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2. 반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곧 눈이 반짝 떠졌다.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이 없다. 하리드 브리첼은 긴장했던 온몸에 힘을 빼며 늘어지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히도 해 댔군.’
언제나와 같은 날들이다. 회복력을 이기고 희끗하게 남은 피부 위의 자국들을 질린 듯이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순간 욱신거리는 둔통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구멍이 열린 기분인데.’
모두 회복이 되긴 하겠지만, 어찌나 해 댔는지 아직도 살짝 힘이 빠진 기분이었다.
“역시, 젊음이 뭔지.”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팔의 근육을 돌렸다. 그래도 영양 상태는 도주 상태 이후로 가장 좋았다. 거기다 제 부모가 모두 있다는 것에 안심한 배 속의 생명이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하고 있어 하루하루 몸 상태가 변하고 있는 중이다.
“…….”
하리드는 오묘한 표정으로 제 배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기분이 좋다는 듯 퍼지는 파동이 낯설고 이상했다.
“넌, 네 아버지가 그리도 좋은 건가.”
나올 아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도주할 때의 상황이야 잡히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아이가 성장도 하지 않은 때였다. 살짝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배를 보자 요즘 아이에 관한 생각이 자주 떠올랐다.
쿵. 쿠웅. 쿵.
힘찬 고동이다. 강한 아이일 것이다.
태어난 이 아이는 과연 누구를 닮았을까. 외모부터 시작하여 태생까지 어떤 아이가 나오게 될까. 성격은 어떻고, 이름은 무엇으로 지어야 할까. 딸일까, 아들일까.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직은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들어오라.”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나직하게 말하자마자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바라보니 날렵한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하리드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나엘 폰 라리트.
기록에 적힌 르브리에의 과거에 없던 적이 없었던 아주 충실한 기사. 가장 짙은 뱀파이어의 기척을 지니고 있는 자. 르브리에가 감염시켜 만들었다는 최초, 첫 번째 종.
‘마른 낙엽 같은 자이군. 하지만, 가장 강한 뱀파이어인가.’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기분 나쁠 법도 한데, 상대는 평온했다. 아니,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의외였다. 다른 뱀파이어들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깨셨으니 오찬을 준비할까요, 하리드 님.”
“나엘이라고 했던가.”
“예, 말씀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그대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가? 날 보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제가 하리드 님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건조하고 충성스러운 목소리였다.
“뱀파이어들 대부분이 날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대들 수장의 곁에 벌레가 붙어 있다 중얼거리지 않나?”
나엘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저는 하리드 님께 무엄한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르브리에 님께서 그분을 대하듯 당신을 대하라 하셨으니, 그것이 곧 저희에게는 진리일 뿐입니다.”
하리드는 르브리에의 잇자국이 사라져 가는 제 손목에 시선을 내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몸의 변화는 심적인 변화도 가져왔다. 한 번도 신경이 쓰이지 않던 것에 시선이 가고, 가끔은 건조하게 넘기던 것에도 불쑥 기분이 뒤틀리곤 했다. 지금처럼.
“나엘. 그대가 르브리에에게 피를 바쳐 온 자인가?”
“…….”
“진실을 듣고 싶군.”
짐승의 피로 언제나 목을 축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 르브리에의 주변에서 누가 죽었던 적은 없었다. 만약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취하고, 시체를 처리해 왔다면 어떻게든 브리첼 가문의 추적에 걸렸을 것이다.
‘결국, 한 번씩 가까운 자의 피를 취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저 남자. 저 남자일 것이다.
“예. 그랬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리드 님이 계시지요.”
“…….”
아찔했다. 누군가의 목덜미에 이를 박고 있을 르브리에를 생각하면. 그때가 떠오른다. 황녀의 옆에서 웃고 있었던 화려한 남자. 그리고 그 둘을 보면서, 비슷한 감각 속에서 심장의 고통을 느꼈던 자신.
하리드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흡혈의 감각을 쉽게 잊을 수 없을 텐데? 그립진 않나.”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제 왕을 주인처럼 떠받드는 뱀파이어라 할지라도, 감각은 스스로의 것이었으니. 뚫어지게 바라보자 가만히 서 있던 뱀파이어가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단언컨대, 제가 느낀 감각과 하리드 님이 느끼신 감각은 무척이나 다를 것입니다.”
