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혼자뿐인 병실은 조용했다. 멀쩡한 오른손에 쥔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대는데 느닷없이 병실 문이 열렸다. 반쯤 세운 침대에 방자하게 몸을 기대고 있던 서규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불시에 찾아온 방문객은 어머니였다.
“어떻게 알고…….”
까지 말한 순간 최 비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에는 비밀로 해 달라고 기껏 부탁했건만, 그새를 못 참고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월급 주는 사람 말이 우선이라 이건가.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리가 좁혀졌다. 깁스한 팔을 본 정은희는 설핏 눈가를 찡그렸지만, 다른 데는 멀쩡해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싸움박질이라도 했어?”
“아냐. 집에 가는데 누가 뒤에서 갑자기 덤볐어.”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표정으로 묻는 물음에 서규하는 목에 힘을 주고 항변하듯 말했다.
“진짜야. 못 믿겠으면 나중에 CCTV라도 확인해 보든가.”
이내 정은희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째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그나마 크게 다치진 않아 보여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누가 그랬는데.”
“몰라. 존나 가리고 있어서 얼굴을 못 봤어. 성열이 형이 알아보고 연락 준대.”
간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악에 받쳐 씨근덕거리며 인정사정없이 밟아 대긴 했지만, 팔을 다친 바람에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내내 방어에만 급급하더니 두 놈 다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잡기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쯤 최 비서가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을 터였다. 유능하고 수완도 좋은 사람이니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언제 철들래. 응?”
“이번엔 진짜 내가 잘못한 거 아니라니까? 집에 가다가 그냥 당한 거라고. 알잖아, 나 요샌 쥐 죽은 듯이 착하게 사는 거.”
‘쥐 죽은 듯 사는 거랑 착하게 사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 맴돌았지만, 정은희는 한숨으로 대신했다. 어쨌거나 아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여기저기서 빈번하게 전화가 걸려 오던 것에 비하면 최근엔 개과천선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잠하긴 했다.
“짐작 가는 사람은 없어? 아니면 최근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거나.”
“없어.”
단호하게 대답하는 걸 보니 정말로 짚이는 데가 없는 모양이었다. 잠깐 아들을 바라보고 있던 정은희는 한 번 더 옅은 한숨을 흘린 뒤에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어찌 됐든 배 아파 낳은 막내아들이 이러고 있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먹고 싶은 건 없어?”
“좀 이따 치킨이나 피자 시켜 먹을 거야.”
“생각이 있니? 병원에 있으면서 배달 음식이 웬 말이야?”
“뭐 어때. 입은 멀쩡한데.”
“뭘 잘했다고 따박따박 말대꾸야.”
“아야! 아파.”
기어이 등짝 스매싱이 날아들었다. 그러다 일순 정은희는 멈칫했다. 환자복 위로 드러난 아들의 목덜미에 보라색 멍 자국 같은 것이 보였다.
이것도 그 미친놈들이 한 모양이었다. 새삼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정 여사는 다시금 고고하게 착석했다.
“박 교수님은 만나 봤어?”
“아까 왔다 갔는데, 깨끗하게 금이 가서 붙기만 하면 된대.”
“다른 말은 없었고?”
“어.”
있었어도 한 귀로 듣고 흘렸을 소지가 다분했다. 아무래도 가는 길에 자신이 한 번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간병인이 안 보이네.”
“내가 부르지 말라고 했어.”
“왜. 환자복 갈아입고, 머리도 감고 해야지. 가뜩이나 팔을 다쳐서 불편할 텐데.”
“혼자 하면 돼. 아님 성열이 형한테 도와 달라 해도 되고.”
“성열이가 네 뒤치다꺼리나 해 주는 사람인 줄 알아? 가는 길에 엄마가 간호사한테 물어볼게.”
“됐어.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거 불편해.”
입원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사람과 종일 같이 있는 건 생각만으로도 답답한 일이었다. 옷이야 천천히 갈아입으면 되고, 좀 성가시긴 하겠지만 머리도 한 손으로 충분히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엄마가 자고 갈까?”
“맘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지금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아, 아파! 아파!”
별로 세게 당기지도 않았건만, 귀를 붙잡고 엄살이란 엄살은 다 피우는 아들을 보면서 정은희는 거듭 한숨을 흘렸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로서 당연히 뒷바라지를 해야겠지만, 당사자인 아들놈이 질색하고 싫어할 게 뻔했다. 그리고 당연히 간병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준비도 해 오지 않은 상태였다.
“진짜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
“괜찮다니까. 무슨 일 있으면 간호사 부를 테니까 걱정하지 마.”
“개인적인 일로 부르기만 해 봐.”
“날 뭐로 보고 그래? 그 정도 상식은 있어.”
“말이나 못 하면.”
조금 더 대화를 나눈 뒤에, 정은희는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하라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섰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 다시금 누워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대는데 물품 보관대 위에 둔 핸드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뭐해?]
이차영이었다. 황금 같은 일요일에도 문자질인 걸 보니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울릴 사람이 없다거나.
곧장 답장을 보내려 했지만, 한 손으로 폰을 든 채 글자를 누르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결국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멀쩡한 손가락으로 자판을 톡톡 눌렀다.
[티비보ㄴㄴㅈ]
까지 입력했는데 손가락이 삐끗하면서 그대로 전송됐다. 서규하는 미간을 구긴 채로 다시금 문자를 보냈다.
[보는중]
그러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뭐 보는데? 몸은 괜찮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슨 회사 부장님한테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완벽한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자랑하는 문자를 보내는 인간은 제 주변에 이차영밖에 없었다.
[노갠찬 지금병언]
[원]
“아 놔, 좆같네.”
뜻대로 안 되는 일에 짜증을 내는데 갑자기 핸드폰 화면이 바뀌면서 ‘이차개’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보였다. 서규하는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 귓가로 가져갔다.
