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2)
* * *
“아오, 마음이 급해서 그런가…….”
집에 있는 내내 종이학만 접고 있다.
마음은 급한데, 아직 손에 안 익어서 속도가 안 붙는다.
학 한 마리 접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분 정도.
이것도 딴짓 안 하고 학 접는 데만 집중했을 때 걸리는 시간이다.
밥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학만 접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소요되는 시간이 있다.
가끔 딴생각도 해야 하고.
사무장은 종이학 의뢰 시한을 일주일로 줬고, 벌써 오늘이 3일째다. 이제 4일밖에 안 남았다.
3일 동안 접은 종이학 개수는 700마리 정도.
난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도, 이게 어쩔 수가 없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볼 생각도 해봤지만, 3시간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종이학만 접다 보면 눈이 침침해진다.
그래도 어제, 오늘은 주말이라서 어떻게든 꾸역꾸역했는데.
내일부터 회사 다니면서 종이학 접을 생각을 하니…….
일주일 안에 1,000마리 정도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내 목표는 3,000마리.
땅값은 3억이고, 종이학 한 마리당 10만 원이니까.
3일 전, 난 사무장과 종이학 가격을 네고해서, 한 마리당 가격을 7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렸다.
3일 전, 한국종이접기협회 정문 앞.
사무장에게 전화하기 전에, 네모 씨와 네모삼촌에게 말했다.
“저 급히 통화할 일이 있으니까요. 먼저들 가세요.”
“아니야. 기다릴게. 같이 가.”
네모삼촌이 먼저 말했고, 네모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 시간 많아요. 괜찮아요.”
아무래도 신의 학 때문에 사무장과 통화하려는 걸 알고, 궁금해서 기다리려는 것 같다.
어쨌든, 그러거나 말거나 난 지금 급하다.
띠리링.
난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김보경 사무장님이시죠? 저 강태평입니다.]
[네?]
[네모의 신이요…….]
[아~, 네네. 아 맞다. 강태평 씨라고 했었죠.]
네모의 신이 익숙해서, 이름은 낯설게 느껴지나 보다.
[좀 전에 가셨잖아요? 어쩐 일이세요? 뭐 놓고 가셨어요?]
[아~, 아니요. 사무장님께서 아까 제안하셨던 거요. 집에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보려고요.]
[뭘 말하는 거죠? 제가 제안한 거?]
이 여자가 건망증이 있나.
결국 내 입으로 말하게 만드네.
[……. 종이학 천 마리 의뢰하신 거요.]
[아~, 하하. 그거요? 좋은 기회 같아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니까…… 매칭이 잘 안 되잖아요. 딸 선물로 종이학 천 마리 접는 게 좋은 기회에요? 호호.]
[…….]
[우리 딸과 친해질 좋은 기회? 딸 아직 어린데에~.]
아까도 좀 이상하다고 느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이상한 거 같다.
[농담을 재밌게 하시네요.]
[호호.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그녀가 잠시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쨌건. 급하게 돈 필요한 일이 생기셨나 보네~. 맞죠?]
[…….]
딱 맞는 말이다. 정확하다. 그래서 짜증이 난다.
난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기가 뭐했다.
[이유야 뭐, 제가 알 바 없고, 조건은 제가 아까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일주일 뒤 제 딸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신의 학 천 마리 이상 접어주시면 돼요.]
[근데 왜 천 마리 이상이에요?]
[학이 많아야 있어 보이니까.]
[아주 많으면요?]
[많을수록 좋아요.]
[그럼…… 예를 들어…… 3천 마리라면요?]
[네?!]
사무장은 황당했는지, 헛기침했다.
[그건 너무 많은데?]
[천 마리씩 세 개로 나눠서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셔도 되잖아요. 전 막상 만들기 시작하면 속도 조절을 못 해서요.]
난 되지도 않는 말들을 막 씨불였다.
[아무래도 큰돈이 필요하신가 보네…….]
