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54화 (154/156)

런치 직원 채용 (2)

* * *

“어? 오 대리가 프리패스 썼는데요?”

최경리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최경리가 대표해서 현장에 있는 오 대리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오호, 그래?”

“네, 다행이네요. 이러다가 한 명도 못 뽑는 줄 알았는데. 하도 방식이 기가 막혀서.”

최경리는 누구 들으라는 듯 말했다.

강태평은 헛기침을 하고는 직원들을 바라봤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오늘 홀 서빙 선발은 끝낼 겁니다. 채점 잘하세요.”

그렇게 홀 서빙 면접은 계속되었고, 오 대리에게 긍정적인 메시지가 온 대상자는 다행히도 몇 명 더 있었다.

얼추 세 명은 선발되었다.

그 중 프리패스는 두 명.

똑똑.

‘20번 면접대상자.’

잔뜩 긴장한 얼굴의 여성이 3번 룸으로 들어왔다.

꿀꺽.

‘20번’ 번호를 보고 강태평은 긴장했다. 기다렸던 사람이라서.

단발머리의 여성이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20번 정미순입니다.”

이력서에 표시된 부분을 봤다.

# 면접대상자 20번.

이름 : 정미순

나이 : 29세.

기타사항 : 아셀라 보육원 출신임.

“어머!”

정미순은 강태평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입을 가렸다.

“오빠…….”

강태평은 씩 웃었다.

“미순아. 어서 와.”

정미순은 놀라서 얼어버렸고, 강태평은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변 이사가 옆에서 말했다.

“두 분 아는 사인가?”

정미순.

강태평과 세 살 차이의 여동생이며. 스무 살이 되기까지 아주 가깝게 지냈었다.

각자 일을 하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고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헤어짐이 이들에겐 익숙한 일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서로 잘살고 있기를 기원하며.

근 10년 만의 만남.

강태평은 정미순의 이력서를 보고 많이 놀랐었다.

헤어짐이 익숙한 만큼, ‘만남’은 그들에게 기적과 같다.

정미순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육원 출신 우대라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내가 사랑산성 사장인 거 몰랐니?”

“사장님 이름은 들었지만…… 설마 오빠일 줄은…… .”

강태평은 씩 웃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그냥, 여러 가지 일 하면서 살았어요.”

“지금은 뭐 하고 있는데?”

“편의점에서 새벽 알바 하고 있어요.”

“아…… 그래. 힘들겠네.”

“힘들긴요. 일자리 있는 게 어디에요.”

강태평은 이력서에 없는 내용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결혼은…….”

“아직 안 했어요.”

강태평은 정미순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다른 직원들은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두 사람은 밝게 얘기하는데.

뭔가 슬픔과 그리움을 억누르고, 일부러 가볍게 얘기하는 듯했다.

지켜보는데 괜히 가슴이 먹먹했다.

강태평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여기 취업하러 온 거 맞지?”

정미순은 살짝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오빠한테 폐 끼치기 싫어요. 오늘 오빠 본 걸로도 충분해요. 고마워요. 잘살고 있는 모습 보여줘서.”

“미순아, 무슨 소리야. 기회는 공정해야지.”

강태평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보시다시피 정미순 씨는 저와 너무 잘 아는 사이라서요. 저는 평가에서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변이사가 당황하여 말했다.

“아니, 뭐 굳이 그럴 필요까지…….”

강태평은 정미순을 알기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은 특혜에 치인 삶을 살았다. 정미순은 특혜를 받으며 취업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면접관들 면접 똑바로 보셔야 합니다. 합격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자세히 봐주세요. 제가 정미순 씨와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내서 괜찮은 사람이란 걸 너무 잘 알지만, 그간 변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최경리는 변 이사 귀 가까이에서 수군거렸다.

“이거 뽑으라는 말이죠?”

“몰라. 알아서 새겨들어.”

강태평은 문밖으로 나가기 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보셔야 해요. 반드시!”

그리고 정미순에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미순아~ 면접 잘 봐. 파이팅!”

“오, 오빠…….”

덜컹.

강태평이 나간 뒤.

최경리가 말했다.

“면접 보기 뭔가 좀 부담스러운데요?”

“자기답지 않게 왜 그래? 강 사장님이 공정하게 하라잖아.”

변 이사는 어색해하는 정미순에게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편하게 계세요. 돌발 평가도 잘 받으셨고,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네? 저 뭐 평가받았었어요?”

“하하. 네. 뭐 그런 게 있네요.”

