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5화 (15/265)

제15화

케인이 눈을 끔뻑였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몹시 당황했다.

이제 겨우 17살.

그 17살의 소년이 자신을 죽인다고 했다.

거기다 그 죽을 방식을 선택해 달라 부탁까지 한다.

당연하지만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탓에 할 말을 잃어버렸을 때, 아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택 안 하시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 드릴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이 말에 케인이 다시 정신을 차린다.

이번에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조금 전만큼의 충격은 아니었다.

그 탓에 정신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네가 날 죽인다는 말이냐?”

“네.”

“어째서 날 죽이려는 것이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이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요?”

“뭐?”

“당신은 절 병신으로 만들려 했던 사람이잖아요.”

케인의 눈이 다시 한번 치켜떠진다.

그는 진심으로 놀라 아더를 바라보았다.

“내가 널 병신으로 만들려 했다고?”

“네.”

“누구한테 들은 사실이냐?”

“그건 말해 줄 필요가···. 없죠?”

말을 흐린 아더가 씩 웃는다.

허나 낮게 가라앉은 눈에는, 웃음기는 고사하고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요넬하고는 확연히 다른 그 반응에 케인은 또 한 번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군. 홀란 레버쿠젠…. 그 늙은이가 움직인 건 요넬이 아니라 아더 바이에른. 이 벙어리 때문이었어.’

바이에른 가문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케인은 줄곧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홀란 레버쿠젠이 왜 갑자기 움직였을까?

첩자들의 정체를 눈치채고 움직였다고 해도, 너무 급한 움직임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탓에 홀란 레버쿠젠.

그 전설적인 노기사가 반드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아더를 만나기 전까지, 요넬 바이에른의 변화라 짐작했다.

‘요넬이 뜻을 세워, 그에 맞추어 움직였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어.’

달라진 건 맞지만, 요넬 바이에른은 여전히 요넬 바이에른이었다.

가족밖에 모르는 나약한 계집.

성격이 조금 달라졌다 하여, 홀란 레버쿠젠이 움직일 명분은 되지 않는다.

허나 눈앞에 있는 아더 바이에른이라면, 그 명분이 충분히 되었다.

‘말만 더듬지 않게 된 게 아니라···. 말을 더듬지 않음으로써 알을 깨버렸군.’

여기까지 생각한 케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

난데없는 웃음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잘못 먹었나? 왜 갑자기 웃는 거지?’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케인의 웃음이 멎기를 기다릴 때였다.

마침내 잦아든 웃음소리와 함께 케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간과했군, 홀란 레버쿠젠. 이 녀석의 나이가 고작 17살이란 걸 말이야.’

아더 바이에른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경고한 건….

홀란 레버쿠젠, 그에게서 모든 진실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화를 참지 못해 이 자리에 나왔을 것이고, 케인은 그것을 천운이라 여겼다.

‘크큭…이런 사실을 먼저 나서서 말할 줄이야. 비범하다고는 해도 결국 17살이라 이건가?’

그 탓에 케인은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던 문제점들을 이렇게 빨리 발견하지 않았는가?

동시에 마음속에 있는 의심, 걸림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이제 명쾌히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일어난 수상한 움직임의 이유가 무엇인지, 또 누가 그걸 일으켰는지 말이다.

‘남은 건···. 이 녀석의 비범함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건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성은 없지만 바이에른 공작가.

그것도 하나뿐인 후계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케인은 칸 마드리드.

제 주인에게서 들은 바이에른 공작가의 깊은 비밀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그때 침묵하던 아더가 질문을 던졌다.

“왜 갑자기 웃으시는 거죠?”

“…기분이 좋아서 말이지.”

“기분이 좋다고요?”

“그래. 지금 상황, 이 분위기. 너의 행동. 모든 게 기분이 좋구나.”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 들어서 처음으로 당황했다.

‘뭐지? 케인 도르문트도 살짝 맛이 갔었던가?’

살인 예고를 했는데, 기분이 좋다니?

이건 아더 자신의 기준에서도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 사이 케인이 입을 연다.