“왜.”
- 여보세요? 병원에 있다고?
“어.”
- 어디 많이 안 좋아? 어제 봤을 땐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팔을 좀 다쳤어.”
말하고 나서야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예상대로 이차영은 어쩌다 다쳤냐고 이유를 묻더니 병문안을 자처했다.
- 잠깐 보러 갈게. 어디 병원이야?
“됐어. 살짝 금만 간 정도야.”
- 그래도 병원에 있다는 말 들었는데 가 봐야지. 먹고 싶은 건 없어?
마침 TV에서 치킨 광고가 나왔다. 언제 타박을 줬냐는 듯, 의식의 흐름대로 떠올린 말이 서규하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럼 치킨이나 사 오든가.”
***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병실 문이 열렸다. 인기척을 느낀 서규하는 퍼뜩 상체를 일으켰다.
“왜 이렇게 늦었어?”
종일 제대로 먹은 것도 없고, 병원에서 나온 저녁밥도 그냥 돌려보냈더니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꾀죄죄한 자신과 달리 오늘도 이차영은 훤칠한 미모를 자랑했다. 그래서 더더욱 화딱지가 났다.
“오자마자 타박이야?”
“배고파. 빨리 내놔.”
서규하의 시선은 치킨 박스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이차영은 웃음을 흘렸다. 키우던 개를 앞에 앉혀 두고 간식으로 훈련을 하면 손이 움직이는 대로 시선이 따라왔는데, 지금의 서규하도 그럴 것 같았다. 끝까지 인내하던 개와 달리 대번에 쌍욕이 날아오겠지만.
박스를 건네받은 서규하는 희희낙락하면서 손잡이를 열었다. 치킨 한 조각을 서둘러 손으로 집었지만, 깜짝 놀라며 곧바로 떨어트리듯 놓았다.
“앗, 뜨거!”
바로 앞에서 사 오기라도 했는지 갓 튀긴 것처럼 뜨거웠다. 손을 털며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본 이차영이 묵묵히 나무젓가락을 떼서 건넸다. 사양하지 않고 받아 든 서규하는 뜨겁다는 말을 연발하면서도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치킨을 뜯었다. 그러다 뒤늦게 눈동자만 움직여서 옆을 쳐다봤다.
“먹을래?”
“됐어.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하도…… 잘 먹어서.”
뭔가 말을 한 번 고른 것 같은데. 미심쩍은 표정이 떠올랐지만, 서규하는 말을 거는 대신 다시금 치킨을 흡입했다. 예의상 물어봤을 뿐인데 정말로 젓가락을 들까 봐 내심 긴장하던 차였다.
센스 있는 이차영은 종이컵이 빌 때마다 콜라도 채워 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치킨을 뜯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고, 그때쯤 이차영이 입을 열었다.
“팔은 어쩌다 이렇게 됐어?”
“빨리도 물어본다.”
“먹을 때 말 거는 거 안 좋아하잖아.”
맞는 말이었다. 특히 배고플 때 집적대거나 성가시게 구는 건 ‘한판 뜨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맛있는 치킨도 사 왔겠다, 또 넘보지도 않았겠다, 기분이 좋아진 서규하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자초지종 설명이 끝나자 이차영이 드물게 표정을 굳혔다.
“별사람이 다 있네.”
“내 말이 그 말이야. 잡으면 좆창을 내 버리든가 해야지, 개새끼들.”
이차영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또 한 번 병실 문이 열리며 최 비서가 들어왔다.
손님이 있는 걸 보고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차영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까딱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두 사람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병문안 오셨나 봐요.”
“네. 일요일인데 수고가 많으시네요, 최 비서님.”
그 모습을 본 서규하가 의아한 듯 물었다.
“둘이 아는 사이야?”
대답은 최 비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만났거든요. 그건 그렇고, 차영 씨가 치킨 사 오셨나 봐요.”
최 비서의 왼손에도 커다란 치킨 봉지가 들려 있었다. 어릴 때부터 보살펴 온 도련님의 취향쯤은 훤히 꿰뚫고 있기에 알아서 사 온 거였다.
“저는 그냥 올 걸 그랬네요.”
“형이 먹으면 되지. 그건 그렇고, 알아보러 간 건 어떻게 됐어?”
“그게…….”
늘 시원시원하고 막힘없는 사람이 웬일로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슬쩍 곁눈질하는 걸 보니 이차영이 옆에 있는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편하게 말해. 이차영도 알고 있으니까.”
최 비서는 그제야 안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골목에 세워진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했고, 범인들 신원도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도 상대방에게 폭력을 가해서……. 쌍방 폭행으로 처리될 것 같습니다.”
서규하는 대번에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뭐? 쌍방 폭행?”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갑자기 누가 공격하는데, 병신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어? 당연히 정당방위로 쳐 줘야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정당방위는 성립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하.”
서규하는 제 분을 못 이기고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열 받아서 흠씬 두들겨 패긴 했다. 하지만 이쪽도 맞은 건 마찬가지고, 심지어 그 새끼들은 흉기까지 휘둘렀다. 만일 그때 재빨리 막지 않았더라면 팔이 아니라 머리통에 금이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데?”
“그쪽에서 맞고소를 진행하면 번거로워져서……. 벌금 좀 물고, 합의로 끝내는 게 가장 깔끔하긴 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시비를 걸어서 갚아 줬을 뿐인데도 쌍방 폭행이라니, 들을 때마다 좆같은 말이었다. 서규하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큰 뒤에 다시금 최 비서를 쳐다봤다.
“그 새끼들은 뭐라던데.”
도련님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최 비서는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쌍방 폭행으로 입건될 수 있다고 하니까 기고만장합니다.”
“기고망장?”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단 뜻입니다.”
