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98화 (98/265)

제98화

검술 강의 시험을 위해 연무장으로 향하던 아더는 생각했다.

‘2년? 3년? 만의 재대결인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꽤 감회가 새로웠다.

그도 그럴 게 엘린 레버쿠젠과 검을 맞대던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완전히 달라졌으니.

‘막 과거로 돌아온 참이었으니깐… 있는 거라고는 노움과 운디네 밖에 없었지.’

그 노움과 운디네 마저도 그 때는 하급정령이었다.

그래서 엘린 레버쿠젠과 대련 할 때, 아더는 한 가지 편법을 썼다.

몸을 주고 목을 취해버린 것이다.

‘물론 목을 베지는 않았지만… 음. 내가 생각해도 참 무식한 방법이었네.’

찔러오는 목검에 찔리러 들어가다니?

다시금 생각해봐도 참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그 미친 짓을 할 필요가 없지?’

아마 손쉽게 이길 것이다.

솔직히 말해 검술 강의 교수인 놀스와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는데 엘린은 제 상대가 아직 안 됐다.

‘A+는 일단 하나 받고 시작한다는 거군?’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기대감을 숨기지 않을 때였다.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더 바이에른!”

고개를 돌리니 숨을 헐떡이고 있는 레온이 보였다.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무슨 일이에요 황자님?”

“무슨 일이긴, 자네와 대화를 나누러 왔지.”

“저랑요? 무슨 대화요?”

헐떡이던 숨을 가다듬은 레온이 눈빛을 빛냈다.

“자네, 지난 주말에 대체 뭐한 건가?”

“주말에요?”

“말했잖아! 자네 때문에 지금 뒷거리가 난리도 아니라고! 칠황과 해적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력이 자네를 주시하고 있다고!”

레온의 말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죽였는데요?”

“…누구를?”

“이름 모를 해적분들이랑 칠황의 삼목 바란스 님이요.”

“…….”

레온이 입을 벌렸다.

지켜보던 아더는 탄성을 터트렸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멍청해 보일 수가 있네.’

원래도 얼빠진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좀 흉측할 정도였다.

그때 표정을 수습한 레온이 말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해적은 그렇다 치고… 칠황의 삼목인 바란스를… 죽여?’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놀랄 일이지 이 사람아!!”

“…?”

“치, 칠황의 삼목이면 못해도 궁중 마법사급의 거물인데 자네가 그를 죽인 거라고!”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저도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그렇게 태평하게 있는다고!”

“그럼 뭐 놀라고 있을까요?”

“…….”

레온이 입을 다물었다.

그 후 곰곰이 고민하다 손뼉을 짝 쳤다.

“그건 또 맞네?”

“맞죠? 그러니깐 너무 호들갑 떨지 마세요, 황자님. 어떻게 보면 겨우 현상수배범 한 명 죽은 거예요.”

아더의 대답에 레온이 진심으로 놀라 눈을 치켜떴다.

‘아무리 봐도… 이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군.’

그 사이 아더는 걸음을 옮겨, 연무장으로 향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레온이 그 뒤를 따랐다.

“…어우! 귀찮게 왜 쫓아와요!”

“쫓아와야지! 자네한테 들을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안 해줄 거예요!”

“난 들을 거야!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야겠네!”

그렇게 투닥거리는 사이, 연무장에 도착했다.

이미 모여있던 학생들이 그런 레온과 아더를 발견하고서 눈을 끔뻑였다.

“저건 또… 무슨 조합이래?”

“꼴찌와… 낙제생?”

“신기한 조합이네?”

레온 마드리드는 아케인 대학에서 가장 유명한 낙제생이다.

그가 기록한 7번의 낙제는 아케인 대학 역사상 깨지지 않은 경이적인 수치였다.

그리고 아더 바이에른은, 검술 강의에서 다른 의미의 낙제생이었다.

놀스 교수가 치렀던 테스트에서 꼴찌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검술 강의 꼴찌 학생과 낙제생이라….’

‘흠… 끼리끼리 논다 이건가?’

‘그런데 또 신분만 보면 그럴 사람들이 아닌데….’

