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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진료소-112화 (112/175)

112화 여행을 떠나요 (1)

“현재 아비루나 왕국 의학계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주셨으면 합니다.”

“의학계 정보를?”

빈센트 공자는 의문을 품었다. 보물이나 영지를 요구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예상한 대가보다 못한 것이었지만, 빈센트 공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비록 준이 남작위로 바로 승작됐다는 정보는 늦게 알았다곤 해도, 그가 마이더스 상단과 손을 잡고 의료 사업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혹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시는 건지.”

“아뇨.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도의 의학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보가 부족해서. 이런 시골 마을에서 지내다 보면 바깥소식이 궁금해지곤 하지요.”

“으음.”

빈센트 공자는 생각에 잠겼다.

가문의 정보망을 이용한다면 준의 요구는 쉽게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정보를 넘겼을 때 그것이 어떻게 활용되느냐였다.

가스톤 가문은 자체 상단을 보유하고 있고, 또 의료 사업에도 손을 뻗은 상황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제공한 정보가 경쟁 상단에게 유용하게 쓰이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공자의 지위에도 치명적이었다.

“정확히 어떤 정보가 필요하신 겁니까?”

“왕국에 진료소가 몇 개가 있고 치유사가 몇 명이나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이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군요. 판매 예정인 약품이 있다면 그 정보도 부탁드립니다. 의학계와 관련된 주요 소식을 정리해 주셔도 좋고요.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면 더 좋을 거 같습니다.”

요구사항이 하나둘 덧붙여질 때마다 빈센트 공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 정도면 전반적인 정보라고 할 수가 없을 거 같은데……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가스톤 후작가라면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요.”

“그게 아니라, 제가 만약 정보를 드리게 되면 마이더스 상단의 활동을 돕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서 좀 난처해집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대공자시니 가문의 중책을 맡고 계실 터고.”

준은 다리를 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세상 여유로운 태도로 공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마이더스 상단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부탁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좀 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겠군요.”

잠시 말을 끊은 준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공자에게 조금 더 가깝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게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도 치유사의 수는 부족하고, 환자들이 진료소로 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래서 상비약을 만드셨다는 이야기는 건너 들었습니다.”

빈센트 공자는 관심을 표했지만 그럴듯한 명분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속으론 더 경계했다.

준이 계속 말했다.

“의료 수준을 끌어올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부족한지 알아야 하지요. 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야 모든 사업들이 마찬가지지요.”

“지금은 제가 마이더스 상단과 손을 잡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준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준에게는 그것이 여운이었지만, 빈센트 공자에게는 하나의 파문이었다.

이번 일은 가스톤 가문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 빈센트 공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작님의 의중은 잘 알았습니다. 그럼 내일 중으로 회신을 드리지요.”

“왕진비는 돈으로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한번 고민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그러지요.”

간단히 대답하긴 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말이 빈센트 공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문득 준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빈센트 공자가 직접 진료소를 찾아왔다.

“남작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비루나 왕국의 의학계 정보는 물론, 대륙 전체의 소식까지 몽땅 가져다드리지요.”

“대륙 전체까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군요.”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 효심은 꼭 후작 각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할 말이 더 남았는지 빈센트 공자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의료 수준을 끌어올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하는 게 남작님의 목표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그 목표를 이루게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신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의약품 사업은 이미 마이더스 상단과 계약을 체결하셨으니, 다른 의료 사업으로 우리 가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의료 사업이라…….”

“자세한 논의는 왕도에서 하시지요.”

빈센트 공자는 야무지게 말을 매듭지었다.

생각보다 영리한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가문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틀었다.

이런 결과를 도출해 내기까진 나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걸어야 하는 입장이 됐으니까.

“알겠습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그때 경청하도록 하지요.”

“그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빈센트 공자가 물러갔다. 준은 잠시 시간을 확인했다. 진료 시작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슬슬 준비를 하는 게 좋겠군.’

준은 자신의 진료실을 나서 세 번째 진료실을 방문했다. 그곳은 아그네스가 진료를 보는 공간이었다.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열심이군.”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잘 주무셨어요?”

“그럭저럭.”

아그네스는 보던 책을 덮었다. 그것은 중급 치유학 전공서였다. 그녀의 목표는 어느새 중급 치유사로 설정되어 있었다.

보통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특별했다.

준이 그녀를 마나 유저로 각성시켜 주기도 했지만, 특유의 열정과 사명감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새롭네요.”

“뭐가?”

“예전이었다면 선생님 진료실에서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을 텐데. 오늘은 선생님이 이렇게 먼저 찾아오셨잖아요. 드문 일이에요.”

“너도 이제 누아 마을의 치유사니까.”

의미심장한 한마디에 아그네스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본론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말인데, 조만간 너 혼자 진료를 봐야 할 것 같구나. 루치아 선생과 왕도에 다녀올 예정이거든.”

