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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37화 (37/265)

제37화

딱 보면 척이지 미친놈아.

속으로 이 말을 중얼거린 지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의뢰받고 사람 죽이기는 하는데, 정식으로 들어온 거 아니면 그런 일은 안 해요.”

“…….”

“이번 이야기 못들은 걸로 할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세요. 그리고 저 휴가 중이라고요.”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돈을 얼마나 줘도요?”

“네.”

“100골드 줘도?”

“…안 해요.”

아더가 곤란하다는 듯 눈을 굴렸다.

‘흠···. 지니 씨가 거절할 줄은 몰랐는데.’

혼자서 아레스를 포함한 네 명의 마법사를 상대하는 건 솔직히 말해 애매했다.

‘번개 혈통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는 확실히 제압한다고 단언하기 어려워.’

하지만 지니의 도움이 있다면, 아주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저격수는 마법사의 천적이고, 그 저격수인 지니가 네 명의 마법사를 마크해 준다면 아레스를 죽이는 일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번개 혈통을 훔친다고 가정해도 지니 씨가 있는 쪽이 더 낫고···. 흠.’

고민하던 아더는 결국 정공법으로 가 보기로 했다.

용병이 의뢰를 거절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단가를 올리면 그만이다.

“200골드?”

“안 해요.”

“300골드는요?”

“…….”

“지니 씨 300골드는 어때요?”

침묵하던 지니가 인상을 일그러트린다.

“장난해요? 300골드면 전쟁 중에 나간 B급 용병들이 목숨값으로 받는 건데 그걸 주겠다고요?”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드릴게요.”

“하 참나···. 그래도 안 해요.”

“400골드.”

“…….”

“이래도 싫으세요? 그럼 500골드는요?”

지니의 귀가 쫑긋거린다.

그 미묘한 반응을 잡아낸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다.

“500골드에 선수금 250골드.”

“…….”

“일을 끝마치면 나머지 골드도 바로 드릴게요. 어때요?”

지니가 고개를 다시 홱 돌린다.

예쁘장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노, 농담이죠? 500골드를 준다고요?”

“전 이런 거로 농담 안 해요.”

대답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아더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이래도 농담하는 것처럼 보여요?”

“…….”

지니가 대답하지 못했다.

무표정이 된 아더의 얼굴.

그 얼굴이 정말로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허나 마음속 한쪽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500골드···?’

멀기만 했던 꿈.

그 꿈을 단번에 이룰 기회가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말이다.

* * *

흐리멍텅한 이목구비에 입가에 걸린 기괴한 미소.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비현설적인 얼굴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앞선 것은 욕심이었다.

이번 일만 끝마치면 은퇴할 수 있다.

꿈에만 그리던 집을 사서, 더는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물론 그 돈을 제안한 미친놈이기는 한데, 이런 부분에서만큼은 또 묘하게 정직한 놈이기도 했다.

‘그때 타르탄 사장 때도···. 도망칠 수 있었는데 도망치지 않은 걸 보면.’

그 탓에 지니는 갈등한다.

마음은 받아들이라 하고, 머리는 거절하라고 경고했다.

결국 결정하지 못한 지니가 조금 더 아더를 떠보기로 했다.

“받아들이면 저희 동료 맞죠?”

“…네?”

“동료니까 저한테 칼질 총질 안 할 거죠?”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그럼요. 비싼 돈 주고 고용한 지니한테 제가 왜 그러겠어요?”

“…….”

“대신 배신하면 칼질 총질할 거예요. 그것만 안 하면 절대로 지니를 공격하지 않을 거예요.”

확고한 대답에 지니가 움켜쥔 주먹을 푼다.

그와 동시에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턱도 아려 왔다.

‘그래 시발. 어차피 이 바닥에 있으면 저런 놈들과 계속 엮일 거야. 그럴 바에는 눈 딱 감고 한 탕··. 한 탕 한다고 생각하면···.’

그때 아더가 금화를 내민다.

한눈에 보아도 묵직해 보이는 금화 자루였다.

지니는 고민을 끝내고, 그 자루를 낚아챘다.

“지금부터 저는 던 님이 고용한 C등급 용병 지니입니다.”

“…….”

“죽으라는 명령 빼고 뭐든 수행하겠습니다. 배신도 안 하고요.”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다.

“그럼 죽으라는 명령 빼고는 뭐든 되는 거네요?”

“……?”

“그거 좋네요. 사실 지니 씨한테 맡길 역할은 크지 않았는데···. 음. 다시 고려해 봐야겠어요.”

아더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그와 동시에 열차가 멈춘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시선을 돌린다.

뿌우-!

보리스 마을.

아케인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인 마을에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 * *

500골드.

솔직히 말해 아더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거금이었다.

‘1년치 용돈을 꼬박 모아야 하는 돈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겨우 1년치 용돈이다.

아레스 아레키스.

그 마법사를 죽이는 데 쓴다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그래서 아더는 지니를 고용했고, 그 판단이 지금까지는 옳은 듯했다.

“저놈들 수상하네요.”

“…….”

“보리스 마을은 중심가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썩 발달한 마을이 아니거든요. 별장을 간다고 해도 이쪽 길은 아니고.”

옆에 찰싹 붙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지니는 그때 보았던 특유의 관찰력과 판단력으로 쉴 새 없이 정보를 말해 주었다.

그렇게 좋은 정보까지는 아니었지만, 반대로 보자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고려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걸 보면 지니 씨를 고용한 게 옳았네. 그건 그렇고···. 엿들은 이야기에서 왜 번개 혈통이 언급됐을까?’

이야기가 중간중간 끊겨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번개 혈통이 언급됐다.