“무슨 소리지?”
왜였을까, 바라보고 있는 건조한 뱀파이어가 설핏 웃은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단순히 먹이에게 피를 취하는 그 건조한 과정이 결코 아니셨을 테니까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리드 님.”
“…….”
어깨가 화끈해졌다. 어젯밤, 깊고 강하게 르브리에의 송곳니가 살에 박혔다. 그리고 부드럽고 아릿하게 피를 빨렸다.
그 붉은 액체가 몸을 빠져나가 르브리에의 목덜미를 타고 흐를 때면, 온몸이 바짝 조인다. 그 충동. 요동치며 끓는 쇳덩이가 된 기분이다. 성기는 확 뜨거워지고, 아래가 질퍽하게 젖어 음란하게 움찔거리게 된다. 요동치며 조여드는 내벽은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짙어지는 그 냄새에 르브리에가 슬쩍 웃는 얼굴을 볼 때면 수치심에 땅굴 속으로 숨고 싶어지곤 했다.
그 빌어먹을 흡혈. 피에 젖은 채 웃는 제 반려는 너무 야했다.
* * *
“오늘 사고를 거하게 쳤더군요. 내 기사님, 왜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
피가 흐르는 스테이크가 은빛 나이프 아래에서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입안에 넣고 씹자 육즙과 뒤섞인 피 맛이 고소하게 퍼져 나갔다. 하리드는 눈을 굴려 저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마주했다. 신경이 잔뜩 곤두서, 불쾌함을 호소했다.
“너. 왜 웃지? 지금 웃음이 나오나?”
“뭐야, 웃으면 안 됩니까?”
“네가 지금 그 입으로 그러지 않았나. 내가 사고를 쳤다고. 네가 그들의 수장이고 왕이라면 마땅히 반박을 하며 화를 내야 옳다. 그렇지 않나?”
“아. 그랬죠. 뭐, 뒈지진 않았던데요.”
“그게 할 말의 다인가? 르브리에.”
상황을 생각하면 웃을 수 없다. 하리드는 르브리에가 날 선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손에 턱을 괸 채로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식사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아무리 봐도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 보였다.
“당신이 내 먼저인데, 뱀파이어들이 숱하게 죽어 나간다 하더라도 나는 화 안 날 겁니다.”
“하.”
“그보다.”
평소의 르브리에는 차갑고 이성적이었지만, 저럴 때는 영 미친놈같이 보였다.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그래서 화가 났을까 싶어서. 그런데 이상하더란 말이지. 내가 뭘 잘못한 기억이 없거든. 우리가 지난밤에 나눈 기억이라고는 열정적인 섹스밖에 없잖습니까?”
“그래서.”
“당신도 좋아했잖아. 갑자기 화를 낼 리가 없지.”
“내가 화가 난 게 중요하나? 그것들을 왜 그리 만들었는지는 묻지 않나. 잘잘못을 따질 줄 알았는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르브리에가 하! 하고 크게 웃었다. 날카로운 비소는 굉장히 선명한 것이었으나, 하리드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붉게 번들거리는 눈빛이 말해 주고 있었다.
“알았어요. 내 감상은, 아주 잘했어요.”
“뭐? 잘했다?”
“정말 잘했다고.”
르브리에의 입술이 반달처럼 휘었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별개로 그 미소에는 흉악함이 있었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핏방울처럼.
그의 흰 손톱 끝이 톡, 식탁 테이블을 두드렸다.
“당신이 오늘 거의 죽음까지 몰아간 뱀파이어가 다섯이었지요?”
“그래.”
“언제나 당신에게 시비를 걸며 깐족거렸다는 것들의 수와 같군요.”
“……알고 있었나?”
“내가 모를 리가. 그보다는 매번 의아했죠. 왜 당신이 여태까지 그 모욕을 참고 넘겼는지를 말이야.”
서늘한 눈이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것들을 왜 살려 둘까.”
“르브리에. 그것들은 너의 종족이다.”
“하. 당신이 참아 넘기는 통에, 언제 죽여 버려야 하나 나도 시기를 재고 있었거든. 종족? 그따위 것 신경 쓰지 말고 당신 마음껏 해, 하리드 브리첼. 당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실히 각인시키란 말이야.”
“네 백성인데도?”
“그러니까요.”
그 순간, 르브리에가 일어났다.
