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56화 (56/265)

제56화

달리는 차 안.

엘린은 힐끔 시선을 돌려 아더를 훔쳐보았다.

“…엇.”

창가에 기댄 아더는 조금 전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많이 피곤한 모양인지, 미간에 주름도 잡혀 있었다.

‘어제…. 잠을 설쳤나? 왜 이리 피곤해하지?’

아침 9시 수업을 해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던 그 아더 바이에른이?

고민과 함께 엘린은 문득 놀란다.

“….”

생각해 보니 아더 바이에른의 얼굴을 이렇게 오랫동안 지켜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탓일까.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뚝한 코.

날렵한 이마.

칼을 쓰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하얀 피부.

자신이 기억하는 그 옛날의 아더 바이에른과 너무나도 달라진 얼굴이었다.

분명 좋은 의미로의 변화.

하지만 엘린은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내가…. 매일 1년간 떠올리던 얼굴은 이게 아니었는데.’

중얼거림과 함께 엘린이 계속해서 아더를 훔쳐볼 때였다.

내달리던 차가 멈추어 선다.

그와 동시에 졸음과 싸우던 아더가 눈을 떴는데 놀란 엘린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어…. 엘린 혹시 저 졸았나요?”

엘린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많이 졸던데? 어제 뭐 했어?”

“아…. 죄송해요. 제가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엘린이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뭐야? 나랑 만난다고 하니깐 기대돼서 잠을 설친 거 아니야?”

“음…. 그건 아닌 데, 뭐 비슷한 이유예요.”

말을 흐린 아더가 설명하기를 회피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엘린이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 나랑 만난다고 잠을 설쳤다고?’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 엘린이 쾌활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A구역이긴 한 것 같은데, 처음 와 보는 곳인데?”

“저도 약속 때문에 딱 한 번 와봤는데, 괜찮더라고요. 엘린의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 나 은근 안 까다롭거든.”

“진짜죠? 나중에 불평하기 없기에요.”

대답과 함께 차에서 내린 아더가 한 빌딩 안으로 들어선다.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엘린이 놀라 물었다.

“…? 뭐야 여기?”

“나탈리 레스토랑이에요. 괜찮죠?”

아더의 설명과 함께 엘린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린다.

“여, 여기가 레스토랑이라고? 저렇게 큰 악단이 있는데?”

“저도 놀랐어요. 그런데 맛도 좋더라고요, 여기.”

이 말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대기 중이던 쉐프가 다가와 인사했다.

“나탈리 레스토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네. 혹시 자리 있을까요?”

물음에 쉐프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혹시 예약하셨습니까?”

“아뇨? 혹시 예약해야 하나요?”

“저희 레스토랑은 예약을 하지 않으셨다면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손님.”

아더가 당황해 말을 흐렸다.

“어? 그럼….”

“하지만 손님께서는 다른 경우지요. 창가로 모실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아더가 작은 탄성을 터트리며 속삭였다.

“안젤리나 님 때문에 배려해 주신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쉐프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린다.

“그분은 저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과 식사를 한 손님에게 이 정도 편의를 봐드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의도치 않게 덕을 봐 버렸네…. 흠. 안 그래도 한 번 뵈어야 하는데.’

그때 헤어지면서 안젤리나와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아더가 쉐프가 안나해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뒤늦게 엘린의 표정의 확인하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린? 왜 그런 표정이세요?”

“어?”

“꼭 못 올 데 온 것처럼….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엘린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요?”

“…여기, 너무 좋은 곳 아니야?”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대답했다.

“...좋은 곳이죠?”

“으, 응…. 너무 좋아 보이는데?”

엘린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탄성을 터트렸다.

“아! 혹시 돈이 걱정되면 안심하세요. 오늘은 제가 다 쏠 테니까.”

“나 거지 아니거든!”

“…그럼요?”

엘린이 망설이다 질문했다.

“혹시…. 여기 누구랑 왔어?”

“누구랑요?”

“그, 그! 꼭 데이트 장소 같이 생겨 가지고….”

말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연상이신 여자분이랑 식사는 했는데, 데이트는 안 했는데요?”

“…데이트했냐고 물은 건 아닌데, 어찌 되었건 여자랑 왔다고?”

“네.”

대답에 엘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지? 내가 알기론, 나 말고 친한 여자는 없을 텐데….’

설마 그 헤이즐 기업가의 장녀인가?

하지만 연상이라 말한 걸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그녀도 자신과 동갑이었으니깐.

‘그럼… 대체 누구?’

그때 자리를 비웠던 쉐프가 다가와 질문했다.

“메뉴는 어떤 거로 하시겠습니까?”

“어떤 게 있는 데요?”

“추천해 드리는 건, 점심 특별 코스입니다.”

“음…. 그럼 그걸로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간단한 애피타이저 이후 남부 특급 소의 등심으로 구워진 스테이크가 메인으로 나올 겁니다. 그 이후에는….”

요리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을 마친 쉐프가 허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더가 시선을 돌리며 질문했다.

“홀란 대부님은 어때요, 엘린?”

넋을 놓고 있던 엘린이 흠칫 놀란다.

“...우리 할아버지?”

“네. 따로 연락 드릴 방법이 없어서 안부를 묻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엘린이 약간 망설이다 대답했다.

“잘 지내고 계시지…. 최근 북부 야만인들이 잠잠해지기도 했고, 슬슬 여름도 다가오니깐.”

“하긴 소드마스터이신 분이 정정하지 않은 게 이상하기도 하겠네요.”

아더의 대답에 엘린이 조금 전 고민을 잊고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랑 종종 연락하는데, 너 어떻게 지내는지 많이 궁금해하시더라.”

“대부님이요? 저를?”