그때 아더 바이에른의 뒤를 이어 놀스 교수가 등장했다.

“모두 조용!”

그의 외침에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투닥거리던 아더와 레온도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 반 학생들을 둘러보던, 놀스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 자네?”

레온이 당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넵 교수님!”

“자네는 이 수업 학생도 아닌 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참관을 위해서입니다.”

“…참관?”

“넵! 허락해주시면, 대련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잠시 눈을 끔뻑인 놀스 교수가 뭐라 소리치려던 순간이었다.

또 하나의 거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모두의 시선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어?”

“에, 엘린 레버쿠젠?”

“지금 재가 엘린 레버쿠젠이라고?”

입을 벌린 학생들이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연무장 입구에 선 엘린 레버쿠젠의 모습은 '폐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놀란 건 그 외관 때문이 아니었다.

후욱-!

그녀의 몸 전신에서 솟구치는 거친 기운.

정제되지 않은 마나가 날카로운 창이 되어 사방을 찔렀다.

“…!”

더 많은 서클을 이륙한 학생일수록, 그 기운에 강하게 반응했다.

그 탓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 도대체 뭘 한 거야?’

‘3서클… 아니 이건 4서클이잖아?’

‘세상에… 17살에 4서클?’

천재, 중에 천재

지금의 엘린 레버쿠젠에게는 이 수식어가 부족함이 없었다.

그건 놀스 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저게… 무슨 경지라 말인가.’

그간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7서클의 칼잡이도 배출해낸 그였지만 지금 엘린 레버쿠젠만큼 뛰어난 학생을 보지 못했다.

‘17살의 4서클… 만약 제대로 성장한다면 소드 마스터도 가능한 성장 속도군.’

홀란 레버쿠젠.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그 북부의 사자와 동급의 경지에 이른다는 소리다.

그 탓에 놀스 교수가 감탄을 숨기지 않은 사이, 엘린이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과 마주친 아더가 잠시 눈을 끔뻑이다, 빙그레 웃었다.

“…흠.”

그 미소에 엘린도 피식 웃음을 터트린 뒤, 비어있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옆에 있던 레온이 그 광경을 지켜보다 속삭였다.

“…쉽지 않아 보이는걸?”

“네?”

“4서클이잖아! 자네 경지가 4서클이고!”

아더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3일 전까지는.”

“…그게 무슨 말인가?”

“있어요, 그런 게.”

대답을 한 아더가 놀스 교수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엘린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 놀스 교수가 선언했다.

“곧바로 시험을 시작하겠다!”

“…….”

“시험의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쓸 수 있는 전력을 다해, 대련 상대를 쓰러트려라!”

“…!”

“미리 공지했던 내용이니, 모두 숙지했으리라 믿는다. 그럼 곧바로 시험을 시작하지!”

그의 말에 말과 함께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놀스 교수가 눈빛을 빛냈다.

“첫 대련은 엘린 레버쿠젠.”

“…!”

“그리고 아더 바이에른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나오도록.”

엘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침없이 연무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흠… 첫 번째라. 좋네.”

아더도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은 놀스 교수가 건네주는 목검을 잡았다.

“…….”

잠시 서로를 지켜보며 탐색전을 펼치던 그때, 엘린이 입을 열었다.

“그때처럼 지지 않을 거야 아더.”

아더가 웃었다.

“그래요? 흠… 기대할게요, 엘린.”

“여유만만한걸?”

“칼을 쥔 이상, 여유가 없으면 되겠어요? 여유가 없다는 건, 죽을 위기라는 건데?”

엘린의 눈이 약간 커졌다.

“…그러면 지금은 여유가 있으면 안 되겠네. 네가 패배할 거니깐.”

아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린도 대답을 바라지 않았기에 심호흡했다.

‘너무 도발했나?’

문득 든 생각에 걱정이 됐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렇게라도 안 하면, 긴장을 해서 제 실력을 못 뽐낼 거야.’

저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안겨준 남자.

그리고 충격을 준 남자.

‘3년 전은 그래… 운이라 치부할 수 있어.’

