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19화 (119/156)

기적의 남자들 (2)

* * *

초면에 다짜고짜 절을 하더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이 세상에 강태평 님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도록 만들어 드릴 겁니다.’

황당했다. 아주 몹시 황당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아주 기괴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이 정도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이상할 게 아닌데.

그냥…… 왠지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것 같았고.

이 남자와 뭔가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 기분.

도대체 뭘까.

김정식은 문 앞에 있는 남성 둘에게 말했다.

“문 닫아라.”

“네.”

“그리고 멀리 가 있어라.”

“네? 그래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닫았다.

곧, 방문에서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음식이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김정식은 손을 뻗어 자리를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는…… 숟가락 놓을 자리도 없었다.

별의별 음식이 다 놓여 있는데.

말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다.

그리고 삼계탕 하나가 내 자리에 놓여 있는데.

시원한 약초 향이 아주 좋았다.

흐흡~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쉬자, 김정식이 말했다.

“많이 드십시오. 보양식이니까요. 삼계탕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당연히 좋아하죠. 잘 먹겠습니다. 근데 좋은 향이 나네요?”

“산삼 향입니다.”

“아~ 인…… 뭐요? 산삼?!”

순간 인삼으로 들었다. 산삼이라고?

“네, 산삼 삼계탕입니다. 이 집에서 시가로 판매하는 음식이거든요. 많이 드십시오.”

그는 남비서들에게 한 것과는 다르게 내게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깍듯했다.

와…… 근데.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먹어?!

숟가락으로 휘저어보니, 하얗게 빛나는 사람 모양의 삼 두 개가 나왔다.

막 돌 지난 아기처럼 토실토실했다.

“아니…… 두 개씩이나.”

“더 드셔도 됩니다.”

살짝 맛을 보았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 못지않다.

역시…… 음식은 재료 빨인가?

음미하면서 맛을 기억하려 했다. 직업은 어쩔 수가 없는 건가.

난 요리사이기도 하니까.

산삼을 씹으며 물었다.

“이런 음식은 가격이 얼마나 합니까?”

“얼마 안 합니다. 가격은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 드십시오.”

맛에 취해서 먹다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가 날 향해 살짝 미소 짓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미소를 거두었다.

‘웃을 줄 알긴 하는구나.’

“선생님도 어서 드시죠.”

난 그를 어떻게 호칭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이렇게 불렀다.

“네. 많이 드세요.”

김정식도 숟가락을 떴다.

* * *

그렇게 십여 분.

아무 말 없이 밥만 먹었다.

난 아직 이 남자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현재 분위기를 김정식이 주도하고 있기에, 일단 잠자코 따라갔다.

때가 되면 말할 것이라 생각했다.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산삼 삼계탕을 2/3정도 먹었을 때,

김정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묵하시네요?”

“네?”

“궁금해하실 줄 알았는데.”

“궁금하죠~”

“근데 왜 아무것도 안 물어보세요?”

“…….”

할 말이 없었다.

김정식이 입 열기를 기다린 거였지만, 어쨌든 나도 말없이 밥만 먹었으니까.

나한테 고맙다며 절까지 할 정도면…… 어쨌든 나한테 악감정은 없는 사람 같으니.

그냥 편하게 물어보자.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이게 제일 궁금했다.

도대체 뭔데 이정수 팀장이 벌벌 떨면서 만나야 한다고 했는지.

그리고 이런 초고급 식당의 저녁 식사. 앞에서 지키고 있던 남자 비서들은 뭔지.

거기다 최근에 내 작품을 포함해 수십억 하는 초고가 두 작품을 낙찰받기도 했다.

분명히 보통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시의원입니다.”

“시의원이요?”

“네.”

“서울시요?”

“네.”

그거…… 높은 사람 아닌가? 국회의원보다는 아니겠지만.

“많이 부자 같아 보이시는데.”

“네, 부자입니다. 부자는 의원 하면 안 되나요?”

“아,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물어본 게 아니에요.”

서울 시의원인데, 수십억을 손쉽게 쓴다?

뭔가 좀 매칭이 안 된다.

“그게 다입니까? 시의원 하면 그렇게 월급을 많이 주나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약간 돌려서 말했다.

“하하.”

김정식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웃음소리만 들리니 기괴하다.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시의원은 공무직 등 법률로 허용하지 않은 직을 제외하고는 겸직이 허용됩니다. 국회의원과는 다르죠.”

“아…….”

대략 정리가 된다.

시의원이면서 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자산가인가?.

“혹시 재벌은 아니시죠?”

“아니에요.”

이때, 한 가지 이해 안 되는 게 있었다.

그 정도 지위에 자산가가…….

“왜 고속버스를 타셨던 거예요?”

혼자 고속버스 타고 속초 갈 형편은 아닌 듯한데.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겨우 1년 반이 지났다.

달라져 봐야 얼마나 달라졌다는 거지?

“나중에 천천히 아시게 될 겁니다. 태평 님도 많이 달라지셨잖아요.”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흠……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다시 식사를 이어가다가.

아, 맞다!

난 내 옆자리에 놓인 꽃바구니를 들었다.

“이거 선물입니다. 오늘 초면이기도 한데, 생존자님께는 이런 선물이 어울리지 않나 싶어서요. 하하.”

“아…….”

김정식은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난 꽃바구니 가운데의 붉은색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포인세티아라는 꽃인데요. 축하, 행복, 희생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답니다. 늦었지만, 건강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어떻게 보면 의원님과 저는 생존 동기네요. 하하.”

난 자연스럽게 의원이라고 호칭하며, 꽃바구니를 건네었고.