“그래···. 복수는 정당한 권리지. 그걸 참아주는 게 병신인 거고. 그런 의미에서 너는 복수를 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케인이 눈빛을 번뜩인다.

“그 권리를 행사할 힘은 없지.”

“….”

“그리고 나는 네가 그 힘을 가질 동안 기다려 줄 생각이 없구나.”

정신을 차린 아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그 말씀은 절 다시 죽이겠다는거네요?”

“그렇지.”

“음···. 네 뭐. 어차피 예상은 하고 있어서 그렇게 놀랍지 않네요.”

“억울하다 생각은 안 드나?”

“뭐가요?”

“왜 이렇게 날 죽이려 드는 걸까. 왜 날 병신으로 만든 걸까. 이런 억울함이나 궁금증, 호기심, 이유.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

날카롭게 찔러 들어온 질문.

허나 이미 답을 알고 있던 아더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유야 있지. 네 핏줄에 관련된.”

아더의 눈이 커졌다.

‘1황자 때문이 아니라, 내 핏줄 때문이라고? 설마 내 혈통 능력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동기가 부족해 보였다.

그 탓에 아더가 호기심을 느끼는 사이, 케인이 다시 입을 연다.

“네 핏줄은 저주받은 핏줄이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악한 핏줄.”

“….”

“어떠냐. 이 진실을 두고 나와 내기 하나를 해 보는 게?’

“내기요?”

“너는 네 저주받은 핏줄에 대한 진실이 궁금할 테고,나는 너의 그 잠재력이 궁금하구나.”

흥미를 느낀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잠재력이라 하면?”

“듣기로 1서클을 6개월 만에 깨우쳤다지. 그것도 스승 없이 혼자서 말이야.”

이 말과 함께 케인의 시선이 아더의 몸 전체를 훑는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 제 고리가 들통났음을 깨달은 아더가 순순히 수긍했다.

“네 뭐···. 그랬죠.”

“천재라 해도, 스승 없이 6개월 만에 고리를 깨우치는 건, 아주 힘든 일이지. 그래서 나는 너의 그 잠재력을 확인하고 싶다. 가벼운 대련으로 말이지.”

흥미를 느낀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대련의 상대는요?

“내 둘째 아들 제인 도르문트. 이제 막 2서클을 이루었으니, 네 상대로 적당할 거다.”

“언제 하실 건데요?”

“지금 당장도 좋고, 내일도 좋고···. 그건 네가 원하는 날짜로 정하거라. 그리고 대련이라 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써도 좋다.”

대답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왜 이런 상황이 나왔는지 몰라도···. 나쁘지 않네. 이걸로 지금 자리가 정리된다면.’

사실 이번 난입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 그래. 마치 미쳐 있던 시절의 나처럼.’

나은 줄 알았던 정신병이 또다시 도지는 바람에 일어난 실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어머니가 케인 도르문트에게 모욕을 당하는 걸 참지 못하고 일어난 변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인의 제안은 썩 괜찮았다.

제인 도르문트.

그는 케인 도르문트의 둘째 아들로서 빌 도르문트와 마찬가지로 전생에서 죽이지 못한 복수의 대상 중 한 명이었다.

‘빌 도르문트가 눈치가 빨랐다면, 제인 도르문트는 운이 좋은 인간이었지.’

매번 죽였다고 생각하면, 귀신같이 빠져나가 꽤나 골치 아픈 원수.

그 제인 도르문트와의 대련은, 아더의 입장에서도 괜찮은 일이었다.

다만.

‘대련으로만 마무리 짓는 건 아쉬워.’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상 칼 솜씨만 자랑하다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아더는 케인을 향해 제안한다.

“조건 하나를 붙여도 될까요?”

“조건?”

“네 아주 간단한 조건이에요.”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검을 바꿔 보죠. 그러니깐···. 목검이 아니라 진검으로 승부를 내는 거예요. 어때요, 케인 도르문트 백작?”

* * *

소식은 곧바로 가문 전체에 전해졌다.

제인 도르문트.

