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를 받다 (2)
* * *
분위기가 달라졌다.
온통 회색 벽에, 회색 분위기.
사람들 얼굴마저 회색빛이던 이곳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보자기를 걷는 순간, 접수하는 여 직원의 표정이 달라졌고.
봐달라고 말한 적도 없고, 누군가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지만.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할아버지의 일생’을 바라봤다.
“종이로 만들었다고요?”
여 직원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오 대리는 살짝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 네. 혹시 감정 안 됩니까?”
“어머~, 안 되다니요~. 다~ 됩니다~.”
“…….”
“작품의 분류 때문에 물어본 거예요.”
여 직원은 ‘할아버지의 일생’ 케이스에 표 딱지를 부착한 후 일어나서 상냥하게 말했다.
“저희가 감정을 매주 수요일에 하거든요. 오늘 월요일이니까, 이틀 뒤에 결과 받으신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네.”
“이틀 뒤에 오시면, 저희가 감정서 발급해 드리거든요. 감정서와 미술품 받으셔서 돌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태도가 너무 달라지니까, 거부감 생긴다. 어쨌든 좋은 조짐으로 봐도 되겠지.
시가 감정가에 따라서 감정료가 달라지고, 돈 될 손님이라고 본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할아버지의 일생’을 보여준 이후부터 태도가 달라졌으니.
“이상 접수는 완료됐고요~. 돌아가시면 됩니다.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실까요?”
여 직원은 초승달 모양의 눈매로 물었다.
심기일전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간단해서 김빠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결과는 이틀 뒤에 나온다는 거고.
“저기.”
그때 네모삼촌이 손을 들고 말했다.
“감정 평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궁금한데요. 간략하게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저희한테는 매우 중요한 작품인데, 사실 감정을 맡겨 볼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거든요.”
여 직원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실 수 있죠~. 근데, 저희가 감정 평가에 대한 설명은 따로 드리진 않거든요. 다만 홈페이지에 보시면, 설명이…….”
“실례하겠습니다.”
한 남자가 여 직원의 말을 끊으며 나타났다.
“엇, 주임님.”
남자는 괜찮다는 듯 여 직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한국시가감정협회, 감정평가사 정민수 주임이라고 합니다.”
* * *
감정평가사 정민수 주임.
정장 바지에 회색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는 안 하고 있다.
가르마를 탄 머리는 깔끔하고, 표정도 외모도 단정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단정하다는 인상.
“아, 네. 안녕하세요. 강태평이라고 합니다.”
오 대리가 앞서서 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네 명 중 날 향해 먼저 인사했다.
“실례지만, 나누시는 대화를 들었습니다. 제가 바로 옆에 앉아서 근무하거든요.”
“아, 네.”
“방금 질의 사항도 들었는데, 제가 잘 설명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질문한 사람은 네모삼촌이었는데, 계속 날 향해 말한다.
“저희야 감사하죠.”
“그럼 잠깐 자리를 옮기시죠. 이쪽으로.”
그는 우리를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공간으로 안내했다.
룸 상단에 ‘VIP’라고 쓰여 있는 회의실이었다.
‘VIP’ 회의실.
회의실 안은 화초와 상패 등 여러 장식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중앙의 탁자 위에는 간단한 다과가 놓여 있었다.
정민수 주임은 커피 머신 앞에 서서 물었다.
“커피 안 드실 분 계십니까?”
“…….”
아무도 대꾸 안 하자, 그는 곧 커피 네 잔을 내려서 가져왔다.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민수 주임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혹시 아까 그 작품 작가분도 여기 계십니까?”
“네, 접니다.”
난 살짝 손을 들었고.
정민수 주임은 내 얼굴을 자세히 살피며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죄송하지만, 잘 기억이…….”
“강태평입니다.”
정민수 주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강태평……. 강태평……. 처음 들어보는데.”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혹시 다른 작품 하셨던 거 이름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른 작품이요? 없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입니다.”
“처음이요?!”
