을 벌린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미안해요, 노움.”
[…!]
“많이 기다렸나요? 저도 제 나름의 사정이 있었지만… 음. 이번에는 꼭 사과 하고 싶네요.”
아더의 말에 노움이 눈을 끔뻑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많이는 안 기다렸어.]
“아 그래요?”
[그래도… 엄청 보고 싶었어 아더.]
노움의 말에 아더가 씩 미소지을 때였다.
불현듯, 노움과 함께 제 옆을 든든히 지켜주던 또 다른 정령이 떠올랐다.
“…!”
눈을 치켜뜬 아더가 입을 벌렸다.
‘노움의 계약에 문제가 없다면… 운디네와의 계약에도 문제가 없을 확률이 커.’
그리고 운디네의 능력은 ‘재생’이었다.
‘물의 정령들은… 예로부터 최고의 치유술사.’
그 능력은 고위 신관에 버금갈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특수한 상황에 따라 교황의 치유력마저 능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만약 윌렛 어르신이 살아있고, 운디네와의 계약이 아직 끊기지 않았으면….’
아직 기회가 남아있을지 몰랐다.
눈빛을 빛낸 아더가 황급히 윌렛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윌렛의 코끝에 손가락을 대고서 가만히 그 숨결을 느껴보았다.
“…….”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분간이 어려웠다.
그 탓에 아더의 인상이 찌푸려진 순간, 어느사이엔가 다가온 노움이 조언했다.
[아더. 이 사람. 아직 살아있어.]
“…!”
노움의 말에 깜짝 놀란 아더가 질문했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예요, 노움?”
[아직 생명의 기운이 끝나지 않았거든. 미약하지만 살아있어.]
노움의 설명에 아더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얼굴도 상기되었는데, 그 모습에 노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어, 아더.]
아더의 두 주먹에 힘이 들었다.
* * *
노움이 조언을 들으며, 엘디움 호수로 향했다.
[운디네도 나랑 마찬가지로 계약은 끊기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소환이 안 되는 건… 크게 두 가지 경우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무슨 이유인데요?”
[첫 째는 아더의 자격 조건에 문제가 생긴 것.]
“흠… 그건 아니지 않나요?”
[맞아. 나랑도 계약이 끊기지 않은 걸 보면, 아더의 자격 조건에는 문제가 생긴 게 아니야.]
노움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럼 남은 두 번째인, 운디네 본인한테 문제가 생겼다는 건데 이 경우를 잘 모르겠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잘 모르겠다니요? 노움도 운디네를 안 만나 본 거예요?”
[응. 아더와 계약이 끝난 순간, 나도 운디네를 본 적이 없어.]
아더의 표정이 살며시 굳어졌다.
‘설마 운석이 충돌할 때의 여파로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만큼 그때 당시 흰 수염이 보여준 마법은 파멸적이었으니.
그때 노움이 다시 한번 조언해 왔다.
[너무 걱정 하지 마, 아더! 정령들은 절대 죽지 않으니깐!]
노움의 위로에 아더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겠죠? 무슨 일 없겠죠?”
[그럼! 꼭 운디네한테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계약 자체에 문제가 생긴 거일 수도 있어!]
노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엘디움 호수에 도착했는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더는 업고 있던 윌렛을 내려놓은 뒤, 고개를 돌렸다.
반짝이고 있는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
달빛에 반사된 호수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아더는 그 호수를 향해 다가가, 가만히 손을 담갔다.
차가운 호수의 물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지켜보던 노움이 입을 열었다.
[아더. 운디네를 불러봐.]
노움의 말에 아더가 정신을 집중했다.
‘…운디네.’
그 순간 몸속에 각인된 지니의 혈통이 들끓었다.
화악-!
하지만 들끓기만 했을 뿐,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 탓에 다시 눈을 뜨니 노움이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계약은 이어지고 있는데?]
노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니의 혈통 능력이 반응하는 걸 보니, 계약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운디네가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니라 나타나지 못하는 거 아닐까?’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이렇게도 생각 할 수 있었다.
운디네의 의지와 다르게 계약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소환이 안 되는 것이다.
잠시 고민한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움. 자연과 가까워 질 수록, 정령과의 계약이 쉬워지는 거 맞죠?’
