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20화 (120/156)

기적의 남자들 (3)

* * *

그의 눈동자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빛은 순간 번뜩하고 사라졌다.

“뭔가 있으시군요?”

내 말에 김정식은 내 눈을 지그시 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

산신령 얘기가 이런 거였구나.

김정식이 금안을 가졌다는 건가?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일을 겪고, 나와 비슷한 걸 얻었다.

처음 이 남자를 만났을 때의 묘한 기분. 왜 같은 부류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

김정식이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좀 심부름하는 사람만 있으면 되죠.”

“…….”

“근데 태평 님이 살아온 걸 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속초에서 돌아와서 얼마 안 되어 다르다는 걸 느끼셨을 텐데.”

아니. 내 손이 달라졌다는 걸 속초에서 느꼈다. 지독한 똥손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내가 가진 것을 사용하는데 서툴렀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돈만 버는 게 능사는 아니니까.

“저는 제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잘 쓰고 있을 진 모르겠지만.”

김정식은 흥미로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제게 생기는 변화를 즐기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치트키는 쓰는 재미보다, 가지고 있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하하. 재밌네요.”

김정식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근데…… 만약 그렇게 지내시다가. 돈도 충분히 모아두지 않은 상황에서.”

“…….”

“나쁜 이들에게 붙들려 손이라도 잘리게 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뭐어?!

아니 무슨 비유를 해도 이렇게 섬뜩하게 하냐?

내가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자.

김정식은 살짝 손을 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재주가 없어서. 비유가 너무 극단적이었네요. 그냥 손을 못 쓰게, 라고 표현해도 될걸.”

“…….”

김정식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젠 그런 최악의 상황도 염려할 필요가 없겠군요.”

“네?”

“손 잘리면 어떻습니까. 절 만나셨는데. 과다 출혈로 죽기 전에 발견만 되면…….”

“그 말씀은 이제 좀…….”

“아, 죄송합니다.”

김정식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제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 * *

상 위에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는데.

대부분 손도 안 댄 그대로다.

앞에 김정식을 두고, 그와 요상한 대화들을 하다 보니 식욕이 잘 안 생긴다.

대화 나누는 중에 많은 충격을 받기도 했고.

그래도 산삼 삼계탕은 다 먹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밤 9시.

그와 별 얘기 안 나눈 거 같은데,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2차 가실래요?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김정식의 말에 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집도 멀어서요.”

“집에는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난 다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혼자 가겠습니다. 택시 타고 가면 되는걸요.”

내 집이 어딘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수유리에 사시길래 일부러 식당을 종로 쪽으로 잡았습니다. 제가 강남 쪽에도 괜찮은 곳 많이 아는데.”

“…….”

집도 알어? 도대체 어디까지 알아본 거야?

“그렇게 막 뒷조사하셔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알게 될 거, 조금 더 빨리 알았을 뿐입니다.”

기분 나쁘게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니 할 말이 없었다.

“수유에서 내곡동까지 다니기 힘드시지 않으세요?”

“뭐 그러려니 합니다. 이사를 가볼까도 생각했는데, 지금 사는 동네 정들어서요. 귀찮기도 하고.”

“제가 양재동 쪽에 집 하나 해드릴까요? 양재동 정도면 출퇴근하기 괜찮으시죠? 아파트가 좋으세요? 주택이 좋으세요?”

“…….”

감정과 눈치가 결여된 사람인가?

이젠 부담스럽다 못해 약간 거북해지려 한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제 일어나시죠.”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행동일 거란 생각은 하지만, 영 불편하다.

“훗. 그래요. 태평 님이 돈이 없는 분은 아니시니까.”

김정식은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고.

난 얼른 가서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덥썩.

“오…….”

김정식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확실히 다르네요.”

난 못 들은 척하고 그를 빨리 입구 쪽으로 부축해주었다.

아까 비서들에게는 혼자 하겠다고 손 떼라고 하더니.

나한테는 안 그러네.

드르륵.

문이 열리자, 어디선가 남자 비서 둘이 득달같이 달려왔고.

양옆에서 김정식을 보좌했다.

청화옥 정문 앞.

택시가 도착했다.

굳이 나 먼저 가는 걸 본 후에 가겠다며, 김정식과 비서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태평 님.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김정식은 날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고.

그가 시의원이라는 신분을 알아서일까.

처음 만났을 때보다 이런 깍듯한 모습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오늘 식사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뵙게 될 때는 편하게 대해 주세요. 저보다 어른이신데, 불편합니다.”

택시에 타서 문을 닫으려는데.

김정식이 물었다.

“다음에 또 언제 뵐까요?”

“네?”

“자주 뵈었으면 좋겠는데.”

일을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친하게 지낼 성향도 아닌 거 같은데.

“글쎄요. 또 뵙게 될 날이 있겠죠.”

“다음에 저희 집으로 한번 초대하겠습니다.”

“뭐, 알겠습니다.”

집으로 초대하겠다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대충 얼버무리며 빈말로 대답했다.

“이번 주말 어떠십니까?”

날짜를 잡아 버리려고 하네.

“이번 주는 좀 바쁠 것 같구요. 조만간 기회 봐서요.”

“바쁘시면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김정식이 날 바라봤다.

뭉뚱그리며 대답하고 가려는데.

약속 잡기 전까지는 안 보낼 것 같았다.

옆에 남자 비서 둘도 내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흠. 다음 주라, 일단 시간 체크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때다 싶어서 기사님께 말했다.

“기사님, 출발해주세요. 빨리요.”

부웅―

택시는 출발했고.

