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11화 (111/156)

일 나겠네 (2)

* * *

53번째 작품의 경매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54번째 작품 ‘할아버지의 일생’ 경매 시작인데.

강태평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변 이사는 다급하여 물었다.

“아니, 왜 안 와?”

“모르겠어요. 바로 온다고 했는데.”

“어디라는데?”

“근처 카페라고 했어요.”

“허허. 경매가 이렇게 빨리 끝날지 예상 못 했나 보구만.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거 아니야?

“…….”

“다시 한번 전화해봐. 곧 시작한다고.”

“알겠습니다.”

[54번째 작품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화장실 급해서 잠깐 들렸답니다. 곧 코엑스 몰에 도착한다고.”

“B홀까지 찾아오려면 못해도 10분은 걸리겠네.”

“…….”

“어떡하죠. 시작했는데……. 잠깐 멈춰달라고 할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54번째 작품은 네모의…… 신?]

경매사는 경매도록을 읽다가, 멈칫했다.

지켜보고 있던 변 이사는 한숨 쉬며 말했다.

“아이고, 난 모르겠다. 끝나기 전에 오기만을 바라야지.”

“응찰자도 아닌데요, 뭐. 나중에 결과 들어도 상관없죠.”

경매사는 옆에 앉아 있는 직원과 확인 후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작가명이 이상하다 싶어서 확인하는 듯싶었는데, 경매사는 네모의 신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흠! 죄송합니다. 54번째 작품. 네모의 신 작가의 ‘할아버지의 일생’입니다. 2021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이제 막 2달 된 따근따근한 작품입니다.]

하하.

장내에서 가볍게 웃음소리가 들렸고.

다른 한편에서는 술렁이기도 했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플래시 터지는 소리도 꽤 들렸다.

[충주의 한 시골집에서 할아버지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입니다. 한 인물의 어릴 적 모습부터 현재 노인이 될 때까지의 연령대별 모습을 담은 작품인데요.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듯한 모습. 그리고 사람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술렁이던 장내는 이제 좀 잠잠해졌다.

[제 오른편을 보시면.]

경매사는 오른쪽에 놓인 ‘할아버지의 일생’ 실물을 가리켰다.

[종이로 만들었습니다. 한 장의 운용지를 자르거나 붙이지 않고, 오로지 접기만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9명이 이어져 있죠.]

오…….

경매사의 설명에 응찰자들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종이접기협회에서 수작으로 인정한 작품입니다. 경매 3억에서 출발하여, 1,000만 원씩 올라갑니다.]

‘할아버지의 일생’은 추정가는 2~4억이다.

3억이면 추정가의 딱 중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

경매 시작을 알렸지만, 장내는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약 3분 정도 경과.

꿀꺽.

변 이사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제발 한 명만이라도 불러라. 낙찰은 되어야 할 거 아니야.’

지금 54번째까지 지켜봤을 때, 응찰자가 없어서 낙찰되지 않는 경우도 꽤 많았다.

부디, 그런 일만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랬다.

똑닥. 똑닥.

어디선가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고.

장내에는 수백 명이 앉아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3억1천 없으십니까?]

경매사는 약간 당황한 듯싶었다.

지금까지 응찰자가 없던 작품들은 500만 원 미만의 작품들이었다.

억 단위가 넘는 first zone 작품이 이렇게 반응이 없다면…….

그때.

장내 뒤쪽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패들을 들었다.

경매사는 그 남자를 향해 힘차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3억 1천!]

불끈!

변 이사는 주먹을 꼭 쥔 채 숨죽여 나이스를 외쳤고.

오 대리 또한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나이스!”

“…….”

보안요원들이 눈치를 주자, 오 대리는 고개를 숙이고는 웃었다.

꽉!

두 남자는 아래로 손을 마주 잡고 말했다.

“오 대리, 됐다.”

“네, 변 이사님.”

“와~, 강 사장. 미쳤어. 진짜야. 진짜로 됐어. 하하.”

변 이사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계속 중얼거렸다.

한번 해본다고 시작한 종이공예 작품.

