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에피타이저가 끝난 후 본격적인 메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아더가 중얼거렸다.
“…어떤 사람이요?”
“응.”
“갑자기 그건 왜?”
“다들 보통 궁금해하잖아? 다른 사람은 날 어떤 식으로 바라볼까, 어떤 생각을 할까….”
엘린이 힘주어 대답한다.
“특히 그게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턱을 쓰다듬던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하긴, 당장 나만 해도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 학교에서 조심하니깐.’
그렇다면 자신에게 있어 엘린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귀족다운 귀족?’
당찬 여자?
아니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
여러 가지가 떠올랐는데, 콕 집어 특정하기란 애매했다.
그 탓에 고민이 길어질 때, 엘린이 어딘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질문한다.
“…그렇게 깊게 고민할 정도야?”
“네?”
“그렇게 깊게 고민할 정도로 최악이냐구….”
말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흠…. 엘린?”
“응.”
“제가 왜 엘린을 최악이라 생각한다는 거죠?”
“곧바로 대답 못 하잖아.”
“그럼 최악이 아니라 너무 좋은 사람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엘린의 눈이 동그래진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네. 제가 왜 엘린을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겠어요?”
“하지만…. 나 성격 나쁘잖아.”
“어디 가요?”
“그…. 쓸데없이 자존감 높고, 뭔가 말도 예쁘게 못 하고….”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욕 들어요, 엘린.”
“….”
“그리고 그건 나쁜 게 아니라 개성이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성. 그리고 엘린의 그 개성은….”
말을 흐린 아더가 단언한다.
“제가 보기엔 좋은 개성이에요.”
“…거짓말은.”
“진짠데요? 저는 엘린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어디가?”
“그걸 지금 고민 중이에요. 제가 바라보는 엘린은 좋은 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거든요….”
아더가 제 생각을 하나둘 꺼내 놓는다.
“남들한테 당당히 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저에게 먼저 다가와 준 상냥한 면모도 그렇고….”
“….”
“그뿐만이 아닌 리더십도 있죠. 엘린의 말이라면 같은 학생들이 전부 따르잖아요? 이것만 해도 엘린이 대단한 사람인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또….”
그 이야기를 멍하니 듣던 엘린이 황급히 소리친다.
“자, 잠깐! 어디까지 말하려고?”
“…제가 생각하는 바가 끝날 때까지요?”
“그렇게나…. 많다고?”
아더가 방긋 웃는다.
“좋은 사람은 한 가지 면모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 불리는 건 아니죠.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좋은 사람이라 불리는 거죠.”
“….”
“그중 한 가지를 콕 집어 말하는 건…. 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엘린이 말해 달라니 전 솔직히 말하는 거고.”
이 말에 엘린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붉어진 귓가와 달아오른 목덜미가 지금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지켜보던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질문한다.
“엘린? 왜 갑자기 얼굴이….”
“거기까지.”
“…?”
“제발 거기까지 해 줘. 얼굴 터질 것 같으니깐….”
말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아더가 입을 다문다.
그사이 심호흡한 엘린이 눈가를 가리던 손을 간신히 떼 놓으며 중얼거렸다.
“혹시 아더. 이런 칭찬 나 말고 다른 여자에게 해 준 적 있어?”
“…네?”
“다른 여자에게 해 준 적 있냐고.”
“어…. 아뇨? 없는데요?”
“절대 해 주지 마. 알았지?”
묘한 기세에 아더가 움찔 놀란다.
그사이 엘린이 붉어진 눈시울을 감출 생각을 않으며 재촉했다.
“약속해. 절대 해 주지 않겠다고.”
“…네. 약속할게요, 엘린.’
“그래…. 그럼 이제 내 차롄가?”
“뭐가요?”
“내가 생각하는 너 말이야.”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어…. 저도 하는 건가요?”
“넌 궁금하지 않아? 내가 어떻게 널 생각하는지?”
질문에 아더가 고민하다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생각해 보니 궁금하긴 하네요. 다른 사람 눈에 제가 어떻게 보일지.”
“말할까?”
“네. 음…. 그런데 엘린. 말할 때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둬서 해 주세요. 그러니깐 같은 학생을 기준으로 해서요.”