아더 바이에른.

갑작스럽게 성사된 두 공자의 대련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비단, 바이에른 가문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수도의 사람들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호외요 호외--!! 바이에른과 도르문트의 대련이 성사되었소!”

“무려 아더 바이에른과 제인 도르문트! 두 후계자 간의 싸움이오!”

제국의 단 하나뿐인 공작가.

신흥 강호로 떠오르는 도르문트 백작가.

어쩌면 세대교체의 첫발자국이 될 수도 있는 이 대결에 황실까지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그 탓에 거대한 내기판이 벌어졌고, 무지막지한 돈들이 이 두 소년의 승패에 배팅 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배당이 높은 쪽은 아더 바이에른.

제아무리 몸을 회복했다 하지만, 상대는 제인 도르문트다.

케인 도르문트의 첫째 아들인 이안 도르문트에 비해 밀린다고는 하지만, 그도 나름 천재성을 보이는 기사 지망생.

그래서 모두가 바이에른이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첩자 건으로 아무리 화가 났어도 조금 참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게 또 참아지겠소? 공작가의 체면이라는 게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어찌불과 며칠 전까지 말을 더듬던 소공자를 결투에 내보낸다는 말이오?”

그런 상황 속에서, 대련을 하기로 한 당일이 되었을 때였다.

안나는 초조함을 숨기지 않은 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하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케인 도르문트가 바이에른 가문에 왔을 때부터 파란이 예고되었지만, 이 정도로 사태가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녀였다.

제인 도르문트와 아더 바이에른의 대련.

요넬과 아더의 다툼.

그 탓에 바이에른 가문의 분위기는 개판이 되어 버렸다.

그 뒤숭숭한 분위기에 모두가 불안에 떨었고, 그건 안나도 다르지 않았다.

아더의 집사인 만큼,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게 자신이 소공자를 잘 보필하지 못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그 생각을 하며 안나가 아더가 있는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는 소공자.

아더 바이에른이 보였다.

“…안나 왔어?”

“네, 공자님.”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기지개를 켠다.

그 후 휘적휘적 걸어와 불쑥 질문했다.

“안나 물어볼 게 있어.”

“…네 공자님.”

“오른팔과 왼팔. 어디가 없어야 더 불편하게 느껴질까?”

안나가 눈을 끔뻑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공자님?”

“말 그대로 오른팔과 왼팔. 어느 쪽이 없는 게 더 불편하게 느껴질까?”

담담한 아더의 질문에 안나가 당황한다.

“어···. 자주 쓰는 팔이 없어야, 더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대답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역시 안나야. 밤새 고민해도 결정을 못 하고 있었는데, 단번에 결정이 나버렸네. 역시 오른팔로 해야겠어.”

이 말과 함께 아더가 걸어 나갔고, 안나가 눈을 끔뻑이다, 뒤늦게 뒤를 따랐다.

그렇게 저택 안을 가로지른 아더는 곧바로 대련장으로 향했다.

그 순간 먼저 와 기다리던 중인 케인 도르문트와 제인 도르문트.

두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렀다.

‘아….’

흘러나온 낮은 숨결과 함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쿵쾅거리는 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시야가 흔들렸다.

그 속에서 세상이 변한다.

‘전생에서 매일 같이 보던 세상···. 그 세상이 다시 보이네.’

눈앞의 모든 광경이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물든다.

케인 도르문트는 그 세상에서 흉측한 괴물이 되었고, 바이에른 가신들은 예쁜 꽃이 되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아더는 웃음을 흘렸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빨간색과 파란색.

그 중간 지점에 있는 기묘한 색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평소와 다른 그 하늘을 바라보며, 아더는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네, 이 세상…하지만 뭐. 나쁘지 않아.”

솔직히 말해 어색했다.

정상인처럼 행동하고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게.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은 미친 척 사고를 저지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했다.

‘특히 저 두 사람 앞에서는.’

생각을 끝마친 아더는 미소 지었다.

“날씨가 너무 좋네요. 안 그래요, 케인 도르문트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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