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54화 (154/265)

제154화

아케인.

제국을 비롯한 대륙의 모든 연합 왕국과 소수 부족들이 모여 만든 최초의 경제 계획 도시.

대륙의 모든 물자와 사람은 한 번은 아케인을 거쳐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한 이 상업 도시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5년 전, 갑작스레 침공을 해 온 제국 최고의 가문 도르문트.

그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항복했기 때문이었다.

“쯧쯧… 하필 걸려도 도르문트 가문한테 걸리네.”

“도르문트한테 걸리면, 아무리 아케인이라 해도 살아남을 수 있나?”

“일단 식민지로 만들면 사람 골수까지 쫙 빨아먹는 곳이 도르문트인데….”

사람들의 우려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점령을 성공한 케인 도르문트는 가장 먼저 아케인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봉쇄해버렸다.

경제 계획 도시인 아케인에게 있어, 이 조치는 그 어떤 제재보다 치명적이었다.

허나 아케인 시민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 결정에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도르문트가 이런 제재를 내린 것에는 나름 타당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듣기로 케인 도르문트의 장남인 이안 도르문트가 아케인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지?”

“…큰 사고가 아니라 살해당했다는데?”

“나도 그렇게 들었어! 아케인에 파견을 갔다가, 의문의 칼잡이 손에 죽었다더군!”

제국 차세대 칼잡이.

케인 도르문트 뒤를 이어, 제국의 실권자라 불릴 후계자.

또 한 케인 도르문트의 신임과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도르문트의 장남 이안 도르문트가 아케인에서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이안 도르문트의 죽음은, 아케인과 연관은 없었다.

이안 도르문트는 독자적인 군사 행동을 벌이다, 사고를 당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될 리가 없었다.

케인 도르문트는 아들을 잃어버린 분노를 아케인에다 풀었다.

강도 높은 식민지 정책을 실행하고, 아케인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참다못해, 몇몇 국가에서는 반발을 해왔지만 케인 도르문트는 멈추지 않았다.

[날 방해하는 자들은 아케인과 똑같은 꼴이 될 것이다.]

협박에 가까운 선언을 통해, 오히려 그 반발을 잠재워 버렸다.

결국 시간이 흘러, 자유를 상징하는 아케인은 죽음의 도시로 변질 되었다.

삶과 희망이 사라져버린 유령도시.

그것이 현재 아케인의 주소였다.

그렇게 자유의 도시 아케인이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을 때 한 낭설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새로운 소드 마스터가 아케인을 해방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문.

하지만 소문이라는 것이 의례 그렇듯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의 입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몇몇 살들이 덧붙여졌다.

[전설의 용병의 재림]

[7년만에 돌아온 공작가의 후계자]

[이안 도르문트를 죽인 의문의 칼잡이].

하나 같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

허나 진실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낭설과 소문이란 것은 정확한 사실보다는 자극적인 흥밋거리가 더 중요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대륙을 들썩이게 한 이 소문은 매우 자극적이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 떠들어댔고 결국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질 되었다.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가 도르문트를 벌하기 위해 돌아왔다.]

맥락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누구도 그 사실 여부를 신경쓰지 않았다.

소문이란 언제나 그렇듯 자극적이기만 하면 되었으니.

* * *

안젤리나는 벅차오르는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아케인! 아케인!”

“해방… 해방이야….”

“드디어 아케인에 자유가 찾아왔다고!”

갈라진 하늘.

그 하늘 아래에서 소리치는 아케인 시민들.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을 법한 그 장엄한 광경에 그녀는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아아….”

흘러나오는 탄식과 함께 오랫동안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이 마침내 떨어져 나갔다.

도르문트에게 점령당한 아케인.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이 큰 한 몫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시장으로서 끝까지 버텨야 하는 내가, 그들에게 먼저 항복해 버렸다.’

물론 그때는 이 선택이 옳은 것이라 생각했다.

도르문트와의 오랜 전쟁.

뒷거리 세력인 해적의 배신.

죽어 나가는 아케인 시민들과 여러 곳에서 들려오는 회유와 협박들.