엘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무슨 이유라도 있어?”
“그게 제가 알고 싶은 부분이거든요. 남들과 비교해서 튀지 않는지, 평범하지 않은지…. 이게 걱정이 돼서요.”
아더의 대답에 엘린이 입꼬리를 올린다.
“…남들과 비교해서 평범할 리가 없잖아.”
“네?”
“내가 바라보는 네가…. 남들과 비교해서 평범할 리가 없잖아.”
그녀의 대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속에서 엘린이 심호흡과 함께 오랫동안 고민하던 제 마음 하나를 꺼내 놓으려 할 때였다.
갑자기 정신이 픽 하고 끊겨 버린다.
쿵-!
그와 동시에 탁자 위로 쓰러졌는데, 지켜보던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 엘린?”
그녀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부른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뒤늦게 달라진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느끼고 표정을 굳혔다.
‘이런? 엘린에게 집중하느라 감각이 무뎌져 있었어.’
생각과 함께 아더가 긴장감을 일깨운 순간이었다.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좋은 시간이었는데 방해했나?”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아주 익숙한, 그러면서도 꼴 보기 싫은 금발이 눈에 들어왔다.
아더는 그 금발의 미남자를 바라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레온 마드리드 황자…. 님?”
* * *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은 남자.
레온 마드리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이렇게 다시 보는군.”
“….”
“나도 이렇게 빨리 만날 줄 몰랐는데, 이런 걸 두고 운명이라고 말하던가?”
이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명이 아니라 뒤를 쫓은 거 아니에요, 황자님?”
“뒤를 쫓았다고. 내가?”
“네. 우연히 만났다기보다는, 그쪽이 더 그럴싸하잖아요?”
레온이 눈을 끔뻑인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미안한데 난 남자 뒤는 쫓지 않아.”
“….”
“아름다운 레이디라면 모를까, 시커먼 남자 뒤를 쫓아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 말과 함께 레온이 의자를 끌어와 앉는다.
그 모습에 아더의 시선이 싸늘해질 때였다.
레온이 두 손을 든다.
“싸울 맘 없네. 그러니깐 그만 노려보게.”
“….”
“여기는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야. 어제 그 난리를 겪어서 맛있는 것들 좀 먹으려고 왔는데 자네가 있었던 거야.”
그의 설명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이곳이 황자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고요?”
“그래. 못 믿겠으면 나중에 확인해 보게. 여기 명의가 누구 걸로 되어 있는지.”
자신만만한 레온의 대답에 아더가 입을 다문다.
‘거짓말은…. 아닌데?’
거짓말을 하는 사람 특유의 호흡이나 눈빛.
그런 특징들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매우 특이한 혈통을 다루는 인간인 것을 고려하면 쉽사리 믿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그때 레온이 쓰러진 엘린을 힐끔 바라보며 질문한다.
“…그건 그렇고 혹시 내가 방해했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네를 발견해서 나도 모르게 저 아름다운 레이디를 일단 기절시키기는 했는데, 데이트 중 아니었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요?”
“그래? 둘이 분위기 좋아 보이던데?”
“중요한 순간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황자님이 그걸 망쳐 버렸네요.”
“…윽. 미안하네. 내가 남녀 사이를 방해해 버리다니….”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다른 거로 갚으면 되니깐 말이에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제 혈통을 일으킨다.
몸을 뒤덮는 기괴한 비늘의 등장에 레온이 눈을 치켜뜬다.
“여기서 날 덮치려고?”
“못할 거야 없죠?”
“…어제 느끼기는 한 건데, 자네 정말로 종잡을 수가 없군.”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하죠. 그런데 하실 말씀은 그게 끝인가요?”
“왜? 끝이면 날 죽이기라도 하려고?”
“말씀드렸잖아요. 전 한 번 마음 먹은 건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아더의 말에 레온의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그 변화에 아더는 생각했다.
‘여전히 기분 나쁜 눈이네. 특히 저 반달 문양의 눈동자는.’
그러면서도 어떤 능력인지 궁금해 황자의 피를 마셔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제국 황실의 핏줄에 섞인 혈통은 바이에른 피가 흡수하지 못했다.
