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70화 (70/156)

새로운 사랑산성 (2)

* * *

“자자, 다들 그만 하세요.”

난 부담스러운 마음에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회사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며,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너무 여럿이서 정중하게 고마워하니, 부담스러웠다.

고마워하려면, 변 사장에게 해야 할 것 같은데.

김지안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뒤에 있던 도우미들, 오늘부터는 ‘디너 오브 제로백’의 직원이 되는 사람들도 고개를 들었다.

― 강 대리님! 정말 고맙습니다.

― 우리 정말 잘할게요!

― 강 대리님~, 귀엽다!

마지막 누군가의 외침에는 다 같이 큰 소리로 웃었다.

난 미소지으며 손을 저었다.

“이제 그만하시고~, 오픈 준비하셔야죠.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내 앞에서 머리 조아리니까…….”

분위기도 좋고 내 기분 또한 좋아서 농담 한마디 던졌다.

“마치 내가 후궁들 거느린 왕 같잖아요. 하하.”

“…….”

이게 아니었나?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냥 가만히 계시지…….”

김지안이 한숨을 쉬었고, 난 헛기침을 하며 복도 밖을 향했다.

“어허~, 오픈 점검해야지~.”

역시, 자기 스타일을 벗어나는 건 좋지 않다. 난 원래 농담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닌데.

사회성이라는 건 쉽게 형성되는 게 아니다.

오후 5시 50분.

오픈을 10분 남겨둔 시간.

디너 오브 제로백의 영업 시간은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다.

런치 오브 제로백보다 영업 시간이 1시간 더 길고, 주류도 판매한다.

또한 저녁 식사다 보니, 단체 손님도 점심때보다 많지 않을까 예상된다.

룸이 비지 않는다면 런치보다 매출이 더 높을 것이다.

직원 수가 두 배 가까이 되기에, 매출은 당연히 더 많아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안정적인 보수를 받을 테니.

“훗……. 하긴 나랑 상관도 없는데.”

오픈 준비하면서 사랑산성이 겪은 고충을 봐 와서 그러는 걸까.

이상하게 응원하고 싶어진다.

주방 안에 있으면서 음식 세팅 준비하는 것을 봐주다가.

[오픈 5분 전입니다!]

[화이팅!]

복도에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난 앞치마를 벗으며, 주방장에게 말했다.

“드디어 쇼타임이네요.”

“휴우―. 강 대리님, 떨려요.”

주방장 이모님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심호흡을 했다.

“20년 베테랑께서 왜 그러세요. 하하.”

“조리만 전문으로 해보는 건 처음이라서요.”

“…….”

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잘하실 겁니다. 제 손으로 만든 음식에 견줄 정도의 실력이면, 정말 잘하실 거예요.”

“견주다뇨. 똑같이 하는데도, 완벽하게 따라 하지도 못하는걸…….’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조금도 따라 하지 못해야 하는 게 정상이에요.”

“네?!”

내 손은 보통 손이 아니다.

금손으로 만든 음식을 이 정도 비슷하게 하는 것만 해도, 굉장한 실력자인 것이다.

“호호. 강 대리님이랑 얘기하다 보니, 진정이 되는 것 같네요.”

난 손을 더 꼭 잡으며 말했다.

“분명 잘하실 거예요. 자신 있게 하세요.”

이제 완전히 긴장을 떨쳐버린 얼굴로 주방장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대리님!”

* * *

“자기야, 나 떨려.”

“그러니까 말이야. 이곳을 밤에 오다니.”

한 커플은 긴장된 표정으로 사랑산성 앞에서 대기 중이다.

여자는 남자의 팔짱을 꼭 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야, 고마워~. 데리고 와줘서.”

“고맙긴 뭘. 어차피 더치페이할 건데.”

“그래도~, 알았으니까 왔지. 몰랐다면 못 왔을 거 아니야.”

남자의 집은 내곡동이었고, 오다가다 런치 오브 제로백이 저녁 영업 시작하는 걸 알게 되었다.