프리패스까지는 아니었지만, 오 대리는 정미순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었다.

변 이사는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면접을 이끌어 가다가.

“마지막으로……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 하나 드려보고 싶은데.”

“네, 말씀하세요.”

“보육원 출신이시잖아요?”

“네.”

“사회에 대한 불만 없으십니까? 거기 가고 싶어서 간 사람은 없잖아요?”

“…….”

정미순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주 어릴 적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요. 그때는 있었어요.”

“…….”

“누군가 제게 저주를 내렸다고 생각했죠.”

“…….”

“나쁜 마음을 가지니, 계속 안 좋은 것들만 보였죠. 그게 제 자신을 좀 먹고. 자존감은 떨어지고…… 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같고.”

정미순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절 위해 기도해 주시는 수녀님을 우연히 보았어요. 저희 어머니요.”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김성애 수녀님 말씀이신가요?”

“어머, 아세요?”

“하하. 알죠. 강 사장님 어머니시잖아요.”

“호호. 네 맞아요. 제 어머니시기도 하죠.”

정미순은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버려진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는 분이 있었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천사 같은 분이요.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

“내가 누리고 있는 것 중에 사실 당연한 것은 없으며, 내가 살아 숨 쉬며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축복이며, 세상에 감사할 것투성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게.”

“와…….”

변 이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성직자만 꼭 성스러운 게 아니네. 대단하다.’

정미순은 이어서 말했다.

“그때부터 사회에 불만 같은 건 갖지 않았습니다. 아니, 있을지 몰라도 감사할 게 훨씬 많았습니다.”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상 면접 마치겠습니다.”

그는 이력서에 도장을 찍었다.

‘합격’

* * *

다음 날 아침.

오늘은 주방장 면접이 있는 날이다.

오 대리가 다가왔다.

“사장님, 주방에 촬영 세팅 끝났습니다.”

“그래, 후보자들에게도 공지 다 한 거지?”

“네, 메뉴, 재료 등 다 알려줬습니다.”

“그래~ 필요한 건 다 알려줘야 해. 어떤 식으로 하든 맛만 똑같으면 되니까.”

“네. 그렇죠.”

오후 3시.

주방장 후보자들이 음식을 싸 들고 왔다.

오늘 점심 요리 시에 내가 조리하는 걸 촬영하여, 후보자들에게 동시에 뿌렸다.

한 장소에서 다 같이 조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랑산성에 그럴 공간은 없다.

각자 편한 장소에서 영상을 보고 똑같이 만들어 오라고 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음식 맛의 유무도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똑같은 맛.’

내가 만든 것과 똑같은 맛을 내는 사람이 선발된다.

똑똑.

덜컹.

오 대리가 4번 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음식 세팅 끝났습니다.”

“오케이~”

난 오 대리를 따라서 3번 룸으로 갔다.

후보자들이 만든 음식이 쫙 깔려 있었다.

“후보자들은?”

“2번 룸에서 대기 중입니다.”

“좀 좁지 않나?”

“앉을 자리 부족하지 않게 의자 마련해 두었습니다.”

“응…… 그래. 빨리 봐야겠네.”

주방장 후보자는 총 10명.

지원자들 이력은 화려했다. 호텔주방장, 분식집 주인, 중국집 주방장 등…….

한 분야에 치중하지 않은 다양한 경력을 소유한 지원자 위주로 이력서를 추렸다.

오 대리가 말했다.

“아뮤즈 부쉬, 통해삼 스테이크, 오미자 소르베. 이렇게 3가지 음식을 과제로 주었습니다.”

“이유는?”

“이외의 다른 메뉴는 재료 퀄리티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음…… 그래. 잘했네.”

난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각자 돌아가면서 먹어보고, 오늘 점심에 내가 만들었던 것과 가장 비슷한 음식에 투표하는 거야. 표를 가장 많이 받은 음식을 만든 주방장을 선발할 거야. 기준 심플하지?”

“네~”

직원들은 각 음식을 맛보았고.

가장 유사한 맛의 접시에 ‘별’ 스티커를 붙였다.

― 1번 진짜 맛있다. 사장님이 만드신 것보다 더 맛있어.

― 그래도 2번 맛이 더 유사하지 않아?

― 그렇긴 한데…… 더 맛있는 걸 투표 못 하는 게 좀 그렇다.

― 사장님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아니구나.

이것들이…… 안 들리게 말하던지.

“누가 상의해서 테스트를 하나?! 상의 금지!”