김정식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하하. 네.”

김정식은 포인세티아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생존 동기라…….”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혹시…….”

“네, 말씀하세요.”

“속초에서 절벽에 떨어졌을 때 말입니다.”

“네.”

“산신령 만나셨습니까?”

“……!”

* * *

‘산신령’

콜록. 콜록.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순간 사레가 걸렸다.

콜록. 콜록.

“괜찮으세요?”

김정식은 내게 휴지를 건네었다.

“아, 네네.”

뭐지? 그냥 찔러보는 건가? 아니면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산신령은 왜…….

난 연못에서 만난 존재를 ‘할아버지’라고 지칭한다.

지칭하는 용어는 다르지만, 대상이 같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내가 뭐라 대꾸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김정식은 다시 말했다.

“저는 만났거든요.”

“…….”

“연못 위에 떠 있는 산신령이었는데. 혹시 태평 님은 아닌가요?”

김정식은 고개를 살짝 가까이하고 되물었다.

내 눈을 빤히 보며 한 단어를 말했다.

“변화.”

그래도 대꾸를 안 하자. 그는 피식 미소 짓고는 말했다.

“제가 잘못 짚었나 보군요. 그냥 헛소리 들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는 물을 한잔 마시고는 이어서 말했다.

“저만 겪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요? 김 의원님은 속초 사건 이후로 뭔가 달라졌나요?”

그는 지팡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다리 한 짝을 잃은 대신 새로운 인생을 얻었죠.”

“…….”

“근데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얻은 게 훨씬 크니까요.”

“산신령에게 뭔가를 받으셨습니까?”

“음?”

이 물음에 김 의원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의 표정이 의구심에서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고.

난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긴 하지만.

분명, 이 남자와 나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받은 게 있죠. 하지만…….”

“네, 받은 것을 말하면 안 되죠. 그건 약속이니까.”

그의 말을 이어서 내가 받았다.

산신령이 말했었다.

‘받은 것은 너만 알고 있거라. 그리고 너의 행동을 통해 사람들이 알게 해라.’

“더 큰…… 동질감이 느껴지는군요.”

김 의원은 날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난 넌지시 김 의원에게 물었다.

“혹시 저한테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아무 목적 없이 이런 만남과 질문을 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바라는 거요? 네 있죠.”

“…….”

“처음에 만났을 때 말씀드렸듯이…… 제가 마음껏 강태평 님을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도움이요?”

“네. 제 도움을 많이 받아주십시오. 그것이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제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

“강태평 님과 산신령 덕분에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보답하고 싶습니다.”

흠…….

이정수 팀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가 부담스러운 스타일이라면.

김 의원은 무섭게 부담스러운 스타일 같다.

* * *

“그냥 친하게 지내시죠. 무슨 말씀을 그렇게…….”

초면인데, 날 돕는 게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란다.

생명의 은인이라 생각해서 이러는 건 아는데.

사실 내가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김 의원을 살린 것도 아니고.

영 부담스럽다.

김정식은 내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제가 미덥지 않으신가요?”

“아니요. 제가 지금…… 너무 잘살고 있거든요.”

“…….”

“딱히 도움받을 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건 모르죠.”

김 의원이 말했다.

“올해 나이가 32세죠?”

“…….”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봤을 때는 아주 젊은…… 아니, 어린 나이입니다.”

김 의원의 눈빛은 진지했다.

“달콤한 음식엔 파리가 꼬이는 법이죠. 태평 님 같은 재능 넘치는 젊은이에게 별별 인간들이 다 몰려 들겁니다.”

“…….”

“앞으로 태평 님이 맞이하는 모든 선택지에서 절대로 망하지 않는 길을 제시하고, 어떠한 위험에서도 보호해 드릴 수 있습니다.”

대화의 뉘앙스가 약간 포교 활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선택지에서 절대로 망하지 않는 길을 제시한다?’

이 말이 참 묘하게 들렸다.

“혹시 점을 보십니까?”

약간 어이가 없어서, 살짝 비꼬는 투로 물어봤다.

“훗.”

김 의원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보아하니, 태평 님은 손재주가 좋으신 듯한데.”

그는 묻는 말에는 대꾸 안 하고 다른 말을 했다.

“촬영, 종이접기, 요리.”

내가 영리 목적으로 했던 일이니,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근데…….

“정수기, 스마트 폰, 컴퓨터, 선풍기, 오토바이, 청소기…….”

뭐, 뭐야?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심지어 악수를 하며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도 하죠.”

“아니…… 그런 걸 어떻게 다…….”

“태평 님. 돈과 권력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답니다.”

그의 눈에서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점을 보냐고요? 어찌 보면 비슷한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

“저는 사는 길을 볼 줄 압니다. 돈이 되는 길을 볼 줄 알며, 성공하는 길도 볼 줄 알죠.”

볼 줄 안다?

순간 그의 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듯했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예를 들어볼까요?”

“…….”

“’할아버지의 일생’ 강남 옥션과 영웅 옥션 두 곳에 의뢰하셨었죠?”

“…….”

“제가 옆에 있었다면, 강남 옥션은 의뢰도 하지 말라고 했을 겁니다. 이러면 좀 이해가 될까요?”

미래를 본다는 건가?

“이미 지난 일로 말씀드리니, 신빙성이 좀 떨어지죠. 가까운 미래에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꿀꺽.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점쟁이가 아닙니다. 다만.”

그의 눈이 다시 한번 빛났다.

“선택을 좀 잘할 뿐입니다.”

그 의미는…….

난 그의 눈을 자세히 봤다.

저거 혹시…… 금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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