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요넬이 놀라 되물었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더를 북부로 데려가고 싶다니요?”
“말 그대로, 아더 그 아이를 데려가서 한번 키워 보고 싶소.”
그의 대답에 요넬이 눈을 끔뻑인다.
오래전 사별한 남편의 친구이자, 한때 같은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던 선배.
그는 기사 중에 기사라 불리는 이였으며, 절대로 허투루 말을 하지 않는 사내이기도 했다.
그 탓에 이해할 수 없었다.
제국에 있는 모든 기사들의 우상이라 불리는 남자가, 갑자기 왜 아더를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걸까?
‘황제 폐하께서 명을 내려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로 제자로 받지 않은 게 홀란 오라버니인데?’
밀려드는 생각에 요넬이 대답하지 못하자, 홀란이 입을 열어 설명한다.
“레오. 그 친구와의 우정때문만은 아니오. 나는 아더 그 아이에게서 칼잡이의 재능을 발견했고 그 재능이 범상치 않아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라오.”
“…칼잡이의 재능이요? 기사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홀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그것도 범상치 않은 재능이오. 관리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다치게 할 만큼.”
요넬이 다시 한번 놀라 입을 벌린다.
이제 막 건강해진 아더에게 칼잡이로서의 재능이라니?
그 탓에 믿기는 힘들었지만, 눈앞의 사내가 허언을 싫어하는 자라는 걸 고려하면 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우리 아더에게… 정말로 기사로서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과 함께 요넬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린다.
제국 최고의 기사가 재능을 논했다는 건, 공작가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대단한 명예임이 틀림없다.
더군다나 그 재능을 가진 아이가, 몸이 나빴던 제 아들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최근 몸 상태가 좋아진다고 느끼기는 했는데…. 그 변화가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구나.’
중얼거림과 함께 요넬이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작은 망설임이 요넬의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말 좋은 제안이지만 오라버니. 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시간? 이유가 있소?”
“제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오라버니에게 아더를 맡기고 싶지만…. 저는 항상 아이들의 의사를 먼저 존중해 왔어요.”
홀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더, 그 아이의 의사도 물어보겠다, 이 말이군.”
“네. 이제 겨우…. 건강해진 아이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항상 불안할 따름입니다. 그 아이의 상태가 언제 또 나빠질지.”
요넬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니 아더와 상의를 해보겠습니다. 만약 그 아이가 기사의 길을 걷고 싶다 하면…. 그때 아더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홀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한다.
“앞으로 이틀간 수도에 더 머무를 테니, 느긋하게 대답을 주시오. 하지만 이건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오, 요넬.”
경고와 함께 홀란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아더의 재능은…. 상식에서 매우 어긋나 있다는 것을.”
* * *
홀란의 제안을 들은 요넬은 곧바로 아더를 불렀다.
“엄마아-!”
아더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요넬 또한 미소 지었다.
“우리 아들. 잘 시간 아니야?”
“엄마가 불러서 괜찮아요오!”
“이런, 나 때문에 자지도 못하고 있었구나. 그럼 얼른 이야기를 마치고 돌려보내야겠어.”
아더의 머리를 쓰다듬은 요넬이 잠시 말을 골랐다.
그 모습에 아더는 본능적으로, 어떠한 일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뭐지? 설마 홀란… 그분이 약속을 어긴 건가?’
생각과 함께 아더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을 때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요넬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아더는 꿈이 뭐니?”
“꿈이요오?”
“그래 꿈. 우리 아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더가 눈을 끔뻑인다.
갑자기 웬 꿈?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있어 꿈이랄 게 있을까?
‘음…. 생각해 보니, 꿈이 있긴 하네. 제국의 2황자를 시작해, 우리 가문을 위협하는 놈들을 모두 죽이는 꿈.’
하지만 이 꿈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아더는 적당히 둘러댔다.
“글쎄요오… 아직 잘 모르겠어요오..”
“그래? 그럼… 기사는 어떻니?”
“기사요오?”
