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97화 (97/156)

이게 평가라고? (2)

* * *

“이게 뭔 개소리야?!”

이게 화낼 일인가? 무려 5천만 원이나 한다는데?

일어난 네모삼촌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작품이 겨우 5천만 원이라고? 정말?”

네모삼촌은 감정평가사 김수석에게 다가가 따지듯 물었다.

돌발행동에 우리는 당황했는데, 의외로 김수석은 이상하리만치 태연했다.

“이보시오. 말해봐요. 이게 왜 5천만 원이냐고요.”

“자자. 진정하시고.”

심지어 살며시 미소까지 지으며 그는 네모삼촌을 진정시켰다.

난 불안한 기색으로 두 사람의 실랑이를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런 고객 많겠죠.”

옆에 앉은 네모 씨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제 자식 안 이뻐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누가 뭐래도 내 자식은 최고인 법이잖아요.”

“아……. 하긴.”

네모 씨의 말이 이해가 된다. 그는 소장 중인 작품을 자식에 비유했다.

기대치가 높았을 경우, 실망스러운 결과를 듣게 된다면 저런 일이 발생할 것 같긴 하다.

근데…… 진짜 5천만 원이면 괜찮은 거 아닌가?

난 이런 작품 하루에 한 개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곧바로 암산을 해봤다.

한 달을 4주로 보고, 주 5일 근무라고 했을 때. 워킹 데이는 20일.

20일*5,000만 원=10억

헉……. 월 수익 10억 원이다.

재료비는? 그냥 운용지 한 묶음?

20일 치 만드는 데 운용지 만 원어치도 안 될 것 같은데…….

마진율 99% 이상.

그야말로 대박이 아닌가?

이렇게 흥분할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네모삼촌과 김수석. 두 사람은 여전히 투덕거리고 있었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난 네모 씨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네모 씨 생각에도 네모삼촌이 좀 오바하는 거 같다는 거죠? 종이로 만든 작품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내 생각에도 5천만 원이면 충분히…….”

“아니요.”

네모 씨는 단호히 내 말을 막았다.

“반응이 좀 격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오바라고 보지는 않아요.”

“…….”

“오천만 원은 좀 아니지……. 어떻게 이런 작품을.”

중얼거리는 네모 씨의 눈빛에도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 * *

“아니, 그러니까 왜인지 설명을 하라니까요?”

“제가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신인 작가치고는 감정액을 높게 준거라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작품 자체로 봐야죠!”

“작품도 본 거죠. 훌륭한 작품인 건 인정하지만, 너무 희귀하잖아요.”

“희소성이라는 건 오히려 가치를 높여 주는 거 아닌가요?”

네모삼촌은 이렇게 공격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 상황이 정말로 맘에 안 드는 것이다.

“허허. 이거 참. 뜻한 대로 결과가 안 나왔다고……. 답은 이미 정해 놓으셨는데, 왜 감정 의뢰를 맡기셨습니까?”

“뭐라고요?”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고, 결국 네모 씨가 나섰다.

“네모삼촌, 진정하세요. 흥분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네모 씨! 자기가 봐도 이건 좀 아니잖아? 어떻게 이 작품이 5,000만 원밖에 안 되냐고. 종이접기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네모 씨는 손을 들어 네모삼촌이 더 말하려는 걸 막았다.

그리고 김수석을 바라봤다.

“수석님, 전 네모튜브 크리에이터 네모 씨라고 합니다.”

“네? 네모, 뭐요?”

네모튜브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흠……. 내가 봐도 이쪽 세계와는 전혀 연관 없어 보이긴 한다.

약간 유명세를 활용해보려 했던 네모 씨는 태세를 바꿨다.

“흠! 두 분 대화하는 거 들었는데…… 제가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네에~, 말씀하세요오~.”

김수석은 능글맞게 네모 씨의 말을 받았다.

“수석님은 이 작품의 가치가 정말 5,000만 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움찔!

김수석은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이 방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김수석을 바라봤다.

“맞으면 맞다고 하세요. 감정평가를 내리신 거고, 대답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정카는 캠코더 버튼을 눌렀다.

