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승자… 아더 바이에른.”
놀스 교수의 선언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쩝… 힘 조절에 실패해버렸네.’
덕분에 엘린이 또다시 기절해버렸다.
잠시 고민한 아더가 고개를 돌려 질문했다.
“저 교수님? 엘린 좀 양호실에 데려가도 될까요?”
놀스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허락을 받은 아더가 몸을 돌려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대체 내가 뭘 본 거야?”
“그, 그 엘린 레버쿠젠이 검 한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졌다고?”
“이게 뭐야? 이 대련 결과가 진짜라고?”
그 혼란한 상황 속에서, 놀스 교수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통과하라고 내준 상식 문제를 틀린 문제아.
저에게 의심을 심어준 범재.
이제는 제 눈으로 못 쫓아갈 검술을 보여준 천재를 뛰어넘은 괴물.
그 모든 모습이 한 소년에게서 엿보였다.
‘…도대체 네 정체가 뭐지 아더 바이에른!’
소리 없는 외침과 함께 놀스 교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상태 그대로 엘린을 업고서 연무장을 빠져나가던 아더를 바라보던 놀스 교수가 눈빛을 빛냈다.
‘모든 게 의문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군….’
제 30년 교사 인생 처음으로, 충격을 안아준 천재.
저 천재를 미치도록 가르치고 싶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저 소년이면… 가능할지 모른다.’
자신을 거쳐 간 그 뛰어난 제자들조차 밟지 못한 칼잡이들의 끝에 선 경지.
‘소드마스터. 그 경지에 닿을지도 몰라.’
* * *
엘린을 안아 들고 양호실에 온 아더가 중얼거렸다.
“흠… 너무 세게 기절시켰나.”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조금만 힘조절을 잘했더라면, 엘린이 쥐고 있는 목검을 놓치는 선에서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로 그칠 정도로 엘린의 실력이 옅은 건 아니었어.’
만약 이번 의뢰를 통해 드래곤 하트를 먹지 못했다면 이렇게 쉽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엘린이 보여주었던 실력과 경지는 드높은 것이었다.
‘엘린도 진짜 천재네… 이 나이에 이런 경지라니.’
그때 기절해 있던 엘린이 움찔 몸을 떨었다.
“어…?”
멍하니 입을 벌린 그녀가 주위를 살폈다.
아더가 반색하며 물었다.
“일어났어요? 엘린?”
“…아더?”
“네 저 아더에요.”
“너하고 내가 왜… 여기 있어? 우리 연무…!”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 설마….”
말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엘린이 졌어요.”
“…….”
“도중에 기절해버려서, 지금은 양호실이에요. 정수리가 부었다는데, 괜찮아요?”
아더의 말에 엘린이 입을 뻐끔거렸다.
‘내가 졌다고?’
곰곰이 고민하던 그녀는 신음을 흘렀다.
‘그래. 진 것까지는 인정할 수 있어….’
그런데 왜 패배하기까지의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말인가?
‘…설마, 그 과정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졌다고?’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엘린은 몸을 떨었다.
“…….”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감에 차 치고 들어가던 검.
그 검과 함께 내려찍어지는 아더 바이에른의 일격.
그 일격은, 전에 보았던 그 일격과는 또 다른 차원에 있었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격.’
제 할아버지인 홀란 레버쿠젠이 진심을 다해 내지를 때나 선보이던 그 일격이, 아더 바이에른의 검에서 엿보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엘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더… 너 실력을 감추고 있었던 거야?”
그녀의 질문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숨긴 적 없는데요?”
“그럼 대체 그 일격은….”
“아! 그건 기연을 얻었어요.”
“기연?”
“네. 그것도 아주 좋은 기연이죠. 그래서 실력이 좀 단번에 늘어버렸어요.”
아더의 설명에 엘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실력이 급격하게 늘 정도면 대체 어떤 기연이지?’
그녀의 상식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본래 검이란 마법과 달리 기연이라는 게 쓸모가 없었다.
‘노력과 시간. 그것들을 쏟아부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검이니깐.’
이 상식을 깨부수려면 적어도 전설 속의 드래곤 하트 정도는 먹어줘야 할 것이다.
그 탓에 엘린이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험 때문에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간다고?”
“시험 끝나면 또 올게요.”
“…아더.”
“네?”
“아니야. 시험 잘 쳐. 그리고….”
말을 흐린 엘린이 고개를 돌렸다.
“강하더라 너.”
그녀의 말에 아더가 씩 웃어 보였다.
“저도 재밌었어요.”
“…….”
“다음에 또 대련해요, 엘린.”
고개를 꾸벅 숙인 아더가 방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엘린은 중얼거렸다.
“분한데… 미치도록 분한데… 하.”
너무 압도적으로 패배하니, 딱 그정도 감정이었다.
분한 것 이상의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간의 노력이 날아간 것에 대한 분노도, 아쉬움도 들지 않았다.
“하아….”
다시 한번 긴 한숨을 내어쉰 엘린이 턱을 괴었다.
그 순간 아더에게 얻어맞은 정수리가 얼얼한 통증을 보내왔다.
“…아으.”
앓는 소리를 낸 그녀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더 바이에른 너 실수 한 거야….”
말을 흐린 엘린이 두 다리를 모았다.
“나 같은 여자한테 고백받을 기회를 놓친 거라고… 너.”
* * *
양호실을 빠져나온 아더는 제 옆에서 조잘거리는 레온을 타박했다.
“아니 촉새도 아니고,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황자님?”
“궁금하잖아! 자네 그 검! 대체 뭔가!”
“뭐긴요. 제 실력이죠.”
“자네가 분명 뛰어난 칼잡이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대체 그 일격은 뭐라 말인가!”