“내 백성이 감히 당신에게 그따위 언사를 하면 죽어 마땅하지.”
끼익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밀렸다.
“안 그래요?”
“……너는 잔인한 군주로군.”
“자애로운 군주가 호구밖에 더 되나? 나는 내 욕심껏 마음대로 살면서, 내 것만을 아낄 겁니다.”
성큼 걸어오는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기에, 그는 곧바로 하리드의 지척에 서 있게 되었다. 뭐냐는 듯 바라보니 어깨 위로 올라와 지그시 누르는 손길이 차가웠다. 뺨과 뺨이 닿을 듯이 고개를 바짝 숙여, 눈을 휘며 웃는다.
“하리드 브리첼.”
“…….”
“그따위 주제는 집어치우고. 그거 어때요?”
르브리에가 가리키는 것을 따라가니, 접시였다. 정확히는 접시에 놓인 그가 자르던 고기.
“식사를 말하는 건가.”
“그래요! 특별히 주방장을 족, 아니. 신경을 쓴 것인데.”
“…….”
사나운 눈을 보니 아무래도 주방장이 곤욕을 치른 듯했다. 몸이 예민해져 익힌 쇠고기를 거의 섭취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니, 뾰족하게 올라간 붉은 눈이 더 사나워졌다.
“왜 사람을 앞에 두고 한숨을 쉬고 그럽니까? 기분 더럽게. 내 면상 보면 한숨 나와? 아니면 고기가 맛이 더럽게 없나?”
제 반려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성격이 좋진 않았다.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체하겠다. 그렇게 생각 안 하나?”
“왜요.”
“뭐?”
식사도 하지 않는 주제에 먹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든가, 이제는 당장 키스할 듯이 가까이 다가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르브리에는 상식에 굴하지 않았다.
“왜요. 내 시선이 싫습니까? 왜 체하지?”
“……르브리에.”
“난 당신이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먹다가도 발기할 것 같은데?”
“…….”
“그런 의미로 몸이 불편해진다는 의미라면 용서해 줄게요. 그래, 내 기사님? 당신 지금 발정했나?”
몸이 부서질 만큼 거친 섹스, 피가 튀는 잠자리, 끊이지 않는 접촉, 자꾸만 중독되는 흡혈의 감각.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저 불안이다. 아무리 논해 주고 말해 주어도 르브리에는 불안해지는 듯했다. 자신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질까 봐. 도망칠까 봐.
가끔은 신기했다. 반려의 감각을 잘 알고 있는 주제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이 그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그도 느낄 텐데도. 그 단단한 종속, 희열, 쾌락, 애틋함, 그리고 복종을.
“후우. 그게 아니라 정도를 지키라는 거다, 르브리에. 그러다 욕실까지 따라와 같이 씻겠다고 설치겠군.”
“호오, 그래도 됩니까?”
“뭐?”
순간 반색하는 얼굴을 보며 어이가 사라졌다.
“되겠나? 죽고 싶으면 그리하든지.”
가끔 같이 들어가 씻겨 주겠다고 내벽을 긁어 대는 것도 끔찍한데, 같이 씻다가 욕실에서 며칠씩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사양이다. 으르렁대며 사납게 말하자, 르브리에는 항복한다는 표시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알았어요, 그것까지는 참죠.”
“알면 됐다.”
“하지만 당신이 오늘따라 기분 나쁜 이유는 미치도록 궁금한데. 말 안 해 줄 겁니까?”
불현듯 르브리에의 붉은 눈을 보니, 그 남자가 생각났다.
“나는.”
“그래요, 당신 기분 나빴던 거 아닙니까. 이유를 알아야지.”
나엘. 첫 번째 종. 그리고 그의 목덜미에 이를 박고 흡혈했을 눈앞의 이 사내. 맛있었나, 그 피는. 어떤 감각이었지? 반려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너는 그 남자의 피를 취하고 있었겠지.
과거에 집착하는 짓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게 그리도 거슬렸다. 르브리에가 그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어쩌면 그의 피에 질린 저 젊고 파릇파릇한 뱀파이어가 다른 피를 찾아 떠나게 될 순간을 상상하며 겁에 질린 것처럼.
‘어이가 없군.’
이건 정말 저열한 질투였다.
심장이 뜨거워지고, 피부가 후끈해지는.