서규하의 입에서 또 한 번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 새끼들 상습범 아냐? 뺑이치긴가 그런 거 하는 놈들 있잖아.”
이번에는 최 비서가 서규하에게 되물었다.
“뺑이치기요?”
“그거 있잖아. 취한 사람들 때리거나 돈 훔쳐 가는 새끼들.”
“아.”
최 비서의 입에서 짤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리랑치기를 말한다는 걸 깨닫고 입을 열었지만, 다시금 조용히 다물었다. 딱히 중요한 단어도 아니고, 옆에 친구도 있는데 굳이 지적해서 무안함을 줄 필요는 없었다. 이어서 도련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사주한…… 도련님 뒤를 밟으라고 시킨 사람이 있답니다.”
“내 뒤를 밟으라고 한 사람이 있다고?”
찌푸린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거짓말이 아니라, 근래 서규하는 본인이 생각해도 낯설 정도로 얌전하게 살았다. 굳이, 정말 굳이 문제가 될 만한 일을 찾아보자면 클럽에 가는 것뿐인데, 취해서 시비가 붙은 적도 없고 술값을 떼먹은 일도 없었다.
콜보이들과도 나름 매너 있는 섹스를 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이차영이 있어서 원나잇을 안 한 지도 꽤 오래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건수가 없는데…….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제 뒤를 밟으라고 시켰는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해답은 최 비서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대체 누구야?”
“일전에 카페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그 사람입니다. 직원에게 성추행을 하고, 아니라고 잡아뗐던.”
듣자마자 생각났다. 증거 영상을 보여 주자마자 360도로 변해서 슬슬 기던 찐따 새끼의 면상이.
“하, 그 좆만 한 새끼가…….”
확 그냥 CCTV 영상을 풀어서 매장해 버릴까.
하지만 직원인 김미선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미선의 얼굴은 나오지 않게끔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 해도, 그런 영상이 나돈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일 터였다. 또 혹시라도 누가 알아볼지도 모르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최 비서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합의로 진행할까요?”
“……할 수 없지. 대신 그 찐따 새끼 정보만 따로 빼 줘.”
“알겠습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없어. 그만 들어가 봐.”
“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올 때처럼 깍듯한 인사를 남기고 최 비서는 돌아갔다.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듣고만 있던 이차영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거야?”
“생각 좀 해 봐야지.”
서규하는 거듭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고 말았다. 말로는 생각해 본다고 했지만, 최 비서가 저렇게 보고했다는 것은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병철이한테 부탁해 볼까?’
친구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윤병철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아버지와 형님은 금융업의 탈을 쓴 대부업체와 여러 개의 유흥업소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보니 직원 중에는 필연적으로 어깨 형님들이 많았고, 덕분에 학교 다닐 때 소위 선생들도 포기했다는 선배들도 자신들 패거리는 건드리지 않았었다.
“아오, 썅….”
짜증과 더불어 급격한 피로함이 밀려왔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뒤에 서규하는 옆을 쳐다봤다.
“그만 가 봐.”
축객령을 내렸지만, 이차영은 일어서는 대신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빼 줄까?”
“뭐?”
“스트레스 많이 받은 거 같아서. 한 발 빼면 좀 풀리지 않겠어?”
이래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는 듯, 눈을 보고 있던 시선이 아래로 천천히 이동했다. 이차영의 시선이 멈춘 곳은 환자복 바지 위였다. 그제야 뭘 빼 준다는 것인지 이해한 서규하는 있는 대로 표정을 구겼다.
1인실이긴 해도 간호사가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짓거리를 했다가는 대번에 들킬 게 분명했다.
“둘이 붙어먹는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어?”
“안 들키게 하면 되지.”
“됐어, 새꺄. 퇴원하고 나면-”
연락할게, 라고 말함과 동시에 헐렁한 환자복 바지 속으로 이차영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
앗 하는 사이에 드로어즈 안까지 침범해서는 그대로 중심부를 붙잡았다. 제 것이라도 되는 양 서슴없이 쥐고 흔드는 손길에 서규하는 뒤늦게 사색이 되어 외쳤다.
“미쳤어?!”
“소리 낮춰. 밖에 들릴 수도 있어.”
놀라서 고개를 들자 다행히 병실 문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언제라도 간호사들이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은 여전했기에 서규하는 서둘러 놈의 손목을 붙잡았다.
“빼.”
이를 악물고 말했지만 이차영은 태연자약했다. 다시 한 번 시선이 문가를 향했다. 이쪽은 당장에라도 문이 열릴 것 같단 생각에 몹시도 초조한데, 원인 제공자의 얼굴은 평소처럼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놔, 새끼야.”
“…….”
“놓으라는 말 안 들…… 악!”
짧고 강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에 쥔 중심을 터트릴 것처럼 꽉 움켜쥔 이차영은, 서규하가 불시의 고통에 혼이 나간 틈을 타서 느긋하게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러곤 자세를 낮추며 팬티 밖으로 드러난 살덩이를 입에 물었다.
“……!”
서규하의 어깨가 또 한 번 튀어 올랐다. 너무 당황스러우니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든 말든 이차영은 본인의 목적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맛을 보듯 귀두부를 몇 번 핥더니, 이윽고 성기를 입에 문 채로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
실소가 절로 나왔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그 짓 못 해서 뒤진 귀신도 아니고, 정말로 병실에서 환자를 상대로 이런 짓을 할 줄이야.
원래부터 시도 때도 없이 밝히는 놈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차영은 딱히 그런 타입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완벽한 교육을 받은 도련님답게 평소엔 누구보다 정중하고 매너가 있고, 슈트 차림으로 있으면 단정함을 넘어서서 금욕적인 분위기까지 풍겨 대는 놈이었다. 물론 섹스할 땐 가감 없이 본성을 드러내고 종종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몰아붙이긴 하지만, 설마 병실에서 남의 좆을 빨아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상황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에 은근한 스릴이 차올랐다.
