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옆에 있던 카셀과 슈가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 자네 지금 무슨 짓인가?”
“…당신 미쳤어요?”
아더가 요리사의 손에 쥐어져 있던 권총을 집어 들고 흔들었다.
“평범한 요리사가 이런 걸 왜 들고 있을까요?”
“…….”
“설마 이걸로 우리 스테이크 썰어 주려고 했을까요?”
카셀과 슈가가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슬그머니 나타난 노움이 당당히 소리쳤다.
[우매한 인간들! 자길 살려 준 줄도 모르고 화를 내!?]
“……?”
[내 계약자가 독이 섞인 스테이크를 먹기 전에 구해 준 것도 모르고! 하여튼 인간들이란 쯧쯧….]
그 모습에 카셀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이놈은 뭐야, 던?”
“아 제 정령이에요.”
“…정령?”
“땅의 상급 정령인데, 요즘 사춘기예요.”
이 말에 노움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내가 왜 사춘기야!]
외침과 함께 노움의 몸이 반투명해졌다.
아더가 정령계로 역소환을 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용해진 방 안에서, 아더가 슬그머니 손짓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셀과 슈가가 걸음을 옮겨 다가갔다.
그사이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댄 아더가 혀를 찼다.
“쩝… 벌써 포위당한 것 같은데요?”
“포위라고?”
“바깥에 뭔가 잔뜩 몰려왔어요. 피 냄새를 풍기는 무기를 들고서.”
카셀이 뒤늦게 흠칫 놀랬다.
“정말이군…. 설마 해적 놈들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죠? 흠….”
말을 흐린 아더가 벌벌 떨고 있는 슈가를 가리켰다.
“일단 카셀이 슈가 좀 맡아 줄래요?”
“…어쩌려고?”
“수가 많은 것 같아서 한 방 먹여 주려고요.”
이 말과 함께 방문을 연 아더가 날이 잔뜩 선 검과 칼.
심지어 총을 들고 있는 일당의 무리를 향해 비스트를 겨눴다.
탕-!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무리가 검은 구슬이 되었다.
“……!”
지켜보던 카셀이 입을 벌리는 사이, 구슬이 되어 버린 해적들을 줍던 아더가 소리쳤다.
“카셀 뒤!”
카셀이 대답을 하지 않고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역수로 쥔 채 아더의 말에 따라 뒤로 찔러 넣었다.
“컥!
옅은 신음과 함께 벽면을 부수고 등장한 한 사내가 그대로 절명했다.
그 모습에 혀를 찬 카셀이 잠시 고민하다 슈가의 허리를 확 낚아챘다.
“꺄, 꺄악-!”
“죄송하오! 죄송하오! 하지만 어쩔 수 없소!”
이 말과 함께 앞으로 구른 카셀이 탁자 뒤에 숨었다.
타타타탁-!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총성과 함께 최고급 vip 룸이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고리를 회전시키면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아더가 소리쳤다.
“카셀! 위로 가죠!”
“…위!?”
“네! 슈가 때문에 차라리 위에서 싸우는 게 편하겠어요!”
카셀이 잠시 망설였다.
‘지금 달리는 기차 위에서 싸우자고?’
고민하던 카셀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많아. 사람 한 명을 지키면서 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이럴 바에는 아더의 말대로 기차 위에 올라타 정면에서 맞서 싸우는 게 나았다.
생각과 함께 카셀이 몸을 일으키자, 아더가 다시 노움을 소환했다.
“발판이요, 노움 씨!”
노움이 한숨을 내쉬더니 아더의 말에 따라 순순히 발판을 만들었다.
아더가 그 발판을 밟고서 먼저 올라갔고, 카셀과 슈가가 뒤를 따랐다.
철컥철컥-!
귓가를 울려 대는 소음과 함께 칼날 같은 바람에 머리칼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카셀과 아더는 그 상태에서도 어렵지 않게 중심을 잡았지만 평범한 민간인이었던 슈가는 달랐다.
“윽!”
그녀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카셀에게 파고들었다.
흠칫 놀란 카셀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리쳤다.
“더, 던! 이것 좀 어떻게….”
이 말에 아더가 손짓했다.
그 순간 노움의 능력으로 만들어 낸 흙 방패가 두 사람 주위를 감쌌다.
“오….”
카셀의 나직한 탄성과 함께 아더가 저를 따라 기차 위로 올라오는 해적을 바라보았다.
“개새끼! 도망쳐도 이런 곳으로 도망쳐!?”
“너 곱게 죽긴 글렀다, 이놈아!”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 가지고, 다진 고기로 만들어 주마!”
싸구려 협박과 함께 기차 위로 올라선 해적의 인원들이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이게 끝이에요?”
“끝? 얼씨구. 밑에 더 있다. 이놈아!”
“아 진짜요?”
“어차피 너희들은 끝났어! 그자를 넘겨주든, 넘겨주지 않든 죽일 테니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그럼 저도 마음 편히 죽일게요.”
비스트를 꺼내 든 아더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앙-!!
검은 구슬을 탄창 속에 넣어 둔 덕택에 그 위력은 조금 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쏘아져 나간 어둠이 해적의 인원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 광경에 카셀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대체 저게 뭐야? 총 맞아?”
그사이 비스트의 총구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훅, 바람을 불어 꺼트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슬슬 나오지 그래요?”
“……?”
“숨어 있는 거 보이는데?”
이 말에 낮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머머머-!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진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백곰 한 마리가 달리는 기차 위에 올라탔다.
“저건 또 뭐야…?”
카셀이 입을 벌린 채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사이,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흰색 곰? 희한한 혈통이네요.”
이 말에 기차 위에 올라탄 볼리베어가 대답했다.