아더의 질문에 고민에 빠져있던 노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게 계약자의 첫 번째 조건이니깐.]
노움의 대답에 아더가 웃옷을 훌렁 벗었다.
[아, 아 더!?]
깜짝 놀란 노움이 아더를 불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아더 바이에른은 어느사이엔가 호수 정중앙까지 헤엄 친 상태였다.
“…후우.”
그 사이 호수 안으로 들어온 아더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집중해, 지니의 혈통을 끌어올렸다.
‘운디네.’
그 순간 조금 전보다 강하게 지니의 피가 들끓었다.
그 반응에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나오지 못하는 거였어.’
노움과는 경우가 달랐다.
운디네는 아직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였다.
확신과 함께 아더가 숨을 참았다.
파앗-!
잠수를 한 채, 호수 밑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그 순간 느껴지는 추위에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곧 침착히 지니의 혈통을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운디네.’
또다시 지니의 혈통이 끓어 올랐다.
조금 전보다 강하고 확실하게.
또다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호수 밑으로 갈수록 반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
그 탓에 아더는 조금 더 깊숙이 잠수했다.
화악-!
호수 밑으로 향할수록, 지니의 혈통도 강하게 반응했다.
아더는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육체의 감각을 느끼며 속삭였다.
‘운디네 나와줘. 운디네의 힘이 필요해.’
이번 속삭임에 머리털이 쭈삣서는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뭔지 모를 벽이 약간이지만 허물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눈빛을 빛낸 아더가 멈추지 않고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랑 똑같아. 나의 소중한 사람이 위험에 빠져있어.’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신체는 점점 호수의 밑바닥으로 향했다.
‘운디네의 힘이라면…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 몰라. 그러니 제발 나와줘.’
그 바닥과 가까워질수록 몸이 달아오르는 감각도 심해졌다.
이제는 짜릿한 통증마저 느낄 정도였는데, 아더는 개의치 않았다.
몸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운디네와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아더가 끊임없이 헤엄치며 운디네의 이름을 부를 때였다.
갑자기 식도를 타고 무언가 울컥 쏟아졌다.
…!?
깜짝 놀란 아더가 입을 벌리니, 새까만 피였다.
눈을 끔뻑인 아더가 중얼거렸다.
‘운디네를… 불렀는 데 피가 나왔다고?’
뭐지?
운디네 본인이 거부하는 건가?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운디네의 거부 때문이 아니야.’
지금 자신과 운디네 앞을 가로막는 벽을 억지로 깨부수려 한 대가의 반동이었다.
아더가 눈빛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지금의 운디네를 소환하려면…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는 건가?’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대가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심한 아더가 눈을 감고서 지니의 혈통을 최대한으로 일깨웠다.
화악-!
그 순간 거대한 소용돌이가 주변을 감쌌다.
그 변화와 함께 아더는 몸이 찢어져 나갈 것 같은 거친 고통을 느꼈다.
화아아악-!
만약 뱀파이어 로드의 혈통과 트롤의 혈통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몸이 찢어졌을 지 모를 일이었다.
그 고통 속에서 아더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운디네. 내 몸은 얼마든 찢어져도 좋아.’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신체가 호수의 밑바닥에 스르륵 잠겼다.
‘그러니 제발 내 앞에 나타나 줘. 그리고 내 소중한 사람을 구해줘.’
그 순간 아더의 입에서 다시 한번 새까만 피가 터져나왔다.
고통도 고통인데,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 아더가 제 목을 졸랐다.
끔찍한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무언가 손끝에 닿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호수 바닥에 잠긴 유골들이 보였다.
“…?”
잠시 눈을 끔뻑인 아더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오? 윌렛 어르신이 말한 용병분들인가?’
아무래도 그래보였다.
이런 호수에 이런 해골이 그냥 있을 리가 없으니.
그 때 해골의 손이 움직였다.
“…!”
다시 한 번 깜짝 놀란 아더가 눈을 감았다 떴다.
하지만 조금 전 움직였던 해골의 손은 다시 내려간 뒤였다.
‘뭐지? 물보라 때문에 착각을 한 건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린 그 때,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울려퍼졌다.
[윌렛 어르신에게 전해주게. 아직 올떄가 아니라고.]
눈을 치켜뜬 아더가 입을 벌렸다.