“오픈 날이니까 이 정도지. 며칠 지나면 줄 서서 기다려도 들어가기 어려울 거야.”

“그러니까. 홍보를 적극적으로 안 하네.”

오늘은 약 한 달 만의 방문이었다.

대학생인 두 사람은 이곳을 자주 올 형편은 안 되었기에, 점심때 홍보하는 걸 몰랐었다.

한 달 전, 런치 오브 제로백의 맛을 본 그들은 다짐했었다.

나중에 성공해서 자주 오겠다고.

하지만 저녁 오픈을 알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은 참을 수 없었다.

무리하고 온 것이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홍보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오늘도 꽉 찰 거 같은데.”

줄 선 대기 인원이 약 50여 명 정도 되었다.

“아으~, 떨려. 호호. 자기야, 나 사진 찍어줘.”

줄 선 자리에서 여자는 포즈를 취했고, 은은한 조명을 내뿜고 있는 사랑산성을 뒷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와~, 사랑산성 이쁘다.”

여자는 사진을 보며 감탄했다.

노란 조명에 둘러싸인 사랑산성이 참 멋져 보였다.

“뭘~, 그 앞에 있는 꽃이 훨씬 이쁜데.”

남자는 립서비스를 했다.

표정 변화 없이 하는 말투가, 아주 기계적이었다.

“어머~, 무슨. 호호.”

그래도 여자는 좋아했다.

[손님 여러분, 안녕하세요!]

크림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 세 명이 정문 밖으로 나왔다.

셋 다 모두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디너 오브 제로백을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우와아―!

기다리던 손님들은 점심때와는 완전히 색다른 모습에 감탄했다.

[지금부터 입장 도와드리겠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때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간다! 간다!”

“하하. 자기 나랑 단둘이 있을 때보다 더 흥분하는 거 같다?”

남자는 눈썹을 올리며 느끼하게 말했고, 여자는 어깨로 살며시 밀며 대꾸했다.

“칫~, 밖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말랬지~.”

드디어 커플 차례가 되어, 정문으로 들어섰고.

딩동~ 딩도로롱~.

정원 한가운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가 가야금을 켜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그녀의 손과 가야금을 비추고 있었고.

딩도롱―.

빛 때문에 저고리 속 어깨가 비쳐 보였는데, 은근히 섹시했다.

꿀꺽.

“야야. 침 삼키는 소리 다 들린다.”

여자의 핀잔에 남자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자기야, 분위기 죽인다. 그치?”

“그러게. 같은 장소가 아닌 거 같아. 조명 때문에 그런가?”

두 사람은 룸으로 안내받았다.

실내로 들어오니, 이제야 생소함이 덜 느껴졌다.

그래도 차이는 있었는데, 레스토랑 안에 울리는 음악이 클래식이 아니라 전통 가요라는 점.

복도 곳곳과 룸 안에도 도자기, 병풍 액자 등의 소품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약간의 소품만으로도 분위기는 꽤 달라졌다.

낮에서 밤.

해에서 조명.

정장에서 한복.

클래식에서 전통 가요.

한국적인 소품 활용.

분명 같은 곳인데, 다른 느낌이었다.

“자기야, 다른 곳 온 것 같아.”

“그러니까, 분위기 확 다르네. 같은 장소가 맞나 싶어.”

똑똑. 덜컹.

노크 소리와 함께 한복 차림의 미녀 두 명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두 분이신가요?”

“네.”

한 사람은 물을 내려놓으며, 테이블 세팅을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메뉴를 펼쳤다.

“저희는 런치 오브 제로백과 동일한 ‘제로백 코스’ 단품 메뉴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복 차림의 미녀는 메뉴 설명을 해주었고.

입을 벌릴 때마다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럼 준비해 드릴까요?”

상냥한 미소로 묻는 질문에.

남자는 멍하니 대답했다.

“벌써 끝났어요?”

“야, 정신 차려라?! 네, 그걸로 주세요.”

여자가 옆에서 핀잔을 주었고.