사무장은 잠시 뜸 들이더니.
[뭐, 좋아요. 제가 의뢰 드린 거니까. 그 기간에 만드신 건 다 살게요. 그럼 됐죠?]
[아, 네. 그리고 한 가지 조건 있는데.]
가격 흥정을 해야 한다. 한 마리당 7만 원이라고 했었다.
왠지 부자라면, 가치를 느낀 것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격을 좀 올렸으면 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 학 접기에 집중하려면 포기해야 할 게 많아서요. 일도 제대로 안 될 거고…….]
[얼마나요?]
[마리당 10만 원.]
[…….]
사무장은 생각했다.
신의 학 한마리를 네모 씨에게 사정하여 받아둔 걸 보면, 그녀 또한 신의 학에 매료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지금 신의 학을 만든 장본인이 1천 마리 이상을 접겠다고 하고 있는데.
가격을 좀 높인다고 해도, 웬만하면 사지 않을까?
[좋아요. 그렇게 하죠.]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니야. 좋아할 때가 아니지. 이제부터 노가다해야 하는데.
[단 기한은 꼭 맞춰야 해요. 천 마리 이하면 구매 안 할 거라는 것도 기억하시고요.]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열심히 듣고 있던 네모 씨와 네모삼촌.
전화를 끊자, 그들은 바로 딴청을 피웠다.
“죄송해요. 통화가 좀 길었죠.”
“아유~, 아니야. 괜찮아.”
네모삼촌은 연신 내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종이학…… 접기로 했나 보지?”
“아, 네.”
네모 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1천 마리면 일주일 동안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긴 한데……. 근데, 태평 씨가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에이~, 강태평 씨라면 할 수 있어. 일반 사람들도 불굴의 의지로 수일 내에 천 마리 접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네모삼촌은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마치 큰 시험을 앞둔 수험생을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까, 우리 종이 조형 창작에 대해선 이거 끝나고 하자고. 어차피 일주일이면 결론 나는 거잖아.”
“아……. 네.”
난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종이학 접기로 땅 문제 해결된다면, 굳이 종이 조형에 대해선 안 배워도 되는데.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네모삼촌이 내게 들인 정성과 기대를 생각하면…….
휴우―.
난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야지.
한 마리에 10만 원.
확실히 돈이 붙으니, 의욕이 솟구친다.
* * *
4일 차 아침.
어젯밤까지 완료된 개수 754마리.
“좋은 아침~.”
오늘도 늦게 출근한 변 팀장이 날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요즘 우리 팀이 잘 나가고 있어서인지, 늦은 출근도 아주 자신감 있게 한다.
“강 대리~, 주말 잘 쉬었어?”
“네. 팀장님도 잘 쉬셨습니까?”
“쉬었겠어? 아오~, 주말이 제일 빡세. 강 대리도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아봐~.”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좀 쉬어야지. 캬캬.”
피식.
난 변 팀장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좋다.
팀장이 대놓고 이러니까, 나나 홍지아도 일하기가 편하다. 뭐, 기본적인 것만 놓치지 않으면 전혀 터치도 없고 자유 방임이니까.
“강 대리, 근데 왜 이렇게 손을 떨어?”
변 팀장은 내 손을 잡고 살피었다.
“어이쿠야, 손톱이 왜 그래? 다 갈라졌네?”
“아……. 별거 아닙니다.”
난 재빨리 손을 빼었다.
주말에 학 접기에 열중했더니.
“눈두덩도 떨리는데?”
“…….”
“주말에 대체 뭘 했길래.”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변 팀장은 약간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원래는 주말에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 나누면서 월요일 오전은 노가리 까는 시간이었다.
지금 내 상황상, 모든 걸 다 편하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종이학 납품 계약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편해도 변 팀장은 내 직속 상사이며, 팀장이다.
“하하. 별거 없었어요~. 팀장님~, 제가 커피 한 잔 타드릴게요. 홍지아 씨도?”
“땡큐요.”