쉬지 않고 질문하는 레온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더가 [역사학] 교실로 들어갔다.
“…….”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학생들이 마지막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 탓인지 여태 떠들어대던 레온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나란히 아더와 레온이 시험이 시작하기를 기다릴 때였다.
[역사학] 교수가 등장하고, 조교들마저 들어온 순간 옆에 있던 레온이 중얼거렸다.
“응? 한 사람이 안 보이는데?”
“누구요?”
“누구긴! 자네 단짝 예니카 헤이즐이지!”
레온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라?’
레온의 말대로 예니카 헤이즐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같이 수업을 들었는데, 뭐지?’
설마 무단결석인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예니카 진짜 문제아네요.”
“흠… 맞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나도 시험 날에는 결석을 하지 않는데.”
그 사이 시험지가 배포되었다.
“…….”
서걱거리는 펜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아더는 제 앞에 놓인 시험지를 한 번 스윽 훑고서 입꼬리를 올렸다.
‘흐음… 쉽네.”
시험 문제는 암기한 책의 내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탓에 슥슥 답을 적어 내려간 아더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답안지를 제출했다.
“…정말 다 끝낸 건가요 아더 바이에른 학생?”
“네 교수님.”
역사학 교수의 눈길이 가늘어졌지만, 그 이상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더가 교실을 빠져나온 사이, 레온도 당당히 답안지를 제출했다.
레온의 답안지를 잠시 들여다보던 역사학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레온 학생.”
“넵 교수님!”
“저랑 또 한 학기 보고 싶어요?”
“넵 그렇습니다, 교수님!”
잠시 할 말을 잃은 역사학 교수가 손을 휘저었다.
“…그래요. 다음 학기에도 또 보죠.”
“감사합니다, 교수님!”
꾸벅 인사한 레온이 교실을 빠져나와 저 멀리 걸어가는 아더를 향해 다가갔다.
“이봐 아더!”
“…또 왔어요?”
“그럼 또 왔지! 그러니깐 이제 설명 좀 해보게!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뒷골목 일부터 시작해서, 이번 대….”
레온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동시에 아더의 시선이 돌아갔다.
“흠?”
“호오?”
탄성과 함께 레온과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저건….”
“수색 경찰이죠?”
아케인 시를 대표하는 공인 무력 단체.
수색 경찰.
그들은 아케인 시의 법과 규율.
더 나아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무장 단체였다.
그런 그들이 외부인이 드나들지 않은 아케인 대학 교정을 활보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터졌나 본데요?”
“그래 보이는데?”
레온이 잠시 고민하다, 아더를 향해 말했다.
“이유가 뭔지 알아봐 볼까?”
“오… 그럴 수도 있어요?”
“내가 경찰청에 인맥이 좀 있지. 기다려 보게.”
이 말과 함께 레온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더는 잠시 자리에 서서, 그런 수색 경찰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네. 대체 뭔 일일까.’
레온의 말처럼 수색 경찰이 아케인 대학 내에 들어 올 정도면 살인이라도 일어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험기간인데?”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굳이 이런 날에?
그때 거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시험 중지! 시험 중지! 전 학생은 지금 즉시 외부, 내부 활동을 멈추고 귀가… ]
그 울림에 아더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 라?”
시험 중지라고?
아케인 대학 내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중간고사가?
그때 사라졌던 레온이 다시 나타났다.
“아더-!!!”
그의 외침에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오 빨리 왔네요, 황자님.”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요?”
“예니카 헤이즐! 그녀가 사고를 쳤네!”
레온의 외침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레온이 숨을 헐떡이며 설명했다.
“그녀가 아케인 대학의 보물 중 하나를 훔쳐 달아났어! 그래서 수색 경찰이 교정 내에 들어와 있던 거야!”
* * *
레온이 숨을 고르며 설명했다.
“예니카 헤이즐… 그녀가 아케인 대학의 보물 중 하나를 훔쳐 달아났다더군. 그것도 아주 귀중한 보물을.”
레온의 설명에 아더가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뭔 보물을 훔쳐 달아났는데요?”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겠군… 어찌 되었건 아주 귀중한 보물을 훔쳐 달아났다나 봐.”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설마 예니카가 말했던 목표가 이런 거였나?’
그녀의 신분은 헤이즐 기업가의 장녀가 아니었다.
뒷세계의 세력 중 하나인 [검은 십자가].
그곳의 수장이 그녀의 진짜 정체였다.
그래서 제 정체를 밝혔을 때도 예니카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서로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 서로의 정체를 숨겨주는 게 어때요?’
그 말을 떠올리던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시험에 무단결석했구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아더의 대답에 눈을 끔뻑이던 레온이 표정을 바꾸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야.”
“또 뭐가 있어요?”
“예니카 헤이즐! 그녀가 신분을 속였다는 거네! 무려 [검은 십자가]! 그 악랄한 사이비 광신도들의 수장이었다군!”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자네와 함께 얼마 전까지 떠들던 여자애가 사이비 광신도 수장이라고!”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저희도 할 말 없지 않나요?”
“응 뭐가?”
“레온도 제 형제를 죽이려는 나쁜 놈이잖아요.”
“…….”
“제 입장에서는 레온이나, 예니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는데요?”
레온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건 그렇군! 하지만 이건 어떤가.”
레온이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가 이번에 훔친 아케인 대학의 보물이 말이야… 그 집안과 연결되어 있다더군.”
“무슨 집안이요?”
아더의 질문에 레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도르문트.”
동시에 아더의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 사이 레온이 고개를 숙이고서 속삭였다.
“도르문트 백작가… 그 집안이랑 연관된 보물을 예나카 헤이즐이 훔쳐 달아났다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