입술이 달싹였다. 재촉하듯 귓불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손끝에 이가 악물리면서도, 내뱉는 목소리는 무척 느렸다.
“너.”
“말해요.”
“내가 없을 때는.”
“……뭐요?”
“어디서, 피를 마셨지?”
“…….”
내뱉었다. 묻고 말았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려 노력하며 바라보니, 르브리에는 상상과는 꽤 다른 얼굴을 해 보였다. 마치 뒷통수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흡혈, 말하는 겁니까?”
“그래.”
“아하.”
르브리에의 입술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조금씩 퍼져 나가는 미소를 보는데 왜 이렇게 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리드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였구나.”
“다른 소리를 하나?”
“당신이 오늘 종일 기분이 더러웠던 이유, 납니까? 그래요?”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을 봐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 결 좋은 머리카락을 확 잡아당겼다.
“그렇다고 한다면.”
바로 앞에 있는 그 붉은 입술 위로 입을 가져다 댔다. 우악스럽고 아픈 입맞춤이 아니었다. 가볍게, 부딪히고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금 머금듯이 입을 벌려 살점을 습하게 문질렀다.
“내가 너를 생각하다, 답지 않게 유치한 짓을 벌이고 다닌 것이라고 한다면. 르브리에.”
욕망한다. 눈앞의 반려에게.
“똑바로 대답할 건가?”
“당연하지. 뭐가 궁금한데, 하리드.”
손을 뻗어 바짝 다가와 있는 남자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셔츠 아래로 손을 넣어 살을 직접 매만지고 간지럽힌다. 앓는 소리가 나오는 목울대를 빨았다. 건반을 두드리듯 곧은 척추를 매만지자, 요요하게 짙어진 붉은 눈이 코앞에 있었다.
“나엘의 피. 맛있었나? 아니, 다른 피 모두 맛있었나?”
“……질투하는 하리드 브리첼이라.”
“지금은 어떻지? 아직도 생각이 나나?”
“하, 빌어먹게 좋은데.”
“지금은 누구의 피가 가장 맛있지? 말해.”
바짝 상체를 가까이 댄 르브리에가 은근하게 웃었다. 귓바퀴를 타고 간지럽힌 손톱이 귀 뒤의 여린 살점을 화끈하게 긁었다.
“제기랄, 어떤 대답을 원하는데 이렇게 애를 태우실까, 기사님.”
그 순간, 멱살이 잡혔다. 곧바로 끌어 올려졌다. 고작 천에 쓸려 상처 입을 피부는 아니었으나, 와장창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있던 식기가 떨어졌다. 후끈하게 퍼지는 성적인 긴장감과 단단한 테이블 위에 눌린 등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 위로 기대듯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사내.
“아래가 터질 것같이 뜨거워. 어쩔 겁니까?”
“왜. 또 발정이라도 났나?”
“뭐 새삼. 언제나 발정 난 상태인 괴물인데요. 당신만 보면 바로 아랫도리가 뜨겁게 서거든. 이렇게 말이야.”
픽 비웃으며 내뱉은 르브리에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부끄러움도 수치도 모른다는 듯 하반신을 은근히 맞닿은 부위에 비볐기 때문이다. 그 부피가 상당했다. 옷을 뚫고 나오고 싶다는 듯 뜨겁고 커다랗게 부푼 성기였다. 대체 언제부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신을 벗기고, 언제나 처박고 싶었는데. 그건 곤란하잖아. 누가 당신 알몸을 본다고 생각하면, 그것들 눈알을 내가 다 터뜨릴지도 모르거든.”
“농담도 정도껏 해라.”
“왜 이래.”
갸우뚱 맑은 얼굴을 한 것과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손길이었다. 흰 손이 움직일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옷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찢겼다. 하리드는 몇 번 눈을 깜빡이는 동안 바지만 입은 채 테이블 위에 누워 있게 되었다.
“농담?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르브리에.”
“요즘 당신 구멍에 처박고, 온종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하는데요. 눈만 뜨면 당신 살, 냄새, 정액, 내 것을 빨아들이면서 움찔대던 구멍, 느끼면서 뚫어져라 바라보던 당신의 그 씹어 먹고 싶은 아찔한 눈동자. 땀이 밴 이 피부. 입안을 가득 채우던 피. 그 모든 것이…….”