“흐읏…!”
몸은 정직했다. 뜨겁고 축축한 점막에 감싸인 성기는 눈치도 없이 단단해지며 부피를 키워 갔다. 입술로 조이면서 빨아 주고, 손으로는 음낭을 주무르면서 자극하니 발기하는 게 당연했다.
강하게 빨릴 때마다 발끝이 절로 움찔거렸다. 머리로는 ‘밀어내야 된다’ 생각하고 또 그게 맞는데, 뇌에서 만들어진 명령은 그 안에서만 맴돌 뿐 다른 곳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시선을 내린 순간, 자지에 한층 더 힘이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정돈된 흑갈색 머리카락에 조각 같은 얼굴은 오늘도 여전했다. 그런 놈이 제 걸 입으로 빠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갈 것 같았다.
‘밀어낸다고 물, 으읏, 물러설 새끼가, 윽, 아니니까.’
자극이 강해질수록 자기합리화의 비중이 점점 더 커져 갔다. 이차영은 오럴에도 재주가 있었다. 쫄깃한 바텀 못지않게 조이고 빨면서 동시에 손으로 구멍 안까지 휘저어 줄 때면 그야말로 환장할 정도로 좋았다.
“하… 으읏!”
결국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이차영의 머리카락에 두 손을 묻은 채로 서규하는 놈의 입에 대고 좆질을 해 댔다.
목구멍 안쪽까지 찔러 대니 밀어낼 법도 한데, 그러기는커녕 더 강하게 빨아 대는 압력이 느껴졌다. 속옷이 젖는 느낌이 났다. 몸 안에서 뭔가가 흐르는 걸 뒤늦게 깨닫고 애널에 힘을 줬지만 잠시뿐이었다. 계속해서 앞쪽에 가해지는 강렬한 자극에, 침대에 짓눌려진 엉덩이가 멋대로 들썩거렸다.
잠시 후, 이차영이 고개를 들자 흠뻑 젖은 성기가 드러났다. 한껏 발기한 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혼자서 꺼떡일 때마다 빠끔 벌어진 귀두 구멍에서 프리컴이 질질 흘러나왔다.
이차영이 다시금 손바닥으로 기둥을 감싸고 흔들었다. 이제는 말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애꿎은 이불을 두 손으로 쥐어뜯다시피 하면서 서규하는 쾌락에 오롯이 몸을 맡겼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음란함을 더했다.
“할 것 같아…!”
잇새로 말을 내뱉은 순간, 갑자기 자극이 사라지며 휑한 느낌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이차영이 성기에서 손을 뗀 채 물품 보관대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여기서 그만두는 건가 싶은 생각에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티슈를 여러 장 뽑아서 귀두를 덮듯이 감싼 뒤에 다시금 꽉 쥐고 빠르게 흔들어 댔다. 왼손은 가슴으로 가져가서 환자복 위로 젖꼭지를 꼬집어 댔다.
“흐읏!”
동시에 가해지는 자극에 신음을 참기도 버거웠다. 잠시 후에 손을 거둔 이차영이 솔깃한 제안을 건넸다.
“옷, 위로 올리면 빨아 줄게. 가슴 빨아 주는 거 좋아하잖아.”
시발, 누가 올릴 줄 알고?
이성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젖꼭지도 성감대인 것은 맞지만, 이런 곳에서 스스로 환자복을 올리면서까지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게 문제였다. 머리로는 못 들은 척 무시하자고 생각하는데, 손은 다른 주인이 있는 것처럼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자복 상의가 올라가면서 복근이 선명한 배가 조금씩 드러났다.
“더 올려 봐. 안 보여.”
서규하는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가 놓은 뒤에 환자복을 조금 더 위로 끌어 올렸다. 마침내 오른쪽 젖꼭지가 드러났다. 조금 전까지 희롱당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듯 뾰족하게 솟은 연갈색 유두를 바라보면서 이차영은 한 가지 더 요구 사항을 말했다.
“이쪽으로 가까이 와 봐. 옷은 계속 붙잡고 있고.”
“……바라는 것도 더럽게 많네.”
서규하는 툴툴대면서도 이차영이 시키는 대로 가슴을 드러낸 채 발과 엉덩이를 이용해서 침대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갔다. 허리를 감싸 안은 이차영이 다시 한 번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오른쪽 유두가 뜨거운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춥, 추웁-
소리가 울릴 때마다 찌르르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혀끝으로 빙글빙글 돌리다가 주변 살을 깨물면서 빨기를 반복하고, 손으로는 계속해서 성기를 흔들어 댔다.
“흣, 흐읏!”
“젖꼭지도 완전 단단해졌어. 말 안 했으면 서운했겠는데?”
“닥치고, 흣, 계속하기나 해.”
또다시 몸 안쪽에서 애액이 샘솟듯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까는 긴가민가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흐르다 못해 속옷이 살짝 젖는 느낌이 났다.
몸이 절로 배배 꼬였다. 의지로 멎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지금 그만두는 것도 싫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애무는 계속 이어졌다. 점점 고조되는 쾌감 속에서 어느 순간 버틸 수 없는 한계가 찾아왔다.
“……!”
추락하는 것처럼 아찔한 느낌과 함께 해방감이 찾아왔다. 서규하가 싸는 걸 알면서도, 이차영은 계속해서 그의 성기를 흔들면서 젖꼭지를 잘근잘근 깨물어 댔다.
근래 새롭게 생긴 버릇이었다. 언젠가 삽입한 상태에서 서규하가 사정할 때 계속해서 녀석의 페니스를 흔들어 준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자지러지듯 몸을 비틀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내벽도 덩달아 꿈틀거리면서 자지를 쥐어짜듯이 꽉꽉 조여 댔다. 그 이후로 이차영은 서규하가 다 쌀 때까지 페니스를 흔들어 대면서 목덜미나 젖꼭지를 깨물어 댔다.