그 모습을 보고 김수석이 말했다.

“이건 뭡니까?”

“저희는 종이접기 너튜버거든요. 영상 촬영 좀 하려고요.”

“글쎄요. 전 잘 모르겠고. 어쨌든 기관 내에서 허가 없는 영상 촬영은 불가합니다.”

“염려 마세요. 동의하지 않으시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니까요.”

“끄기 전에는 전 한마디도 안 합니다.”

상당히 방어적이었다.

본인이 감정 평가한 것에 대한 설명을 영상에 담겠다는 건데.

무슨 범죄 저지른 것을 찍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방어적일 이유가 있나?

네모 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고.

“이해하기 어렵네요.”

“제가 모를까 봐요? 감정 평가 하면서 별별 고객들 다 만나봤습니다.”

“…….”

“이렇게 기록 남겼다가 어떻게 쓰실 줄 알고요? 당장 꺼주세요.”

“알겠습니다.”

네모 씨는 정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정카는 캠코더를 껐다.

“자, 껐습니다. 이제 질문에 대한 대변 부탁드립니다. 궁금합니다.”

“얘기 못 하겠습니다.”

뭐어?

김수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빙글거리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주머니 속에 녹음기라도 들고 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캠코더 켜시는 것도 봤고, 방금 뭐 하시는 분들인지도 얘기 들으니…… 예민한 의견은 말씀 못 드리겠네요.”

“감정 평가한 금액에 대해, 그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 답변 주시는 게…… 예민한 의견인가요?”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건가?

네모 씨가 물어보는 게 정곡을 찌르는 원론적인 질문이기는 하지만, 억지스럽지는 아닌 거 같은데.

“허허. 감정 평가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고요. 이미 감정가는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필요한 답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 같다.

어느 정치인이 이런 유사한 느낌으로 대답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다.

질문만 하면, 이미 필요한 답변을 했다고 하는 태도.

“젠장. 답답해서 더 못 보겠네.”

그때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경리였다.

* * *

최경리는 팔짱을 낀 채로, 투명한 안경 너머 안광을 쏟아내고 있었다.

“감정 평가서 발급받지 마십시오. 안 받으면 되는 거지 않습니까.”

“…….”

“제가 이 금액이 큰지 적은 건지는 잘 모르지만, 다들 난리 치는 걸 보니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네모삼촌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문제 있는 거 맞아요. 확실히.”

네모 씨 또한 고개를 끄덕였고, 최경리는 날 향해 물었다.

“사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난 잘 모르겠다.

근데 전문가들이 이렇게까지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몰라. 문제 있나 봐.”

최경리는 김수석을 바라봤다.

“감정서 발급 안 받을게요.”

“그, 그게 무슨…….”

최경리의 돌직구.

김수석은 당황했다.

“저희 감정 의뢰 안 한 겁니다.”

“그럴 순 없죠! 그런 경우가 어딨어요?! 이미 인력이 소요된 시간이 있고…….”

“수수료는 드릴게요.”

최경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그.”

김수석은 완전히 말문이 막혀버렸다.

“5,000만 원이면…… 수수료 50만 원이네요. 맞죠?”

“…….”

“그럼 된 거죠?”

최경리가 심플하게 정리했다.

김수석뿐만이 아니라, 네모 씨와 네모삼촌도 말을 잃었다.

서로 아쉬운 말 할 필요가 없었다.

“사장님, 이렇게 해도 되죠?”

최경리는 날 바라봤고, 난 얼떨결에 대답했다.

“응? 으응……. 그래.”

최경리는 회의실 문밖을 나서며 말했다.

“수수료는 지금 나가면서 결제할게요. 감정 의뢰 취소 메일 드릴 테니 바로 답장 주세요.”

“…….”

“빠르게 액션 안 취하면 가만 안 있습니다.”

최경리는 싸늘하게 김수석을 바라보았고.

꿀꺽.

김수석은 침을 삼키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잘했어! 아주 속이 시원하네!”

네모삼촌은 한국시가감정협회를 나오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최경리는 무표정으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갈 뿐이었다.

