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90화 (90/265)

제90화

앞을 가로막은 수많은 <해적> 소속 인간들을 바라보며 아더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나 많은 인원이 한 번에 달리는 열차를 습격했을 리는 없고, 처음부터 슈가가 이 열차를 탔을 것이라 예상하고 잠복해 있던 모양이었다.

‘정보가 샜네? 그런데 이 티켓은 바란스 씨가 준 거잖아?’

그렇다면 바란스 씨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렸단 건가?

고민하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흠… 재밌네. 부녀지간 싸움이 이렇게 살벌하다니.”

아더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해적 중 한 명이 가래침을 뱉었다.

“먼 개소리야? 죽을 때가 되니 정신이 돌았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정신이 돌긴요. 저처럼 정상인이 어딨다고.”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비스트를 들어 올렸다.

탕-!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조금 전 가래침을 뱉었던 사내의 얼굴이 사라졌다.

“이 개자식이!”

욕설과 함께 뒤에 있던 인원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아더는 다시 비스트의 방아쇠를 당기려다 흠칫 어깨를 떨었다.

“오… 활약하고 싶다고요?”

아더의 질문에 손에 들린 마검이 부르르 떨었다.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비스트 대신 마검을 휘둘렀다.

홱-!

그 순간 채찍처럼 쏘아져 나간 마검이 몰려오던 해적들의 목을 낚아채 버렸다.

“무, 뭐야 이 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고?”

외침과 함께 아직 목이 잘리지 않은 해적들이 주춤거렸다.

그 빈틈을 아더는 놓치지 않았다.

“……!”

자리에서 뛰쳐 오른 아더가 적진 한복판에서 칼춤을 추었다.

그 일격에 맞서 해적들이 손에 들린 도검류들을 있는 힘껏 내려쳤지만 소용없었다.

“…이건 또 뭐야!”

어느 사이엔가 생성된 반투명한 막이 내려친 일격을 튕겨 내 버렸기 때문이다.

욕설을 내뱉은 해적들이 품속을 뒤져 권총을 집어 들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아더의 칼이었다.

쉬익-!

기이한 소리와 함께 피와 살점이 터졌다.

아더의 손에 들린 마검이 춤출수록, 해적들의 목은 빠르게 떨어져 나갔다.

그 광경에 해적들이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며 소리쳤다.

“저 괴물 새끼!”

외침과 함께 해적들이 자리를 비켜섰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포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포?”

지켜보던 아더는 놀라 눈을 치켜떴다.

전쟁에서나 사용하는 저 화약 무기까지 들고 왔다고?

그사이 심지에 불이 붙었다.

쾅-!

울려 퍼진 폭음과 함께 아더가 공간 도약을 사용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후끈한 열기에 해적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개새끼, 드디어 잡았다!”

“누굴요?”

“누구긴 누구야! 조금 전 그 용병 나부….”

말을 흐린 해적들이 움찔 놀랬다.

그 사이 해적들의 한가운데로 파고든 아더가 웃었다.

“저 살아 있는데요? 그건 그렇고, 이런 물건은 대체 어디서 공수해 오신 거래.”

이 말과 함께 대포의 포신을 잘라 버린 아더가 쥴리의 혈통 능력을 발동시켰다.

파지지직-!!

타오르는 전류에 휩싸인 마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 순간 퍼져 나간 전류에 감전당한 해적들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그 외침과 함께 수십 명의 해적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유일하게 자리에 서 있던 아더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우, 이거 연달아 싸우려 하니깐 영 피곤하네.”

시선을 돌린 아더가 운디네를 향해 부탁했다.

“기운 좀 불어넣어 줄래, 운디네?”

[알겠어요. 아더.]

대답과 함께 운디네의 손이 아더의 이마에 닿았다.

그 순간 느껴져 오는 청량한 기운에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운디네가 상급 정령이 되니깐 전투가 진짜 편해졌어.’

상당히 괜찮은 보호막도 쓸 수 있고, 완벽에 가까운 치료도 가능하다.

‘거기다 운디네의 체력만 가능하다면 자연재해에 가까운 물보라도 일으킬 수 있고.’