“그래. 내 이야기보다 너에 대해 더 많이 궁금해하시던데?”

아더가 웃었다.

“한 번 인사드려야겠네요. 나중에 통화할 때 한 번 불러 주세요.”

“…그럼 우리 집 또 와야 하는데?”

“못 갈 게 뭐가 있어요. 이미 찾아갔는데.”

이 말에 엘린도 웃었다.

“흐음…. 그래 뭐. 또 찾아와. 그때는 우리 집에서 저녁 먹자.”

그 후 둘은 이런저런 사담을 시작했다.

“북부 여름은 어때요 엘린?”

“좋지…. 그냥 좋아. 매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부가 유일하게 정상 기온으로 유지되는 달이니깐. 그래서 다들 이날만을 기다렸다가 여러 가지를 해.”

아더가 적절한 추임새를 넣었다.

“어떤 걸 하는데요?”

“음…. 가을을 대비해서 농사도 짓고, 겨울 북풍에 무너져 내린 집도 보수하고…. 여러모로 바빠. 그리고 여름에는 북부에서 야만인들이 넘어오지 않거든. 그래서 병사들이 휴가를 나가는 데, 덕분에 이때 상권….”

엘린이 그 추임새 맞추어 차분히 설명한다.

그 이야기를 아더는 아주 흥미 깊게 들었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를 일으킨 것도 있었지만, 제 영지에 관해 자신 있게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다.

‘엘린 같은 사람은…. 자신의 영지에 관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구나.’

같은 후계자지만 자신과는 여러모로 다른 모습.

요넬이 선언 덕에 뜻하지 않게 공작가의 후계자로 지목된 상태였지만, 자신은 엘린과 달리 바이에른 공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는 건…. 솔직히 말해 핑계지.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있으니깐.’

그 탓에 아더는 고민했다.

왜 자신은 가문에 대해 유독 관심이 없고, 이용하려 하지 않은 걸까?

‘가문의 힘을 빌린다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을 텐데.’

그 고민 끝에 아더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이용하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직도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과거의 자신은 어찌 되었건 바이에른 가문에서 내쫓긴 실패자였다.

그때의 경험은 과거의 자신에게도, 지금의 자신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가문의 힘을 빌리기를 꺼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래야 할까? 굳이 힘을 빌릴 수 있는 상황에서, 힘을 빌리지 않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제 복수의 큰 틀은 결국 가문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가문의 힘을 빌리는 것에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생각과 함께 아더가 새로이 깨달은 사실을 고민할 때였다.

열띠게 설명하던 엘린이 문득 입을 다문다.

“…아 너무 내 이야기만 했나?”

그녀의 사과에 정신을 차린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아니에요, 엘린. 아주 재밌게 들었어요.”

“…거짓말이지?”

“진짠데요? 솔직히 말해 감탄했어요.”

이번에는 엘린이 눈을 끔뻑였다.

“감탄? 웬 감탄?”

“음…. 사실 전 가문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거든요.”

“….”

“하지만 엘린을 보니 잘못된 일인 것 같더라고요. 어떤 이유건…. 후계자라면 그런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엘린이 눈을 치켜떴다.

“어…. 그렇긴 한데….”

말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아더가 씩 웃는다.

“고마워요. 엘린 덕에 또 무언가를 배워 가네요.”

엘린이 입을 다문다.

“…넌 항상 어려운 말을 항상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에 놓인 물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저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더의 말과 다르게 자신은 제 영지의 사람들에게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홀란 레버쿠젠이라는 거대한 산과 비교하면,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탓이었다.

그래서 이런 칭찬을 해 준 건 아더가 처음이었다.

‘항상…. 나에게 새로움을, 처음을 경험하게 해 줘. 이 남자는.’

대련의 패배도, 자신의 변화도.

처음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매번 이 남자는 가져간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다.

‘아더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얼거림과 함께 엘린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사라졌던 쉐프가 음식과 함께 나타났다.

“첫 요리는 게살 수프입니다.”

설명과 함께 애피타이저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쉐프가 능숙히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아더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뭔가 이상한데?’

엘린 레버쿠젠.

그녀는 아더 자신의 기준에서도 엄청난 엘리트였다.

똑똑한 것은 물론이고 엄청나게 예쁜 외모에 홀란 레버쿠젠의 하나뿐인 후계자.

그런데 왜 이런 그녀를 미래의 자신은 모르고 있었던 걸까?

‘그녀가 홀란 레버쿠젠의 뒤를 이어 가문을 계승했다면…. 내가 분명 알고 있어야 하는데?’

허나 미래의 기억 속의 엘린에 관한 이야기는 그다지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아더는 눈을 치켜떴다.

‘…설마 엘린이 가문을 계승하지 못하는 건가?’

가정이 떠오르자마자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 모습에 앞에 앉아 있던 엘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갑자기 입을 벌려, 아더?”

“…저 엘린.”

“응?”

“혹시 지병 있어요?”

“지병? 갑자기 웬 지병?”

“지병 없어요?”

“없지!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 나 소드마스터 손녀야!”

그녀의 외침에 아더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다시 물음을 던지려는 찰나, 엘렌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아더.”

“네?”

“혹시 나도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질문하는 엘린의 표정이 어딘가 비장했기 때문이었다.

‘뭘…. 물어보려고 저런 표정이지?’

그 탓에 조금 전 고민을 잊은 아더가 대답했다.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엘린.”

“그래? 그럼…. 사양 안 하고 물어볼게.”

이 말과 함께 엘린이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나 어떻게 생각해?”

“네?”

“나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러니깐….”

말을 흐린 엘렌의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네가 생각하는…. 엘린 레버쿠젠은 어떤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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