창밖으로 멀어지는 김정식을 보았다.

그는 손으로 수화기 모양을 하고, 귀 옆에 대고 있었다.

전화 달라고.

* * *

다음날 사랑산성.

어제 밤잠을 설쳤다.

김정식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실제 인물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하고.

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 갔던 식당도 그렇고.

난 그런 대궐 같은 식당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김정식이 나타난 이후, 뭔가 내 삶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 것 같았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가우면서도, 찝찝하기도 하고, 훈훈해지면서도, 부담스러운.

아주 복잡 미묘한 기분.

“뭐야?”

사랑산성 정문 앞에 하얀색 벤스 E클래스 한 대가 서 있다.

“영업장 앞에 차를 이렇게 세워놓으면 어떡하나?”

난 차 빼달라고 하려고 운전자석 쪽에 다가갔는데.

어? 차에 전화번호도 안 남겨놨네?

띠링!

그때 문자 알림음이 들렸다.

[김정식입니다. 지금쯤 보셨으려나요? 어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서 차 한 대 보냈습니다. 타던 차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타세요. 키는 꽂아 놨습니다.]

부담 갖지 말라고?

이런 걸 어떻게 부담을 안 가져?

게다가 난 면허증도 없는데!

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김 의원님!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차 보셨어요?]

[의원님이 이러셔도 됩니까?]

[이게 뭐요? 차 빌려드리는 건데. 물론 영구 임대이긴 하지만. 하하.]

[…… 웃음이 나오세요?]

[부담 갖지 말고 타세요.]

[제 뒷조사는 하시면서, 저 면허증 없는 건 모르셨습니까?]

[아~ 그건 생각도 못 했네요. 너무 당연한 건 뒷조사 안 하죠.]

할 말 없게 만드네.

김정식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드라이버 고용해 드릴게요.]

[아, 아니요!]

말이 안 통한다.

[차 가져가세요. 운전도 못 하고요. 부담됩니다.]

[저한테 선심 쓴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타 주시면 안 될까요?]

[…….]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집도 안 받으시겠다고 해서…… 이렇게라도. 면허는 뭐. 금방 따실 수 있잖아요? 태평 님 손이라면.]

하…… 이를 어쩐다.

[출근 시간이라 바쁘시죠? 그럼 이만 끊습니다.]

[자, 잠깐만요. 이거 진짜 빌리는 거예요! 나중에 가져가셔야 해요.]

[하하. 네~]

뚝.

휴우~

벤스를 바라봤다. 일단 차를 옮겨야겠는데.

변 이사님에게 부탁해야겠네.

사랑산성 주방.

“와~ 우리 강 사장님이 드디어 돈을 쓰는 구만~”

변 이사는 신나서 말했다.

“근데 어떻게 차부터 살 생각을 다 했어? 면허증도 없으면서?”

김정식에게 차를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빌렸다고 말하기에도 이상하고.

“그냥 맘에 들어서요.”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최경리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순서는 지켜야지. 돈 자랑 하는 것도 아니고.”

“…….”

면허증 없는 걸 말하는 것 같은데.

혼잣말 다 들리게 하는 저 버릇 좀 고칠 수 없을까.

변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면허증은 언제 딸 거야?”

“글쎄요.”

차 저렇게 놔둘 수도 없고.

등 떠밀려서 면허증 따겠네.

“뭐…… 차 안 탈 거면. 나 빌려줘도 되는데.”

난 대꾸 없이 변 이사를 째려보았고.

“흠! 아~ 차 잘 나가더라.”

그는 찔러본 게 실패했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딴청을 했다.

띠링!

핸드폰 알림음이 동시다발로 울렸다.

먼저 확인한 오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 오늘 월급날이지. 하하. 월급 아침 일찍 들어오는 거 너무 좋아요~”

아마…… 확인하고 나면 더 좋아하게 될 거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각자 성과급을 1,000만 원씩 받았었다.

“어?”

핸드폰을 쥔 오 대리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 이거 잘못된 거 아니야? 이상한데? 최 과장님?”

오 대리는 경리업무를 맞고 있는 최경리를 바라봤다.

“오류 아니에요.”

최경리는 짧게 대답한 후, 빙그레 웃었다.

김지안은 다리까지 떨고 있었다.

그녀는 최 과장 말고 날 바라보며 물었다.

“어머, 사장님. 이거 진짜 맞는 거예요? 혹시 성과급이 이번부터 연간으로 바뀌는 건가요?”

“하하. 아니야. 월 성과급 맞어.”

“미쳤어!”

변 이사는 어이없어서 너털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성과금

성과기금 2억7천3백만 원.

강태평 : 27,300,000원

변 이사 : 54,600,000원

최경리 : 54,600,000원

오 대리 : 73,710,000원

김지안 : 62,790,000원

전직원. 성과급이 연봉보다 높다.

“이번에 경매 수익 받은 거 그대로 다 반영 한 거야?”

변 이사의 물음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이죠.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요.”

변 이사는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만세!”

갑자기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강 사장님! 만세!”

“만세!”

직원들은 곧바로 변 이사를 따라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고.

하나같이 행복에 벅차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만세!”

“하하!”

재밌어서 나도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다만 내용을 조금 바꿨다.

“사랑산성! 만세!”

“만세!”

“종이접기 만세!”

“만세!”

“하하하.”

사랑산성의 주방 안에.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제 아침인데, 텐션이 장난 아니다.

오늘 장사 잘되겠네.

“아, 그리고 내일 영업은 쉰다. 디너 통합 야유회야.”

내가 받은 성과급. 내일부터 사용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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