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3화 (3/237)

# 3

회귀 (2).

“그러니깐, 이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꼬?”

“아니..그러니깐 조끔 생각이 나고 잘 기억이 안 나네..”

어릴 때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사이다 보니 어린 우리 형제들을 낮에는 외할머니가 키우셨는데,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어릴 때 외할머니에게 배운 억양 강한 부산 말투가 남아 있었다.

이건 나중에 어른이 되고 뮤지컬배우 생활을 할 때 겨우 고쳤는데, 몸이 아직 기억하는지 형이 부산 말투를 쓰면 나도 모르게 사투리 억양이 나왔다.

“엄마! 소원이 단식하고 하더니 기본적인 근의 공식도 기억이 안 난단다. 이제 고1인데 중학교 때 배운 근의 공식을 모르면 어짜자는 기고?

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이 너그 아버지 뭐하시노? 물으면 아버지가 수학 쌤인데에? 하면 참 좋큿따 맞재?”

“누가! 좋다켔나?”

“이런 드립은 안 까먹고 다 기억하잖아! 이건 네가 큰 그림을 그리는 거네. 설마 학교수업 못 따라가는 척해서 전교 꼴찌해가꼬 엄마 설득해서 자퇴하려는 그런 큰 그림 그리는 거 아니가?”

“아니라니깐! 진짜 대학교 가서 활동할 거라니까.

안 가르쳐 주려면 치아라! 마 됐다. 더러버서 니한테 안 배운다. 흥이다!!”

다행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기 전인 겨울 방학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한방을 쓰는 형은 나름 수재인데도, 방학이 끝나면 고3이라고 공부를 더 열심히 했는데, 나도 멀뚱히 있기에는 뭔가 이상해서 내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다른 과목은 그럭저럭 생각이 나고 했는데, 공통수학책은 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근 13년을 수학책을 볼 일이 없었으니, 기억을 못하는 게 당연했다. 다행히 모델과 뮤지컬 일을 하면서 영어를 자주 써서 영어는 오히려 쉬웠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부모님 방에 가서 아빠가 사용하는 책꽂이에 있는 중학생 수학책들을 들고 와서 중1 수학부터 다시 복습을 시작했다.

형도 내가 장난기 없이 심각하게 앉아서 중학교 수학책을 보자 뭐라고 하려다가 다시 앉아서 자기 공부를 했다.

우린 아빠가 방학 때 수학 선생님들 교육연수에 가서 배웠다면서 작게 울리는 종소리나 비 내리는소리, 바람소리, 장작타는 소리가 나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란 소리를 틀어두고 공부를 했는데, 이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제대로 집중하는 법을 알았는지 방학 내내 형과 하루 종일 방에서 공부만 했다.

키가 181이었지만, 나중에 모델이든 뭐든 키가 더 크면 좋다는 걸 알기에 방학기간 중에도 아침에는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된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오후에 롤(LOL)을 하러 가자는 친구들에게는 부모님 핑계를 대며 집에서 고3인 형과 공부만 하면서 방학을 보냈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배정받은 신상고에 가니 예전에 한 번 겪었던 일이라 기억이 어렴풋이 나긴 났다.

남녀공학에 해운대신도시 안에 있는 학교라 나름 잘사는 애들이 많았고, in서울로의 진학률도 괜찮은 학교였다.

채 1년도 다니지 않았지만, 나중에 뮤지컬을 했을 때, 동창이라고 몇 명이 내 인스타나 페북에 아는 척을 했던 기억도 있었다.

학교생활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못했다.

내가 왜 시간 회귀를 했는지에 대한 고민과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다들 지나가야 하는 고등학교 생활을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로또를 한다거나 주식으로 돈을 모아라는 그런 이유로 신이 나를 시간 회귀시켜준 것 같지는 않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본준비를 하고 있으면 그 계기가 올 것으로 생각하고 매일 하루하루를 열심히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고3인 형과 같은 방을 쓰고 같은 학교라 형과 늘 같이 움직이는 생활을 하자 자연스레 그런 단순한 삶이 될 수 있었다.

다만, 모델에이전시에서 픽업을 받을 정도의 외모와 키이기에 같은 반 여자 동기들은 물론이고 여자 선배들에게도 고백을 엄청 받아야 했다.