제 방심과 아더 바이에른의 과감한 판단이 이뤄낸 운.

그렇게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보았던 일격은?’

검술 강의 첫 테스트 때 선보였던 아더 바이에른의 한 합.

그 한 합은 아더 바이에른과의 대련이 성사된 뒤로, 엘린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일격은… 운이 아니야. 운 따위로 그런 일격을 내지를 수 없어.’

부드러움 속에 당겨진 날카로움.

그 유려한 일격은 마치 제 할아버지.

홀란 레버쿠젠의 검술을 떠올리게 했다.

그 탓에 엘린은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아더 바이에른에게 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변수마저도 통하지 않을 압도적인 격차가 필요해.’

그렇게 수련하던 그녀는 결국 벽을 깨고 성과를 이뤄냈다.

우웅-!

3서클을 뛰어넘어 4서클.

마침내 검기를 쓸 수 있는 경지의 직전에 다다른 것이다.

‘…그래. 이 정도면 절대 질 리가 없어.’

엘린이 자신감이 가득 찬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이 정도면… 어떤 변수가 일어나도 아더에게 이길 거야.’

그 후엔 줄곧 고민하던 일을 실행 할 계획이었다.

‘아더에게 내 마음...’

그 때 놀스 교수가 선언했다.

“시험을 시작한다!”

엘린이 목검을 치켜든다.

아더도 목검을 치켜들었다.

“…….”

둘 사이에 내려앉은 긴장감에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사이 아더를 탐색하던 엘린이 눈빛을 빛냈다.

‘지금!”

그 판단과 함께 엘린의 신형이 쏘아져 나갔다.

“…!”

그 엄청난 속도에 놀스 교수와 학생들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린 순간, 아더의 검도 움직였다.

검을 내지르려던 엘린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녀의 세상이 암전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옅은 시야 사이로, 웃고 있는 아더 바이에른이 보였다.

대련을 시작한 후, 엘린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 * *

대련장에 무거운 침묵이 깃든다.

“…?”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입을 벌린 채 바닥에 쓰러진 엘린 레버쿠젠을 바라보았다.

“엘린 레버쿠젠이… 졌어?”

그것도 치열한 대련 끝의 패배가 아니라 단 일 합.

아더 바이에른이 내지른 일 합만에 바닥에 쓰러졌다.

“…허?”

“무, 뭔 일이 일어난 거야?”

“설마 발이 꼬인 건가?”

“그, 그런 거야? 아닌데… 발이 꼬인 게 아니야.”

터져나오는 수군거림 속에서, 엘린이 쥐고 있던 목검이 툭 떨어졌다.

파지직-!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두 동강이 나는 엘린 레버쿠젠의 목검.

그 광경에 학생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

목검이 부러졌다는 건, 이 패배가 운이 아닌 실력에 의해 결정 났다는 사실.

그 순간 대련을 지켜보던 학생들 사이에서 뒤늦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미, 미친!! 진짜 아더 바이에른이 이겼다고!?”

“와… 이게 무슨 일이야?”

“아케인 대학 역사상 이런 이변이 있었나…?”

외침과 함께 대련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을 때였다.

놀스 교수가 입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뭐라… 말인가?’

아더 바이에른.

검술 강의가 시작된 이후로, 눈에 띄지 않던 평범한 학생.

물론 첫 테스트 때, 기이한 검술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천재라 불릴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도 상식을 뛰어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단 한 합에 쓰러진 엘린 레버쿠젠.

제 눈으로도 쫓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일격.

동시에 은연중에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까지.

그 탓에 진심으로 놀란, 놀스 교수가 할 말을 잃어버렸을 때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대련의 승자가 누구죠 교수님?”

“…!”

질문에 정신을 차린 놀스 교수가 아더를 잠시 바라보았다.

흔들림이라고는 볼 수 없는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보였다.

‘이 승리… 아더 바이에른은 확신하고 있었군.’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놀스 교수가 선언했다.

“승자 아더 바이에른.”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엘린 레버쿠젠 대 아더 바이에른의 대련의 승자는… 아더 바이에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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