여 직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저녁에는 주류 판매도 하거든요. 오늘 오픈 날이라 맥주 서비스로 드리고 있습니다~. 드릴까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죠! 맥주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메뉴를 받는 동안, 테이블 세팅은 끝났다.

점심 방문 때, 최경리에게 받았던 응대와 완전 딴판이었다.

최경리는 목소리는 상냥하지만, 얼굴은 무표정하고 무서웠다.

메뉴를 받고, 테이블 세팅을 받는 동안의 정적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었다.

하지만…….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벨 눌러주시고요~.”

“네…….”

미모의 여성이 두 명이나 들어와서, 순식간에 룸 세팅과 메뉴를 받았다.

목소리와 표정, 제스처, 외모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그녀들이 나간 뒤, 남자는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와……. 나 룸 안에서 기내식 받는 줄 알았어.”

“그러니까, 오빠. 다음부터는 여기 올 일 있으면, 점심 말고 디너로 와야겠다.”

잠시 후,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첫 번째 음식인 아뮤즈 부쉬를 맛보았다.

“음……. 역시 맛있네.”

남자는 만족한 듯 먹었고.

“…….”

여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먹긴 했지만, 남자처럼 감탄하지는 않았다.

건전복과 통해삼 스테이크, 수비드 한우 안심구이…….

메인 요리로 이어질수록 남자 또한 고개를 갸우뚱했고, 여자의 얼굴엔 실망감이 번지고 있었다.

“너무 오래전에 와 봐서, 잘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맞아. 거기다가 여긴 매번 음식 맛이 다르기로 유명한 집이잖아.”

여자는 남자의 말을 거들면서도,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처럼 소름 끼치는 맛은 아니다. 그치, 오빠.”

“그러게. 메인 요리로 갈수록 좀 그렇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설명하기 어렵다는 남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몸이 떨리던…… 혀끝을 사정없이 때리던 그런 맛은 아니야.”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그녀의 눈치를 봤다.

“왜, 자기야. 실망스러워?”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조금 아쉽네.”

“…….”

하지만 곧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점심때보다 분위기는 훨씬 좋으니까. 샘샘으로 치면 될 듯~.”

“하하. 그렇지? 나쁘지 않아~.”

두 사람은 이제 맛 평가는 그만하고, 분위기와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난 담에 온다면 런치로 가고 싶어.”

“그래?”

남자는 서빙 하던 언니들을 생각하며 대꾸했다.

“으흐흐. 난 디너.”

“…….”

디너 오브 제로백은 손님들을 만족시켰으며, 런치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런치와 디너의 시너지로 제로백 컴퍼니는 다시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 * *

[안녕하십니까. 박 기자입니다. 두 달 전 외식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런치 오브 제로백’을 기억하십니까.]

TV 화면 속 박 기자는 사랑산성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두 달 전과 모습도 장소도 같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낮이었고, 이번엔 밤이었다.

[이 레스토랑은 주방을 공유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상생’의 의미를 보여준 사례로 주목을 받았었는데요.]

박 기자는 서빙을 하는 여 직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젠 상생을 넘어, 공존과 반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가리키는 분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랑산성 단란주점 도우미를 하시던 분들입니다. 그들이 밤이 아닌 낮에 일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한복 입은 여 직원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임차인이 임대인을 먹여 살리는 반전의 모습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랑산성은 1년여의 경영난을 겪고, 곧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카메라는 다시 박 기자를 클로즈업했고, 그는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모두가 잘살게 됐습니다. 공존. 네, 말 그대로 공존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벌인 경영자, 변성준 사장님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변 사장은 박 기자 옆에서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변 사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중소기업에서 팀장 일을 하시다가, 회사 경영을 맡은 건 제로백 컴퍼니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박 기자의 칭찬에 변 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요, 유능한 직원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특히, 아…… 제가 그 직원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회사 보안상 더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하하.]

[직원 소개가 보안이에요? 하하. 국정원인가요?]

강 대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박 기자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회사의 전략무기, 전술무기, 카운터 펀치……. 뭐라 설명해도 부족한 직원입니다. 하하.]