정민수 주임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첫 작품인데, 이 정도라고요?”
“네? 아, 네……. 첫 작품이 맞긴 합니다.”
“작품 구도와 표면감. 무엇보다도 구성 자체가 엄청나던데…….”
감정평가사에게 이런 반응을 받다니, 약간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정 주임님이 우리 작품 감정 보시나요?”
네모삼촌의 물음에 정민수 주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저는 미술품 담당입니다. 아마 작가님 작품은 기타 공예로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분이 보실 거예요.”
네모삼촌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감정도 어차피 사람이 보는 거라 다른 감정평가사는 어떻게 볼지 모르는 일이다.
“보는 기준은 다 비슷하거든요. 사람이 평가하지만,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하여 나름 객관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예술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를 한다고? 쉽게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이 예술품이 얼마다’라고 감정을 내렸는데,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누가 감정을 보려고 하겠어요. 하하. 안 그렇습니까?”
그의 말 자체는 이해되지만, 머릿속으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인지, 네모 씨가 되물었다.
“객관적 근거가 예를 들어 뭔지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이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
“하하. 네 간략하게 설명드릴게요. 그러려고 모신 거니까요.”
정민수 주임은 시가 감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예술품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기호품, 사치품 등 달라질 수 있지만, 감정평가사는 이를 오로지 ‘자산’으로만 봅니다. ‘예술적 가치’는 객관화하기 어렵죠. 즉 우리는 ‘예술적 가치’가 아닌 ‘경제적 가치’로서 작품을 보는 겁니다.”
“…….”
“예술성이 높다고 하여 경제적 가치가 꼭 높은 건 아닙니다.”
우리는 조용히 그의 말에 집중했다.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로는 작가 요인, 작품 요인, 외부 시장 요인 이렇게 구별할 수 있어요. 작가가 누구이냐, 그 작가의 어떤 작품이냐, 시장 상황이나 작품의 관리 상태는 어떤지 등 여러 요소를 면밀이 고려하는 것이죠.”
그래서 좀 전에 나에게 이게 첫 작품인지 물어본 거구나.
“아무래도 이번 경우는 작가적 가치 측면에선 약간 손해를 보실 수도 있겠죠. 첫 작품이시니까.”
“…….”
네모 씨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예술품의 경제적 가치는 절대평가인 거네요? 맞습니까?”
“하하. 예리한 질문이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상대평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경제적 가치는 비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니까요. 하나, 예술품이라는 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죠. 그래서 가격 책정하기가 어렵습니다.”
“…….”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비교 대상을 통해 기준을 세워야 하거든요. 그 비교 대상을 찾는 게 협회의 노하우 중 하나이며,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이후 정민수 주임은 감정 평가에 대해서 설명을 쭉 해주었는데, 반만 알아듣겠다.
어쨌든 비교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는데, 비교 작가군, 옥션 데이터, 시장 거래 상황 등을 보며 평가한다는 내용이었다.
“뭐……. 이 정도면 대략 설명이 된 거 같은데, 더 궁금하신 거 있으신가요?”
설명 들으니 더 어려워졌다.
굳이 더 알 필요 있겠는가.
이래서 배는 사공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이……. 괜히 머리만 아프다.
“아닙니다. 됐습니다. 충분합니다.”
네모 씨 또한 지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민수 주임은 지그시 미소를 짓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30여 분 정도 대화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약간 친밀감이 느껴졌다.
“아쉽네요.”
그는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대화를 나누니 좋네요.”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아무리 예술품을 자산으로 평가하는 일을 하지만, 예술품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거든요. 수도 없이 작품을 봐야 하니까요.”
“…….”
“가져오신 작품보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경제적 가치’로서는 어떨지 측정해 봐야겠지만, ‘예술적 가치’만큼은 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 태도 바뀌는 거 보셨죠? 하하.”
그는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 예술 작품은 카리스마가 있거든요. 작가님 작품은 확실히 그게 있으니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정민수 주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음에 좀 더 자세히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바쁘신데,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이만 일어나실까요?”