“응, 흐읏! …하아….”
한동안 경련하듯 꿈틀대던 몸이 잠잠해졌다. 그제야 고개를 든 이차영은 정액이 흐르지 않도록 귀두를 감싸고 있던 티슈를 천천히 떼어 냈다.
“하아….”
서규하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헝클어진 호흡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뒤늦게 속옷과 바지를 끌어 올렸다. 이차영이 가고 나면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계속할까?”
“뭐?”
고개를 돌린 서규하는 뒤늦게 말뜻을 깨닫고 으르렁거렸다.
“돌았어? 여기가 무슨 호텔인 줄 알아?”
“좋다고 옷 끌어 올렸을 때는 언제고.”
“……!”
“싸는 것도 평소보다 오래 싸는 거 같던데.”
정곡을 찌르는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말만 그럴 뿐 실제로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지 이차영은 금세 화제를 전환했다.
“그 사람 처리하는 거, 내가 도와줄까?”
“무슨 말이야?”
“너 뒤쫓으라고 주도한 사람이 따로 있다면서. 네 성격에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 문제가 남아 있었다. 순간 서규하는 혹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됐어, 새꺄.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아?”
이번에는 이차영이 되물었다.
“내가 언제 너 속인 적 있어?”
“억지로 카드 빌려줘 놓고, 이자까지 처받아 간 거 잊었어?”
다시 생각해도 입 안이 썼다. 그날 저녁 고깃값이 이자인 줄 알았더라면, 최상급 부위로만 시키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거다.
“억지로는 아니지. 카드 빌려준다니까 완전 좋아했잖아.”
“눈알이 삐었네.”
툴툴대며 면박을 줘도 이차영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이번엔 조건 없이 그냥 도와줄게. 들어 보니까 상대가 잘못한 거 같은데, 합의로 종결되면 억울하잖아.”
“당연하지.”
억울하다기보다는 화가 났다. 그때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은 게 거듭 후회가 됐다.
“그러니까 나한테 맡겨. 진짜 대가 없이 그냥 해 줄 테니까.”
서규하는 애먼 곳을 쳐다보면서 고민하는 척했다. 하지만 조건 없이 그냥 도와주겠다는 말에 이미 80퍼센트 정도 마음이 넘어갔다.
연줄이나 돈이 있으면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인데, 이차영은 둘 다 넘치도록 쥐고 있는 놈이었다. 그러니 만족할 만큼 확실하게 처리해 줄 것이 분명했다.
‘한 번 더 말하면 못 이기는 척 오케이하자.’
하지만 이차영은 제 뜻대로 움직여 주는 법이 없었다.
“싫다면 어쩔 수 없고.”
……개새끼.
타이밍이 어찌나 끝내주는지, 사람을 갖고 노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서규하는 이를 부득 간 뒤에 짓씹듯이 말을 뱉어 냈다.
“나중에 딴말하면 죽을 줄 알아.”
“안 한다니까. 사람 말 좀 믿어.”
이윽고 이차영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최 비서님 번호 좀 알려 줘.”
“성열이 형 번호는 왜?”
“정보 공유하려고.”
그런 이유라면 대환영이었다. 서규하는 망설임 없이 11자리 숫자를 눌렀다. 그 모습을 본 이차영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번호 외우고 있나 보네.”
“쉬운 숫자라서.”
그런 이유도 있고, 한창 사고를 치고 다닐 땐 부모님보다 더 자주 연락한 사람이 최 비서였다. 핸드폰을 돌려받아서 저장한 뒤에 이차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결되면 연락할게.”
“알았어.”
“그럼 갈게. 몸조리 잘해.”
서규하의 머리카락을 사락사락 헤집은 뒤에 이차영은 병실을 나섰다.
머잖아 정적이 찾아왔다. 서규하는 나른한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등을 기댔다. 하지만 이내 인상을 찌푸리면서 침대 밑으로 내려섰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아래가 여전히 젖은 채였다.
“귀찮아 죽겠네.”
한 팔로는 옷을 벗는 일도 쉽지 않았다. 무릎까지 팬티를 끌어 내린 순간 표정이 좀 더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소변을 찔끔 지린 것처럼 동그랗게 젖은 자국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다행히 시트는 멀쩡했다. 다소 힘겹게 옷을 갈아입은 뒤에 젖은 팬티는 돌돌 말아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아무리 그래도 최 비서에게 속옷 빨래까지 시키는 파렴치한은 아니었다.
***
입원했다고 친구 놈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이 무색하게, 담당의는 이튿날 바로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꺼냈다. 최 비서가 수납하러 간 동안 서규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이틀간 질리도록 한 게임을 또 하고 있는데, 지잉 하는 진동음과 함께 이차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
대수롭지 않게 누른 것도 잠시, 이내 서규하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문자에 서너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얻어터진 찐따 새끼의 사진이었다.
자업자득이니 불쌍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안 본 눈 사고 싶네. 속으로 생각하면서 서규하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뒤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이유를 알겠다는 듯 여유롭게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 사진 확인했어?
“어. 살아 있긴 한 거지?”
- 당연하지. 사람 죽이는 데는 취미 없어.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쨌거나 하루 만에 놈을 찾아내고, 곤죽이 되도록 패 놓은 걸 보니 놀랍기는 했다. 역시 돈이 좋긴 좋은 세상이었다.
- 뒷일은 걱정 안 해도 돼. 알아듣게끔 잘 타일렀다고 하니까.
“걱정은 개뿔.”
말은 이렇게 해도 내심 마음이 놓이긴 했다. 길 가다가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습격은 두 번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최 비서가 돌아왔다. 흘끗 그쪽을 쳐다본 뒤에 서규하는 말을 이었다.