예전에는 모델에이전시 핑계를 대며 연예계 진출 때문에 몸을 사린다고 여자아이들의 고백을 거부하고 했는데, 이제는 핑계가 없어서 좀 애매했다.

전생에서는 모델 일을 시작하며 회사에서 제공한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여자가 꼬였고, 뮤지컬로 전향한 이후에도 여자가 많았다.

설령 다른 여자를 사귄다고 하더라도 나를 살려 주었던 지현이에게 사과를 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았기에 고백을 해오는 여자아이들에게는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이야길 하며 거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엄마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누구인지 추궁을 받았지만, 나중에 소개해 준다고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래에 나를 살려주었던 지금의 이지현은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터이기에 소개하고 싶어도 어디에 사는지 모르니 해줄 수가 없었다.

“야! 윤소원~ 우리 이번 주 토요일에 오디션 보러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내가 모델에이전시의 픽업을 받았고, 연예계로 데뷔한다고 떠들고 다닐 때 친했던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다들 연예인을 지망하고 있었는데,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대부분 주말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기획사 오디션이나 슈퍼스타 오디션, K송스타 같은 텔레비전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예심을 보러 다녔다.

우리 또래에게 오디션 열풍이 얼마나 심한지, 몇몇 애들은 힙합이나 랩도 제대로 못 하면서 뜨기 위해 ‘쇼 미더 달러’ 같은 힙합 오디션도 보러 갔고,

걸그룹 ‘미스A플러스’의 ‘지수’처럼 오디션장에 온 참가자나 따라온 친구 중에서도 스카우트되어 연예인이 되는 예도 있기에 기획사 사람들에게 얻어걸리길 바라며 여러 오디션장을 따라다니는 애들도 있을 정도였다.

“주말에 할 일도 없는데 그러면 따라갈까? 이번 주는 무슨 오디션이야?”

“B1A6 아이돌 그룹이 있는 MW기획사 오디션인데, 조만간에 여돌 한팀이 데뷔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B1A6 뒤를 잇는 남돌그룹이랑 여돌그룹 연습생 다 뽑는다고 하더라. 3반에 진욱이도 같이 가기로 했어.”

진욱이는 나처럼 키가 큰 친구였는데, 나중에 내가 모델 쪽에 있을 때 대학교 방송연예학과로 진학한 이후 모델로 데뷔했었던 친구였다.

나도 모델 쪽으로 탑이 되진 못했지만, 진욱이는 나보다도 모델 쪽에 더 재능이나 운이 없었는지 1~2년 만에 사라졌었다.

기껏해야 모델 일을 하면서 몇 번 얼굴을 본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같은 학교에 다녔다고, 둘 다 같이 일을 할 땐 같이 다녔었다.

‘B1A6가 있는 기획사에서 이때쯤이면...아! ‘오 뷰티 걸’이구나. 나름 이름 알리다 데뷔 2년 후 인가부터 확 떴었는데, 가서 점쟁이 노릇 하면 재미있겠다. 후후’

“어키! 토요일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되냐?”

“미영이 아버지가 오디션 보러 가는 애들 다 태워주시기로 해서 스카이 아파트 입구로 아침 6시 반까지만 오면 된단다.”

미영이란 친구도 잘 기억이 안 나는 거로 봐서는 연예인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안타까웠다.

“오키 알았으. 토욜 날 보자.”

*

*

“엄마! 나 토요일 날 친구 따라서 서울가요. 내가 오디션 보는 게 아니고, 친구가 오디션 보는데 친구 아버지가 태워준다고 다 같이 가재요.”

“친구 누구? 오디션도 안 보면서 왜 가는 거야? 몇 명이 가는데?”

“그 키 큰 애 진욱이라는 애랑 미영이랑 경태랑 같이 가요. MW기획사라는데, 혼자 가면 떨리고 하니깐 친구들이 같이 가서 긴장하는 거 좀 줄여주고 하는 그런 게 기본이야.”

내가 모델에이전시 계약서까지 받아들고 와서 생떼를 부린 것 때문에 오디션이란 말만 나와도 부모님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꼬치꼬치 물으셨다.