회의실에 들어온 지 어느덧 1시간이 지났다.
“죄송하긴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민수 주임은 내게 악수를 건네었고.
“그럼 다음에 뵙죠.”
내가 손을 잡자, 그는 힘차게 흔들며 말했다.
“작가님, 파이팅.”
* * *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기다리면 된다.
감정 평가가 어떻게 나오든, 어쨌든 난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다. 그래서일까,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틀 전 감정평가사가 해준 얘기를 떠올려보면, 나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아서 믿음이 생겼다.
영업 끝날 시간이 다 되어, 변 이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자~, 영업 종료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런치 오브 사랑산성 영업을 했고.
레스토랑 영업 끝나고 뭐 하지?
항상 영업 끝나고 다른 볼일을 하러 다녔는데, 오늘은 네모튜브 녹화도 없고, 감정평가협회는 내일이 가는 날이다.
사업 시작 이후 오후 스케줄이 비는 건 처음이다.
장부 정리나 해볼까.
뒷정리가 다 되어 갈 때쯤.
“강 사장님~.”
변 이사가 다가왔다.
“네?”
왜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그 옆에 오 대리도 있었다.
두 사람도 다 설레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낌새가 평소 같지 않아서, 뭔가 좀 불안했다.
“두 사람 뭡니까? 저한테 뭐 빚 받으러 오셨어요?”
“에이~, 강 사장님. 빚쟁이가 뭡니까. 강 사장님 말 듣고 착실하게 일주일 기다려온 사람들한테.”
“네?”
오 대리의 말에 변 이사가 덧붙여서 말했다.
“오늘 일주일 째 되는 날이야. 우리 빨리 너튜브 확인하자. 궁금해 죽겠어~.”
일주일?
아~.
사랑산성 첫 영상 업로드한 지 벌써 일주일 됐구나.
“진짜 안 봤어요?”
“당연하지! 사장님 분부인데 따랐지!”
변 이사는 자신 있게 대답했고, 난 오 대리를 바라봤다.
“저도 진짜 안 봤어요! 그래서 영업 끝나자마자 강 사장님 찾아왔죠. 궁금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요. 하하.”
“훗.”
두 사람의 반응이 재밌었다.
“그럼~, 지금 볼까요?”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에헤이~, 재미없게!”
변 이사가 내 손을 막았다.
“맥주 한잔하면서 봐야지~.”
치킨 집. 오후 5시.
우리는 생맥주 각 두 잔씩을 시켜서, 먼저 한 잔 쭉 들이켰다.
“캬~, 좋다!”
“준비됐습니다! 강 사장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하지만 두 사람은 흥행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럼 지금 보시죠. 두 분 이쪽으로.”
두 사람은 의자를 끌어, 내 양옆에 앉았다.
너튜브를 켜고.
네모튜브 터치.
사랑산성 클립이 보였다.
휴우―, 이상하게 떨리네.
“준비됐죠?”
“오케이!”
터치하려는 그때.
“저기요…….”
이십 대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네?”
고개를 들자, 두 여자는 호들갑을 떨며 손뼉을 쳤다.
― 맞아! 맞아!
― 거봐! 내가 맞다고 했잖아!
“…….”
황당해서 바라보는데.
그중 한 여자가 날 향하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네모의 신님 맞죠?!”
네모의 꿈
* * *
“…….”
‘네모의 신님 맞죠…….’
네모의 신이 맞지만, 선뜻 대답이 안 나왔다.
내가 네모의 신인 걸 어떻게 알았지?
“맞죠? 맞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
당황한 난 얼어 있었고, 옆에서 변 이사와 오 대리 또한 황당한 표정으로 여자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
계속 아무 대꾸 없이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자, 여자도 이상했는지 말이 없어졌다.
서로 어색한 상황…….
콕. 콕.
변 이사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리고 내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사람 잘못 봤다고 하던지, 아니면 맞다고 하던지. 뭐든 말을 해. 그러고 있으니까 더 이상해.”
