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타이탄 갱단원이 눈을 끔뻑였다.
갑작스레 울려 퍼진 총성.
그리고 미간에 구멍이 뚫린 보리스 대장.
너무 한순간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상황에 사고가 정지한 것이다.
허나 보리스를 죽인 아더가 움직인 순간, 상황은 현실이 되었다.
그들은 제각기 무기를 뽑아 들어 아더를 향해 겨누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날 선 경고에 아더가 대답 대신 시체가 된 보리스의 귀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타이탄 갱단원들의 눈이 치켜떠진다.
아더의 손에 들린 것이 마력 통신기.
그것도 가동되고 있는 마력 통신기였기 때문이다.
“가만히 놔뒀으면, 이 통신기로 표적이 돼서 마법이 쏟아졌을 거예요. 그럼 저희 모두 꼼짝없이 죽었을 거고.”
“….”
“그래서 먼저 죽였는데···. 음. 혹시 문제가 되나요?”
설명에 타이탄 갱단이 침묵한다.
저 말이 맞다면 아더는 자신들을 살려준 은인이고, 거짓이라면 대장을 죽인 개새끼였다.
허나 흘러가는 상황은 놀랍게도 전자 쪽이 유력해 보였다.
보리스 대장이 뭐 때문에 마력 통신기를 끼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도 켜져 있는 마력 통신기에서 흘러나오는 대화 내용은 누가 보더라도 자이언트 쪽 사람들이었다.
그 탓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으려 할 때 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온다.
“라보르드라고 하오. 그러니깐 지금 당신 말은 우리 대장이 배신했다는 거요?”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는 정황만 보면 그렇지 않나요?”
“….”
“마력 통신기를 끼고 있고, 한밤중에 마법이 날아오는 데 정확히 표적 되어 있었죠. 더군다나 이 마력 통신기에서 흘러나오는 대화.”
아더가 마력 통신기를 보란 듯이 흔들었다.
“이 대화만 보면···. 배신자가 아닌가요? 일단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말을 끝마친 아더가 한 발 물러난다.
동시에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타이탄 갱단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할 때, 라보르드가 다시 입을 연다.
“어때? 이 말을 믿을 건가?”
“믿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여야지. 그리고 현장을 이탈해야 하고.”
“앞에 자이언트 놈들이 있는데?”
“이건 상정 밖이다. 더는 돈이 문제가 아니야. 대장이 죽은 이상 일단 물러나야 해.”
“물러날 수는 있고?”
“산개해서 흩어지면 몇 명은 죽겠지. 그래도 몰살보다는 낫잖아?”
오가는 의견을 가만히 듣던 아더가 손을 들어 올렸다.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뭐?”
“저희 포위됐거든요. 어···. 수를 보니 보고로 들었던 것보다 두 배는 많이 온 것 같아요.”
설명에 타이탄 갱단의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아더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X발”
인정하긴 싫지만, 이번에도 아더의 말이 맞는 듯했다.
정면에서 다가오는 무리를 제외하고 또 다른 무리가 뒤쪽에서 덮쳐 오고 있었다.
혀를 찬 라보르드가 아더를 바라본다.
“혹시 뭐 대안 같은 거 있소?”
“대안이요?”
“우리도 당신 소문은 들었소. 첫 임무지만, 마법사를 죽인 루키. 그 정도 실력자면, 뭔가 대안이 있을 거 아니오?”
아더가 고민하다 손가락을 튕긴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좋은 해결책이 있긴 하죠.”
“어떤 거요?”
“여러분들이 시간을 끄는 거예요.”
“…?”
“그사이 저는 저쪽 마법사를 죽이고 올게요. 포격하는 마법사가 사라지면, 전투는 이기지 못할망정 시간은 끌 수 있을 거예요.”
라보르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보고 총알받이가 돼라? 그쪽은 그 틈을 타 도망치고?”
“음···. 그런 뜻은 아닌데 그럼 뭐 해결책이 있나요?”
“…….”
“그럼 그쪽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잘 선택해주세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마법사의 주문이 다시 완성되면, 일단 저희 쪽 인원의 절반은 죽고 시작할 겁니다.”
차분한 설명에 라보르드가 입을 다문다.
그 후 머리를 박박 긁으며 아더를 향해 사과했다.
“미안하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말이 거칠게 나갔군. 더군다나 그쪽은… 배신자긴 하지만···. 우리 대장을 죽이기도 했고.”