물론 이런 기술의 경우,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탈진 상태에 이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비장의 기술 정도로 생각해서, 한 방을 남겨 둔다는 것은 아주 든든한 버팀목이 될 테니.

‘그건 그렇고, 슈가 씨는 어디까지 도망친 거지?’

이쯤 오면 보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슈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기차를 벗어난 걸까?’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저 열차 너머에 느껴지는 수많은 존재감을 생각하면, 슈가도 분명 이 열차 안에 있었다.

생각을 끝마친 아더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퉷.”

그 순간 또 다른 해적들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아더는 칼과 비스트를 휘리릭 돌려 잡으며 말했다.

“비켜 달라 해도 안 비켜 줄 거죠?”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도 안 했어요. 그럼 다들 죽을 준비는 되셨죠?”

* * *

슈가를 인도하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못 잡았다고?”

이 말과 함께 그의 신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슈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느, 늑대?’

순식간에 인간의 외형을 벗어나 늑대 그 자체가 된 사내가 희번덕이는 눈동자를 돌리며 말했다.

“저기로 가라 계집. 딴 곳으로 새면 너는 나한테 죽는다.”

늑대인간의 협박에 슈가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늑대인간이 몸을 돌려, 성큼성큼 조금 전 왔던 곳으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슈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늑대인간이면 설마 웨어울프의 혈족인가?’

그럴 확률이 높았다.

보름달을 맞이하면, 늑대로 변하는 웨어울프 혈족.

그들은 대게 포악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자비가 없다 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 탓에 슈가는 문득 조금 전까지 함께했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던… 카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보아 온 두 사람은 다른 용병들과 달리 동년배였다.

그 탓인지 몰라도 지금 자신의 행동에 왠지 모를 자책감을 느꼈는데, 슈가는 곧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위선 떨지 마, 슈가 하이빈. 여기까지 와서 착한 척 굴지 말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몰아세운 슈가가 걸음을 옮겼다.

그 후 닫혀 있던 문을 열자, 애꾸눈의 사내가 보고 있던 신문을 접으며 말했다.

“왔군.”

해적의 갑판장.

슈나이던이었다.

그는 무신경한 시선으로 슈가를 바라보다 손짓했다.

“와라. 조금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슈가가 다가가려다 멈칫하고서 질문했다.

“약속은 지키실 거죠?”

“…….”

“정말 제가 사라지면, 내전을 그만두고 제 남편을 살려 주실 건가요?”

갑판장 슈나이던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야 모르지.”

“……?”

“그런 일을 결정하는 건 갑판장인 내 일이 아니야. 선장이 결정할 일이다.”

슈가의 입이 벌어졌다.

“지금 말을 돌리시는 건가요?”

“글쎄. 내가 전달받은 건 네년을 이곳에서 납치해 프라임 왕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다.”

“약속이 다르잖아요!”

“해적과의 약속을 믿나? 하지만 뭐… 아직 결정된 건 없으니 희망을 품어 봐.”

입꼬리를 올린 슈나이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모르지. 네 남편과 네가 같은 무덤에 묻힐지도.”

바들바들 다리를 떨던 슈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단검을 치켜들어 제 목에 겨냥했다.

“가까이 다가오시면 찌를 거예요.”

“찔러 봐.”

“그럼 당신들 목적은 달성하지 못할 텐데요. 제 죽음을 알아차린 남편이 과연 왕위 계승을 포기할까요?”

슈나이던의 눈길이 가늘어졌다.

동시에 그의 손이 허리춤에 차여진 칼의 손잡이로 향할 때였다.

쾅-!

폭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데구루루 굴러와 슈나이던과 슈가의 발치에 멈추어 섰다.

“…늑대인간?”

저도 모르게 이 말을 중얼거린 슈가가 숨을 참았다.

그사이 박살 난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온 아더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술래잡기는 끝이에요, 말썽꾸러기 의뢰인 씨.”

“…던?”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사고를 치세요? 혹시 사춘기는 아니죠?”

이 말과 함께 슈가의 곁으로 다가온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왜 단검을 목에다 겨누고 있어요?”