“주말에 시간 비워 둬. 밥 살게.”
- 어차피 금요일에 볼 거 아니었어?
“? 그런 약속 한 적 없잖아.”
- 우리 집으로 올 줄 알았지. 섹스하러.
필터링이라곤 없는 말에 서규하는 멈칫했다.
“……팔이 이 모양인데 뭐라는 거야.”
- 왜. 이틀 전에는 병실에서도 잘만 세웠잖아.
“닥쳐, 좀.”
갑자기 나온 험한 말에 최 비서가 놀란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든 말든 서규하는 인상을 팍 구긴 채 통보식으로 말했다.
“토요일에 다시 전화할게.”
- 알았어. 금요일 저녁도 비워 둘 테니까 생각 있으면 연락해.
“안 해, 새끼야.”
전화를 끊자마자 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오늘 퇴원해도 괜찮겠습니까?”
“의사가 가도 된다잖아. 계속 병원에 있으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게임기까지 가져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종일 갇혀 있다시피 하니 답답하다 못해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뼈가 완전히 붙으려면 어차피 시일이 걸릴 테니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나을 듯했다.
차에 오르자 최 비서가 룸미러로 뒤를 보면서 문득 생각났다는 투로 말했다.
“사모님이 본가로 오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서규하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리로 가, 그럼.”
꼰대가 있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거절했겠지만, 지금쯤이면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안 그래도 집에 볼일이 생겼으니 겸사겸사 가면 될 것 같았다.
***
내리쬐는 햇살은 오늘도 여전했다. 택시에서 내린 서규하는 익숙한 골목으로 걸어갔다. 약속 장소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손에 든 핸드폰이 울렸다.
-이차개-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는 짧게 혀를 찼다. 꼴랑 2분 늦었는데 전화질은. 수신 거부 버튼을 누른 다음 식당 문을 열자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차영이 보였다.
“미안. 차가 막혀서 좀 늦었어.”
미안하다는 말은 좀처럼 하는 법이 없지만 이번에는 순순히 사과부터 했다. 누가 까다로운 새끼 아니랄까 봐 이차영은 약속 시각에 늦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또 누가 제 물건에 조금만 손을 대도 난리를 쳐서 어릴 땐 그 때문에 싸운 적도 많았다.
다행히 놈의 표정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점심 특선 2인분을 주문한 뒤에 서규하는 물수건에 손을 닦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회사가 밀집한 지역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정장 차림의 손님들이 많았다. 이차영도 마찬가지였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일 게 분명한 블랙 슈트에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세팅해서, 누가 봐도 잘나가는 회사원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 뒤에 서규하는 입을 열었다.
“왜 오늘 보자고 한 거야?”
퇴원 후 본가에 가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이차영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내일 점심때 보는 건 어떠냐는 말에 서규하는 순순히 응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었고, 답례로 줄 것도 있었다.
“주말에 갑자기 출장이 잡혔어.”
그 말에 서규하는 눈썹을 꿈틀하며 되물었다.
“주말인데 출장을 가?”
“거래처에서 일정을 앞당기고 싶다고 갑자기 연락이 왔어.”
“악덕 기업이네.”
그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건강식을 표방하는 식당답게 각종 나물 반찬과 생선 등이 푸짐하게 식탁을 채웠다. 오늘 점심 메뉴를 픽한 사람은 이차영이었다. 이탈리안 음식이나 프랑스 요리를 즐길 것처럼 생겨서는 의외로 꼰대와 입맛이 비슷했다.
“그 새낀 어떻게 처리한 거야?”
후루룩, 국을 떠먹으면서 물었더니 이차영이 금세 알아듣고 대답했다.
“네가 당한 대로 해 줬어.”
안타깝게도 서규하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새벽에 쫄랑쫄랑 귀가하는 걸 끌고 가서 손봐 줬다 하더라고. 잔뜩 겁먹어서, 시작하기도 전부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더라.”
일상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문득 서규하의 머릿속에 어제 받았던 사진이 떠올랐다. 팔다리가 결박된 데다, 못 알아볼 정도로 쥐어 터진 얼굴만 봐도 한두 대 때린 걸로 끝나진 않았을 각이었다.
“너한테 피해 가는 건 없지?”
그 말에 이차영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입가엔 옅은 미소를 띤 채였다.
“걱정해 주는 거야?”
“걱정 같은 소리 하네. 괜히 나한테까지 불똥 튈까 봐 그런 거야.”
“안심해도 돼. 어제 말했잖아. 이제 그쪽으로는 얼씬도 안 할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는데.”
“약점을 잡았거든.”
궁금하긴 해도 딱히 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눈살이 찌푸려질 법한 일일 게 분명했다.
어쨌든 잘 처리했다고 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뒤에 밖으로 나온 서규하는 집에서부터 챙겨 온 쇼핑백을 건넸다.
“받아.”
이차영은 순순히 손을 내미는 대신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뭔데?”
“우리 아줌마가 만든 손만두.”
“손만두?”
“어릴 때 존나 좋아했잖아. 얼려 온 거니까 구워 먹든지 삶아 먹든지 마음대로 해.”
이번엔 그냥 도와주겠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진짜 입닦하면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뭔가를 사 주려니 놈의 취향 따위 알 리가 없고, 돈이라면 썩을 정도로 넘쳐 나는 놈이니 딱히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본가의 도우미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만두였다.
어린 시절 이차영이 집으로 놀러 왔을 때 간식으로 만두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차영은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라면서 무척 좋아했고, 이후로도 만두가 나오면 남김없이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다. 늘 고고하고 차분하던 녀석이 뭔가를 먹으면서 그렇게 열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이라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째 이차영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쇼핑백에 시선이 고정된 것을 보고는 불퉁하게 말했다.