“와~, 강 사장님이 직원 복이 있나 봐? 오 대리는 똑똑하던데, 최 과장님 강단 있네~.”

“…….”

난 아무 말 없이 최경리의 옆 모습을 보았다.

감정이니, 경제적 가치니 이런 것에 대한 사전지식은 없을 것이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아니다 싶으니 나서서 정리한 것 일텐데.

그렇게 강단 있고 확고하게 안 나갔으면, 애매하게 끌려갔을 것이다.

그 김수석이라는 사람…… 아주 능글맞아 보였다.

“네모삼촌님?”

묵묵히 걷고 있던 최경리가 네모삼촌을 불렀다.

“으응……. 네?”

네모삼촌은 반말로 대꾸하려다가, 무의식적으로 존댓말로 바꾸는 것 같았다.

“대안은 있으신 거죠?”

“네?”

“대안없이 그렇게 생짜 부리셨던 거 아니죠?”

“…….”

“지금 잠깐 미팅하고 가죠. 사장님, 어떠십니까?”

“응? 그래.”

최경리는 잠깐 검색하더니, 바로 장소를 잡았다.

“요 앞에 카페 있네요. 다들 따라오시죠.”

좀 전에 밝았던 모습과 달리.

네모삼촌은 벌서는 얼굴로 최경리를 따라갔다.

카페 안.

최경리가 커피를 가져왔다.

“아휴……. 제가 산다니깐.”

네모 씨의 말에 최경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오늘 사랑산성 때문에 모인 거잖아요. 경비 처리는 확실하게 합니다.”

“가져오는 건 제가 해도 되는데…….”

“제가 막내입니다.”

최경리는 무엇이든 확고하다. 망설임이 없다.

그녀의 이런 분위기는 주변 사람들을 각 잡게 만든다.

어느새 네모튜브도 최경리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있었다. 정카만 빼고.

“하하! 잘 마실게요~, 로봇 과장님~.”

최경리는 이제 정카가 하는 말에는 대꾸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다.

“네모삼촌님, 얘기해 보세요.”

“…….”

네모삼촌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대안 있으시니까, 감정가가 어쩌고 하면서 난리 친 거 아니에요?”

“…….”

“설마…….”

최경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고.

네모삼촌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사람이…… 꼭 대안이 있어야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허, 참나.”

최경리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이게 지금 네모튜브 사업이에요? 도움은 못 줄망정 훼방을 놔요?”

“…….”

“강 사장님이 만든 작품은 어떻게 하라고, 일을 이렇게 만듭니까? 네?”

“…….”

“아니면 네모튜브가 5,000만 원 주고 살 건가요? 아니지. 그 가격이 낮다고 컴플레인했으니, 그 이상 주셔야겠죠.”

최경리가 너무 공격적이어서 좀 부담됐지만.

같은 편으로서는……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자자, 최경리. 좋은 의도로 그러신 거잖아. 흥분 좀 가라앉히고.”

결국 내가 나서서 말렸다.

최경리가 이 정도 언성을 높여서 말한 적은 처음 봤다.

“하루 쉬고, 무려 6,000만 원 매출 포기하고, 사장님이 몰입해서 만든 작품이라고요. 종잇조각 되기만 해봐요. 진짜.”

“…….”

최경리가 한바탕 쏟아낸 후.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네모삼촌의 고개는 숙어지다 못해, 땅속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괜히 내가 미안했다.

그때, 네모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제가 오래전에 미술품 수집을 했었거든요. 지금은 안 하지만.”

“…….”

“이것 또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절차가 좀 더 까다롭긴 하지만요.”

네모삼촌은 고개를 들었고.

나 또한 네모 씨의 말에 집중했다.

네모 씨는 120만 구독자를 만든 너튜버이며, 수완이 좋은 사람이다.

그의 생각이라면…….

“옥션에 위탁해 보는 건 어때요?”

옥션?!

다들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자, 네모 씨는 다시 한번 말했다.

“예술품 경매요.”

위탁 신청

* * *

경매? 위탁?