아더가 눈을 치켜뜨며 감탄했다.
‘오···. 라보르드 씨 갱단인데 사과를 하네?’
허나 그 감정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갱단 같지 않던 보리스가 배신했다.
눈앞의 라보르드도 충분히 배신할 수 있었다.
그사이 다른 갱단 단원에게 의견을 물은 라보르드가 아더를 향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뭐 하지만···. 믿음과 신뢰를 따져 물을 수 있겠소?”
“믿음과 신뢰요?”
“기사처럼 맹세해 달라는 건 아니오. 적어도···. 던이라는 이름이 가진 명예. 그 명예를 걸고 약속을 지킬 수 있냐 묻는 것이오.”
라보르드의 질문에 아더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요. 저도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 싶고, 아직 얻지 못한 것도 있거든요.”
대답을 들은 라보르드가 무언가를 꺼내 든다.
샷건.
총포상에서 봤던, 신상으로 나온 아주 큰 총이었다.
그 총을 허공에다 겨냥한 라보르드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쾅-!!
엄청난 폭음에 접근 중이던 자이언트 갱단이 놀라 멈춘다.
그 속에서 라보르드가 아더를 향해 말했다.
“시간을 끌어주겠소. 이제 당신 손에 우리 목숨이 달렸소.”
* * *
라보르드와 타이탄 갱단 덕에 포위망에서 벗어난 아더가 폐건물 사이를 날다람쥐처럼 뛰어넘었다.
길을 헤맬 걱정은 없었다.
노움과 운디네가 앞에서 길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아더 저쪽이에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더는 생각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운디네와 노움 씨는 참 쓸모가 많아.’
보리스가 배신자고, 마법이 포격된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정찰을 보내 두었던 노움과 운디네 덕이었다.
만약 마법사의 위치를 찾아낸 노움과 운디네가 마력 통신기로 흘러나온 보리스의 목소리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당하는 것은 이쪽이었을 것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게 좋았네. 그 과정에서 운도 따랐고.’
이 권총은 단 한 발로 마법사의 마법을 격파했다.
우연일지라도, 그것만으로 이 권총의 값어치가 엄청나다는 게 증명된 셈.
그 탓에 입꼬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여러 보조 마법 덕에 위력이 증강해서 그런 것 같은데···. 확실히 돈을 들인 보람이 있어.’
그렇게 상념을 끝마친 아더는 시야를 좁혔다.
육체 강화를 한 덕에 비정상적으로 넓어진 시야.
그 시야 끝에 일당의 무리가 폐건물 옥상에서 잠복하고 있었다.
숫자는 9명.
마력을 내뿜는 사내 한 명.
그리고 그 사내를 지키는 8명의 호위.
목표물임을 확인한 아더는 곧바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 후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쾅쾅쾅-!
거친 총성과 함께 마법사를 지키던 호위들의 머리가 연달아 터져나갔다.
“미친!’
“뭐야!?”
“기습이다-! 무기 들어!”
외침과 함께 살아남은 호위들이 무기를 치켜든다.
허나 그 무기를 휘둘러 보기도 전에 어둠을 가르는 무언가가 그들의 목을 가져갔다.
쉭-!
기이한 바람 소리와 함께 살아남은 호위들의 머리가 또다시 연달아 떨어졌다.
한순간에 일어난 참상에 주문을 외우던 마법사가 경악한다.
그리고 그 빈틈을 아더는 놓치지 않았다.
피를 잔뜩 머금은 칼날이 마법사의 목에 쇄도한다.
쾅-!
폭음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난 아더가 저릿한 손을 바라본다.
‘실력자. 제인 도르문트보다 위.’
보고 받기로, 자이언트 갱단에서 이런 실력자는 한 명뿐이었다.
‘공간 도약 혈통을 지닌 자이언트 갱단의 대장 퓨리스. 그 사람인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다시 검을 움켜쥐었다.
그사이 퓨리스로 짐작되는 사내가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치며 중얼거렸다.
“혹시나 해서 와 있었는데, 역시나군. 그 포위망을 뚫고 오다니… 윌렛 어르신네 용병들은 루키라 해도 무슨 이런 괴물뿐이야?”
퓨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질문을 던졌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협상할 마음 있나?”
“협상이요?”