“하아……. 짜증나.”

진일상사의 사장실.

민경원 사장은 책상에 앉아, TV로 인터뷰 내용을 보고 있었다.

“지랄들을 하고 있네. 아오, 속 쓰려.”

그는 TV를 꺼버렸다.

햇살 뒤에 구름

* * *

“아하~, 결국은 그 직원에 대해 말씀 안 하실 모양이신가 보네요.”

“네~, 죄송합니다. 그냥 우리 회사에 좋은 직원이 많다는 것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박 기자는 카메라를 향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그 직원이 누군지 알 것 같지만, 사장님 뜻이니 말하지 말아야겠네요.”

“네네, 부탁드립니다. 하하.”

변 사장은 너스레에 박 기자는 웃으며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께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아마 이름 들으면 다들 아실만한 분이라는 겁니다. 키워드로…… 기적의 사나이? 하하. 또한 제가 옆에서 지켜봤을 때도 너무 재주가 많아서, 다재다능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박 기자는 변 사장이 말하는 직원이 강태평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설명이 길어지자, 변 사장은 불안함을 느꼈는지 박 기자에게 귓속말로 말렸다.

“박 기자님,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적당히 좀 하시죠.”

녹화 중이었기 때문에, 박 기자는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고 화제를 전환했다.

“변 사장님, 근데 어떻게 사랑산성을 외식업으로 변환시킬 생각을 하셨습니까?”

“하하. 저는 사랑산성의 주인이 아닙니다. 제가 변환시킨 게 아니라, 사랑산성 사장님께서 제안하셨고 여러모로 판단해봤을 때 적절하다고 여겨져서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단란주점이라는 유흥업소를 레스토랑으로 변환시켰고, 단란주점에서 일하던 전 직원 모두를 제로백의 직원으로 받아주셨습니다. 공존과 상생에 더하여 아무 편견 없이 일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하하.”

변 사장은 그저 웃을 뿐이었고, 박 기자는 질문했다.

“이것 또한 회사 이미지를 위한 전략이었나요?”

변 사장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리따운 외모에 손님 응대에 도가 튼 분들입니다. 사랑산성 여 직원분들이 떠나지 않고 남아주셔서 제가 감사하고요. 저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

카메라 앵글은 변 사장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었고.

변 사장은 살며시 미소짓고는 묵묵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저 저는 생존력이 강한 사람입니다. 사장이 된 지금. 사장으로서 저와 제 직원들이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해나갈 뿐입니다.”

그는 박 기자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좋은 사람으로 포장해 주시는 건 감사한데, 제가 감당 못 합니다. 하하. 전혀 거창한 의도를 갖고 한 일이 아니니, 저에게 환상을 갖진 말아 주세용. 여러분~.”

“하하.”

변 사장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박 기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참 솔직하시네요. 이 모습 때문에 젊은이들이 더 열광할 것 같은데요.”

변 사장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지 않았다.

“변 사장님, 마지막 질문입니다. ‘디너 오브 제로백’은 제로백 컴퍼니의 외식 사업 확장의 시작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요?”

“…….”

이 질문에 변 사장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박 기자는 계속 기다리다가.

“변 사장님?”

“아, 네. 가벼운 질문이 아니라서, 어떻게 답변 드려야 할지 고민해 보느라.”

변 사장의 대답을 들으며, 박 기자는 생각했다.

‘그냥 그렇다고 대충 대답해도 될 질문인데……. 확실히 특이한 구석이 있어.’

“시작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

박 기자는 뭐라도 말을 더 할 줄 알고 기다렸다.

하지만 변 사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게 다인가요?”

“하하. 네, 말을 좀 더 붙일까 하다가…… 아직 갈 길이 먼데, 말을 많이 하는 건 안 좋을 것 같아서요.”

박 기자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렇게 잘 되는데, 갈 길이 멀다니요. 하하.”

이 말에 변 사장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외식이 될지, 뭐가 될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확장의 시작인 것은 분명하지.’

