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지니 데이븐.
그녀는 대륙에서 가장 큰 밀림 지역이라 알려진 '하로난' 출신이었다.
좋게 표현하면 큰 밀림이지 달리 보자면 오지나 다름없었다.
그곳에서도 지니 데이븐은 특히 가난했다.
항상 구걸을 했고, 두 부모는 그런 지니를 먹여 살리기 위해 광산 일을 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빈민층의 삶이었다.
허나 지니는 그럭저럭 만족했다.
매일같이 배를 곯았지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일상은 나름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광산에서 발을 헛디뎌 다친 이후, 그녀의 가치관은 크게 변했다.
‘왜 치료를 안 해 주는 건데요!’
‘돈이 없으니까.’
‘사람이 죽어 가는데요?’
‘사람이 죽어 간다고 해서, 없는 돈이 솟아나냐?’
마을의 하나뿐인 의원은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친 부모님을 내쳤다.
결국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 두 부모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시체가 되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지니의 성격이 크게 변했다.
‘시발, 시발, 시발.’
거친 욕이 입에 붙어 버린 그녀는 남을 믿지 않게 되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으며, 돈이 최고라 여겼다.
‘그래… 돈. 그까짓 것 벌어 주겠다 이거야.’
그렇게 마을을 떠나 자연스레 아케인에 스며들었다.
허나 아무런 지식도, 기술도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큰 꿈을 안고 아케인에 왔지만 현실엔 좌절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굶어 죽을 수 없기에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찾은 것이 윌렛의 사무소였다.
위험하지만 큰 보수.
잘만 하면 인생역전도 노려볼 수 있는 직업인 용병.
그렇게 3년 정도를 음지에서 보냈다.
온갖 더러운 일과 추잡한 사건, 때로는 살인마저 저지르며 말이다.
덕분에 큰돈을 만지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살인적인 물가의 아케인에서는, 목숨을 걸고 돈을 벌어도 집 한 채 살 수 없었다.
3년을 그렇게 노력했는데, 편히 누울 수 있는 집 한 채 사지 못한다는 사실에 지니는 크게 분노했다.
‘시발… 이놈의 돈 돈 돈. 내가 어떻게든 집 사고 만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크고 호화로운 집.
그런 집을 갖게 된다면 누구도 그녀에게 돈이 부족하다고 하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지니 데이븐은 오늘도 돈을 모으러 간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평생을 닿을 수 없는 목표인 것을 앎에도.
* * *
착각했나 싶어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다.
멀찍이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 남자의 얼굴은 앳되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남자와 똑같았다.
‘아레스 아레키스. 칸 마드리드의 수석 마법사.’
그리고 며칠 전, 하제스라는 뒷골목 마법사를 통해 단서를 알아낸 원수.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운철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죽여야 하나?’
저번 생에서도 죽이지 못한 원수가 코앞에 있다.
하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역에서 칼을 휘둘렀다가는 모든 일이 틀어질 거야.’
아무리 아레스 아레키스가 원수라 하지만, 그건 아더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성을 마음속의 광기가 잡아먹는다.
원수가 코앞에 있는 데 안 죽여?
네 복수심은 고작 그거였나 아더 바이에른?
악마의 속삭임 같은 그 광기에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갔을 때였다.
지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던 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
“그… 카, 칼은 왜?”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동시에 붉게 물든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탄성은 내지른 아더가 미소 지었다.
“아. 고마워요, 지니 씨.”
“네?”
“지니 씨 덕분에 참았네요. 누가 말을 걸어 주면, 제 정신병이 가끔 진정될 때가 있거든요.”
지니는 의아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레스에게 온 신경이 집중된 아더는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아레스와 그의 옆에 선 네 명의 마법사를 바라보던 아더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이리 약하지? 내가 기억하는 아레스라는 남자는… 황궁 마법사들 중에서도 손꼽혔는데?’