보통 이러면 후배들은 ‘제가 타올게요.’라는 말을 하는데.
물론 그 말을 기대하고 물어본 건 아니지만, 홍지아는 참 한결같다.
타닥. 타닥.
아랑곳하지 않고 타이핑 치고 있는데.
피식.
이젠 얄밉지도 않고, 그냥 귀여운 막냇동생 같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난 가방 안을 들여다봤다.
‘색종이’.
점심시간에 종이학 접으려고 가지고 왔다.
이걸 어디 가서 접지.
사무실에서는 도저히 못 접겠다.
종이학 접는 모습을 본다면, 회사 사람들이 절대로 가만히 안 있을 것이다.
애인 생겼냐부터 시작해서…… 순애보가 어쩌니…….
안 봐도 어떤 반응이 나올지 눈에 선하다.
특히, 변 팀장과 홍지아.
내가 퇴근 후 무슨 일 하고 있는지 뻔히 아는데, 사무실에서 종이학 접는 모습을 보일 순 없다.
이날 점심을 빨리 먹는 건 성공했다.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가려 하는데.
“강 대리, 오랜만에 당구 한번 치자.”
“네? 아, 제가…… 지금.”
“뭐 해? 어서 가자니까.”
“당구 치다 보면 업무시간에 좀 늦게 오게 돼서…….”
막 핑계를 대보려 했는데.
“에이~, 야! 내가 팀장이야. 팀장이 괜찮다는데. 어서 가자아~”.
그렇게 변 팀장 손에 이끌려 난 점심시간에 당구를 쳤다.
사무실 도착.
정신이 딴 데 가 있으니, 집중도 안 되고…… 당구비까지 물렸다.
당구 안 쳤으면 못해도 종이학 20마리는 접었을 텐데.
20마리면 200만 원…….
이제 오후 근무시간 4시간 남았다.
4시간이면 아무리 못해도 150마리는 접을 수 있다. 집중하면 200마리도 가능.
200마리면 2,000만 원.
내 월급 200만 원.
종이학으로 돈 벌 수 있는 기한은 4일.
하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팀장님!”
지금은 회사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 무조건 회사를 가야 한다는 이 샐러리맨 마인드.
“어!? 왜? 왜?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내 부름에 변 팀장도 놀라서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저 급하게 휴가 좀 써야겠습니다.”
“뭐?! 왜? 누구 돌아가셨어? 같이 가.”
변 팀장은 내 신변에 안 좋은 일이 생긴 줄 알고, 바로 재킷을 들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좀 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일도 있고요…….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아……. 그래? 알았어. 오늘 반차면 되는 거야?”
“아니요. 이번 주 목요일까지요.”
“……. 뭐?”
변 팀장은 황당한 듯 날 바라봤다.
하지만, 내 표정이 워낙 다급해 보여서인지, 변 팀장은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그의 말이 날 미안하게 했다.
“그래. 뭐든 도울 일 있으면 연락 줘. 힘든 일 혼자 겪지 말고.”
* * *
집에 가자마자, 종이학을 접었고.
그날 밤 1,000마리를 돌파했다.
그리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집중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계획을 정리한 후.
늦은 시간이었지만, 네모 씨에게 전화했다.
[강태평입니다.]
[아~, 네, 태평 씨.]
네모 씨는 웃으며 말했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아, 네. 급히 양해를 구할 일이 있어서요.]
[아, 네. 말씀하세요. 네모의 신님인데, 무엇이든 양해해 드려야죠. 하하.]
[저 이번 주는 녹화를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네모 씨는 당황해했다.
[당장 내일이 녹화 날인데? 왜요?]
[제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 있거든요. 이번 주가 고비인데, 집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
[이번 주 목요일까지는 핸드폰도 꺼놓을 거니까요. 아마 켜놔도 수신이 잘 안 잡히겠지만.]
[어디 외국 나가세요?]
아니다.
난 종이학 접으러 산속으로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