진짜로 시장가 3억 원이 넘는 순간이었다.

“이사님, 어떻게 하죠? 앞으로 사장님은 방에 가둬놓고, 하루에 2개 이상 종이공예 만들라고 하면 될까요?”

“군만두만 넣어주면서? 하하.”

두 남자는 신나서 재잘거리고 있었는데.

아직, 경매가 끝난 게 아니었다.

경매사는 다른 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네! 3억 2천! 3억 3천 없으십니까?]

* * *

변 이사와 오 대리.

두 남자는 영혼이 빠져나갔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경매장에는 소방수라도 와야 할 것 같았다.

완전히 불이 났다.

‘할아버지의 일생’이 영웅옥션 경매장을 불질러 버렸다.

[4억 1천! 4억 2천! 네, 4억 3천! 전화 응찰이요? 4억 4천! 서면 있습니까? 4억5천…….]

빗발치는 전화 응찰.

여기저기서 올라가는 패들.

순식간에 추정가를 넘어서.

응찰가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있었다.

[5억 5천! 5억 6천! 전화 응찰이요? 5억 7천…….]

처음엔 경매사는 왼손에 낙찰봉을 들고, 오른손으로 응찰자를 향해 뻗으며 호가를 불렀었는데.

이젠 낙찰봉을 내려놓았다.

양손을 이리저리 뻗으며 호가를 부르기 바빴다.

백화점 주차 요원이 안내하는 것처럼, 경매사의 양팔은 쉴 새 없이 뻗어가고 있었다.

“뭐야……. 처음엔 잠잠하더니.”

변 이사는 이제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럴 시기가 지났다.

그저 넋이 나가 있을 뿐이었다.

“글쎄요. 혹시 핸드폰으로 네모의 신 검색해봤던 게 아닐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

[8억 1천! 네~, 8억 2천! 8억 3천! 네~, 전화 8억 4천…….]

경매사는 다른 멘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호가만 계속 불렀다.

끼이익.

그때 경매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이상하게 장내에 있던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170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키.

보통 체격.

하얀 피부에 남자치고는 참 단아하게 생긴 외모.

아주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호감 가는 인상.

하지만 특이한 게 있다면.

그의 손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찰칵. 찰칵.

일부 기자는 그의 정체도 모르면서 범상치 않은 기운에 일단 찍고 봤다.

네모의 신 강태평.

이 자리에서 그는 뭔가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9억! 자, 잠깐만요.]

경매사는 9억을 외친 후, 한숨을 돌렸다.

경매장에는 여전히 여기저기 패들이 올라가 있었다.

[지금부터 1억씩 올리겠습니다. 호가 부를 테니, 신중히 생각하시고 응찰해 주시기 바랍니다. 10억! 10억 있으십니까?]

강태평은 변 이사에게 가던 중 경매사의 외침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

‘지금 내 작품 경매하는 거 맞나? 뭐?! 10억?!’

경매사는 높이든 패들을 보며 외쳤다.

[네~, 10억! 11억 있습니까?]

강태평은 믿기지 않아서, 경매사 옆에 띄운 작품 소개를 다시 보았다.

분명 54번째 작품.

‘할아버지의 일생’이 맞다.

작가 네모의 신.

* * *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난 자리에 앉자마자, 변 이사에게 물었다.

“몰라……. 나도 모르겠어.”

변 이사는 대답할 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난 옆에 오 대리를 바라봤다.

“오 대리?”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시작할 때는 이런 분위기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

[11억! 전화 응찰이요? 12억…….]

순식간에 1억씩 날아 올라가는 응찰가를 보며 변 이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좀 이상하다. 무섭다.”

“로또 당첨되는 게 이런 기분일까요? 진짜 기분이 좋다 못해 좀 무서워지네요.”

오 대리 얼굴이 샐쭉해졌다.

경매장 분위기는 끝을 모르고 달아오르고 있었다.

최고 추정가 4억 원 하던 작품이…… 10억을 넘어서.

[12억! 네, 12억까지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진짜 미친 거 아니야?

