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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108화 (108/265)

제108화

도르문트의 하사, 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에이 씨발… 뭔 놈의 비가 이렇게 쏟아져?”

굵은 장대비가 조금 전부터 쉼 없이 쏟아졌다.

그 굵기 때문에 뼈가 시릴 지경이었다.

이런 날씨에 불침번을 서야 한다는 사실에 찰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이 먼 북방까지 와서 무슨 고생인지 몰라.”

지금쯤 다른 제 동기들은 남쪽 원주민들을 신나게 학살하며 공을 세우고 있을 텐데.

‘그리고 재미도 보고 있겠지.’

그런데 자신은 기껏 아케인까지와 이런 곳에서 노숙이나 하고 있다니.

찰리가 제 신세를 한탄하며 우비를 걸쳤다.

그렇게 막사를 빠져나가, 야영지의 정문으로 향할 때였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움찔 놀란 찰리가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무, 뭐야? 거기 누구야!”

찰리의 외침에 그림자가 다시 꿈틀 거렸다.

“…?”

심상치 않은 그 이변에 찰리의 입이 다시 벌어지려던 순간 세상이 암전됐다.

“…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찰리가 쓰러졌다.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버린 그를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흐음… 이제 열 놈인가?”

이 말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쏟아지는 장대비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도르문트의 막사와 그 병사들이 보였다.

‘최소 300은 되겠네.’

이 정도 숫자면, 운디네나 노움의 능력을 발휘해 기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대규모 폭격을 해버리면 내 시선을 피해 달아나는 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깐.’

아더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도르문트의 이름, 휘광에 단 자들 중 그 누구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병사건, 이안 도르문트가 되었건 모조리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 폭격마법은 지금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확실하게 죽여야지. 그러려면 한 놈씩 정확하게 써는 게 맞겠지?’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쏟아지는 빗물이 그런 아더와 찰리의 시체를 쓸어넘겼다.

쏴악-!!

길게 이어진 핏자국이, 고리처럼 구불구불 이어졌다.

* * *

마주친 도르문트 병사들을 죽인 숫자가 20명이 넘었을 때 아더는 문득 궁금해졌다.

‘언제 눈치챌까?’

쏟아지는 장대비 탓인지 몰라도, 이변을 알아차리는 게 상당히 늦었다.

허나 언제까지 이 행운이 계속 되리라 아더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난번의 생에서도 그렇고, 이번 생에서도 그렇고 도르문트의 군대의 수준은 높았다.

‘대륙 최고로 손꼽히는 무력 단체. 그들이 바로 도르문트 군대니깐.’

그런 도르문트 군대가 아무리 장대 비가 쏟아 진다 하더라도 이 이변을 눈치못챌 리가 없다.

잠시 후, 이 판단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도르문트 병사 30명을 죽였을 시점에, 막사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야-!!!”

“차, 찰리가 죽어있어!”

“침입자다!! 침입가가 있다!”

외침과 함께 도르문트 야영지가 들썩였다.

잠을 자던 병사들이 막사 바깥으로 나왔고, 여기저기서 창과 칼.

그리고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더는 그 소란을 잠시 지켜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막사 바깥으로 나온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욕을 했다.

“이 시발! 이 늦은 시간에 어떤 미친놈이 야습을….”

말을 흐린 그가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쳐 맨 순간이었다.

제 뒤에 선 아더를 뒤늦게 발견한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너는? 왜 이곳에서 얼쩡대?”

“…….”

“얼른 자리로 안 찾아가!? 입고 있는 후드는 또 뭐야? 보급품이 아닌 걸로 그렇게 당당히 입고 돌아다녀!?”

사내가 손을 뻗어 아더의 후드를 잡으려는 순간, 무언가 번쩍였다.

쉬익.

아더의 새로운 애검이 된 마검이었다.

붉은빛의 검날이 후드를 잡으려는 사내의 팔은 물론이고 목을 잘라버렸다.

툭.

데구르르 굴러간 사내의 얼굴이 혼란에 빠진 도르문트 막사 정중앙에 멈췄다.

덩치만큼이나 얼굴이 큰 탓에, 금방 사내의 얼굴을 발견한 도르문트 병사들이 얼어붙었다.