방금까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도 잊었다. 손바닥까지 뜨겁게 열기가 솟았다. 행동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엉덩이를 받치며 바지를 벗기고, 테이블 위로 전시하듯 올리는 그 파렴치한 행동을 오히려 도왔다.
헐떡이는 숨이 낯설다. 정갈하게 옷을 갖춰 입고 있는 모습에 기분이 더러워 르브리에가 그랬듯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옷을 찢어 버렸다.
“그 모든 것이 머리에 박혀서 떠나지 않는다고, 망할. 어쩔 거야, 기사님. 그런데 이제 질투까지 하신다? 하, 이게 다 당신 탓입니다. 알아?”
“그건, 닥쳐.”
“왜요. 질투했다고 생각하니까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요?”
“닥치라고, 했을 텐데.”
“왜. 내가 왜 닥쳐. 이렇게, 귀여워 뒈지겠는데.”
고혹적으로 웃어 보이면서 입술을 겹치는 얼굴을 끌어안고, 제 피부를 끌어안는 손길에 적극적으로 다리를 옭아맸다. 이 빌어먹을 괴물. 어찌나 밝게 빛나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을 지옥으로 빠뜨리는 무시무시한 반려.
“질투했다고. 당신이.”
달콤하게 흐르는 르브리에의 피를 정신없이 핥으며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삼킨다.
“하리드 브리첼, 당신 피만 나를 이렇게 만들어.”
“하, 흐.”
“질투 따위 할 필요가 없다고. 알아?”
이 남자를 원한다. 깊게 얽히는 혀뿌리를 농락하고, 입술을 잘근거리며 씹는다. 거칠어지는 숨결이 그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본능이 뜨겁게 날뛴다.
“하아, 하, 리드, 브리첼…….”
“르, 르뷔, 하아, 하……. 더, 집중, 해.”
“후우, 훅.”
키스만으로도 이렇게 미칠 수 있다. 피부를 스치는 손길이 무척이나 거칠었다. 르브리에도 하리드도, 마치 풋내기 애송이가 된 것처럼 거침없이 서로의 몸을 매만졌다. 피부를 문지르고, 핥듯이 애무하고, 손끝으로 거세게 긁어 핏방울을 흘리게 했다. 그래도 모자랐다.
아, 조금 더 강렬하고 아픈 것이 필요했다.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조이는 성기의 뜨거움에 이가 갈렸다.
“이틀 전에도, 웨어울프가 찾아왔, 후우, 죠. 그, 빌어먹을, 룩센.”
“읏.”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지를 벗어 던졌다. 고운 피부를 한입에 물어 버리고 싶은 쾌락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하리드는 안간힘을 썼다. 당장 변이해 네발로 뛰어올라 포악해지고 싶었다. 손목을 들어 입안에 르브리에의 살을 한가득 품는 것으로 대신했다. 게걸스럽게 빨아올리며 흰 피부 위에 자국을 내기 위해 용을 쓴다. 그 모습을 진하게 바라보고 있던 르브리에가 거친 숨소리를 흘린다.
“그렇게 맛있게 빨면, 내가 미치잖아요, 기사님.”
“윽!”
쿵! 어깨가 잡혀 빙글 돌았다. 상체가 차가운 테이블에 짓눌리자 엉덩이가 바르르 떨렸다. 뒤에서 무게가 묵직하게 더해지고, 눌린 피부를 파고들어 온 손이 긴장한 유두 위에서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도망가지 마, 하리드 브리첼.”
“하아!”
후끈한 살덩이의 끝이 은밀한 부위를 느리게 훑었다. 당장 파고들어 올 듯 잡아 벌려진 내밀한 곳이 수축과 이완을 천천히 반복했다.
“아, 읏!”
싸악, 목덜미를 훑는 축축한 혀의 감촉에 허리에 힘이 들어간다. 확 움츠러드는 순간, 거대한 살덩이가 삽을 꽂듯이 푹 파고들어 왔다.
“……!”
“쉬이.”
격통에 파드득거리는 순간, 어깨에 날카로운 것이 꽂혔다. 파도처럼 번지는 익숙한 쾌감에 하리드는 테이블 위를 손으로 절박하게 긁었다. 으드득, 소리와 함께 나무 껍질이 벗겨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평소보다 격했다. 뻑뻑했던 곳이 순식간에 적응해 꽉 물었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더 깊이 끌어당기기 위해 난장을 부리는 것 같았다. 뜨겁고 축축해지는 내벽이 그것을 환영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래요, 당신은 이곳을. 아주 좋아하지.”