박 기자는 카메라를 보았고, 화면에 박 기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군요. 보통 이쯤 되면 사장님들이 흥분하시는데, 제로백 컴퍼니의 사장님은 참 신중하시네요. 박 기자의 시각, 마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 * *

‘디너 오브 제로백’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점심 영업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으며, 특히 연인들의 명소가 되었다.

또한 여 직원들의 외모가 너무 출중하다 보니, 남자들끼리 온 손님들도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너튜브에 DOZ(Dinner of Zerobaek) 라는 채널이 생겨서, 여 직원들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영상이 생길 정도였다.

말 그대로, 팬클럽이 생긴 것인데.

물론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 인기는 설수민이었다.

이런 대중의 관심과 높은 인기에도 설수민 사장은 ‘디너 오브 제로백’의 직원들이 자만하는 것을 경계했다.

설수민은 ‘런치 오브 제로백’의 유명세와 매일 달라지는 특징적인 맛이 절대적인 성공 요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강태평과 변성준 사장이 있다는 것도.

“강 대리~, 미안한데, 먼저 출발해야겠다.”

‘런치 오브 제로백’은 개업 100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여,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아유, 뭐예요. 오늘 같은 날은 스케줄 좀 빼시라니깐.”

“미안해. 벌써 두 번을 미룬 자리라서.”

변 사장은 오늘 월간지 인터뷰가 있다며 회식 자리에 늦게 참석한다고 했다.

그는 요즘 말 그대로 거물이 되었다.

겨우 사업체 두 개 운영하는 거로 거물이라고 표현이 좀 과해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이슈 몰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핫한 사람임은 분명했다.

그를 찾는 언론사가 많았고, 아무리 그가 자리를 피하려 해도 한계가 있었다.

변 사장의 특이한 이력도 이슈에 한몫했다.

중소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인정 못 받고, 젖은 낙엽처럼 회사 생활 해왔던 사람.

50세가 넘어서까지 부장도 아닌 차장으로 팀장을 하던…… 엄청난 생존력.

그런 변성준을 이제야 세상이 주목했다.

“늦게 참석해도 회비는 똑같습니다.”

최경리는 변 사장이 늦게 참석한다는 말에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잘 나가든, 못 나가든, 거물이든 사장이든 상대방이 누구건 간에 최경리는 한결같다.

“뭐야? 공식 회식인데, 회비가 있어?”

“지각자는 있습니다.”

“그런 룰이 있었어? 사장인 내가 왜 모르고 있지?”

“그건 경리가 아는 것이지요. 1시간 늦으신다고 했죠? 그 이후부터는 지각비 할증 들어갑니다.”

변 사장이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식 가고 싶은 생각 싹 사라지게 만드네.’

최경리를 잘 알기에, 난 이 상황이 그저 재밌었고.

앤더슨과 김지안은 황당해했다.

소고깃집.

회식 장소 퀄리티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항상 삼겹살 아니면 순댓국집이었는데, 이번엔 웬일로 소고기를 먹으러 왔다.

“많이들 드세요~. 다음에 매출 잘 나오면 사장님께서 한우 사준다고 하시니까요.”

소고기이긴 하지만, 외국산이었다.

“왜 한국에서 미국 소를 먹어요?”

앤더슨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거로 봐서는 한국에서 소고기는 처음인가 보다.

“다음에 한우 드시러 가보세요. 바로 아시게 될 거예요. 근데 꼭 월급 탄 날 가세요.”

“Ah……. got it.” (아……. 알겠어요.)

앤더슨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똑똑한 친구.

어쨌든 국적이 미국이어도, 소는 소다.

우리는 허겁지겁 먹어댔다.

6시에 시작한 회식은 어느덧 8시가 다 되어갔고.

아직까지 변 사장은 도착하지 않았다.

앤더슨과 김지안은 첫 회식이라서 이런저런 할 얘기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술도 많이 마시게 됐다.

김지안은 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조그만 게 술 진짜 잘 마시네.”