지금의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솔직히 말해 별 볼 일 없었다.
고민하던 아더는 곧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때의 아레스는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20년 뒤의 아레스.’
마법사가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즉, 지금의 아레스는 그때 같은 기적을 발현할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뒤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냉정하게 보면 테이큰 씨 아래. 마법사와 비교하자면 일전에 만났던 네크로맨서랑 비슷해.’
생각을 끝마친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 칼 휘둘렀으면 큰일 날 뻔했네. 죽인다 하더라도 손해 볼 뻔했어.”
이 말과 함께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응 지니 씨?”
“…….”
“표정이 왜 그래요? 못 볼 것 본 사람처럼?”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지니가 헛기침을 한다.
“제가 안면 근육 장애가 있어서요.”
“…….”
“그 놀라운 일을 경험하면… 저도 모르게 표정을 일그러트린답니다.”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 저도 놀라운 일을 경험했는데.”
“…그래요?”
“네. 일단 기차에 탈까요? 놓치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지니와 함께 기차에 올라탄 아더가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밀실로 된 좌석이었는데, 아레스도 이 밀실로 된 좌석에 앉은 상태였다.
‘으음… 일단 상황 파악이 먼저인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아레스가 있는 밀실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거리는 멀지 않았는데, 특수한 마법을 발동시켰는지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저 밀실 안의 대화를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아더는 시선을 돌렸다.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니가 보였다.
“저, 지니 씨?”
“네?”
“혹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도청을 좀 할까 하는데 지니 씨의 능력 좀 빌릴 수 있을까요?”
* *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던 님?”
“실프의 능력을 사용하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대화를 엿들을 수 있지 않나요?”
지니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도청을 해 달라… 이 말이에요?”
“네. 하지만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에요.”
아더가 무언가를 내민다.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더가 내민 것을 바라보던 지니는 흠칫 놀랬다.
“…금화?”
“네. 20골드 정도 들었을 거예요. 이 정도면, 제 부탁 들어줄 수 있지 않나요?”
지니가 다시 한번 놀랐다.
‘20골드? 도청 한 번에 20골드를 준다고?’
액수만 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 미친놈…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그녀가 보리스 마을로 향하는 이유는 며칠 전 겪었던 사건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도살자 테이큰.
죽지 않고 되살아나는 네크로맨서.
검은 십자가.
뒷거리의 생활에 잔뼈가 굵은 그녀라 할지라도, 진짜 뒷세계의 인간들을 마주하고 살아남은 건 천운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러나 휴양지로 소문난 보리스 마을을 고집하는 이유가 비단 그것뿐은 아니었다.
타르탄 사장과 함께 호위를 임무를 선 던이라는 용병.
제 피를 핥아먹은 미친놈 때문이었다.
2주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미친놈에게 구멍이 뚫린 배때지가 쑤시는 지니였다.
잠이 들 때마다 불쑥불쑥 아더가 생각나 비명과 함께 깨어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탓에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아더의 부탁을 들어주기가 싫었다.
덜컥 돈을 받았다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제 목을 자를 수도 있는 게 눈앞의 미친놈이었으니깐
그렇게 지니가 대답하지 않자, 아더가 손가락 한 개를 들어 올렸다.
“선수금으로 20골드.”
“……?”
“끝마치면 20골드 더 드릴게요. 어때요?”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진짜요?”
“네. 지니가 의뢰만 받아들인다면요.”
“겨우 도청 하나로 40골드를 주시겠다고요?”
아더가 방긋 웃는다.
“저 이야기는 저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거든요. 그래서 받아들일 거에요, 지니?”
지니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40골드.
이번 타르탄 사장 호위에 대한 의뢰비가 50골드다.
지금 자신의 등급에서 받을 수 있는 액수 중에서는 최고라 부를 수 있는 수준.
그 탓에 조금 전 느꼈던 갈등은 사라지고, 새로운 고민이 머릿속을 점령한다.