“…….”

* * *

1시간 뒤. 오후 4시.

3번 룸에서 우리는 최종 선발된 주방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투표 결과를 보고, 변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고민할 필요가 없네.”

# 4번 요리, 별 스티커 투표 결과.

아뮤즈 부쉬 ★★★★

통해삼 스테이크 ★★★★

오미자 소르베 ★★★★★

우리 직원 수가 5명이며, 최대 받을 수 있는 별의 개수가 5개다.

10개의 후보자 요리 중, 4번이 압도적이었다.

“거의 Ctrl+c, Ctrl+v 수준이라니까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영상만 보고 이렇게 똑같이 따라 만들 수 있을까요?”

김지안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강 사장님이 레시피 흘린 거 아니죠?”

난 웃으며 대답했다.

“잊었어? 나도 내 레시피 몰라~ 그냥 손 가는 데로 만들 뿐이지.”

똑. 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잡담을 멈추었다.

“들어오세요!”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이 살며시 열렸다.

줄무늬 세미 정장을 입은 아주머니.

허벅지와 엉덩이가 유난히 꽉 끼는 색바랜 정장이었다.

“어?!”

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호호. 강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하죠. 죄송합니다.”

몇 개월 전.

‘할아버지의 일생’ 경매를 앞두고, 집에 가던 길에 논현역 주변을 산책하다가 만났던 여성.

그때 그녀는 면접 보러 가는 길인데, 길을 모르겠다고 하여 내가 도움을 줬었다.

“그때, 그 아주머니…… 맞죠?”

“네에~ 맞습니다.”

“와~ 이렇게 만나네. 하하.”

난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제가 사장인 거 알고 지원한 거예요?”

“그럼요~ 기회다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저 요리 잘합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성함이…… 김찬숙?”

“네~ 기억하시네요.”

이력서 보고 말 한 거다.

몇 개월 전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분 이름을 기억하는 게 이상하지.

“요리를 아주 똑같이 만드셨던데.”

“호호. 네~ 제가 베끼는 거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풉!”

옆에서 김지안이 웃었다.

본인 입으로 ‘베낀다’는 표현을 쓸 줄은……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렇겠지. 나도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자…… 궁금한 게 많지만, 일단은.”

이번 주방장 선발의 기준은 아주 명확하고 심플했다.

지금 채용이 결정되어 상견례 차 만난 것이다.

내 음식을 제대로 베낀 김찬숙.

그녀가 최종 선발된 사랑산성 런치의 주방장이다.

난 일어나서 김찬숙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활짝 웃었다.

“입사 축하드립니다.”

오랜 기다림의 끝

* * *

“어머…….”

김찬숙은 왈칵 눈물을 쏟더니. 주저앉아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헛…….”

기뻐서 그런 건 줄은 알겠는데.

너무 서럽게 울어서 당혹스러웠다.

“저, 정말입니까? 제가 진짜 채용된 겁니까?”

“네? 아 네…… 채용공고에 고지한 대로 주방장은 음식 맛만 보고 평가해서요. 김찬숙 씨가 최종 대상자로 선정된 겁니다. 몇 가지 확인만 하고 이상 없으면 바로 채용합니다.”

김찬숙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물었다.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뭘 확인해 드리면 될까요?”

난 최경리를 바라보았고. 그녀가 나섰다.

“취업비자 가지고 계신가요?”

“네, E―9(단순 노무) 비자 가지고 있습니다.”

“체류 기간은 충분히 남아 있습니까?”

“네, 입국한 지 2년이 아직 안 됐습니다.”

최경리는 머릿속으로 뭔가 따져 보더니.

“음…… 그건 됐네요. 그리고 저희 근무지가 약 7개월 뒤에 강남구 수서동으로 옮길 예정이거든요. 출퇴근 괜찮습니까?”

“아 그렇습니까? 오히려 여기보다 더 가깝습니다. 집이 구로동이거든요. 남구로역 근처.”

최경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못 다닐 거리는 아니네요.”

원래 입사원서는 면접 과정에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인데, 철저하게 블라인드로 진행되다 보니 뒤늦게 확인하는 것이다.

“처우 등 주요 내용은 채용공고와 동일하고요.”

“정말 500만 원 주십니까?”

“호호. 물론이죠. 설마 거짓말하겠어요.”

김찬숙은 꼭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최경리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감사하긴요. 필요한 분이라서 선발하는 건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경리는 날 보고 말했다.