“그래. 여기서 얌전히 물러나 주면, 우리가 받기로 한 보수의 절반을 떼주지. 50골드. 적지 않은 액수인데 어떻나?”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협상하는 갱단···. 이 사람도 꽤 색다르네.’
허나 안타깝게도 교섭의 여지가 없었다.
이 의뢰를 받아들인 목적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철컥!
대답 대신 겨누어진 총구에 퓨리스가 쓰게 웃었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도 지랄맞군. 이래서 윌렛 씨네 용병들이랑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 말과 함께 침묵이 내려앉는다.
소리 한 점 흘리지 않는 아더와 퓨리스의 모습에 마법사가 마른침을 삼킨다.
그렇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간격만 재던 두 사내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자리에서 뛰쳐 올랐다.
쾅!
기이한 소음과 교차되는 검과 도끼.
그 힘겨루기 속에서 아더와 퓨리스는 알 수 있었다.
오늘 밤 전투는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쪽이 이기리란 것을.
* * *
아더가 뛰쳐 오른다.
프라킬의 혈통 능력과 1서클 고리로 강화된 신체를 이용한 탄성으로 퓨리스에게 순식간에 접근했다.
하지만 도끼를 든 갱단 대장은 그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파앗-!
빛과 함께 퓨리스의 몸이 사라진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그 모습에 아더는 알 수 있었다.
‘이게 그 공간 도약인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능력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 단거리 텔레포트와 같은 능력을 보였으니.
생각과 함께 아더가 제 뒤편으로 검을 휘두른다.
챙-!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한 수를 교환한 둘은 거친 공방을 시작했다.
도끼와 칼날에서 터지는 불씨에 어둠이 갈라진다.
그 속에서 아더는 전투법을 바꿨다.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아더의 칼날이 휜다.
휜다는 착각을 주는 게 아니라 진짜로 휘었다.
몸의 관절을 비정상적으로 꺾어, 있을 수 없는 검의 경로를 만들어 낸 것이다.
혀를 찬 퓨리스가 힘을 이용한 속도로 그 일격을 막아낸다.
쾅-!
울려 퍼진 폭음과 함께 퓨리스의 도끼에 아더가 짓눌린다.
이대로 가다간, 신체가 양단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래서 아더는 다시 한번 몸의 관절을 비정상적으로 꺾었다.
그 후, 폴짝 뛰어올라 퓨리스의 목을 노린다.
“이런 X발.”
욕설과 함께 퓨리스가 또다시 도끼를 휘두른다.
허나 귀신같이 거리를 잰 아더가 다시 깡충 뛰며 물러난다.
어딘가 얄미운 그 동작에 퓨리스가 이를 간다.
냉정하게 보면, 귀신 같은 감각이 분명한데 감탄 대신 짜증이 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퓨리스는 금방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나와 싸우는 게 아니야. 사냥을 하고 있어.’
아케인에서 제법 이름을 떨치는 갱단 대장이 되기 전, 산맥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짐승.
놈은 몇 날 며칠을 자신을 두고 간을 보며 잠을 못 자게 했으며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그 심리적인 압박 때문에 퓨리스는 여정을 포기하고, 짐승을 찾아 찢어 죽여 버렸다.
그리고 지금.
아더와의 전투에서 그 기분 나쁜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저 눈앞의 루키는 자신을 사냥하고 있다.
간을 보면서 짜증을 불러일으켰으며 무엇보다 예측되지 않는 칼질로 제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가면 지치는 건 나다. 그리고 놈은 숨겨두었던 발톱을 드러내겠지.’
생각과 함께 퓨리스가 심호흡을 내쉰다.
그 순간 치밀어 오르던 짜증도, 간만 보는 전투에 흥분한 육체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달라진 변화에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변했네? 흥분을 가라앉혔어.’
아마 제 의도를 파악하고, 심신을 다스린 모양이었다.
그 탓에 아더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상대 중 최고로 까다롭네. 쉽지 않겠어.’
물론 그렇다 해서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이 전투에서 이길 것이고, 퓨리스의 혈통 능력을 강탈할 것이다.
그것은 바이에른의 피를 일깨우면서 얻은 예감이었고, 직감이었으며 날이 선 감각이 말해주는 일종의 미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감각은 틀린 적이 없었다.
아더는 운철검을 다시 쥔 체 퓨리스를 향해 돌격했다.
그 순간 마법사가 소리친다.
“뛰어-!”