“저…….”
변 이사의 말에 정신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 후 나간 말은…….
“어떻게 아셨어요?”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하였다.
내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 원인을 물어보는 대답.
내 말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던 두 여자는…… 갑자기 서로 손뼉을 마주치며 좋아했다.
― 우왓~, 맞아! 맞다고 했잖아!
― 어머! 어머! 호호~.
― 대애박~ 대애박!
우리 세 사람은 그저 멍하나 두 여자의 리액션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
여자는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는 내게 내밀었다.
“진짜, 팬이에요! 저 신의 학 때부터 좋아했어요. 네모튜브의 오랜 구독자거든요.”
“아, 네.”
“상상했던 거보다 훨씬 더 멋지세요!”
“……. 감사합니다.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난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흥분한 이 두 사람은 내 질문은 잊은 듯했다.
“사랑산성 클립 영상이요~.”
아…….
그녀의 대답에 변 이사와 오 대리도 동시에 탄성 소리를 내었다.
“그 영상보고 알았죠~. 올리신 영상 때문에 추리하느라 난리에요. 댓글 반응 보셨으면 알 텐데~.”
댓글 반응 못 봤다.
오늘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영상 속에 내 얼굴이 좀 나오긴 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였다.
그러니까, 얼굴은 이마와 콧날, 옆 턱선, 헤어스타일 정도밖에 안 나온 것이다.
촬영 중 카메라는 단 한 번도 응시하지 않았다.
“대단하네……. 어떻게 그 영상을 보고…….”
오 대리는 놀라움에 중얼거렸고, 여자는 신나서 말했다.
“호호. 집단 지성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성형외과 의사분이 남겨주신 분석 댓글이 결정적이었어요.”
“아……. 성형외과요.”
사실, 얼굴이 알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홍보 목적으로 사랑산성 클립에 업로드한 영상이다. 뒷모습만 찍었던 단양 수도원 영상과는 다르다.
하지만 막상 얼굴 내놓고 촬영하려니 부담돼서, 살짝 비틀어서 찍은 거였는데.
이렇게 단번에 오픈될 줄은…….
“저……. 사인 안 해주실 거예요.”
“하아……. 사인이요.”
어색하다. 내가 뭐라고 사인을…….
입맛만 다시며 하얀색 빈 종이를 보고 있는데, 변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강……. 아니지, 하하. 네모의 신님, 어서 해드려. 이제…… 받아들여야지.”
난 물끄러미 변 이사를 바라보았고.
그는 웃으며 날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난 그녀가 건네는 펜을 잡았고.
꺅―.
펜을 잡은 것만으로도 여자는 소리치며 좋아했다.
TV에서 보니까, 연예인들이 사인하기 전에 한마디씩 적던데.
흠…….
‘세상에 네모난 것뿐이어도, 우리는 둥글게 살아요. 네모의 신.’
뭐라고 쓸까 하다가, 네모튜브의 테마 곡 ‘네모의 꿈’ 가사를 약간 변형해서 적었다.
“저……. 여깄습니다.”
“감사해요~!”
종이를 펼쳐 든 여자는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 어머, 어머.
― 괜히 신이 아니네. 어쩜 생각도 멋있어.
옆에서 오 대리가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고.
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럼, 감사합니다. 저희 볼 일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저희가 시간을 너무 뺏었죠~. 혹시 마지막으로…… 저희랑 사진 한 번만…….”
사진?
아……. 그건 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옆에 있던 오 대리가 나섰다.
“자자, 네모의 신님이 다른 사회생활도 하고 계셔서요. 사진 찍는 건 곤란하고요. 대신 선물 드릴게요.”
오 대리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신의 학 두 마리를 꺼내었다.
지난주 영상 만들 때 접었던 학이다.
“드려도 돼죠?”
그의 물음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대리는 여자분들에게 하나씩 건네며 웃었다.
“이거 사랑산성 클립 영상 만들 때 네모의 신님이 접은 거거든요. 신의 학이요.”