“사장님, 계약서 쓰면 될 것 같습니다.”

“사랑산성의 역사에 대해서는 설명 안 드려?”

“네에? 역사요?”

최경리는 뭘 잘 못 들은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농담 한 번 한 건데, 정색은…….

“1년 역사를 설명드려요? 너무 어려운데. 사장님이 설명해 주시면 안 돼요? 저도 궁금한데요?”

그녀의 따발총을 듣고, 내가 씩 웃자.

최경리는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어제 정색한 이후 계속 불편하게 대하더니, 이제 돌아왔군.

“알았어. 나중에 신입직원들 입사하면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 가질게.”

“칫.”

최경리는 콧방귀를 뀌면서, 보일 듯 말 듯 살짝 웃었다.

옆에 있던 변 이사가 이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강 사장님이 이제 농담이 좀 되네? 허허.”

난 김찬숙을 향해 물었다.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하신가요?”

“날짜만 정해주시면 맞추겠습니다.”

난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말했다.

“넵. 그럼 주방장님!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곧 출근일 정해서 연락드릴게요~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김찬숙은 몸을 접으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저 정말 잘할게요!”

* * *

4일 뒤.

사랑산성 런치 레스토랑의 새로운 직원들이 모였다.

여성 4명에 남자 1명.

그중 최고령은 주방장 김찬숙이며, 홀 서빙 직원들은 모두 이십대다.

나이를 보고 선발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그중 반가운 얼굴도 보였다.

보육원 동생, 정미순.

난 다가가 아는 척했다.

“미순아~ 왔어?”

“사장님 안녕하세요.”

“사장님? 하하.”

정미순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안 그래요?”

“하하. 그래, 네 뜻은 알겠는데.”

정미순의 동기들은 모두 3번 룸으로 들어가고, 복도에는 나와 정미순만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살피고는 작게 말했다.

“둘이 있을 땐 그냥 오빠라고 해~ 너한테 사장 소리 들으니까 어색하다 야.”

“히히. 알았어요.”

정미순은 혀를 삐죽 내밀고 웃었다.

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우리 미순이 매일 볼 생각하니까 너무 좋은걸~”

“저두요~”

어릴 적부터 친 오누이처럼 지낸 사이.

난 정미순을 잘 알고 있다.

분명 사랑산성에서 잘 해낼 것이다.

“오빠 잘 도와줘야 해?”

“아~”

정미순은 정말 이쁘게 웃었다.

“그럼요~ 그거 때문에 입사한 걸요. 저만 믿으세요. 정미순이 똑순인 거 알죠?”

“알지~ 알지~”

난 웃으며 정미순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오빠는 이제 혼자가 아니에요.”

정미순의 별거 아닌 이 말에, 이상하게도 살짝 울컥했다.

3번 룸.

새로 선발된 런치 직원들 앞에 서서 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랑산성 사장 강태평이라고 합니다~”

―와아~

― 사장님! 감사합니다!

―네모의 신님! 팬이에요!

그러면서 한 직원은 셔츠 안의 티셔츠를 살짝 보였는데.

‘네모천국’

풉! 저 글귀 오랜만에 보내.

네모천국 티셔츠를 입고 있는 직원은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진짜 팬인가 보네?!

어우…… 부담스러운데.

“흠! 흠! 여튼, 사랑산성 입사를 축하드립니다. 사랑산성으로 상호가 바뀐 후, 저희가 정식으로 직원 채용을 하는 건 처음이거든요. 여러분들이 역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난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 일을 빨리 배우셔야 합니다.! 저희 사랑산성이 요즘 잘 나가서 아주 바쁘거든요. 하하. 아, 주방장님은 바로 가능하시죠?”

영상보고 똑같이 따라 만드는 실력이기에, 주방장은 따로 교육은 필요 없었다.

김찬숙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주방 기구들 위치만 파악하면 됩니다. 바로 업무 투입 가능합니다.”

“네! 좋습니다.”

난 새로운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바로 인수인계하죠. 오늘은 사랑산성 역사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최경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거렸다.

“어머…… 진짜였어.”

난 피식 웃고는 변 이사를 소개했다.

“저희 사랑산성의 전신은 제로백 컴퍼니라는 회사였거든요. 진일상사의 촬영 1팀이 분리되어 나와 만든 회사입니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어른이시고, 모든 역사의 주축이 되신 분입니다. 변성준 이사님을 소개합니다.”

회사 역사에 대한 소개는 변 이사가 하기로 했다.

