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06화 (106/265)

제106화

자리를 털고 일어난 아더가 말했다.

“음… 하지만 뭐, 저희 하고는 상관 없잖아요?”

옆에 있던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의 목표는 예니카 헤이즐이 아니라, 이안 도르문트니깐.”

“이안 도르문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그럴 확률이 높지 않겠나? 그는 뱀파이어들의 성물인 피의 성배를 제 가문의 가보라고 들고 있었어.”

“그런 걸 가보라고 왜 들고 있었을까요?”

“실험 때문인 것 같은데.”

“실험이요?”

레온이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케인 도르문트. 그자는 옛날부터 혈통, 혈족과 관련하여 막대한 돈을 들여 연구를 하고 있었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쥴리가 떠올랐다.

‘혈통, 실험… 그 때 봤던 프로젝트 이야기인가?’

그 사이 레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내 생각엔, 피의 성배도 그 일한으로 들고 있었던 것 같군… 뭐 확실치는 않아. 나도 이쪽으로는 거의 정보가 없어서.”

상념에서 벗어난 아더가 말했다.

“뭐, 일단 마을을 벗어나죠. 혹시 누가 찾아올지 모르니깐.”

“그럼 오늘은 노숙인가?”

“그러는 게 좋아보이는데요? 근처에 다른 마을이 있어도 이런 일이 또 있을지 모르니깐.”

결정을 내린 레온이 손짓했다.

“그럼 서둘러 벗어나지. 여기 있다간 무슨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으니깐.”

아더와 지니가 레온의 말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일행이 마을을 벗어났을 때였다.

휘잉-!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죽어버린 여관 주인장의 몸을 훑었다.

그 속에서 내리쬐는 달빛을 등지고 나타난 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허어? 다 죽었다고?”

후드로 얼굴을 가린 그가 여관 주인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제약이 깨져있군. 도대체 어떤 놈이….”

말을 흐린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비릿한 피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미간을 찌푸린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코끝을 아릿하게 만드는 피냄새가 여관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이 말을 중얼거린 사내가 거침없이 여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

눈을 치켜뜬 사내가 입을 벌렸다.

“허어?”

여관 내부의 내부는 피범벅이었다.

그런 와중에 언뜻 보이는 살점과 뼈들은, 지금 이곳을 지옥의 입구라 착각하게 만들었다.

“어, 어떤 미친놈이 이런 거야?”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사내가 신음을 토했다.

“끄응… 이런 곳에서 혈족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공주님이 매우 화를 내시겠군.”

한숨을 푹 하고 내어 쉰 사내가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할 때였다.

저 멀리서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까아악-!

그와 동시에 대지가 광광 울려댔다.

여관 밖을 빠져나온 사내가 손을 흔들었다.

“볼일은 다 끝마치고 왔나?”

붉은 눈동자를 희번덕이던 사내가 대답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카르페?”

카르페라 불린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나도 모르지 테이큰.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말을 흐린 카르페가 눈빛을 빛냈다.

“웬 미친놈이 일에 끼어들었어. 이것 참… 골치 아프게 됐군.”

* * *

현장을 벗어난 아더의 일행은 그 날 하루 노숙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흥!]

노움과 운디네의 도움으로 노숙이었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지샌 일행은 다음 날, 어젯 밤 들렀던 마을 못지 않은 거대한 마을 하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오. 저기에는 뱀파이어가 없을 것 같은데요?”

아더의 말에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보이는 군. 복장을 보니 다들 용병이야. 그 외는 진짜 주민들 같고.”

“들으는 게 낫겠죠?”

“그렇지. 다른 건 다 괜찮아도, 식량을 안 가져와서 보충을 해야해.”

레온의 말에 아더가 그대로 마을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지니가 그런 아더의 어깨를 잡았다.

“공자님. 설마 그러고 들어가시려고요?”

지니의 질문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 안 되는 건가요?”

“그럼 안 되죠. 지금 변장한 얼굴도 이미 소문이 쫙 퍼져있는데.”

“이 흐리멍텅한 얼굴이요?”

지니가 대답하는 대신 제 배낭을 뒤져 후드가 달린 망토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더의 어깨에 직접 걸쳐주며 말했다.

“지금도 복잡해 죽겠는데, 굳이 쓸데없는 일에 안 휘말리는 게 좋지 않겠어요?”

“흠… 그런가요?”

“그렇죠. 그래야, 일이 더 수월해지니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레온이 중얼거렸다.

‘아더 바이에른… 저 자식. 예전부터 느끼는 거였는데 왜 저렇게 인기가 많지?’

예니카 헤이즐도 그렇고, 엘린 레버쿠젠도 그렇고

저 성깔 더러운 엘프도 마찬가지고.

묘하게 여자에게 인기가 있는 아더였다.

‘나쁜 남자가 인기가 있어도… 미친놈은 좀 다르지 않나?’

레온이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아더와 지니는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웅성웅성.

워낙 많은 용병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마을 규모에 비해 거리가 소란스러웠다.

아더와 지니는 그 용병들 틈을 지나, 여관에 들어섰다.

주근깨가 가득한 소년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다가와 물었다.

“어서오세요, 손님! 식사, 방? 어떤 걸로 준비해드릴까요!”

지니가 나서서 대답했다.

“일단 식사부터 준비해줄래요?”

“수프 빵 스테이크 그 외 샐러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여기서 제일 잘하는 음식들로 가져다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소년이 멀어지고, 지니와 아더 레온이 테이블 하나를 잡고 앉았다.

레온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꽤 재미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군.”

“재미난 이야기요?”

“어젯밤 있었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 말에 아더가 감각을 일깨웠다.