“…뭐야 이거?”

누군가의 중얼거림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 사이 비스트를 꺼내든 아더가 손가락을 접어 나갔다.

“일곱… 여덟… 열둘. 그럼 쉰두 명인가?”

이 말과 함께 비스트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쾅-!

울려 퍼지는 폭음과 함께 도르문트 병사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검은 구슬이 되었다.

“…!”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그 혼란 속에서 아더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비스트의 방아쇠를 여전히 잡아당긴 채로.

쾅!쾅!쾅!

폭음이 터질 때마다 적게는 다섯 명에서 많게는 열 명.

도르문트 병사들이 끊임없이 죽어 나갔다.

그 광경에 도르문트 병사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여기 침입자다!!!”

“여기에 침입자가 있다-!”

“본대 막사의 오른쪽 b-11구역에 침입자가 있다!”

동시에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장대비를 뚫고 야영지 전체에 울려퍼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군화 소리에 아더의 시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철컥-!

어느 사이엔가 자세를 낮춘 20명의 도르문트 병사들이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간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다.

투타다다닥-!

울려 퍼지는 총성과 함께 아더가 공간 도약을 사용했다.

휘리리릭-!

지니가 걸쳐준 망토가 그에 맞추어 허공에 떠올랐다.

아더는 비스트를 왼손에 마검은 오른 손에 쥔 채 조금 전 총을 쏜 도르문트 병사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그 모습에 놀란 도르문트 병사들이 입을 벌릴 때, 아더가 웃었다.

“이제는 총은 썩 위협적이지 않은데, 혹시 또 모르니깐 먼저 죽여줄게요.”

이 말과 함께 마검이 불을 뿜었다.

정확히는 불을 뿜은 게 아니라, 붉은 검신 탓에 그렇게 보인 거였지만 그 시각적인 효과는 대단했다.

휘릭-!

검을 휘두른 순간 잘려 나가는 도르문트 병사들의 목.

동시에 솟구치는 핏줄기.

그 광경만 놓고 보면, 검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착각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깜짝 놀란 도르문트 병사들이 소리쳤다.

“…뭐야! 이놈!”

“거, 검이 불타오른다!”

“마법사, 마법사 어딨어!”

그 외침과 함께 도르문트 병사들을 빠르게 죽여 나가던 아더가 흠칫 놀랬다.

쾅-!

폭음이 터지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다행히 그 불길에 집어삼키기 전 자리에서 뛰어오른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오… 진짜 마법사가 등장했네?”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로브를 두른 10명의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주친 10명의 마법사들이 이를 갈았다.

“저 미친놈 대체 뭐야?”

“야밤 중에 도르문트 군대를 습격한다고?”

“저놈 혼자야? 아니면 동료가 더 있나?”

그들의 외침에 도르문트 병사들이 재빨리 대답했다.

“아, 아직까지 파악된 건 저놈 혼자입니다!”

마법사 중 한 명이 혀를 찼다.

“그럼 저놈 혼자서 이렇게나 도르문트 병사를 죽여놨단 거야?”

“…그, 그게.”

“하… 이안 님이 알면 다들 목이 떨어지겠군.”

마법사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저놈 무조건 생포해야 해! 마법 준비할 동안 어떻게든 붙들어 매!”

“옙 알겠습니다!”

마법사의 등장으로 기강이 잡힌 도르문트 병사들이 전열을 정비했다.

쿵-!

방패가 등장하고, 창과 칼이 그 옆을 호위했다.

그 뒤는 총으로 무장한 총포병들이 아더를 겨냥했다.

조금 전과 달리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은 진영에 아더가 탄성을 흘렀다.

“오… 이거 옛날 기억나네.”

지금 달리 미친놈이었던 시절.

도르문트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그들의 군대와 홀로 맞서 싸우던 기억이었다.

‘그때도 이랬었지… 중무장한 병사들의 창과 칼이 내 팔과 다리를 노렸고 마법사들은 심장과 머리를 향해 마법을 난사했고… ’

그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던 아더는 방긋 웃었다.

“뭔가 기분이 좋네.”