마법사가 아님에도 번개를 다룰 수 있는 특이한 이능이 담긴 피.

미래 보리스 마을을 파괴할 미치광이 살인자의 혈통.

그런 혈통이 흔할 리는 없으니, 지금 아레스가 말한 번개 혈통은 높은 확률로 아더 자신이 원하는 그 혈통과 같을 것이다.

‘돌아가는 걸 보니 그 혈통 가지고 무슨 실험을 한 모양인데···. 흠. 궁금하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뭘 그렇게 연구하는 거지?’

의문과 함께 아더는 이번 사건을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레스의 목과 번개 혈통.

이 두 가지를 모두 얻을 기회는 흔치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상념이 끝났을 때였다.

보리스 마을을 떠나 깊숙한 산맥으로 향하던 아레스가 걸음을 멈춘다.

쿵-!

그 순간 묵직한 울림이 산기슭에 퍼져나갔다.

옆에서 그 광경을 훔쳐보던 지니가 놀라 중얼거렸다.

“결계? 허···. 이런 결계를 쓸 줄 아는 마법사는 흔치 않은데?”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니의 말대로 지형 자체를 바꾸는 결계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저런 결계까지 치고 뭘 숨기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사이 아레스와 함께 마법사 네 명이 결계 안으로 들어선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니가 그 뒤를 따르려 할 때, 아더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는다.

“…오, 왜요! 갑자기 왜 잡아요!”

“…? 결계 안으로 들어가려고요? 지니?”

“저 사람들 뒤밟는 거 아니에요?”

“맞는데 결계 안으로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들킬걸요?”

아더의 말에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그러면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나올 때까지?”

“아뇨?”

“그럼?”

“불러내야죠. 저 안에는 저도 볼일이 있거든요.”

“…어떻게요?”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다.

“이렇게요.”

이 말과 함께 꺼내든 권총이 불을 뿜는다.

쾅-!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결계가 뒤흔들린다.

지니가 입을 벌리며 경악한다.

“아, 아니 전면에서 맞붙을 거라고요? 마법사 다섯 명을 상대로?”

“….”

“그럴 바에는 조금 더 안전하게 매복하고 있다, 기습하는 게···. 응? 던 존칭이 님이다가 갑자기 씨가 됐습니다?”

지니가 고개를 돌린다.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아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눈을 치켜뜬 순간, 조금 전 결계로 들어갔던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총을 쏜 거냐 귀쟁이?”

질문에 지니의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었다.

“아니라 하면 믿어 주나요?”

“퍽이나.”

이 말과 함께 마법사들의 손에서 거대한 불구덩이가 치솟아 오른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던 지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미쳤지. 미친놈을 믿은 내가 미친년이야···.”

이 말과 함께 거대한 폭음이 숲을 감싼다.

쾅!

마법사와 저격수.

상극의 관계에 있는 두 존재가 격돌한다.

* * *

기존의 계획은 지니와 같이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거였다.

하지만 결계 너머에 있는 연구소를 발견한 아더는 그 생각을 바꿨다.

‘궁금하네. 도대체 이런 산기슭 한가운데서 뭘 하길래 이런 걸 지어 놓은 거지?’

결국, 참지 못한 아더는 권총을 발포했고 프라킬의 반지에 의지해 연구실에 진입했다.

‘지니 씨한테 미안하네. 나중에 꼭 보답해야겠어.’

그렇게 어두운 통로를 지나, 연구실 내부로 들어섰을 때였다.

아더는 눈을 치켜뜨고서 탄성을 내질렀다.

“…….”

코끝으로 맡아지는 비릿한 피 냄새.

그리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진 시신 몇 구.

체격을 보았을 때, 성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로 했네. 그걸 어린아이들 상대로.”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는다.

그 후 고개를 돌려, 다른 곳도 둘러보았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여러 첨단 장비들이 사방에 즐비해 있었다.

그중에는 캡슐이라 불리는 것들도 있었는데, 노란색 액체에 아이들 몇 명이 인공호흡기를 단 체 잠들어 있었다.

아더는 그 캡슐을 부수고 아이들을 구할까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구하려 하다 더 위험해질 수 있어.’

신중을 기하기로 한 아더는 조금 더 깊숙이 진입한다.

그 과정에서 새하얀 시트 위에 잠이 든 또 다른 아이들을 발견했다.

그 수가 대략 30명 정도 됐는데 대부분 죽어 있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조차 상태가 심각해, 운디네의 치유 능력을 쓰더라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아더는 고민하다 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는 듯한 아이에게 다가갔다.

링거를 통해 수상한 액체를 공급받고 있던 아이가 시선을 돌린다.

‘죽여 주세요.’

말은 하지 않았는데, 눈빛이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더는 고민하다 그 눈을 감겨 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는데, 당신은 살 수 있어요.”

“…….”

“그러니까 조금만 버티고 계세요. 얼른 끝내고 돌아올 테니니.”

아이는 그 말을 듣고서 잠이 들었다.

아더는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긴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집무실로 보이는 방이 등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 전보다 넓어진 연구실이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수많은 서류도 시야에 같이 들어왔다.

그중 한 장의 서류을 집어 든 아더가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프로젝트L: 혈통 복제]

꽤나 복잡한 단어들로 적혀 있었지만, 맥락정도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캡슐 안에 갇힌 한 아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누구세요? 당신은?”

인사를 건네 온 아이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아더는 곧 어디서 이 아이를 봤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어···. 이건 좀 의외네요.”

미래 보리스 마을을 공격한 미치광이 살인자.

그리고 번개 혈통의 주인이었던 광녀 쥴리 프로스키.

그녀가 어린아이가 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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