그 순간 여관 내부에 자리 잡고 있던 용병들의 이야기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들었어? 어젯밤에 엄청난 일이 있었더군.”

“엄청난 일? 그게 뭔데?

“이번 일에 끼어든 거물들 몇이 죽은 모양이야.”

“거물? 어떤 거물이 끼어들었는데?”

“지옥의 문, 쿤 에드릭.”

“…뭐! 지옥의 문! 쿤 에드릭이 죽었다고!?”

“그뿐만이 아니야… 푸른 채찍의 체이서, 붉은빛의 대도 나이블도.”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어제 만났던 사람들, 다 죽은 모양인데요?”

“…어제 만났던 사람들이요?”

“네. 지니에게 시비 걸던 그 사람있잖아요. 배틀 메이지.”

지니의 눈이 커졌다.

“그 사람이… 죽었다고요?”

“그런 모양인데요? 흠… 역시 기차 앞을 가로막고 있던 그 신도분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더라니.”

아더의 말에 지니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그 인간… 짜증 나긴 했는데, 그렇게 쉽게 죽을 정도였나?’

B급 용병이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아케인에 수많은 용병들 중에서도, 진짜라 인정받는 이들이란 소리.

‘그런데 그 B급 용병 3명이 어젯밤에 다 죽었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지니가 자연스레 고민에 빠져들 때 레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들 먼저 먹고 있게.”

아더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무슨 일 있어요?”

“내 친구들한테서 연락이 왔군. 이안 도르문트, 그 자에 관한 정보야.”

“오… 그럼 얼른 가야겠네요. 음식 남겨 놓을게요.”

레온이 대답하는 대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레온이 빠져나가자, 기다렸던 음식들이 나왔다.

“맛있는데요? 공자님?”

“음…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던 참이에요.”

“야채도 좀 드세요. 고기만 먹지 말고.”

“배 채우는 데는 고기가 최고인걸요?”

“참나. 이 나이에 편식하면 안 돼요.”

아더와 지니가 잡담을 나누며, 레온을 기다렸다.

그렇게 음식이 차갑게 식으려는 순간, 레온이 다시 나타났다.

“오. 제때 왔군. 수프에서 김이 올라오는 걸 보니 말이야.”

레온이 싱글벙글 웃으며, 양송이 수프를 한 입 떠 입안에 넣었다.

옆에 있던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표정이 확 밝아지셨네.”

“좋은 일? 후후… 있기야 있었지.”

레온이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숙였다.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정보네. 이안 도르문트, 그자들도 지금 발목이 묶인 모양이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목이요? 저희처럼 기차가 멈췄다고 하던가요?”

“오! 맞아! 이안도 지금 그 상황이라 하더군!”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레온이 열을 올려 설명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양이야. 즉, 예니카 헤이즐을 쫓는 대부분 자들이 지금 이곳에 있단 말이지.”

“…그거 흥미롭네요.”

“흥미로운 상황이지. 그래서 말인데, 슬슬 계획을 실행해 볼까 해.”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획이요? 무슨 계획?”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 상황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레온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원하는 것을 챙겨가는 거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아더가 탄성을 흘리며 물었다.

“도대체 그 계획이 뭔데 그래요? 저번처럼 최면을 걸려고요?”

“비슷한데 달라.”

“…비슷한데 다르다?”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예니카 헤이즐이 될 거네.”

“…?”

“그렇게 변장을 해서 모두 앞에서 꼬리를 흔들 거야.”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건 지니도 다르지 않았다.

“여, 여장을 한다고요 레온님?”

그녀의 질문에 레온이 낄낄 웃었다.

“여장보다는 변신이지. [폴리모프]라고 다들 들어봤나?”

* * *

칼날 같은 흰 눈이 몰아치는 북부설원.

그곳에서 예니카는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부름에 대한 답은 없었다.

그저 휘몰아치는 새하얀 눈만이 그녀의 어깨 위와 머리 위를 스쳐지나갈 뿐.

그러나 예니카 또 한 무언가 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자고로, 기도란 응답을 바라는 행위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수양, 믿음을 위해서 올리는 수행.

그 과정에서 들려오는 응답과 대답은 스스로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데 불과했다.

그렇게 다시 기도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신도 중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공주님. 벌써 일주일째입니다. 제발 뭐라도 드셔야 합니다.”

예니카가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뭐라도 먹는다라… 그러면, 저희는 뭘 먹어야 하죠?”

“예?”

“평범한 인간들처럼, 빵과 우유를 먹나요. 아니면 살점와 피를 먹나요?”

“…….”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빵과 우유 대신 살점와 피를 먹습니다. 그 이유로 천 년을 숨어 지내왔습니다.”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천년을 숨어 지냈어야 할 정도의 죄였는지. 그러니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예니카가 다시 두 손을 모았다.

“지금 제가 가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신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예니카 뒤에 모인 수 천의 [검은 십자가]신도들도 탄성을 터트렸다.

“오오….”

“우리를 이끌 신이시여….”

“공주님. 부디 왕위에 오르소서. 저희에게 다시 태양빛을….”

천 년 동안 이어진 소망.

동시에 원망.

그것들이 탄성과 함께 흘러나왔다.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예니카가 중얼거렸다.

‘앞으로 조금만 더… ’

조금만 더, 성배의 힘을 끌어내면 모든 게 끝이 난다.

오랫동안 준비한 이 계획의 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저주가 풀릴 것이다.

‘제국의 황제가 우리에게 건 천년의 주박.’

그 주박이 풀리는 순간,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천년을 삭여온 분노가 얼마나 거대한지.

예니카는 그때를 기다리며 다시 기도를 올렸다.

이치에 어긋난 세상.

그 이치를 다시 바로잡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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