난 김지안의 빈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그녀는 너무 어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편하게 나온다.

김지안 씨라고 불러보려 시도해 봤는데, 서로 어색했다.

“제 경력이 뭔지 잊으셨어요?”

“아, 맞네.”

김지안은 도우미였다.

술을 잘 마실 수밖에.

김지안은 내가 준 술잔을 비우고서, 바로 내게 다시 건네었다.

“자, 제 잔 한 잔 받으세요.”

“…….”

우리 자리 앞에 빈 소주병이 5병이 놓여있었다.

나랑 똑같이 마신 것 같은데…… 전혀 변화가 없다.

“아~, 아무래도 자리를 잘못 잡은 거 같아.”

농담처럼 말했지만, 앤더슨과 최경리는 서로 대화하느라 내 말을 듣지 못했다.

“에이~, 오빠. 약한 모습.”

김지안은 갑자기 날 ‘오빠’라고 불렀고.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자, 김지안은 뭐가 어떻냐는 듯 바라봤다.

“왜요? 오빠 아니에요? 형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삼촌?”

“아니지. 강 대리님이지.”

“에이~, 왜 그러세요. 술맛 떨어지게.”

김지안의 당돌한 모습에 기가 찼다.

나보다 10살이 어린데……. 꼼짝 못 하겠다.

“네가 사회생활을 안 해 봐서 모르나 본데, 회식도 업무의 연속이야.”

“아이고~, 언젯적 소리 하세요. 내일 출근하면 깍듯하게 모실 테니까, 여기선 좀 편하게 합시다? 네?”

조그만 게 눈을 똑바로 뜨고 말하는데.

풉.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알았어. 대신 오빠라고 하지 말고, 삼촌이라고 해. 10살이나 많은 남자한테 오빠는 무슨……. 아우 소름 끼쳐.”

“싫은데요~. 강태평 오라버니~, 헤헤.”

날 보고 빙그레 웃는 김지안.

음……. 술 마신 게 맞긴 하구나.

평소와 좀 다르긴 하다.

일할 때는 항상 당차고 똘똘한 모습만 봐왔지, 이렇게 해맑게 웃는 건 보지 못했었다.

“웃으니까 보기 좋네. 얀마, 일할 때도 얼굴 풀고 해. 자, 한잔해.”

앤더슨과 최경리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둘 다 핏대를 세우고 있는데.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최경리와는 대화를 오래 하면 안 좋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난 김지안과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면서 대화를 하는데…….

“태평 오빠.”

“응?”

“저, 일하면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그래도 말은 안 까는구나? 고맙다.”

“풉. 5살 차이만 났어도 깠는데, 10살 차이는 좀 그렇네요.”

난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 하려고 그랬어? 얘기해 봐~.”

자꾸 듣다 보니, 오빠라는 단어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 단어를 도대체 몇 년 전에 들어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오빠는 왜 변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거예요?”

“……으응?!”

갑자기 무슨 질문이지?

김지안의 말뜻을 몰라서, 뚱한 표정으로 바라봤더니.

그녀는 피식 웃고는 손을 내 귀 쪽으로 모으고 속삭였다.

“왜 변성준 사장한테 이용당하면서 가만히 있냐고요.”

“…….”

이용……. 이용?!

순간 난 얼어 버렸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너무 강렬하게 꽂혔다.

이용? 이용이라고? 내가?!

“야, 너 술 취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머…….”

내 반응에 김지안이 더 황당해했다.

“설마……. 의도한 게 아니에요? 모르고 당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

“어머, 표정 봐……. 내가 더 당혹스러운데요?”

변 사장이 날 이용한다고?!

“…….”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다.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를 변 사장이 하고 있나?

아닐 텐데. 그런 건 없는데.

“순진한 거예요. 아니면…… 멍청하신 거예요?”

“…….”

난 넋 놓고 바닥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고.

어느새 앤더슨과 최경리도 대화를 멈추고 날 보고 있었다.

그때, 김지안이 결정타를 날렸다.

“다 아는데, 태평 오빠만 모르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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