“네모 씨, 그런 것도 알아요?”

“얘기했잖아요. 예전에 미술품 수집을 좀 했었다고. 우리 집에 컬렉션 룸도 있어요.”

“아……. 네모 씨 부자였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서, 지금도 부유하게 살고 있는 부유한 남자.

“난 네모 씨가 미술품을 좋아하는지는 몰랐네. 경매까지 해서 수집할 정도면…….”

네모삼촌이 중얼거렸고, 그 말을 들은 네모 씨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술품을 좋아하기도 하는데요. 그 외에 다른 목적도 있었죠.”

음? 다른 목적?

“제가 감정받기 전에 예술품을 동산으로서의 자산이라는 말씀드렸었죠. 하하. 투자 목적으로 수집한 것이기도 했어요.”

“…….”

“현금이란 건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면 좋은 거고요. 어차피 유동성 때문에 화폐 가치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자산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역시, 부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예술품을 자산의 가치로 소장할 생각을 다 하고.

“부의 연속성을 가져가기 위한 자산으로서, 저는 미술품을 1순위로 생각한 거죠. 제가 잘 아는 분야이기도 하고…… 좋아하니까요. 그다음이 부동산.”

“그래서? 돈 좀 벌었어?”

정카는 볼멘소리로 물었다.

평소에 부자인 티를 안 내고, 평범하게 지내는 네모 씨. 비범함은 이렇듯 갑자기 느껴진다.

그냥 같은 동료인 줄 알았던 사람이, 이렇듯 앞서가는 모습이 느껴질 때면 약간 얄미워 보일 것 같긴 하다.

“벌었지. 최근에 많이 처분하고 몇 개 안 가지고 있어.”

“…….”

“최근 사람들이 투가 가치로서 미술품에 관심 갖더라고. 몰릴 때는 빠져나오는 게 좋아. 딱 한발만 앞서서 행동하는 게 가장 좋은 거지.”

네모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했다.

그런 얘기 말고, 노하우를 알려주면 더 좋겠는데.

미술품 투자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려 하는데.

“자, 잘난 척은 그 정도면 됐고요. 어떻게 하자는 건지 말씀해 주시죠.”

산으로 가려던 분위기는 최경리에게 멱살 잡혀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 * *

“크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옥션은 두 곳이 있어요. 강남옥션, 영웅옥션.”

“이름은 둘 다 정겹네.”

정카가 피식 웃으며 말했지만, 네모 씨는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두 곳 다 규모는 비슷한데, 서로 특징이 있죠. 강남옥션은 현대미술에 강점이 있고요. 영웅옥션은 고미술 쪽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

“물론 두 곳 다 위탁 작품의 종류를 가리진 않아요. 다만, 좀 더 특화된 쪽에 큰손들이 몰리기 마련이긴 하죠.”

네모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현대미술을 구매하려는 주 고객층을 강남옥션에 집중하고, 고미술을 타깃으로 하는 고객들은 영웅옥션에 집중할 거라는 말이지?”

“그렇죠.”

난 궁금하여 물었다.

“왜 그렇게 나눠진 거예요? 이유가 있나요?”

네모 씨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죠. 강남옥션에서는 현대미술 메이저 경매가 많이 나왔었고, 그에 반해 영웅옥션에서는 고미술이었고요.”

하긴 전통이 형성된 것에 특별한 의도는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간 것이겠지.

“그럼 강 사장님 작품의 경우 강남옥션에 의뢰하는 게 낫겠네?”

네모삼촌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무래도 내 작품은 굳이 분류하자면 현대미술 쪽일 거고, 현대미술에 큰 손들이 모이는 강남옥션이 아무래도…….

네모 씨는 웃으며 말했다.

“상식적으로는 그렇긴 하죠. 하지만 경매라는 건 모르는 거예요. 그리고 일가를 이루는 분야에 있어서는 자신들만의 잣대가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

“어찌 보면 강 사장님 작품은 실험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몰라요. 강남옥션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도 있어요.”

주요 경매처는 두 곳.