그 순간 거친 소용돌이가 아더의 몸을 수면 위로 끌어당겼다.
“…!”
그 엄청난 힘에 아더가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수면 위로 끌어당겨졌다.
그 사이 엘디움 호수가 폭풍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거대한 파도로 뒤덮였다.
[무, 뭐야!?]
깜짝 놀란 노움이 쓰러진 윌렛을 안아들고 피신했다.
그 사이 엘디움 호수의 수면 위로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그 장엄한 광경에 노움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린 사이, 수면 위로 솟구친 물기둥이 거대한 문이 되었다.
[…허?]
그 이질적인 장면에 노움이 경악을 감추지는 못하는 그 때, 수면 위로 끌어당겨진 아더가 피를 토했다.
“…컥.”
새까만 핏덩이가 가슴 팍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아더는 머릿속을 울려대는 진한 현기증에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서 중얼거렸다.
‘까닥하면 정신을 잃는다.’
입술을 악문 아더가 쥴리의 혈통 능력을 일으켜, 제몸에다 지져버렸다.
파지지직-!
짜릿한 전류가 통증을 마비시키고, 끊어지려는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거친 한숨을 토해낸 아더가 호수 한가운데 생긴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두근두근-!
문의 등장과 함께 지니의 혈통이 더없이 강한 반응을 보내왔다.
거칠게 뛰어대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아더가 중얼거렸다.
“…운디네?”
그 순간 호수 한복판에 세워진 거대한 문이 열렸다.
촤아아악-!
동시에 뻗어나간 청량한 기운이, 아더를 넘어 엘디움 호수 전체를 감쌌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노움이 경악해 중얼거렸다.
[저건, 설마….]
정령을 소환하는 데, 저런 문이 등장하는 경우는 단 하나 뿐이었다.
그 탓에 노움이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엎드린 사이, 문이 열렸다.
화아아악-!
모든 것이 새파란 공간 속에서 한 여인이 걸어나왔다.
눈동자부터 시작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파란 여인이었다.
[…….]
잠시 주위를 둘러본 여인이 수면 위에 쓰러진 한 남자를 발견했다.
표정을 굳힌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과 함께 물로 된 별이 수면 아래로 떨어졌다.
짤랑-!
여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쓰러진 아더가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러모로 달라진 얼굴이었지만, 익숙한 부분도 남아 있었다.
그 탓에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운디네.”
침묵하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아더.]
“뭐하다… 이제 온 거에요?”
아더의 말에 운디네가 웃음을 터트렸다.
허나 올라간 입꼬리와 다르게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당신이야 말로… 어디를 갔다 온 거에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 말과 함께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얼음장 같은 그녀의 손길이 아더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순간 전신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깜작 놀란 아더가 입을 벌린 사이, 여인이 중얼거렸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데 시간이 없어요 아더.]
여인이 다급히 속삭였다.
[짧은 만남이 아쉽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한정된 시간 밖에 없어요. 그러니 말해주세요.]
여인의 파란 두 눈이 반짝였다.
[무엇을 원하나요 나의 계약자여?]
그 질문에 아더가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현기증이 머리를 두들기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혹스러웠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 상태도 그렇게 좋지 않아.’
다른 의미에서 시간이 없었다.
그 탓에 아더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운디네의 말에 따라 대답했다.
“윌렛 어르신을 살려줘요 운디네.”
여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알겠어요 아더. 하지만, 제 이름이 틀렸어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운디네?”
[정령의 이름은 곧 힘. 그러니 다시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이 말과 함께 여인의 몸에서 거친 물보라가 일었다.
세상을 뒤덮을 것 같은 그 격동에 아더의 눈이 커진 순간, 여인이 속삭였다.
[지금의 제 이름은 엘퀴네스. 모든 물을 다스리는 자의 호칭.]
그 속삭임과 함께 세상이 반전된다.
그 기묘한 감각 속에서, 아더의 정신이 점점 멀어졌다.
[그 이름을 불러주세요 아더. 그것이 제 힘을 사용하는 대가에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정신을 잃으려는 찰나,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엘퀴네스.”
여인이 방긋 미소지었다.
“윌렛 어르신을 살려주세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기절했다.
그런 아더를 안아든 엘퀴네스가 미소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대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계약자여.]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