대마도사라는 경지에 이른 마법사라 할지라도, 그런 악조건들이 겹치고 겹치니 결국 정신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결국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 안젤리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케인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도르문트의 항복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스스로 제 손으로 마법을 포기했다.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그녀의 힘을 의식한 케인 도르문트가 행복의 대가로 이 조건을 반드시 포함시킬 것을 명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칼잡이의 끝이 소드마스터라면, 마법사들의 끝은 대마도사다.

선택받은 몇몇 마법사만이 오를 수 있는 모든 지식의 끝.

그 지식을 모두 포기하고, 폐인이 되란 소리나 다름없었으니.

하지만 안젤리나는 아케인을 위해 한평생 수련한 그 지식을 결국 포기했다.

‘이미 아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그 과정에서 마법 하나를 덧붙인다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게 안젤리나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 아케인의 진정한 어둠은 시작되었다.

‘케인 도르문트… 놈의 목적은 처음부터 항복 권유가 아닌 내 마법이었던 거였어.’

대마도사인 자신이 힘을 잃어버린다면, 도르문트가 아케인을 통치하는 데 있어 더이상 두려울 게 없어진다.

그걸 노리고 케인 도르문트는 끊임없이 제 마법을 항복의 조건으로 포함 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노림수를 파악하지 못한 대가는 참혹했다.

아케인 전역이 유린당하고, 자유 대신 속박과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케인을 위해 했던 선택이, 되려 아케인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아케인을 시민들을 끝까지 믿지 못했던 내 실책… 만약 그들을 믿었더라면.’

길었던 이 7년이라는 시간이 조금 더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생각과 함께 안젤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던-! 던-!”

“전설의 용병, 던!”

“아케인을 구원한 전설의 용병-! 아케인의 자랑!”

한 남자의 이름을 거칠게 부르짖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젤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을 조금 더 믿었더라면,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 확신 속에서 안젤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이 끝났지만, 그렇다 해서 현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초, 총독님이….”

“죽었다고?”

“그것도 무명의 칼잡이에게?’

살아남은 수색 경찰이 아직도 수백은 있었고, 뒤이어 닥쳐올 거대한 풍파에도 맞서야 했다.

그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아직 쉬어서는 안 됐다.

‘이 모든 일을 끝마친 뒤, 내 죗값을 치르겠다.’

상념을 정리한 안젤리나가 거칠게 소리쳤다.

“반군 여러분!”

“…!”

광장 전체로 퍼져나간 목소리에 환호성이 멈춘다.

그 속에서 안젤리나가 다시 소리쳤다.

“아직 상황이 끝난 게 아닙니다!”

“…!”

“아케인을 좀 먹는 수색 경찰… 아니 해적은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녀의 외침에 반군들이 눈을 치켜떴고, 실연에 빠져 있던 해적들의 입은 벌어졌다.

그 사이 안젤리나가 굳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아케인을 배신한 저 쓰레기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잡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반군의 수장으로서 내리는 마지막 명령입니다!”

넋을 놓고 있던 해적들이 뒤늦게 경악해 입을 벌렸다.

‘미, 미친-!’

‘줫댔다!’

‘자, 잡히면 죽는다 죽는다고!’

두려움에 떠는 그들의 머릿속으로 그간 저지른 악행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그 탓에 해적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총독이 죽은 마당에, 더 이상 수색 경찰은 의미가 없었다.

이제는 각자도생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게 눈치 빠른 해적들 몇몇이 자리를 피해 도망치려는 순간, 조금 전까지 없던 벽이 생겼다.

깜짝 놀란 해적들이 고개를 돌리니, 수천 명의 시민들이 한 몸이 되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광경에 해적들이 눈을 끔뻑인 그때, 벽이 된 시민들이 굳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딜 갈려고 형씨들?”

해적들의 입이 벌어졌다.

* * *

안젤리나의 지휘하에 아케인의 반군들은 지휘관을 잃어버린 아케인 총독부를 빠르게 무너트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건, 일들이 발생했지만 아더는 더는 끼어들지 않았다.