과거의 망령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오랜만에 마주하자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약간의 스릴 마저 느껴졌다.

“역시 도르문트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다니.”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마검과 비스트를 다시 재장전했다.

철컥-!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도르문트 장교 명령했다.

“…지금부터 침입자를 생포, 사살한다.”

이 말과 함께 도르문트의 장교가 거칠게 소리쳤다.

“그 어떤 방법을 써도 좋다! 침입자를 무력화해라!”

* * *

얕은 잠에서 깨어난 하얼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고… 머리야.”

어젯밤, 이안이 절반의 병력과 함께 야영지를 은밀히 떠나면서 맡긴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하아… 이래서 이런 지휘관 자리를 맡기 싫었는데.”

투덜거린 하얼빈이 느껴지는 두통을 애써 참으며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그 때 막사 저 멀리서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인 경!”

제 부관의 목소리였다.

하얼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쳤다.

“왜! 무슨 일이야!”

“그, 그게 큰일 났습니다!”

“큰일? 이런 산기슭에 큰일날 게 뭐 있어?”

하얼빈의 질문과 함께 막사의 천막이 걷어졌다.

하얼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자, 자네! 꼴이 왜 그래!”

하얼빈의 외침에 부관이 피가 흐르는 어깨를 애써 부여잡으며 말했다.

“치… 침입자입니다! 어서 빨리 가보….”

말을 흐린 그가 갑자기 혼절했다.

하얼빈이 입을 벌려 놀랬다.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 산기슭에 도르문트 깃발을 단 군대를 습격하는 자들이 있다고?

‘설마 그 검은 십자가 쪽 사람들인가?’

하얼빈이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하얼빈은 재빨리 케인 도르문트에게 하사받은 검을 허리춤에 차고 갑옷을 걸쳤다.

그렇게 준비를 끝마치고 막사 바깥으로 나오니 거칠게 쏟아지고 있는 장대비가 보였다.

쏴아아악-!

하얼빈은 그 장대비를 맞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디지? 어디에 침입자가 나타난 거지?

생각과 함께 하얼빈이 감각을 일깨웠다.

… 쾅-!

그 순간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에 하얼빈이 뛰어올랐다.

우웅-!

회전하기 시작한 6개의 고리가 그의 육체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초인적인 속도로 내달리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탄성을 흘렸다.

“허? 이게 무슨.….”

말을 흐린 하얼빈이 입을 벌렸다.

쏴아아악-!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가 100구가 넘는 시체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문제는 그 100구가 전부 도르문트 병사라는 점이었다.

하얼빈은 눈앞의 광경에 벌벌 떨다, 시체의 산 위에서 피를 머금은 칼을 치켜든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 또 손님이 왔네요.”

“…….”

“어라? 그런데 당신은… 뭔가 낯이 좀 익네요. 누구지?”

이 말에 하얼빈의 이를 악물며 질문했다.

“네가… 이런 짓을 한 건가?”

“어떤 거요?”

“이 짓… 도르문트 병사들을 이 꼴로 만든 거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제가 했죠.”

하얼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순간 그의 전신에서 거친 마나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 기운에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오… 5서클? 아니, 6서클인데?”

그 탓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데, 벌써 6서클의 경지에 오른 칼잡이라고?’

저런 인간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그래서 아더의 미간이 좁혀질 때였다.

불현듯 한 사내가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아… 당신 하얼빈 레인인가요?”

아더의 질문에 칼을 치켜들던 하얼빈이 흠칫 놀랬다.

“네 놈 내 이름을 어떻게….”

“오… 진짜 하얼빈 레인이었어요? 이야 이거 진짜 반갑네….”

“…?”

“당신을 보니깐 그 기억이 떠오르네요. 제 가슴팍에 칼을 꽂던 그 날이요.”

하얼빈이 눈을 치켜떴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다고?”

“네. 좀 먼 훗날이긴 한데 저희는 만나죠. 그리고.”

이 말과 함께 아더가 검을 치켜세웠다.

“제가 당신의 칼에 쓰러져요. 그런 게 그, 철천지원수를 이렇게 만나다니, 오늘은 진짜 운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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