―와아~

―짝짝짝

신입사원들은 큰 박수로 변 이사를 맞이했다.

변 이사는 노래방 기계 앞에 서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변성준입니다. 여러분 환영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변 이사는 주섬주섬 노래방 기계를 가린 천을 걷으며 말했다.

“우리 회사 전통이 있거든요. 앞에서 발표하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삼육공 ― 아파트’

“한 곡 부르고 시작하겠습니다.”

엇. 저건 내 18번인데.

갑작스러운 노래방 반주에 신입사원들은 당혹스러워했지만.

변 이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불렀다.

‘쓸쓸한 너의 아파트~’

분위기 야들야들해지고.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역시 멋진 내 선배님.

* * *

런치 신입사원 받은 지 이틀이 지났다.

주방장은 실력만 보고 뽑았으며, 홀 서빙은 돌발상황까지 만들어서 몸에 밴 친절을 확인했다.

인수인계할 것도 몇 가지 없지만, 워낙 출중한 인재들이라 그런지.

하루 만에 대부분 업무를 숙지했다.

그나마 좀 어려워하는 게 홀 서빙 직원들이 오픈 전에 주방장을 도와서 재료 손질하는 거였는데.

젊은 직원들이라 그런지 해삼, 안심, 샥스핀 등 손질하는 건 꺼렸다.

그럴 때는 정미순이 나섰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려 했다.

동료들이 조금만 불편해하는 게 있으면 정미순이 나섰다.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언니, 제가 해볼게요. 미안해요.”

정미순은 29세. 마침, 20대의 홀 서빙 직원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다.

“아니야. 됐어. 언니한테 맡겨둬.”

정미순은 강태평과의 약속을 머릿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오빠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

‘귀찮을 때 내가 한 번 더 움직이고, 불편해할 때 내가 한 번 더 참으면 되는 거야.’

정미순의 희생정신 덕에 신입직원들은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레스토랑 직무 인수인계는 순탄하게 끝맺어갔고.

사랑산성 직원들은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개장공고 만료일.

3개월을 기다린 분묘개장공고.

오늘 자정까지 아무 연락이 없으면 다음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나는 3일 전쯤부터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연고자가 없음을 확신하고 있으며, 만약 연고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협의하면 되겠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괜히 불안해져서…….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직원들 모두 오늘 내내 표정이 긴장되어 보였다.

점심 때쯤, 난 사랑산성을 나섰다.

“나 외근 나갈 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고!”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분묘가 신경 쓰여서 사무실을 나섰다.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나서다니……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젠 난 런치 때 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전에 30분~1시간 정도 요리 만드는 걸 찍어서 런치와 디너 주방장에게 보내준다. 그걸로 레스토랑 업무는 끝이다.

약 20분 정도 운전하여 수서동에 도착했다.

좁은 길로 들어서서 건축 부지에 도착.

난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황량한 야산, 볕이 잘 드는 곳에 덩그러니 놓인 분묘 하나.

그 분묘 위에 놓인 현수막과 안내판.

3개월간 비, 바람을 맞아서인지, 현수막과 안내판은 색이 좀 바래져 있었다.

“하아~ 날씨 좋네.”

오후 2시.

햇살이 따뜻한 높은 가을 하늘 아래.

난 분묘 옆 잔디밭에 누웠다.

“자정만 지나면 돼. 자정만.”

싱그러운 풀 내음.

3일 전부터 내내 불안했는데, 이상하게 분묘가 있는 현장에 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기분 좋은 따사로움에…….

살짝 눈을 감았다.

[태평아.]

“…….”

[태평아~]

눈을 떴다.

사방이 어두운데…… 분명 누군가 날 부른 거 같은데.

두리번거리다가.

옆에 연못이 보였다.

“어? 왜 분묘 자리에 연못이?!”

분명…… 그 연못이다.

내게 손을 준 그 연못.

[태평아~]

“하, 할아버지?”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연못 위에 두둥실 떠 있었다.

[하하. 잘 지냈느냐?]

“안녕하세요.”

[오냐~ 이 와중에 인사는 잘하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슬쩍 본 후 물었다.

[어떠냐? 쓸만하냐?]

난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아주 쓸만합니다.”

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래, 다행이구나. 그 손을 널리 쓰고 있느냐?]

이 질문에 난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쓰고 있습니다.”

[누굴 위해 쓰느냐?]

“제 자신과 제게 속한 사람들을 위해서요.”

[그 손 내가 다시 가져간다면?]