질문과 함께 슈가의 손에 들린 단검을 탁! 소리 내어 쳐냈다.

당황한 슈가가 아더를 향해 말했다.

“무, 뭐 하시는 거예요!”

“슈가야말로 뭐 하는 거예요?”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잖아요!”

“제가요? 전 당신을 호위하라는 의뢰를 받은 용병인데요?”

“이제 필요 없어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슈가가 500골드 줄 거예요?”

“……?”

“전 보상받고 일하는 용병인데, 의뢰를 그만두게 하려면 그에 걸맞은 무언가를 줘야죠. 슈가가 그걸 줄 거예요?”

아더의 질문에 슈가가 입을 벌렸다.

그리고 무어라 소리치려는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선을 돌린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수준 높은 칼잡이네요?”

이 말에 검을 뽑아 든 슈나이던이 비릿하게 웃었다.

“너 같은 어중이떠중이하고는 다르지.”

“어중이떠중이요? 제가요?”

“그럼 너 말고 누가 있지?”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신선하네요. 저한테 어중이떠중이라 하는 분은 참 오랜만에 봐서.”

“여태 진짜 강자들을 만나 보지 못한 모양이군.”

슈나이던이 숨을 참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고리가 다섯 개?’

그사이 슈나이던의 검으로부터 무언가 치솟았다.

화르르륵-!

고결한 경지에 오른 칼잡이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절기, 검기였다.

아더가 나직한 탄성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의외네요. 해적분들은 물량으로만 밀어붙이는 줄 알았는데.”

“너 같은 밑바닥 놈들은 그 물량에도 못 끼어들지.”

이 말과 함께 슈나이던이 쇄도했다.

지켜보던 아더는 슈가의 허리를 낚아채고 허공에 집어 던졌다.

“…꺄아아악!”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에 무언가 닿았다.

투명한 막이었다.

숨을 멈춘 슈가가 시선을 돌린 그때, 아더의 칼과 슈나이던의 칼이 맞부딪쳤다.

채애앵-!

불씨가 튀며 힘겨루기를 하던 아더가 몸을 뒤로 뺐다.

자연스레 앞으로 쏘아져 나간 슈나이던이 소리쳤다.

“도망치는 거냐!”

“설마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비스트를 치켜들었다.

그 순간 슈나이던은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며 목을 틀었다.

다행히 그 판단은 유효했다.

탕-!

쏘아져 나간 탄환이 등 뒤의 객실을 박살내 버렸다.

지켜보던 슈가는 입을 벌리며 놀랬고, 슈나이던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그 사이 아더는 손에 쥔 마검을 크게 휘둘렀다.

쉬익-!

기이한 바람 소리와 함께 마검이 채찍처럼 휘어진다.

슈나이던은 이를 악 깨물고 그 검을 쳐냈다.

챙-!

검기에 두들겨 맞은 마검이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이야 잘 버티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버텨 주세요.”

마검이 불만을 토로하듯 거칠게 떨렸지만 아더는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사이 숨을 몰아쉬던 슈나이더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취소하지. 어중이떠중이는 아니군.”

시선을 돌린 아더가 피식 웃었다.

“말이 바뀌는 게 금방이네요?”

“솔직히 놀랍군. 어디서 그런 아티팩트들을 주워 온 거지?”

“이것들이요?”

“그래. 그것들이 네 미천한 실력을 보완해 주는군. 그런 의미에서 네놈을 죽이고 난 뒤가 기대되는군.”

슈나이던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눈을 끔뻑였다.

“오… 지금 제가 아티팩트에만 의지하는 놈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싶은 거군요?”

“그럼 아닌가?”

“흠… 그것도 맞는데, 차라리 이렇게 말씀해 주실래요?”

이 말과 함께 아더과 테이큰의 혈통 능력을 일으켰다.

그 상태에서 운디네와 노움까지 소환했다.

“……!”

그 광경에 슈나이던이 입을 벌린 사이, 쥴리의 혈통 능력까지 일깨운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혈통에만 의지하는 놈. 차라리 이게 맞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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