“먹기 싫으면 버려도 되고.”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차영이 그제야 손을 뻗으면서 대답했다.
“기억하고 있었어?”
“맨날 내 거까지 다 처먹었잖아. 마침 어제 집에 간 김에 아줌마한테 만들어 달라고 했어.”
“감동이네. 잘 먹을게.”
이차영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다음 시선을 거듭 마주했다.
“잠깐 내 차로 같이 가자.”
“네 차는 왜.”
“나도 줄 게 있거든.”
“뭔데?”
“가 보면 알아.”
짤막하게 대답한 이차영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딱히 손해 볼 건 없었기에 서규하는 순순히 그 뒤를 따랐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이차영은 차에 잠깐 탈 것을 부탁했다. 귀찮다고 툴툴대면서도 서규하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이왕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뭔지는 몰라도 꼭 받아 갈 생각이었다.
“대체 뭐길래 차에 타라는 거야?”
이차영은 대답 대신 조수석 문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멀쩡하던 시트가 갑자기 뒤로 젖혀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당황해서 고개를 들자 어느새 옆으로 넘어와서 제 위에 올라탄 이차영의 얼굴이 보였다. 기다란 손가락이 넥타이 매듭을 아래로 끌어 내렸다.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다가 서규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쳤어?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줄 거 있다고 했잖아.”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깁스를 하지 않은 쪽 어깨를 내리누르는 악력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손으로 서규하의 바지를 끌어 내리면서 이차영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빨아 줄게.”
뭘 빨아 준다는 거냐고 물을 틈도 없었다. 바지와 속옷이 엉덩이 아래로 내려감과 동시에 이차영이 드러난 페니스 끝을 입으로 물었다.
“……!”
믿을 수가 없었다. 줄 게 있다기에 따라왔을 뿐인데, 밥 잘 먹고 나와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안 비켜?”
오른손으로 놈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듯 밑동을 꽉 움켜쥐는 바람에 금세 힘이 빠졌다. 한술 더 떠 셔츠 안으로 손이 파고들었다. 어렵지 않게 목표물을 찾아낸 이차영은 자그마한 젖꼭지를 비틀듯 꼬집으면서 계속해서 성기를 빨았다.
“흣, 흐읏!”
금세 신음이 흘러나왔다. 약한 부분을 위아래로 동시에 자극해 대니 속수무책이었다.
한참 뒤에 성기를 뱉어 낸 이차영이 기둥을 뒤로 젖히고 점점이 입을 맞췄다. 그 아래, 말캉한 고환을 입술로 물고 쪽쪽 빨아들이자, 잡아 뽑을 것처럼 머리카락을 움켜쥐는 힘이 느껴졌다.
이차영의 앞섶도 부풀기는 마찬가지였다. 서규하의 성기를 입에 문 채로 서둘러 자신의 바지 지퍼를 끌어 내렸다. 손도 안 댔는데 혼자서 음탕하게 벌름대는 구멍을 보니 당장 쑤셔 박고 싶어졌다.
“흐읏!”
동시에 손가락 두 개를 밀어 넣자 서규하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늘 그렇듯 쫀쫀하게 감겨 오는 점막을 느끼면서 섹스할 때처럼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이미 젖어 있어서 포인트를 자극해 줄 필요도 없었다. 안에 든 손가락을 크게 휘저을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울렸다.
“하앗!”
유달리 도드라진 부분을 일부러 꾹 누르자 머리맡에서 자지러지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차영은 지퍼 사이로 꺼낸 페니스를 구멍에 맞춘 다음 그대로 삽입하기 시작했다.
“아, 아파!”
넣자마자 훨씬 빠듯하게 조이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서규하의 가슴이 크게 들썩거렸다. 눈가엔 어느새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이차영은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숨 크게 쉬고 긴장 풀어. 잘 먹을 수 있잖아. 응?”
“아프다고, 개새끼야…!”
“금방 좋아질 거야.”
“시발, 우웁!”
시끄러운 입을 제 입으로 틀어막았다. 혀를 얽으면서 빨아 주자, 언제 툴툴댔냐는 듯 어깨를 붙잡은 채로 무슨 생명 줄이라도 만난 것처럼 혀를 빨아 댄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여튼 단순하면서도 알기 쉬운 놈이었다.
“응, 으웁!”
계속해서 입막음용 키스를 퍼부으면서 이차영은 조금씩 허리를 움직였다. 그때마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막힌 신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마침내 뿌리 끝까지 밀어 넣는 데 성공했다. 입술을 떼자 끈적한 타액이 길게 이어졌다.
“다 들어갔어.”
“알아, 새끼야.”
아래가 한껏 벌어지고, 몸속에서 제 것이 아닌 맥박이 요동치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쪽, 볼에 입을 맞춘 뒤에 이차영은 서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서규하는 저도 모르게 이차영의 팔뚝을 붙잡았다. 값비싼 슈트가 구겨지는 것도 모른 채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처, 천천히 해!”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다. 짙은 선팅 때문에 바깥에서 안을 볼 수는 없지만, 평소처럼 했다가는 차체가 요란하게 들썩일 게 뻔했다.
그래서 격렬한 허릿짓 대신 뿌리 끝까지 밀어 넣은 채로 빙글빙글 엉덩이를 돌려 댔다. 그때마다 서규하는 펄떡대며 난리를 쳤다. 단단한 귀두가 몸속 어딘가를 누를 때마다 눈앞에서 별이 튀었다.
“흣, 윽, 읏, 하앗!”
입을 다물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어느덧 자세가 역전됐다. 제 허벅지 위에 서규하를 앉힌 채로 이차영은 섹스를 이어 갔다.