규모도 비슷하고, 내 작품의 특성상 어느 곳이 더 맞다고 딱 집어 정할 수 없는 상황.

그냥 눈감고 찍어야 하나?

“그냥 두 곳에 다 위탁하면 안 됩니까?”

최경리가 불쑥 끼어들었고.

말을 이어갔다.

“위탁하면 무조건 가야 하는 겁니까?”

네모 씨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온라인으로 위탁 신청을 하고요. 그쪽에서는 접수된 내용을 바탕으로 서면 심의를 봅니다.”

“아…….”

“서면 심의를 통과하면 옥션 담당자와 위탁 계약을 진행하죠.”

꽤 디테일하게 알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굉장히 잘 아시네요.”

“그거야, 뭐. 많이 사고팔고 해봤으니까요.”

최경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서면 심의 통과했다고 해서, 무조건 진행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꼭 그런 건 아니죠. 변심할 수도 있는 거고, 어쨌든 계약 전이니까요. 심의 통과 후 계약을 합니다.”

최경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말했다.

“사장님, 그럼 두 곳에 함께 신청하는 게 좋겠는데요. 떨어질 수도 있는 건데,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게 낫죠.”

“글세……. 만약 두 곳 모두 되어버리면, 한 곳은 관둬야 하고…… 심의까지 봐줬는데 미안하잖아.”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업체 비교야말로 비즈니스의 기본이죠. 이렇게 진행하는 사람들 많을 것 같은데?”

난 네모 씨를 바라보았고, 그는 약간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있기는 하지만, 많지는 않아요. 근데…… 뭐 저도 애매할 때는 그렇게 해본 적이 있기는 해요. 한두 번 정도.”

네모 씨가 경험이 있다는 말에, 난 바로 결심했다.

“그래요. 그럼 경매 위탁 신청해보죠. 두 곳 동시에요.”

내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네모삼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은 거야?”

“뭐가요?”

“자기 작품…… 팔아도 괜찮은 거냐고.”

“…….”

비즈니스적으로만 정신이 팔려서, 다른 생각은 안 했었다.

충주 살미면 할아버지와의 만남부터, 렉시 모텔에서의 밤샘 작업까지.

작품에 깃든 추억과 내 모든 감성을 다른 이에게 보내는 것이다.

꿀꺽.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내 장기 하나 빼 주는 기분도 들었지만…….

“네, 괜찮아야죠. 소장하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니까요.”

“그래…….”

네모삼촌은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내 작품을 판다는 것.

팔게 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 기분이 좀 별로이긴 하지만.

이 또한 익숙해져야겠지.

* * *

네모 씨는 노트북을 켜며 말했다.

“지금 바로 사이트 들어가서 보죠. 신청 양식을 제가 다 외우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네모 씨는 크리에이티브라는 직업 특성상, 평소에도 항상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우리는 네모 씨의 노트북 화면을 함께 보았다.

흠…….

별로 복잡하진 않네.

네모삼촌이 말했다.

“사진만 있으면 바로 지금 신청 가능하겠는데?”

“지금 찍을까요?”

내 말에 네모 씨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함부로 찍을 게 아니에요. 이게 가장 중요해요.”

“…….”

“서면 심의의 전부라고 할 수 있어요. 사진은 스튜디오에 맡겨서 정말 제대로…….”

네모 씨는 말하다 말고, 깔깔대며 웃고 있는 정카와 네모삼촌을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진지한 얘기 하는데?”

정카가 여전히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 우리 처음 기념사진 찍었던 거 기억 안 나?”

“초절정 전문가 앞에서 무슨 실례되는 말이야? 하하.”

네모삼촌도 웃으며 맞받아쳤다.

네모튜브에서 첫 촬영 하던 날.

내가 기념사진을 찍어준 적이 있었다.

이제야 네모 씨도 생각난 듯.

“아~, 맞네. 하하! 미안해요. 초록창에 검색해도 나오는 사진작가 앞에서 감히……. 하하.”

“하하.”

나도 이 상황이 재밌어서 그냥 따라 웃었다.

스튜디오 비즈니스는 관두었는데.