“…….”

이 질문에는 곧바로 대답이 안 나왔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손.

주인이 가져가겠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제가 주인이 아닌데, 어쩔 수 없죠.”

[하하.]

할아버지는 조금씩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럼 누가 주인이지?]

“네?”

[잘하고 있어. 의심하지 마라.]

위이잉~!

“아 따가워!”

귀가에 맴도는 모깃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깜깜하고, 귀뚜라미 소리만 들린다.

뭐야. 아직도 꿈인가?

주변을 살폈는데

난 분묘 옆에 누워 있었다.

깜빡 잠들었나 본데…… 밤이라니.

으슬으슬 추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이상하게도 분묘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무섭지 않았다.

“몇 시간을 잔 거야?”

핸드폰을 켜서 확인했다.

연락이 온 곳은 아무 데도 없었고.

‘AM 12:01’

자정이 지났다.

뜻에 어긋나지 않기를

* * *

기분 좋게 아침에 출근했다.

어제 분묘 옆에서 일어났을 때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연락이 온 곳은 없었다.

만약 연고자가 나타났다면, 분명 연락이 있었을 것이다.

이건 분명 좋은 징조이며, 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굿모닝~”

3번 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들은 모두 모여 있었고.

일제히 박수를 쳤다.

―짝짝짝

― 사장님! 이제 달려야죠!

―하하. 됐습니다!

역시. 하하.

직원들 표정은 아주 밝았다.

결국, 연고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는 사업을 전개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하하. 변 이사님~ 어째 ‘솔러 루비’ 낙찰됐을 때보다 표정이 더 밝은 것 같아요.”

변 이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유~ 말도 마. 나 엄청 후달렸어.”

“…….”

“내가 부동산 담당이잖아. 원래도 큰일이었지만 우리 강 사장님께서 일을 더 키우셔서, 잘못될까 봐 얼마나 부담되던지.”

“하하.”

처음 약 15억 원 규모의 사업이 50억이 넘어 버렸으니까.

설계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연고자 나타나면 다 꼬여 버리는 거잖아. 나 요즘에 교회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 줄 알아?”

“하하. 그래요?”

변 이사는 교회 집사님이다. 술도 잘 마시고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 나지만, 뭐 그렇다고 한다.

“내가 회사 일 때문에 작정 기도하게 될 줄은 몰랐네. 어우~ 하여간. 진짜 후달렸어. 어제 자정되기 5분 전부터는 진짜 시간이 안 가더만. 하하.”

나도 따라서 크게 웃었다.

“아~ 저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이 사업의 7할은 끝난 거 같아요.”

변 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7할이 뭐야. 9할은 끝났지. 나머지는 돈만 들이면 되는 일이잖아. 총알은 ‘솔러 루비’ 덕분에 충분하고.”

변 이사는 눈을 찡긋했고. 나도 활짝 웃었다.

다른 직원들도 옆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 얘기를 들고 있었는데.

김지안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빨리 속도 좀 내주세요. 저 빨리 새로운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어요.”

오 대리도 말했다.

“저두요~ 사무실 바(Bar)에서 빨리 술 마시고 싶다~”

난 팔을 쫙 펼치고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변 이사를 보았다.

“이사님, 이제 그냥 달리면 되는 거죠?”

“어~ 달리면 돼~ 준비는 다 끝났어. 시작은 ‘개장 허가신청서’ 부터야.”

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오래 기다렸다. 이제 우리 직원들이 실력 발휘 좀 해봐~”

“네!”

* * *

3개월간,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

이제 레스토랑 일은 놓았으므로, 아침부터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선 ‘개장 허가신청’부터.

증명서류, 공고문 등을 첨부하여 구청에 신고해야 한다.

모든 서류는 이미 준비해두었고, 신청서 작성까지도 다 끝내 놓았다.

“최 과장!”

변 이사가 최경리를 불렀다.

“네.”

“어서 출발해. 강남구청 어딘지 알지?”

“택시 기사님이 아시겠죠.”

“……그래, 어서 가. 서류 빼놓지 말고 잘 챙기고.”

“제 사전에 누락은 없습니다.”

변 이사는 피곤한 얼굴로 빨리 가라고 손을 저었다.

최경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바로 출발했다.

강남구청. 노인복지과.

최경리는 서류를 내밀었다.

“개장 허가신청서입니다.”

“네~”

“…….”

최경리는 가만히 기다렸다.

공무원은 최경리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접수되셨어요.”

“그래서요?”