“저 혼자 진료를 봐야 한다구요?”

“그래.”

“알겠습니다.”

“음?”

의외의 반응이었다. 어떻게 하냐고 당황할 줄 알았는데, 아그네스는 의연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최근 아그네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나 유저로 각성한 게 컸다.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여러 검사를 할 수 있었고, 또 외상도 빠르게 치료할 수 있게 됐으니까.

자만에 빠질 법도 한 상황이지만 준은 걱정하지 않았다.

늘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선한 마음이 있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가 너무 건방졌나요? 조금 엄살을 부려 볼 걸 그랬나?”

“하하하하.”

준은 한바탕 웃었다. 이제는 이런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저택 구입이 끝나면 바로 출발할 거다.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해 주마.”

“아, 저도 가고 싶은데. 왕도에는 한 번도 안 가 봤거든요. 그런데 하룬 녀석도 데려가실 거예요?”

“아니. 여기에 남겠다고 하더군.”

아그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의외네. 선생님께 매달려서 부탁할 줄 알았는데요.”

“나름 의리가 있는 친구거든. 수고해.”

아그네스의 진료실에서 나온 준은 바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릴리가 따라붙었다.

딸깍.

준은 문을 걸어 잠근 뒤 아공간 창고를 열었다.

“뭐 하시려고요? 몰래 야한 거라도 보시게?”

“오랜만에 참신한 농담을 하는군.”

릴리는 궁금했다. 준이 아공간 창고를 연 것은 꽤 오랜만이었으니까.

그가 손을 까딱하자 각종 마법 도구들이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아항! 포탈을 만드시려는 거군요?”

“그래.”

준은 방 한가운데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곤 마법 도구를 마법진 외부에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준은 마나를 마법진에 주입했다.

우우웅!

순간 강렬한 파동이 일며 마법진이 번쩍거렸다.

지금 만든 것은 하나의 문이었다. 이것 자체로는 크게 의미가 없다. 다른 쪽에도 똑같은 마법진을 그려야 통로가 완성된다.

“이제 왕도에 있는 저택에 마법진을 깔면 진료소를 쉽게 오갈 수 있겠네요. 아그네스가 걱정되시긴 하나 봐요?”

“볼카누스에게 부탁하긴 하겠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미리 준비한다고 손해 보는 건 없겠지.”

“루치아 님이 이 사실을 아셔야 할 텐데. 후후후.”

“뭐? 진료소에 남고 싶다고? 알았다.”

“아! 치사해 정말! 가끔은 좀 전직 절대자의 아량을 보여 달라구요!”

볼을 부풀리며 삐진 척을 하는 릴리를 보니, 문득 몸을 만들어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날 때마다 마법진에 마나를 주입해라. 여러 용도로 사용할 생각이니까.”

“어째 서둘러 까신다 했네. 알았어요.”

밖으로 나온 준은 방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리고 열쇠를 릴리에게 넘겼다.

바로 진료실로 내려가니 폴링이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준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안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아, 영주님! 이제야 오셨군요. 이게 좀 뜻밖이긴 한데 다이아몬드를 쉽게 처분할 방법이 생겼습니다.”

“그래요? 다행이군요.”

준은 대강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여 주었다.

“무슨 방법입니까?”

“가스톤 후작가와 연결됐습니다. 왕도에서 크게 보석 경매장을 열어 준다고 합니다! 거기서 보석을 처분하면 바로 저택을 구입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가스톤 후작가라면 사교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잘됐군요. 꽤 애를 먹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는데. 아무튼 남은 일도 잘 부탁합니다.”

물론 폴링은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그도 빈센트 공자가 누아 마을에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어제 진료소에 빈센트 공자께서 왔다고 들었습니다만…… 혹시 영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겁니까? 보석에 대해서요.”

“아닙니다. 왕진 이야기를 나눴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근데 경매장은 언제 열린답니까?”

“빈센트 공자께서 왕도에 도착하는 즉시 주선해 준다고 합니다. 일단 오늘 왕도로 함께 출발하려고 합니다.”

“바이런 경과 함께 가도록 하세요. 중요한 임무니 몸조심하시고.”

최근 누아 마을에서 금이 채굴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금은 곧 부를 상징한다. 여러모로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폴링은 준의 그런 인간적인 부분에서 깊은 충성심을 느꼈다.

드뇌르 백작 밑에서 수십 년을 일한 그였다. 숱한 일을 처리해 왔지만, 몸조심하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꼭 영주님 마음에 드는 저택을 구해 오겠습니다!”

호기롭게 외친 폴링은 바로 누아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약속을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아몬드를 모두 처분하고 좋은 저택을 구입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던 것이다.

‘왕도라. 오랜만이라 그런지 기대되네. 슬슬 출발해 볼까?’

보고서를 내려놓은 준은 하룬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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