[12억! 전화 응찰이요? 네, 없고요. 더 없으십니까?]

드디어 멈췄다.

경매사의 얼굴에도 땀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경매사뿐만이 아니라, 영웅옥션 관련 직원들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정수 팀장도 한쪽 구석에서 기도하는 듯 두 손을 꼭 모으고 있었다.

[네~, 13억! 더 없으십니까?]

이제 현장에서 두 남자만 패들을 번갈아 들었는데.

“어?!”

한 명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난 자세히 더 보았다.

“네모 씨 아니야?! 변 이사님! 저기 좀 보세요.”

변 이사도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거 같네.”

네모 씨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패들을 들었다.

[네! 14억! 14억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남자.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네모 씨에 이어, 곧바로 패들을 들었고.

[15억! 15억입니다. 더 없으십니까?]

그 젊은 남자가 주도하고, 네모 씨가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부모한테 재산이라도 물려받았나?

저렇게 젊은 남자가 무슨 돈이 있다고…….

아무리 내 작품, 내 자식이라 소중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나?

경매사는 네모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더 없으십니까? 후회하지 않으시겠죠?]

참여시키기 위해 도발하는 모양새.

[16억 없으십니까? 네~, 16억!]

네모 씨는 결국 패들을 또 들었고.

경매사는 네모 씨를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16억! 16억 나왔습니다! 17억 없으십니까?]

이번엔 젊은 남성은 바로 들지 않았고. 잠깐 손을 들어 기다려달라는 의사표시를 했다.

[네, 아무래도 고가다 보니 시간이 좀 필요하시겠죠. 잠시 생각할 시간 드리겠습니다.]

두 남자의 경합에 장내는 술렁이고 있었고.

젊은 남자는 어딘가로 전화했다.

통화는 짧았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바로 패들을 들었다.

[17억입니다! 더 없으십니까?]

네모 씨는 입술을 깨물더니, 또 패들을 들었다.

[18억!]

술렁. 술렁.

찰칵! 찰칵!

미쳐가는 분위기.

그런데 젊은 남자는 네모 씨가 패들을 내리자마자, 바로 들었다.

[19억! 19억입니다. 와~, 19억!]

전화로 지령이라도 받은 건가?

이젠 조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네모 씨는 그 젊은 남성을 힐끗 바라본 후, 한숨을 푹 쉬었다.

[20억 없으십니까?]

경매사는 네모 씨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네모 씨는 패들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5천만 원 올리겠습니다. 19억 5천만 원 없으십니까?]

경매사는 네모 씨의 눈빛을 읽었는지, 더 이상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장내의 다른 사람들과 전화 대기를 보며 물었다.

[현재 최고 응찰가 19억입니다. 19억 5천만 원 없으십니까?]

“…….”

이제 장내에 휩싸였던 불길이 잡혀 가고 있었다.

차분해진 공기.

고요한 침묵 속에.

경매사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최고가 3번 부르고, 더 없으시면 마치겠습니다.]

변 이사와 오 대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고.

네모 씨는 고개를 푹 숙였으며.

난 눈깔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씨바, 말이 돼?! 진짜?’

[19억! 19억! 19억…….]

.

.

.

.

.

따당!

[축하드립니다! 네모의 신 작가의 ‘할아버지의 일생’ 19억에 낙찰되었습니다.]

벌떡!

변 이사와 오 대리는 일어나서 날 얼싸안고 소리쳤다.

“태평아! 꽃길 가자! 축하해! 으하하하! 대박! 대박!”

“이게 무슨 일이에요! 진짜아! 19억이라니!”

우아악~!

우리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얼싸안고 소리쳤고.

어느새 이정수 팀장도 우리에게 뛰어와 함께 안았다.

우리 넷은 함께 얼싸안고 발을 동동 굴렀다.

사람들은 이들을 이상하게 봤다.

낙찰자도 아닌데 이렇게 좋아하다니…….

― 저 사람들 뭐야?

― 혹시 작품 주인인가?

― 태평? 혹시 네모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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