저 미친놈 말을 믿을 거냐?
그래도 40골드에 선수금까지 주지 않는가?
지니는 고민하다, 조심스레 질문했다.
“선수금… 일단 받을 수 있을까요?”
“자요.”
아더가 금화를 건네준다.
지니가 재빨리 그 금화를 받아 들어, 세기 시작한다.
한 개 두개 세 개… 20개.
아더의 말대로 금화 20개가 정확히 들어 있었다.
번쩍이는 금빛에 지니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딱 도청만 할 거예요. 그 이상은 절대 안 돼요!”
“그럼요. 도청만 해 주시면 돼요.”
한숨을 내쉰 지니가, 실프를 불러낸다.
[후욱-!]
중급의 바람정령이 휘파람을 분다.
그 순간 퍼져 나간 미묘한 기운이 아더의 밀실을 넘어, 어디론가 향한다.
눈을 감고 있던 지니가, 중얼거린다.
“이제 들릴 거예요.”
이 말과 함께 낯선 목소리가 밀실에 울려 퍼진다.
아레스 아레키스.
칸 마드리드의 옆을 지키던 수석 마법사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실험은 잘돼 가고 있는 거겠지?]
[그럼요, 조교님!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더가 눈빛을 빛낸다.
실험?
저번에도 실험을 한다 들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실험을 하는 걸까?
‘그것보다… 조교라면, 아직 황군에 들어가지 않은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뛰어난 마법사인 아레스 아레키스지만, 진짜 마법사라 불리는 황군 마법사에 비하면 그 실력이 떨어졌다.
그사이 아레스가 거친 목소리로 소리친다.
[차질이 없는 걸로는 부족해! 내가 뭣 때문에 여기에 시간을 쏟고 있는 줄 알아!?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그럴 만한 성과가 필요해! 내 연구를 입증해 줄 성과가 말이야!]
[그, 그게….]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애 50명을 가져다준 건데 이런 식이면 곤란해. 성과가 없으면 다른 놈들로 교체하지.]
옆에서 그 이야기를 같이 듣던 지니가 숨을 참는다.
실험? 어린애 50명?
‘뭐야 이거? 많이… 위험한 대화인 것 같은데?’
덜컥 겁이 난 지니가 아더의 눈치를 본다.
상념에 빠져서인지 몰라도, 무표정이 된 얼굴이 보였다.
차마 저 상태의 아더에게 말을 걸지 못한 지니가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돌릴 때였다.
아더의 어깨가 들썩인다.
동시에 아레스가 소리친다.
[이번에 반드시 성공해야 해! 그 번개 혈통, 능력을 복제하는 이 실험이! 그래야 내가 교수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외침과 함께 다시 다른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설면서도 위험해 보이는 단어들이 그 대화 속에서 들려왔다.
실험 돈 명예….
그 탓에 지니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을 때였다.
아더가 손을 든다.
“됐어요. 지니.”
“어… 그래요?”
“네. 더 이상 들어 봐야 영양가 없는 대화일 것 같네요.”
지니가 우물쭈물 망설이며 실프를 불러들인다.
그후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아더의 눈치를 볼 때였다.
고민을 끝낸 아더가 입을 연다.
“저, 지니 씨.”
“네?”
“당신 고용하려면, 얼마를 줘야 해요?”
지니의 눈이 커진다.
그사이 아더가 다시 한번 물어왔다.
“얼마를 줘야 당신 고용할 수 있어요? 본래 받는 보수보다 배는 쳐드릴 게요.”
지니가 눈을 끔뻑이다 대답했다.
“싫은데요?”
“……?”
“얼마를 줘도 싫은데요?”
확고한 대답에 아더가 당황한다.
“어… 왜요?”
“저 사람들 죽일 거죠, 던 님?”
이번에는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대답했다.
“독심술이라도 익혔어요, 지니? 어떻게 아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