결국, 내가 자초한 것이라 고분고분 묻는 말에 다 대답을 하고 미영이 아버지의 연락처까지 다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서울로 가는 걸 허락 맡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겪었던 모델계이든 배우 쪽이든 아이돌 쪽이든 오디션은 매주 몇 개씩 진행되었다.

기획사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오디션은 마치, 24시간 내내 움직여야 하는 연예계란 기계가 사용할 부품과 연료들을 재고처럼 쌓아두기 위해 열리는 부품 등록 행사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 제출한 서류와 사진, 영상을 보고서 오래되어 부서져 버린 부품을 대신할 새로운 부품을 찾는 것이 기획사 오디션의 목적이었다.

운이 좋으면 맞는 자리가 바로 생겨서 오디션 3개월 만에 연예계란 기계 안으로 부속품이 되어 데뷔하게 되지만, 운이 없으면 기획사 연습생 5년 차, 10년 차까지도 창고 재고처럼 쌓여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맞는 자리에 대한 조합 점이 많은 큰 기획사, 속칭 빅4 기획사로 들어가기 위해 기획사 맞춤 오디션을 준비하기도 하고, 바로 데뷔가 가능한 데뷔 조로 뽑아주는 기획사를 찾아 매주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아이들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실용음악학원이나 연기지도 학원 간에도 라인(Line)이 있어서 어디 학원 출신이면 가산점이 있어서 쉽게 어디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꽂혀 들어간다는 소문까지 있다 보니 애꿎은 준비생들만 죽어났다.

그렇다고, 오디션을 통과해서 기획사 소속 연습생이 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서부터도 다시 경쟁이 시작된다.

빅4 기획사의 경우에는 각 회사별 연습생들만 수십 명이 있을 정도였으니 거기서 다시 경쟁을 이기고 데뷔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연습생 간의 경쟁에 이겨 막상 데뷔를 하더라도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 버린 아이돌 판에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도 흔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과 객석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성공한 아이돌이 되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 였다.

모델계에서는 선천적으로 키가 크고 비율이 좋으면 노력으로 워킹을 만들어서 세계 어느 패션 무대든 다 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연예계에서 특히나 아이돌이나 배우 쪽은 노래를 잘한다고, 키가 크다고, 잘생겼다고, 연기를 잘한다고 무조건 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돌로 뜰 수 있는 조건은 기획사를 잘 만나고, 작곡가, 작사가를 잘 만나서 좋은 곡을 받는 게 첫 번째 조건이고, 데뷔할 때 동시에 컴백하는 대형 아이돌이 없어야 하는 ‘운’이 두 번째 조건이었다.

이후에는 입덕을 시키는 포인트를 잘 잡아 팬들을 입덕시켜 고정 팬을 만들어야 하는 게 세 번째인데 여기까지만 어느 정도 된다면 반은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덕 포인트라는 개성있는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다면 기형적인 한국 음원시장에서 제대로 된 음원 성적이나 티비 예능프로에 얼굴을 내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거였다.

위의 3가지 조건을 만족하게 한 후 데뷔곡이 음원차트 20위권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면 이미 작더라도 팬덤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때부터 그 아이돌에게 들어간 투자금 회수와 흑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기획사는 1~2년을 더 꾸준히 투자하게 된다.

그러다 운 좋게 음원차트 1위를 찍는다면 바로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들어오는 러브 콜을 받으며 1년도 되지 않아 그에 따른 부가수익들이 ‘억.억’하는 소리가 되어 들려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기획사에서는 성공확률이 1%라도 계속 아이돌팀을 만들고 계속 데뷔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10번 하더라도 1번만 제대로 성공하면 그 손해를 다 만회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다시 연습생 교육에도 사용되기도 하니 작으나마 선 순환의 생태계가 만들어져서 지금의 K-POP 한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성공하기가 희박한 레드오션이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한방에 만회할 수 있다는 그 한방의 매력에 기획사도 미쳐있고, 화려하게 살고 싶은 아이들은 그 환상과 꿈을 쫓아 오늘도 아이돌이 되기 위해 새벽부터 오디션 준비를 했다.

그 힘든 판에 스스로 뛰어들기 위해 미영이를 포함한 우리 또래 4명이 미영이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방배동에 위치한 MW기획사에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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