“명예를 신봉하는 기사. 멋지지 않니?”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반응에 요넬은 잠시 머뭇거리다, 설명한다.
“사실 너의 대부. 홀란 오라버니가 제안을 해 왔단다. 널 데려다가 한번 가르쳐 보고 싶다는구나.”
“대부님이요오?”
“그래. 그분의 성격상 허튼 말을 하지 않은 걸 고려하면…. 이건 대단한 기회란다. 그 어떤 명문가의 자제들도 재능이 없으면 가르침을 주지 않았거든.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정확히는 탄성을 내지르는 척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꿈이 뭐냐고 물은 거네. 홀란… 대부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아볼 생각이 있는지 떠보기 위해.’
생각을 끝마친 아더가 혀를 찼다.
예상외의 난관이 갑작스레 찾아와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건 전혀 계획에 없던 건데?’
소드 마스터 홀란 레버쿠젠.
그의 밑에서 검의 가르침을 받는 건 분명 좋은 기회일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나한테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지… 칼이야 전생에서 실컷 휘두른 덕에 누구한테 배울 단계는 이미 지났으니깐.’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순수한 칼싸움에서 누구한테 져 본다는 생각을 바이에른 혈통을 각성한 뒤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홀란의 제안은 아무런 메리트가 없었다.
차라리 레버쿠젠의 혈통.
그 피를 마시게 해준다면 고민이라도 잠깐 했을 것이다.
‘그것도 마음에 안 차기는 하지만… 북부로 떠난 사이, 도르문트 백작이 수작을 부리면 어떻게 해?’
그 탓에 아더가 어떻게 해야 잘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였다.
요넬이 불쑥 입을 연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들이 조금만 더 나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구나.”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요넬의 입에서 나온 덕이었다.
그 사이 요넬이 횡설수설 설명한다.
“그…. 우리 아들이 몸이 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런 행복한 시간을 가진 지 또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좀 더 가족… 아더 너하고 보내고 싶구나. 어미로서는 잘못된 선택이겠지만….”
말을 끝마친 요넬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린다.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남을게요! 엄마아!”
포옹과 함께 들려온 대답에 요넬이 당황한다.
“아더? 하지만 이건 진짜 엄청난 기회란다. 어미의 조금 전 말 때문에 이런 대답을 하는 거라면….”
“아니에요오! 저도 엄마랑 조금 더 있고 싶어요오오!”
힘찬 대답에 요넬이 입을 다문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린다.
“미안하구나, 아들아. 이렇게 나약한 어미라서….”
천만에요.
이런 어머니라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요.
이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 아더는 제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요넬과 함께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요넬에게서 대답을 들은 홀란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음…. 결국 그렇게 됐군.”
시선을 돌린 홀란이 아더를 바라보았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느냐?”
“네에에!”
늘어진 대답에 홀란이 또 한 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끝까지 연기를 하는군. 진짜로 밝힐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생각과 함께 홀란이 팔짱을 낀다.
그런 홀란을 아더가 멀뚱멀뚱 바라볼 때였다.
침묵하던 홀란이 입을 연다.
“약속은 지켰다, 아더.”
“…?”
“조만간 모든 게 해결될 거다.”
맥락 없는 대화.
그 탓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로지 아더만이 환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아! 대부니임!”
그 모습에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린 홀란이 무언가를 내민다.
“받거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칼이네요오오?”
“그래 칼이다. 아주 낡은 칼이지만, 너한테는 의미가 있지.“
아더의 눈이 커진다.
“이 칼은 네 아버지. 레오 바이에른이 젊을 적에 쓰던 칼이다.”
* * *
홀란이 설명한다.
“언젠가 너에게 넘겨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이 딱 적당하겠구나. 받거라.”
아더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칼을 쥔다.
그 순간 물결 무늬가 새겨진 손잡이가 아더의 손에 촥 하고 감긴다.
너무 좋은 그립감에 아더가 눈을 치켜뜨자 홀란이 한 번 더 설명한다.