“하, 아, 윽!”
“그 표정을 보면…… 미칠 것 같아.”
퍼억! 퍽! 내벽이 찢길 듯이 처박힌다. 빠르게, 더 빠르게, 당장 엉덩이 사이의 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흔들린다. 허리가 꽉 조이고, 박히고, 거칠게 짓쳐들어왔다. 속이 헤집어진다.
“하리드 브리첼.”
“하으윽! 읏, 윽! 아, 읏!”
“질투해. 더 질투해 줘. 제기랄, 하리드. 나만 생각해. 나만, 웨어울프 따위, 오로지 나만. 하아, 후, 제발. 가지 마, 떠나지 마. 나만, 오로지 나만 생각해.”
꿀쩍거리는 소리와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시끄럽게 울렸다. 끼익, 끼익. 흔들리는 테이블이 불안하게 움직여도 벗어날 수가 없다. 아니, 벗어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르, 르뷔, 으, 읏, 으읏!”
뿌리 끝까지 박혔다가, 밖으로 완전히 빼내는 과정이 격하게 반복되었다.
“하아, 하……아, 읏, 으… 흐으……!”
“왜 이렇게 맛있게 빨아당기는 건데요.”
“흐, 읏, 아, 아아……읏!”
“왜 하루, 하루 지날수록 당신이 고프지. 왜 이렇게 부족한 거야.”
“읏, 잠, 잠깐, 아, 윽……!”
“정말 짐승이라면 좋을 텐데요. 당신과 내가 짐승이라면, 정신없이 붙어먹을 수 있을 거 아니야. 누가 있든 말든,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언제든 발가벗고 당신을 탐할 수 있을 거야. 게걸스럽게 핥고, 마시고, 처박고. 그렇지요?”
순간, 악 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터질 듯 부푼 성기로 잔뜩 괴롭혀진 내벽을 꽉 조이는 순간, 다리를 잡고 몸을 휙 돌렸기 때문이다. 그 충격에 하리드는 눈앞이 희게 변했다.
“……!”
“하리드, 하리드. 내 반려.”
부들부들 떤 채로 튀어 오르는 사정의 물결에 허우적댔다. 배 속에 뜨겁게 퍼지는 르브리에의 정액에 내장이 타는 것 같다. 힘이 풀려 벌어진 허벅지를 움켜쥐고 느릿하게 성기가 빠져나간다. 쯔윽, 소리를 내며 벌어진 곳을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감각은 몇 번을 해도 소름을 끼치게 했다.
“하아, 하…….”
“벌써 지친 건 아니겠죠. 이제 한 번인데.”
“요즘, 꽤 피곤…… 윽.”
그 순간, 하리드는 몸을 확 웅크렸다. 그 갑작스러운 반응에 르브리에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도, 터진 화산처럼 뜨겁게 번지는 성감에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리드!”
다급하게 부르는 르브리에의 목소리에도 괜찮다는 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눈앞이 벌겋게 물든다.
“아, ……아, 흐, 으윽!”
“하리드 브리첼!”
“하으읏!”
웨어울프가 변이할 때 들리는 소음은 굉장히 흉악했다. 뼈가 뒤틀리고 살갗이 변모하는 그 과정은 아무리 같은 웨어울프라도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퐁! 소리를 낸 것 같았다. 하리드도, 그리고 르브리에도 당황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르브리에였다. 그의 눈동자가 약하게 흔들렸다.
“……꼬리.”
“…….”
“당신 꼬리가.”
“…….”
“지금 왜?”
“…….”
그랬다. 꼬리가 튀어나왔다. 불길한 느낌에 손을 들어 머리를 만지니, 귀까지 쫑긋하게 서 있었다. 하리드의 얼굴에 선명한 낭패의 기운이 퍼졌다. 엉덩이 사이에서 살랑이는 꼬리의 감각이 간질간질하여 헛웃음이 났다. 망할.
멍하게 바라보는 르브리에를 마주하며, 그는 어느새 변명 같은 말을 읊조렸다.