‘지난번 삶에서 칸 마드리드의 혈통 능력을 흡수하려 할 때도 그랬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제국 황실의 혈통 능력은 흡수할 수 없었어.’
그 탓에 호기심 사라지고 묘한 불쾌함만이 남을 때였다.
레온 마드리드가 입을 연다.
“내가 말했지? 우리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고?”
“그건 황자님 생각 아닌가요?”
“일단 자네가 화난 이유를 말해 보게. 그래야 그에 걸맞은 사과나 보상이라도 할 거 아닌가?”
아더가 웃는다.
“이걸 굳이 설명해야 해요?”
“….”
“남의 머릿속을 뒤져 보고 최면을 건 일. 이 정도면 황자님을 죽일 이유로 충분하지 않나요?”
레온 마드리드의 표정이 흔들린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불쑥 고개를 숙여 버린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고개를 숙이는 거지?’
설마 저 사과로 끝을 낼 생각인가?
그때 공간이 뒤흔들린다.
동시에 레온 마드리드가 변장한 것이 아닌 진짜 산업 스파이.
마시알 더스트가 나타나 황급히 황자를 향해 속삭인다.
‘레, 레온 마드리드 님! 어찌 고개를 숙이십니까.”
입 모양만으로 전하는 그의 말을, 용케 알아들은 황자가 소리 내 말한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안 그렇겠나?”
“….”
“그것이 어떤 대의가 있건, 내가 한 행동이 일단 잘못은 맞으니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황자님. 이번에는 거짓말이죠?”
“…뭐? 진심이야! 내가 왜 이 시점에 거짓말을 하겠나!”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데요.”
“….”
“거짓말을 할 때 드러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있거든요. 눈이 떨린다거나 혹은 호흡이 일정치 않다거나, 혹은 과장되게 소리친다던가.”
레온이 눈을 끔뻑이다 대답했다.
“그렇게 티 났나?”
“네.”
“씁…. 하지만 미안한 건 사실이야. 봐 봐. 무려 황자인 내가 고개까지 숙이지 않았는가?”
당당한 그 태도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이 사람…. 특이한데? 며칠 전 만난 카셀이란 사람만큼.’
물론 그 특이함이 카셀과는 다른 의미에서 특이함이었지만 말이다.
그 느낌을 곱씹으며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켜보던 레온이 불쑥 질문했다.
“가려고?”
고개를 돌린 아더가 웃었다.
“엘린만 없었어도 죽였을 텐데, 아쉽네요.”
레온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제 비밀. 지켜 줄 수 있나?”
“지켜 주지 않으면요?”
“흠…. 뒷수습을 해야지.”
“저를 죽이는 게 가장 빠르잖아요.”
“그게 제일 좋긴 하지만 난 자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반대로 레온은 웃어 보였다.
“신분을 속이고 뒷거리 용병을 하는 바이에른 공작가의 소공자, 황실의 기밀을 빼돌리는 제국의 황자.”
“….”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아 보이지 않나?”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더 친해질 수 없지 않을까요?”
“왜. 남자끼리 대화도 하고, 술도 한잔하면 무슨 이유건 친해질 수 있지.”
“전 안 그렇거든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뒤통수를 매번 때려서.”
레온이 호탕하게 웃는다.
“그럼 서로의 비밀을 지켜 주는 것 정도는?”
“…마음에 안 들지만 그 정돈 할 수 있죠.”
아더가 쓰러진 엘린을 안아 들며 말한다.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그 후 걸음을 옮긴 아더가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시알이 조심스레 조언한다.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더를 지켜보던 황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분간 내버려 두지. 보니깐 적어도 누구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다닐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괜찮아. 나를 믿게. 그리고 아더 바이에른은 내 비밀을 퍼트릴 수 없어.”
마시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무슨···?”
레온이 입꼬리를 올린다.
“나와 같은 목표를 지녔거든···….”
마시알 더스트의 눈이 부릅떠졌다.
“같은 사람, 같은 인간을 죽인다는 목표…. 그러니깐 걱정할 필요 없어. 나와 아더 바이에른은 한배를 탄 몸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