꺅~!
호프집이 떠나갈 정도의 비명 소리가 터졌다.
호프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를 돌아보았고.
“쉿! 쉿!”
우리는 당황하여 여자 두 분을 진정시켰지만.
― 어머! 어머!
― 미쳤어~. 미쳤어~.
아무리 봐도 보통 팬들이 아닌 것 같다.
신의 학을 받자마자,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난리를 치는데.
접신한 사람처럼 보였다.
“자자, 진정하시고. 이거 선물로 드릴 테니까, 사진은 죄송해요~. 그리고 네모의 신님 만난 거 주변 분들에게 잘 얘기해주시고요~. 좋게요~. 무슨 뜻인지 알죠?”
“네!”
두 여자는 그제야 자리를 떴고.
그녀들이 돌아가고 나서야, 한숨 돌렸다.
“이야……. 저분들 만나고 나니까, 영상 보기 무서워지는데?”
변 이사의 말에 나와 오 대리는 미소지었다.
지금 여성 팬 두 분을 만난 것.
빙산의 일각일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 * *
‘조회 수 2,230,210.’
‘좋아요 4.3만.’
‘싫어요 343.’
‘댓글 3.1천.’
.
.
.
.
꿀꺽.
이까짓 영상이 뭐라고.
조회 수 200백 만? 댓글 3천?!
영상 올린 지 이제 겨우 일주일 지났다.
유명 연예인들 영상 조회 수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떨지 마…….”
옆자리에 앉아 있는 변 이사가 내 핸드폰을 잡았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너튜브 영상 촬영을 안 해본 게 아닌데.
그것도 매주 하고 있는데.
하지만 익명으로 활동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기대 이상인데요. 잘 나와봐야 5, 60만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 대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할 이슈 정도는 되어야 일주일에 이 정도 조회 수 나오거든요.”
“허허. 구독자분들이 네모의 신님을 많이 기다렸었나 보다. 공개할 거라고 사전에 홍보도 없이 올린 영상인데…… 이 정도면.”
“신의 학을 그리워한 것일 수도 있고요.”
오 대리의 이 말에 변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 둘 다겠지. 거기다가 조회 수 1,000만 넘은 단양 수도원의 주인공이 나타난 것이기도 하고.”
물론 그 영상은 해외 계정이지만, 아마 국내 네모튜브 팬 중에서도 단양 수도원 영상을 접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은 국경이 없으니까.
“이제 반응 좀 살펴볼까? 난 댓글이 제일 궁금해.”
이제 핸드폰은 변 이사가 들고 있었고, 그는 스크롤을 내려갔다.
“강 사장님, 괜찮으시겠어요? 댓글은 다 좋을 수만은 없어요. 아시죠?”
알고 있다. 아무리 네모의 신이 인기가 좋다지만, 당연히 악플도 받아봤다.
“괜찮아. 욕먹는 건 자신 있어.”
“네? 아, 네.”
맷집. 똥손 시절 유일하게 얻은 능력이다.
웬만한 눈칫밥, 비난, 욕설 따위 등은 귓등으로 흘릴 줄 안다.
└ 힐링된다…….
└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 때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 내 존재의 근본을 생각하게 되는 하루네요.
그냥 학 접는 건데, 이런 오바스러운 댓글들이 많이 보였다.
└ 손이 너무 예쁘다.
└ 나도…… 저 학이 되고 싶어. 마음껏…… 접히고 싶어.
└ 학만 만들지 말고, 나도 좀 어떻게 해봐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 살 만한 댓글들도 꽤 보였으며.
└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 에이 씨, 잘못 눌렀네.
└ 영상 너무 대충 만드는 거 아니야? 구독자가 물로 보여?
└ X발. ㅈㄱㄴ. ㅂㅅㅅㄲ. 에잇~ 퉷!
맘에 안 들면 그냥 안 보면 돼지.
굳이 끝까지 보면서 욕까지 남기는 이상한 사람들도 좀 있었다.