“네?”

“접수가 됐으면 언제 현장 심사를 하실 건지 알려주셔야죠.”

공무원은 최 과장을 위아래 훑고는 말했다.

“아~ 업체에서 오신 게 아니시구나. 처음이세요?”

“그건 중요하지 않고요.”

최경리의 로보트같은 싸늘함에 공무원의 표정이 살짝 경직됐다.

“먼저 신청서 허가가 되어야 하고요. 그 이후에 현장 방문 일정이 잡힙니다.”

“그럼 허가를 두 번 하는 거예요?”

공무원은 뭔가 죄지은 기분이었다.

“뭐…… 두 번이라기보다는 절차라고 할 수 있죠.”

“그럼 서류허가는 언제 됩니까.”

“그건 절차에 따라…… 대략 이틀 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도 완료되는 대로 제가 연락을…….”

최경리는 고개를 저었다.

“전 오전 중에는 끝날 줄 알고 왔는데.”

“네?”

“그래서 일찍 왔거든요. 서류에 이상 없으면 허가해주는 게 당연하잖아요. 오래 걸릴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최경리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절차! 절차! 절차!”

“어머…….”

공무원은 놀라서 입을 막았고, 실내의 다른 공무원이 최경리를 바라봤다.

“절차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전 현장 실사 일정 받기 전까지는 못 돌아가요.”

공무원은 똥 밟았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벽이랑 얘기하는 거 같아.’

“빨리 해주세요.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제가 윗분과 미팅할게요.”

공무원은 피곤한 표정으로 바로 서류를 들고 일어났다.

오후 5시.

강태평이 물었다.

“공무원들이 그렇게 빨리 안 움직일 텐데. 진짜 오늘 현장 심사날짜까지 받아올 거라고요?”

“최경리는 해. 최 과장이 고리타분해서 그렇지. 단순 임무 수행 능력은 최고거든.”

“…….”

“삽질을 시켜도 잘할 친구야.”

변 이사는 최경리에서 개장 허가신청 등 서류 진행을 맡겼고, 오 대리와 김지안에게는 화장 및 봉안을 준비시켰다.

강태평은 이번에는 옆에서 구경만 했다.

변 이사는 시계를 보고 말했다.

“4시 전까지는 올 줄 알았는데, 꽤 걸리네. 쉽지 않은가 봐.”

덜컹!

말 꺼내기가 무섭게 최경리가 3번룸 안으로 들어왔다.

“최 과장…….”

강태평은 최경리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구청에 갔다 온 사람이 왜 머리가 산발이지?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변 이사도 놀라서 물었다.

“최 과장…… 괜찮아?”

“네, 오랜만에 헤드벵잉 좀 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 그래. 현장실사 날짜는 받았어?”

최경리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일정이 좀 지연됐습니다. 이틀 뒤에 현장 실사받기로 했습니다.”

강태평은 이 말이 황당했다.

‘이틀 뒤? 이틀 뒤면 엄청 빠른 거 아니야?’

“내일 실사 받겠다고 애를 써봤는데…… 거기까진 도저히.”

변 이사는 킥킥대며 말했다.

“잘했어. 목표 초과 달성이야.”

“아닙니다. 시간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이틀이나 지연됐으면.”

“아니야. 아니야. 정말 잘했어.”

변 이사가 몇 번을 달래줘서야 최경리의 표정이 풀렸다.

어이없어하는 강태평을 향해, 변 이사는 엄지를 치켜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 * *

이틀 뒤. 수서동.

대모산 자락. 보육원과 사랑산성 사무실이 세워질 부지에 도착했다.

오늘 공무원이 현장실사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허가서를 3일 내로 발부하게 되어 있다.

허가서를 받으면 개장(파묘)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 현장실사 공무원을 맞으러 변 이사와 나. 이렇게 둘이 왔다.

최경리는 일부러 데려오지 않았다. 이번엔 세게 나갈 자리는 아닌 것 같아서.

우리가 도착하고 약 30분 뒤.

‘강남구청’이라고 표시된 차가 도착했다.

차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내렸다.

우리는 곧바로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남구청에서 오셨죠?”

그는 건조한 표정으로 나와 변 이사를 힐끔 보고는 물었다.

“개장 허가신청 하신 분들입니까?”

“네. 제가 사랑산성 대표 강태평입니다.”

“사랑산성…….”

이름이 맘에 안 든다는 듯, 살짝 눈을 찡그리고는 되뇌었다.