“정확히는 혈족이지. 그게 마지막 유언이냐. 용병?”
아더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네요. 마지막 유언으로 그런 걸 남겨도 되겠어요, 백곰 씨?”
* * *
백곰과 아더가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셀은 근질거리는 손을 애써 억누르며 생각했다.
‘나도 끼고 싶군. 저 싸움에.’
하지만 의뢰인을 내버려 두고, 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그 탓에 카셀이 한숨만 퍽퍽 내쉴 때, 아더가 마검을 뽑아 들었다.
지잉-!
기묘한 울림과 함께 마검의 검날이 붉게 물든다.
그 광경에 아더가 눈을 치켜뜨고서 중얼거렸다.
“오… 진짜 피를 탐하는 것 같네?”
그와 동시에 카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피를 머금으면 길이가 늘어난다 했던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몰라도 문득 실험을 해 보고 싶어진 아더였다.
그 탓에 제 손을 칼날로 찢었다.
뚝뚝….
흘러내리는 핏방울에 마검이 부르르 떨었다.
그 광경에 씩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대답했다.
“맛있어요?”
“…….”
“말 잘 들으면 더 줄게요. 어때요?”
마검은 대답하는 대신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시선을 돌리자 백곰이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검하고 대화를 해? 미친놈인가?”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대답했다.
“검하고 대화했다고 미친놈이 돼요?”
“보통 그걸 미친놈이라 부르지.”
이 말과 함께 백곰이 어흥-! 소리치며 아더에게 뛰어들었다.
덩치에 맞지 않은 날랜 몸놀림에 아더의 눈길이 좁혀졌다.
그 순간 손에 쥔 마검이 뽑혀 나간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촤악-!
순식간에 늘어난 검이 백곰의 어깨를 스쳤다.
그 광경에 백곰도 놀라고 아더도 놀랬다.
“이게 되네?”
“이, 이게 뭐야?”
각기 다른 탄성과 함께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뛰쳐 올랐다.
“……!”
조금 전 일격에 방향을 잃은 백곰이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제법 기묘한 수를 쓴다고 한들, 내 두꺼운 살갗을 뚫을 수는 없을 거다!”
그 외침에 아더가 웃었다.
“그럼 태워 버리는 건요?”
쥴리의 혈통을 일으킨 아더가 벼락을 마검에 둘렀다.
그 광경에 백곰이 입을 벌리고서 중얼거렸다.
“…그건 예정에 없던 건데?”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칼이 쇄도했다.
뒤늦게 자리를 벗어나려 한 백곰이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쥴리의 혈통 능력에 새하얀 털이 새까맣게 타 버린 백곰이 비틀거렸다.
그 후 중심을 잃고서 철로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셀은 저도 모르게 경악해 중얼거렸다.
“무, 뭐야! 이제 마법까지 쓴다고?”
상급 정령만 하더라도 놀라운데 마법?
카셀의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탓에 멍하니 아더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품 안에 있던 슈가가 고개를 들었다.
“…끝났어요?”
“끝난 것 같군요. 그러니 이제 좀 떨… 어?”
탄성과 함께 카셀이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제 허벅지에 박힌 단검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오?”
“미안해요.”
카셀이 비틀거리며 안고 있던 슈가를 놓쳤다.
그사이 카셀의 품 안에서 빠져나온 슈가가 철로 아래로 몸을 던졌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팟-!
그녀가 바닥 아래로 처박히기 전 누군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금 전 빠져나왔던 vip 룸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빠져나왔던 곳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어째서?’
중얼거림과 함께 카셀이 움직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단검에 찔려서가 아니라, 단검에 묻은 독에 의해 마비가 된 듯했다.
그 탓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만 부르르 떨고 있으니, 아더가 다가와 물었다.
“…뭐 해요, 카셀? 설마 슈가가 싫다고 내던진 거예요?”
“내, 내가 그런 짓을 왜해?”
“그럼 슈가는 어디 가고 혼자 쓰러져 계신 거예요?’
아더의 물음에 카셀이 아래를 가리켰다.
“날 찌르고 도망갔어.”
“…찌르고 도망갔다고요?”
“그래. 처음부터… 계획된 일인 것 같아.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아더의 눈이 치켜 떠졌다.
‘흠… 이 말이 맞다면 이 기습도 슈가가 의도한 건가?’
카셀의 말에 따르면 정황상 그렇게 되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굳이 왜?’
지금 습격을 하는 자들은 슈가 본인을 죽이려 하는 자들 아닌가?
그런데 그자들의 손아귀에 제 발로 들어간다고?
아더는 턱을 쓰다듬으며 궁리하다 곧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네요. 본인한테 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가려고?”
“아직 의뢰가 안 끝났잖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좀 궁금하거든요.”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슈가 씨가 정말로 바란스 님의 따님인지. 만약 대답을 못 들으면 한 며칠은 자기 전에 계속 생각날 것 같아요.”
카셀의 눈이 치켜 떠졌다.
“흠… 그건 나도 그래. 그런데 꼴이 이래서 도와주지는 못할 것 같군.”
“잠시 쉬고 있어요. 운디네.”
아더의 부름과 함께 나타난 운디네가 카셀의 몸을 치료했다.
화앗-!
스며드는 청량한 기운과 함께 카셀의 눈이 치켜 떠졌다.
‘…신성력?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난 기운인데?’
그사이 다시 기차 안으로 돌아온 아더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머리칼을 정리했다.
그 모습에 기차 안을 점검한 해적 무리들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칼을 치켜들었다.
“…얼씨구. 꼴에 여유를 부려?’
머리 정리를 끝낸 아더가 마검을 빙그르르 돌렸다.
“여유가 있으니깐, 여유를 부리죠.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