‘남은 건 이제 반군 분들 몫이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지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단 한 사람의 곁뿐이다.

아더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서, 병실 문을 열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한 노인이 보였다.

아더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고서 말했다.

“윌렛 어르신. 저 왔어요.”

아더의 말에 윌렛이 고개를 돌렸다.

7년 전보다, 훨씬 많은 주름이 자리 잡은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과인가?”

“네. 먹고 싶다 해서 사 왔어요.”

“그거 좋군. 이리로 오게.”

윌렛의 말에 아더가 옮겨 그의 앞에 주저앉았다.

그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윌렛이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며 물었다.

“안 바쁜가?”

“저요?”

“그래. 여기저기서 불러댈 텐데.”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기는 한데, 딱히 안 끌리더라고요.”

“왜?”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정중하게 거절하고 이곳에 왔어요.”

윌렛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많이 섭섭해할 말이군.”

“…그런가요?”

“그래. 자넨 아케인을 구원한 전설의 용병이지 않나?”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참 이상해요. 아케인을 구원한 적도 없는데 왜 그리 불리는 걸까요?”

혀를 찬 윌렛이 핀잔을 주려다 멈칫했다.

동시에 가슴팍으로부터 옅은 통증이 머리를 울려댔다.

‘…….’

그 고통을 숨을 멈춘 상태로 인내하던 윌렛이 며칠 전 주치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어르신. 최선을 다했지만… 도저히.’

잠시 그 기억을 되새기던 윌렛이 침묵했다.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르신? 왜 그러세요?”

아더의 질문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윌렛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아더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더 바이에른.”

“네?”

“부탁 하나도 해도 되나?”

윌렛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누워있던 병실에서 몸을 일으킨 윌렛이 중얼거렸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네. 그곳으로 좀 날 데려다주게.”

* * *

윌렛을 업은 아더가 아케인을 넘나들었다.

그 광경을 천천히 시야에 담던 윌렛이 중얼거렸다.

“참 이쁜 도시지 않나.”

윌렛의 질문에 아더가 대답했다.

“아케인이요?”

“그래. 참 예쁜 도시야. 내 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본 적이 없어.”

윌렛의 말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케인 말고는 다른 곳 가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자넨 내 나이가 몇이라 생각하나?”

“글쎄요? 윌렛 어르신이 안 가르쳐 주시지 않았나요?”

“흠. 그랬던가?”

“네 그랬었죠.”

“반백 살은 넘었네.”

“오. 60은 안 넘으셨죠?’

“맞아. 60은 안 넘었지.”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사이, 아케인을 벗어났다.

그 뒤로도 아더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윌렛이 갑작스럽게 부탁해, 가보고 싶다 한 곳이 아케인 외곽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다시 한참을 달리니, 어느 사이엔가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점점 붉게 물드는 하늘과 함께 아더가 걸음을 멈추었다.

몰려오는 졸음과 싸우던 윌렛이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호수 하나가 둘 앞에 펼쳐져 있었다.

빙그레 미소 지은 윌렛이 아더에게 부탁했다.

“이곳에 좀 내려주게.”

윌렛의 말에 따라 아더가 그를 조심스레 앉혔다.

자리에 주저앉은 윌렛이 석양을 받아 빛이 나는 호수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예쁘지 않나? 아케인 근방에서 제일로 큰 ‘엘디움’ 호수네.”

그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쁜 곳이긴 하네요. 그런데 이곳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어르신?”

“볼일… 흠. 뭐, 크게 보면 볼일이긴 하지. 이곳은 무덤이거든.”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무덤이요?”

아더의 질문에 윌렛이 대답하는 대신, 등 뒤로 매고 있던 봇짐 하나를 풀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라 술이네요?”

윌렛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손에 들린 양주를 흔들었다.

“한잔하지. 이제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 아닌가?’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호. 7년만에 술을 마시는 법을 가르쳐주시는 건가요?”

윌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광으로 알라고. 아케인 최고의 애주가의 술 마시는 법을 배울 기회니깐.”

아더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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