외침과 함께 퓨리스가 공간 도약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뻥 뚫린 정면에서 마법사가 만들어 낸 주문이 활활 타오른다.
설마 이 타이밍에 마법을 쓸 줄 몰랐던 아더가 당황했지만, 곧바로 권총을 꺼내 들어 응징했다.
탕탕!
총성과 함께 마법사의 베리어에 실금이 갔다.
그 실금이 연달아 날아온 총탄에 완전히 부서질 때쯤, 거대한 빛의 폭발이 아더를 휩쓸었다.
쾅-!!!
폐건물이 흔들리고, 반대편 외벽이 날아간다.
허공으로 떨어지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바라보던 아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노움 씨 덕분에 살았네요.”
[……!]
“사실 조금 더 아껴두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노움 씨와 운디네의 능력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어요.”
이 말과 함께 깡총 뛰어오른 아더가 반쯤 부서진 기둥에 몸을 숨겼다.
붕괴가 시작된 폐건물의 소음 덕에 퓨리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지. 퓨리스, 그 남자의 능력이라면.’
그 탓에 아더의 감각이 최고점을 넘어, 극한에 다다랐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든 반응할 수 있게, 솜털 하나조차 일으켜 세운 채로 주변을 감시하던 아더가 몸을 홱 돌린다.
쾅-!
내려찍어진 도끼와 함께 아더의 신체가 휘청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퓨리스가 아더의 배를 걷어찼다.
프라킬의 혈통 능력 덕에 타격은 없었지만, 몸이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45도로 기울어진 폐건물이 이상한 소음을 토해냈다.
“반대편으로 도망쳐!”
외침과 함께 마법사의 손에서 주문이 번쩍인다.
이번에는 아더가 아니라, 무너지는 중인 폐건물 쪽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에 아더가 혀를 찬다.
이대로면,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덩어리들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노움 씨!”
외침과 함께 발판을 만들어 낸 아더가, 기어코 다시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손에 쥔 권총의 방아쇠를 연달아 당겨, 퓨리스의 행동을 제한한다.
공간 도약을 무리하게 쓴 덕택에 원하는 만큼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 덕에 퓨리스는 그 총탄을 강화한 육체로 방어해낼 수 있었다.
“…이런 X발-!”
하지만 아더의 권총은 온갖 보조 마법으로 떡칠한 준 아티팩트급 무기다.
퓨리스의 신체가 그 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생채기가 났다.
그와 동시에 아더가 검을 크게 휘둘러 퓨리스의 가슴팍을 노렸다.
파앗-!
핏줄기가 허공을 난다.
그리고 아더의 칼날에도 그의 피가 흠뻑 묻었다.
살을 내어준 퓨리스가 아더를 껴안고서 허공으로 뛰어내린다.
“내 승리다, 이 새끼야!”
외침과 함께 퓨리스가 추락하기 직전에 능력을 발동시켰다.
덕분에 아더는 지상으로, 퓨리스는 반대편 옥상 건물로 향했다.
동시에 폐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콰아앙-!!
세상이 뒤집히는 소리와 함께 먼지바람이 휘몰아친다.
간신히 탈출한 퓨리스가 숨을 헐떡였다.
눈치를 보던 마법사가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끄, 끝났소?”
“…일단은 끝나 보이는군.”
퓨리스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아더가 떨어진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런 상태에서 살아남을 바에 죽어야지. 안 그렇소?”
질문에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의 마법을 피해내고, 전투 갱단 대장을 한계까지 몰아붙였으며, 이런 높이에서 떨어져 살아남느니 그냥 깔끔히 죽는 게 속이 더 편했다.
“후우···. 웬 괴물 같은 놈을 만나서. 쪽수로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죽는 건 우리였겠군.”
이 말을 중얼거린 퓨리스가 긴장감을 내려놓을 때였다.
퍽!
기이한 소리와 함께 가슴에서 피가 터졌다.
동시에 심장의 고동 소리가 끊긴다.
놀란 퓨리스가 고개를 돌린 순간,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온다.
“위험했네요.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퓨리스 씨는 진짜로 강하신 분이네요.”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퓨리스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추락해서 다진 육고기가 되었어야 할 괴물이 살아 있었다.
“X발.”
뽑혀 나온 칼날과 함께 퓨리스가 스르륵 쓰러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더가 방긋 미소 짓는다.
“하지만 이긴 건 저네요. 고생했어요, 퓨리스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