촬영할 일이 은근히 생기네.

난 카페 안을 살폈다.

붉은색 운용지의 종이 모형과 잘 어울릴 만한 곳.

‘할아버지의 인생’과 잘 어울릴 만한…… 그런 음영이 필요했다.

따뜻하면서도 음울한, 그런 그늘.

마침 오후 5시 경이라, 햇볕이 세지 않았고.

카페가 서향이라서 태양광을 직선으로 받지만 않는다면 은은하고 괜찮을 것 같았다.

그때 카페 구석진 곳에 한 장소가 내 눈에 들어왔다.

테라스였는데, 한 여성분이 강아지와 함께 있었다.

“최 과장.”

“네.”

“작품 들고 따라올래?”

“알겠습니다.”

네모튜브 사람들도 따라 일어서려던 걸 막았다.

“자리 앉아 계시는 분한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라, 소수만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리고 최경리에게 말했다.

“최 과장은 아무 말 하지 마. 내가 다 얘기할 테니까. 알겠지?”

“알겠습니다.”

일 그르칠까 봐 염려돼서, 미리 말해두었다.

테라스의 그녀 옆에 섰다.

왈! 왈!

강아지가 날 보고 짖었고.

그녀는 날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꽤나 미인이었다.

지금 상황에 미인은 필요 없는데.

괜히 두근거린다.

“저 잠깐 자리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중요한 촬영할 게 있는데, 이 자리가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아서요.”

그녀는 옆자리에 있는 테라스와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다를 게 없는데요?”

“제가 사진작가거든요. 보는 시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

“2분 정도면 돼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요. 저 나오게 하면 안 돼요.”

으르릉―.

그리고 여자는 옆으로 비켜섰고, 강아지는 뭐가 불만인지 계속 으르렁거렸다.

난 최경리에게 말했다.

“최 과장, 지금 바로 세팅 좀 도와줄래. 보자기 걷고, 테이블 오른쪽 끝으로 붙여줘.”

최 과장이 ‘할아버지의 일생’ 보자기를 벗기자.

“어머. 어머.”

여성의 태도가 달라졌고.

깨갱. 깨갱.

개소리도 잦아들었다.

“좋아. 테이블 위 가림막을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여줘.”

“이렇게요?”

최경리는 조금씩 가림막 각도를 조정해 갔고, 적정한 위치에 도달했을 때쯤.

“오케이, 스톱.”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바로 구도를 잡아봤다.

“흠…….”

머릿속에 그렸던 그대로다.

‘할아버지의 일생’에 석양이 얹어진 느낌.

이젠 굳이 사진기로 보지 않아도 구도가 잡히는구나.

“최 과장~, 이제 나와도 돼.”

“네.”

찰칵! 찰칵!

딱 두 번 찍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했고. 이상 없었다. 끝.

난 가림막을 원위치시키고, ‘할아버지의 일생’을 보자기로 다시 씌운 후 여성분에게 말했다.

“2분 안 걸렸습니다~. 하하.”

“와~.”

“그럼 실례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저, 저기…….”

그녀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난 최 과장과 재빨리 뒤돌아갔다.

테이블에 돌아오니, 네모삼촌이 환히 웃으며 물었다.

“촬영 잘했어? 멀리서 보니까 아가씨가 강 사장님한테 관심 있어 보이던데?”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자, 보세요.”

난 사진을 보여 주었고.

“우와~.”

“역시…….”

“대박…….”

세 사람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난 곧바로 양식에 맞게 내용을 작성 후, 사진 첨부하여 ‘강남옥션’과 ‘영웅옥션’에 위탁 신청 메일을 발송했다.

# 위탁 신청 메일 발송

1) 메일 제목: 작품위탁_강태평

2) 메일 내용:

― 고객님 성함: 강태평

― 연락처: 010―XXXX―XXXX

― 작가 이름: 강태평

― 작품 제목: 할아버지의 일생(부제: 아홉 난쟁이)

― 사이즈/재질/제작년도: 60*30/운용지/2021년

― 소장 경위: 창작

― 작품 사진: 첨부 파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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