매끈한 목덜미에 시선이 닿았다. 한 손으로 서규하의 뒷목을 감싼 이차영이 그대로 입술을 가져가서 잘근잘근 깨물었다. 귀에 닿는 신음 소리가 좀 더 커졌다. 얕은 추삽질을 계속하면서 서규하에게 물었다.
“아직도 아파?”
“흣, 그럼 몸속에, 앗, 흐읏, 그런, 그런 게 들어와 있, 는데, 아 씹….”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자신이 병신 같아서 짜증이 났다. 결국 말하는 건 포기하고, 서규하는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서 자신의 성기를 붙잡았다. 빠르게 흔들어 대자 쾌감은 배가 됐다.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가면서, 빠듯하게 뒤를 채우고 있는 것이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이차영이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서규하는 뒤를 쑤셔 주기만 해도 싸는 게 가능해졌다. 그러니 앞을 만지지 못하게 하고 뒤쪽 자극만으로 절정을 끌어낼 수도 있지만, 오늘은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스스럼없이 잡고 흔드는 걸 보니 평소보다 힘들긴 한 모양이었다.
“울어?”
“조건, 흣, 반사야.”
“무조건반사겠지.”
“닥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불리하면 닥치라고 말하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그리고…….
“……조건 반사라도 괜찮을 거 같네.”
“뭐?”
“아냐. 아무것도.”
허릿심으로 아래를 쳐올리자 금세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들썩거린다. 이차영은 기술 좋게 한 번 더 자세를 바꿨다. 시트에 서규하를 눕힌 채로 잘게 허리를 흔들어 대다가, 깊숙이 밀어 넣은 상태에서 등 근육을 경직시키며 정액을 분출했다.
“후우…….”
긴 숨을 내뱉으며 눈을 뜨자 서규하의 배에도 정액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거의 동시에 싼 모양이었다.
팔을 뻗은 이차영이 시트 사이의 수납함을 열고 티슈를 꺼냈다. 절정의 흔적을 대충 닦아 준 다음, 아직 구멍 속에 들어 있는 성기를 빼내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티슈를 몇 장 더 뽑아서 서규하의 엉덩이 밑에 깔았다. 이어서 천천히 허리를 뒤로 물렸다. 완전히 빼자마자 방금 싼 정액이 흘러나왔다.
그때까지 널브러지다시피 한 채 숨을 고르던 서규하가 갑자기 고개를 확 들고 외치듯 물었다.
“안에 쌌어?”
“콘돔이 없어서.”
“그럼 싸기 전에 뺐어야지, 개새끼야!”
“그럴 만한 정신이 없었어.”
팔꿈치로 힘들게 상체를 일으킨 서규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한층 더 인상을 구겼다. 어쩐지 구멍 주변이 간지럽더라니.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티슈 위에 웅덩이처럼 흥건하게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아오, 썅…….”
그뿐만이 아니었다. 셔츠 안에 받쳐 입은 민소매 티에도 하얀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하필이면 검은색이라서 더욱 눈에 잘 띄었다.
“비켜, 새끼야.”
선물은 개뿔.
별 의심 없이 따라온 자신이 병신 쪼다였다. 엉덩이 아래에 깔려 있는 티슈를 신경질적으로 구겨서 내던진 뒤에 서규하는 발목께까지 내려가 있던 속옷을 끌어 올렸다.
“안에 남은 거 빼야 될 텐데.”
“신경 꺼.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서규하는 옆을 돌아봤다. 얼굴은 여전히 사납게 구긴 채였다.
“앞으로는 콘돔 없으면 하지 마.”
임신이 될 일은 없겠지만, 생으로 하는 건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놈이 싸지른 정액을 보자마자 소름이 돋은 게 그 증거였다.
“뒤처리 때문에 그래? 내가 해 준다니까.”
“안에 싸지르는 거 자체가 싫어. 기분 더럽다고.”
일순 이차영은 표정을 굳혔지만 금세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았다.
“너무 야박하게 그러지 마. 어차피 젖어 있는데, 거기에 내 거 살짝 더하는 것뿐이잖아.”
“……죽고 싶지 지금?”
“농담이고, 앞으로는 주의할게. 이번엔 나도 엉겁결에 그런 거야.”
변명이 아니라, 이제껏 꽤 많은 상대와 성관계를 했어도 체내 사정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임신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거나,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는 인간들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점에서 서규하는 안심이었다. 임신할 걱정이 없는 베타에, 섹스를 빌미로 뭔가를 뜯어낼 만한 놈도 아니었다. 만일 둘 중 하나라도 걸리는 부분이 있었으면, 녀석의 말대로 싸기 직전에 빼서 배에 뿌렸을 거다. 아니면 오는 길에 편의점 콘돔이라도 샀거나.
“한 번만 더 멋대로 이러면 죽을 줄 알아.”
짜증스럽게 내뱉곤 차에서 내리려는 걸 보고 이차영은 서둘러 말을 꺼냈다.
“이번 주는 출장 때문에 못 볼 거 같아.”
서규하는 인상을 팍 구긴 채로 뒤를 돌아봤다.
“누굴 새대가리로 알아? 어제 말했잖아.”
“혹시 잊어버리고 기다릴까 싶어서.”
이어서 싱긋이 웃는 얼굴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벌려 주지 마. 그래서 지금 한 거니까.”
어이가 없는 말에 서규하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다리를 벌리든, 딴 새끼 구멍에 박아 넣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상관은 없지만……. 내 성격 알잖아. 마음에 드는 건 나 혼자만 갖고 싶어 하는 거.”
“헛소리하고 있네.”
신랄하게 내뱉은 뒤에 서규하는 차에서 내렸다. 쾅! 차체가 흔들릴 정도로 거칠게 문을 닫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또 한 번 욕설을 내뱉으면서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였다.
“돌겠네, 진짜.”
뭔가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선연했다. 참으로 좆같은 개새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