“아티펙트는 아니지만, 아주 좋은 칼이지. 운철검. 우주에서 날아온 별로 만들어진 칼이니깐.”
운철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허나 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기운은 그 낯선 이름을 뒤덮기에 충분했다.
아더는 검을 바라보다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오 대부님!”
“원래 네 것이었다. 감사해 할 필요는 없고, 잘 사용하거라.”
“네에!”
홀란이 시선을 돌려 요넬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떠나지만, 아무쪼록 몸과 마음을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 일은 제가 도와드릴 테니 너무 염려 마시고.”
요넬이 미소 짓는다.
옆에 있던 아더가 그런 요넬과 홀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홀란… 아니 대부님. 생각보다 좋은 분이셨네. 약속도 지키고, 선물도 주시다니.’
거기다 앞으로도 도움을 줄 확률이 높았다.
당연하지만 이 사실은 여러 의미를 시사했다.
홀란 레버쿠젠 정도 되는 사람이 도와준다면, 지금 상황에서 더없이 든든한 아군이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아더가 미소 지을 때, 날카로운 시선이 뒤통수를 찔렀다.
고개를 돌리니, 저번 대련에서 기절한 홀란의 손녀.
엘린 레버쿠젠이 보였다.
“흥!”
콧방귀를 뀐 그녀가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 모습에 아더가 눈을 끔뻑일 때, 홀란과 레버쿠젠 가신들이 일제히 요넬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 인사에 요넬과 바이에른의 가신들 또한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만날 때는 더 좋은 모습이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공작 각하.”
굽혔던 허리를 편, 홀란이 다시 아더를 바라본다.
그리고 불쑥 질문을 던졌다.
“다음에 볼 때는 조금 더 친해졌으면 하는데, 괜찮겠느냐?”
“좋아요오오!”
“나도 좋구나. 그럼 친해지고 나면, 네 비밀을 말해줄 수 있느냐?”
“그건 안 돼요오오!”
홀란이 껄껄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바이에른 저택을 나섰다.
그렇게 북부의 사자라 불리는 홀란 레버쿠젠이 자신의 전쟁터로 돌아갔을 때였다.
“억울합니다!! 제가 왜 배신….”
홀란 레버쿠젠.
그는 자신의 말을 확실히 지켰다.
기사 케딜락을 포함해, 바이에른 가문을 좀 먹던 배신자.
그들 모두가 아주 느리지만, 확실하게 가문에서 내쫓기기 시작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기에 발뺌도 하지 못했다.
그 탓에 바이에른 저택이 어수선해졌을 때, 아더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내가 직접 처리해야 했는데…. 하지만 뭐, 지금은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지.’
아직 전면으로 나서기에는 시기가 일렀다.
이런 몸을 가지고 나서 봐야,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게 뻔했다.
그래서 아더는 수련에 집중했다.
마나를 모으고 고리를 엮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6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을 때였다.
아더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우웅-!
동시에 가슴팍에서 새파란 고리 하나가 번쩍였다.
그 기묘한 감각에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달성했네, 1서클.”
칼잡이들의 경지를 나누는 단계.
그 단계 중에서 가장 초입이라 할 수 있는 고리 하나를 마침내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아더는 슬슬 때가 왔음을 느꼈다.
‘이제 연기는 할 수가 없겠어. 고리가 새겨졌으니깐.’
서클을 만들지 않았을 때면 모를까.
가문을 지키는 기사들은 제 몸의 이변을 눈치챌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바이에른 가문을 거닐었다.
새로이 들어온 시종들이 그런 아더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다.
그 인사를 일일이 받으며 걸음을 옮기던 아더는 요넬의 방문 앞에 멈추어 섰다.
그 후 가벼운 심호흡을 내뱉은 뒤 조심스레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허락에 아더가 방문을 열고서 들어갔다.
서류를 바라보던 요넬이 깜짝 놀라 아더를 향해 다가왔다.
그 모습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던 아더는 입을 열었다.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어머니?”
이번 생과 저번 생을 합쳐 32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말을 더듬지 않고서 인사를 건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