“강 사장님……. 이런 댓글은 신경 쓰지 마.”
변 이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네. 전 진짜 괜찮습니다. 비난과 욕설 견디는 건 자신 있어서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것도 관심이죠, 뭐. 좀 딱하긴 하지만.”
“허허. 그래.”
우리는 계속 댓글을 읽어 나갔다.
3,100여 개의 댓글.
아무리 읽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나에 대한 얘기라서 그런 것일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변 이사와 오 대리도 마찬가지였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쯤.
우리는 그 많은 댓글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와……. 근데, 네모의 신님 팬덤이 진짜 대단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변 이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욕설, 야릇한 내용, 조물주 운운하는 독특한 댓글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댓글은 네모의 신을 기대하고 찬양하는 내용이었으며, 댓글창 분위기를 압도했다.
팬덤의 힘이 모든 잡소리를 묻히게 만들었다.
“와……. 이거 조만간 진짜 일 나겠는데요.”
사랑산성 클립 영상을 만드는 목적은 협찬 수익과 홍보.
홍보는 먼 미래에 필요한 일이고.
최우선순위의 목적은 협찬 수익이다.
이제 겨우 영상 하나 업로드한 것이긴 하지만.
이런 영향력이 쌓여간다면…… 머지않아…….
“우왓!”
조금씩 집중력이 떨어져 가고 있을 때쯤…….
오 대리의 탄성이 들렸다.
“헛!”
“왜? 왜?”
오 대리는 대답 대신 댓글 한 부분을 가리켰다.
└ 안녕하세요. 저희는 호주의 비건(vegan) 네일 브랜드 웰시페니입니다. 광고 제의를 드리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 수 없어서 댓글로…….
흡!
나 또한 깜짝 놀라서 변 이사를 바라봤고.
변 이사도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맙소사……. 이렇게 쉽게?”
“…….”
“잠깐만요. 일단 끝까지 읽어보죠. 댓글이 기니까.”
“하하. 그래.”
└ 연락처를 알 수 없어서 댓글로 남겨드립니다. 귀사의 건강한 힐링 분위기가 웰빙을 추구하는 저희 vegan 모토와 잘 어울릴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아래 메일 주소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비즈니스 관계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email protected]
이건…… 확실히 광고 제의가 맞는 것 같다.
“와~, 사랑산성 잘 풀리네! 하하!”
호프집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오 대리는 개의치 않고 큰소리 외치며 좋아했다.
“자네 손재주만 좋은 게 아니라, 행운도 따르는구만. 하핫.”
우리 세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마음껏 좋아했다.
“하하!”
“자~! 잔 높이 들어!”
변 이사의 외침에 우린 잔을 부딪치고 쭉 들이켰다.
“캬~, 좋네! 진짜. 이게 웬일이야?! 강 사장님이 광고 찍는 거야?”
“하하. 그러게요! 저 광고 모델 되는 거예요?”
나 또한 큰 소리로 웃으며 마음껏 좋아했다.
“아, 근데 vegan이 뭐야?”
변 이사의 물음에 오 대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단어인데요.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고, 건강함을 추구한다는……. 뭐, 그런 통상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해요.”
“캬~, 역시 미쿡 사람이라 바로 나오는구만.”
“하하. 저 시민권자입니다~.”
서로 잘났다고 으스대었다. 한껏 업되어 있는 분위기라, 그런데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지금 당장 메일 쓸까?”
취기도 약간 올라서일까. 난 호기롭게 말했고.
내 물음에 두 남자 또한 크게 웃으며 말했다.
“바로 써!”
“그래요~. 망설일 게 뭐 있어요! 바로 미팅하죠!”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바로 가자!”
난 핸드폰으로 메일 창을 열어서, 바로 메일을 썼다.
[안녕하세요. 사랑산성 클립 영상에 남기신 댓글 내용 확인했습니다. 귀사가 제안하신 내용 긍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연락처 남기시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메일 서명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난 피식 웃고는 적었다.
[네모의 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