그리고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부지 정중앙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는 분묘를 보았다.

“이 묘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는 분묘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무허가 분묘로 보여야 하기에, 묘 주변은 절대로 손대지 않았었다.

부지 전체가 깔끔한 편이지만, 관리되지 않은 분묘 주변은 이리저리 풀이 삐죽하며 너저분했다.

이리저리 분묘를 살피고, 위에 개장공고 현수막과 안내판을 본 공무원이 말했다.

“3개월 공고 완료하셨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공무원은 분묘 위의 잡초를 뜯으며 중얼거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르신 집이지만 어떻게 합니까. 후손들을 위해 좋은 자리 양보하셔야죠.”

그리고 그는 분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한동안 그러고 나서, 날 향해 물었다.

“사장님, 정성 들여서 옮겨 주실 거죠?”

“네? 아 네.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공무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참 괜찮아 보였다.

“알고 계시겠지만, 허가서는 3일 내로 발부될 겁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공무원을 차를 타고 가버렸다.

실사하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변 이사가 말했다.

“이제 다 끝났네.”

그의 표정이 좀 씁쓸해 보였고.

“네.”

나 또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제 파묘를 해야 하니까.

“변 이사님.”

“응?”

“이제 벌초 좀 해도 되는 거죠? 분묘가 너무 처량해 보여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네. 구청 심사는 끝났으니까. 좀 하고 가자.”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벌초에 집중했다.

너무 오랜 시간 관리가 안 된 분묘라서, 시간이 꽤 걸렸고 땀도 났지만.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 * *

이틀 뒤. 분묘 개장(파묘) 날.

사랑산성 전 직원은 수서동 부지에 모였다.

‘믿음 장묘 라이프’

파묘와 화장 및 봉안은 업체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경험을 쌓자는 의도로 사랑산성이 개장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파묘까지 직접 하기에는 좀 불편했다.

파묘 단계부터는 장묘업체에 위탁하는 것에 대해서는 변 이사도 바로 수긍했다.

“다 오셨습니까? 이제 진행하면 됩니까?”

“잠시만요.”

아직 한 명이 안 왔다.

5분 뒤.

기다란 검은색 벤스 S클래스가 도착했다.

뒷좌석에서 다리를 절뚝이며 내리는 남자.

김정식이 왔다.

이틀 전 개장할 때쯤 되지 않았냐며 그에게 전화가 왔었고.

난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했지만, 어쨌든 신기한 사람이니까 더 묻지는 않았다.

김정식은 본인도 꼭 현장에 참석하고 싶다고, 아니 해야만 한다고 말했고.

난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이 부지를 알게 되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니까.

“태평님 안녕하십니까.”

“김 의원님 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교통체증은 예측하기 어려우니까요.”

김정식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내 옆에 와서 섰다.

난 장묘 직원에게 말했다.

“다 도착했습니다.”

“네, 지금 바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잠시만요.”

그때 변 이사가 나섰다.

그는 나와 사랑산성 직원, 김 의원 앞에 나와 말했다.

“모두 괜찮으시다면, 제가 짧게 기도 한 번 해도 되겠습니까?”

난 상관없다. 성당 다니니까.

최경리가 불자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고.

김 의원도 별다른 거부 반응은 보이진 않았다.

주변 사람들 반응을 살핀 뒤, 내가 말했다.

“네, 이사님 하시죠.”

변 이사는 손을 모으고 말했다.

“모두 잠시 눈을 감아주십시오.”

난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대모산 자락의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변 이사의 기도 소리가 들렸다.

‘주님. 우리가 하는 일이 당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면 벌하여 주시고,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에 묻힌 고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변 이사의 기도 소리가 숙연하게 들렸다.

후우~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다. 피할 생각은 없다.

난 장묘 직원에게 단호히 말했다.

“이제 진행해 주십시오.”

“네.”

분묘 옆에 대기하고 있던 장묘 직원들이 바로 삽질을 시작했다.

푹. 푹.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 오래된 짙은 갈색의 관이 나타났고.

관 주변의 흙을 깊게 파서 관만 깔끔하게 보이도록 했다.

“이제 관을 열겠습니다.”

끼이익.

관 뚜껑이 열렸고.

흡~ 후우~

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근데…… 눈을 떴을 때 김정식이 관 가까이 얼굴을 대고 유골을 살피는 게 보였다.

왜 그러지?

유골을 살피던 김정식.

곧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날 본 후 다시 유골을 보는데.

난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골에…… 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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