“요, 요즘 아이가 급속도로 성장을…… 하고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말해 봐요. 지금, 왜, 이 꼬리가 튀어나온 건지.”
르브리에의 눈이 악마처럼 가늘어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음흉함이 깃들어 있었고, 하리드는 목줄이 잡힌 늑대처럼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읏.”
“하, 미치겠군. 감촉도 좋잖아.”
폭신한 그것을 부드럽게 움켜쥐는 손길에 볼썽사나운 흐느낌이 새어 나갈 뻔해, 입술을 터뜨릴 듯이 꽉 깨물었다.
“조절이, 잘 안 된다. 요즘, 유독. 흣, 꼬리 좀, 놔라, 아!”
“그러니까 내 성기가 너무 좋아서 이 꼬리가 튀어나온 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겁니까? 그걸 그런 얼굴을 하고 말하면, 내가 믿을 것 같아요?”
“르뷔, 대체 너는 무슨 헛소리를.”
르브리에의 눈이 더욱더 붉어졌다. 붉은 입술이 나풀거리며 부끄러운 말을 마구 쏟아 냈다.
“하, 이 요망한 꼬리 말입니다. 그리고 그 귀도. 날 미치게 하려 작정했군요. 내 기사님, 너무하잖아요.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터질 지경으로 만들고. 당신이 엉덩이로 책임을 져 줘야겠습니다. 벌려요.”
“무, 슨 소리…… 윽!”
엉덩이 사이 꼬리의 뿌리 부분이 간지럽혀지자, 하으윽 소리와 함께 왈칵하고 내벽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나왔다. 엉덩이가 푸들거리며 떨리고, 유두가 순식간에 바짝 섰다. 귀가 부들거리면서 떨리고 달뜬 숨이 크게 튀어나왔다.
“귀여워요.”
끔찍한 말이었다!
“닥쳐라!”
“진짜로, 귀엽단 말입니다. 미치겠군.”
“윽!”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봐요. 좀.”
버둥거리며 테이블 위로 도망갈 듯 움직이자 달려드는 것처럼 다가온 르브리에가 귀를 꽉 물었다. 아프지 않게 입술로 물어 혀로 연약한 안쪽의 살을 훑는 통에 또다시 젖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당혹스러워 혀라도 씹을 지경이었다. 너무, 모든 반응이 너무 컸다. 손만 닿아도 쌀 것처럼 너무 예민했다.
“흐으, 지, 지금은, 아니, 잠시, 읏!”
“안 되죠. 이런 상태로 어딜 가려고. 누굴 보여주려고. 그 새끼 눈깔 파이는 꼴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가만히 있어요.”
“르, 르뷔, 아! 안, 읏! ……이상, 흐!”
“이상하지 않은데요. 전혀. 아, 이렇게.”
퍽, 하고 꼬리가 잡히며 엉덩이가 꿰뚫렸다.
“귀여운데.”
“흐으읏! ……아, 흣!”
“몇 번이나 쌀 수 있을 만큼 귀여운데요.”
“닥, 하, ……으응! 읏, 흐읏!”
“평소보다 훨씬 예민하고, 말이에요. 더 들려줘, 하리드. 어디가, 얼마나 좋은지. 내 손길이 닿으면 어떤 기분으로, 이렇게, 자지러지는지.”
거칠게 뒤흔들리는 곳을 타고 뜨거운 것이 주르륵 흘렀다. 다리가 잡아 벌려지고 몇 번이고 부딪히듯 테이블 위로 허리가 처박힌다.
“흐읏, 흣, 으…….”
“하아, 하리드, 좋아 죽겠어요? 얼른 말해 봐요. 좋아 죽겠냐고.”
“아, 읏!”
눈물이 핑 고였다. 당장 도망가고 싶은 마음, 더 격하게 박히고 싶은 마음, 놈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이 혼탁하게 뒤섞였다.
“정말 약하네요, 이곳. 이건, 더 만져 달라는 뜻이겠지?”
“!”
“그렇게 좋아요? 끊어질 것 같잖아…….”
꼬리를 부드럽게 애무하자 내벽이 꽉 조였다. 기분 좋다는 듯 웃는 웃음소리에 귀가 펄럭였다. 피부에 번지는 붉은 기운을 황홀하다는 듯 바라보던 르브리에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꼬리가 사라질 때까지, 괴롭혀 줄게요. 기대해요, 기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