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1)
* * *
신의 학이 왜 저 사람 손안에 있지?
“사무장님!”
네모 씨는 화들짝 놀라서, 사무장을 크게 불렀다.
“어머. 깜짝이야.”
네모 씨는 사무장 손에 올려진 신의 학을 재빨리 손에 담아서 숨겼다.
네모 씨는 내 눈치를 보았고.
사무장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이거 비밀이랬지.”
헐, 저 어색한 발연기 뭐지.
누가 봐도 일부러 보이려 한 거 티 다 나는데.
당황한 네모 씨만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했고.
네모삼촌도 옆에서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거 제가 접은 종이학 맞죠?”
난 네모 씨를 바라봤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변명하듯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무장님이 하나 갖고 싶다고 하도 사정을 하셔서.”
“…….”
“허락도 없이…… 정말 죄송합니다.”
네모 씨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계속 머리를 숙이며 내게 사과했다.
“…….”
황당하네. 진짜.
나를 도대체 뭐로 보고.
“진짜 어이가 없네요.”
네모 씨의 고개는 점점 더 숙어지고 있었다.
난 격양된 목소리로 네모 씨에게 따져 물었다.
“그깟 종이학이 뭐라고. 까짓거 또 접으면 되지. 주면 어때요? 세 개 더 드려도 상관없어요.”
“죄송……. 네에?!”
네모 씨는 날 멀뚱히 바라봤다.
“도대체 날 어떻게 본 거예요? 내가 그렇게 좀생이로 보여요?”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네.
종이학 한 마리 줬다고 내가 화낼 줄 알았나?
내가 그렇게 사회성이 없어 보이나.
이게 내 문제야, 네모 씨 문제야?
옆에서 네모삼촌도 중얼거렸다.
“황당하네. 진짜.”
“그렇죠? 네모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서운해요.”
“하하. 진짜 황당해.”
네모삼촌은 큰 소리로 웃었다.
“까짓거 종이학 한 마리? 우하하.”
네모삼촌은 계속 웃으며 말했다.
“이 신의 학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만든 당사자, 강태평 씨 말고 없을 거야. 지금 종이접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핫한데. 100만 구독자가 열광하는 학이라고. 하하.”
사무장도 내 반응에 멈칫했다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호호. 그러게요. 머리 쓰지 말고, 그냥 편하게 달라고 할 걸 그랬네요.”
머리를 써가면서? 무슨 의도가 있었나?
어쨌든 도리어 네모 씨만 뻘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주시니,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제가 실수한 건 맞는데.”
난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신의 학의 가치? 모두가 갖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설마…….
“네모 씨, 혹시 저 사무장님한테 돈 받고 판 건 아니죠?”
그건 용납 못 한다.
판다면 내가 팔아야지.
“아~, 아니에요! 저 그런 양아치 아니에요!”
“정말이죠?!”
“그럼요. 방송 중에 태평 씨가 만든 종이학 네모튜브 사무실에 그대로 다 있어요. 딱 저거 하나만 빼고.”
“흠…….”
“못 믿겠으면 나중에 가서 세어 보세요.”
난 지금 돈이 많이 급하기 때문에, 좀 예민하다.
그때, 사무장이 나섰다.
“태평 씨, 믿으셔도 돼요. 제가 고마워서 뭐라도 답례를 하려 하니까, 네모 씨가 한사코 사양하더라고요.”
난 이제야 사무장이라고 불리는 여자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비즈니스 기본을 지키려는 네모 씨가 왜 이 여자한테는 신의 학 한 마리를 건넸을까.
“정신없어서 소개도 제대로 못 했네.”
여자는 대뜸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한국종이접기협회 사무장 김보경이라고 해요.”
“네, 안녕하세요. 전 네모…….”
‘네모의 신’이라고 하려다가, 도저히 민망해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한 배 탄 사람인 거 같으니까…….
“강태평입니다.”
“네. 네모의 신 강태평 씨 반가워요.”
헉쓰. 일부러 닉네임 얘기 안 했는데.
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고.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했다.
“어머…….”
내 손…… 함부로 잡으시면 안 되는데.
사무장은 얼굴이 붉어져서는…… 손 놓을 생각을 안 했다.
* * *
“아픕니다.”
아직도 내 손을 잡고 꼼지락거리고 있어서,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얼마나 꼭 잡고 있는지, 손과 손 사이가 축축해졌다.
중년 여성이라 그런가?
적극적이시네.
“어머, 내 정신 좀 봐.”
사무장은 깜짝 놀라서는 손을 떼었다.
“죄송해요. 왜 이러지. 내가 뭐에 홀렸나.”
여전히 얼굴이 붉어져 있다.
금손의 맛을 보면 헤어나올 수가 없을 텐데.
금손이 된 이후, 내가 이래서 웬만하면 여자 손은 잘 안 잡으려 한다.
똥손일 때와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건 여성에게 손대기 껄끄러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
“전시 다 보셨으면 우리 차 한잔할까요?”
난 류진(龍神)을 좀 더 보고 싶었지만, 친절을 마다하기가 좀 그랬다.
“네, 그러시죠.”
사무장 사무실.
방 안에 화초가 가득했고, 방안도 하나의 전시장 같았다.
종이접기 공예품들이 방 안 가득 장식되어 있는데, 대부분 다 ‘정통’ 방식의 종이 조형물이었다.
“오…….”
류진(龍神) 같은 초 고퀄리티 공예품은 없었지만, 충분히 볼거리가 많았다.
“종이접기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네, 좋아하죠.”
그녀는 손 위에 내가 접은 ‘신의 학’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밋밋한 것이 하나의 형태로 창조된다는 신기함. 변형이 될 뿐이며 본질은 달라지는 게 없죠. 본질은 유지하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이…… 참 가슴을 설레게 해요.”
“…….”
내가 정통으로 배운다고 며칠 다니긴 했지만. 이런 정신세계는 정말 적응이 안 된다.
그냥 종이 접어서 만드는 거지, 무슨 본질이 어쩌고……. 나사 하나 빠진 사람들 같다.
“그렇죠. 아주 매력 있습니다.”
하지만 건성으로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맞춰주는 게 맞는 것 같다.
“우리 협회를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요…… 영상 보면서 네모의 신 같은 분이 본격적으로 해주시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 네.”
“여기까지 오실 정도면 마음을 굳히신 거겠죠?”
“아……. 뭐.”
지금 나 면접 보러 온 건가? 무엇을 위한 면접? 분위기 이상하네.
하여튼……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다가.
사무장은 예상치 못한…… 제안을 던졌다.
“이 신의 학이요.”
“네.”
“판매하실 생각은 없어요?”
“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옆에 앉아 있는 네모 씨와 네모삼촌 또한 황당한 표정이었다.
한국종이접기협회 사무장이…… 사업 제안을 하는 거야?
이래도 되나?
“아……. 글쎄요. 제 파트너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함께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이런 제안을 하시면…… 제가 드릴 말씀이.”
“호호. 좀 오해 살만하게 얘기를 했나요?”
사무장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대며 웃었다.
“개인적으로요~, 제가 개인적으로 신의 학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요.”
좀 이상한 여자 같다.
“이미 갖고 계시잖아요.”
난 그녀의 손 위에 있는 신의 학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나 더 갖고 싶다는 건가요?”
“호호. 아니요.”
그녀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학은 기본이 1,000마리죠.”
“…….”
이 여자가 미쳤나.
나보고 종이학 1,000마리 접어달라고?
황당해서 말도 안 나온다.
그저 멍하니 사무장을 바라봤고, 네모 씨와 네모삼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근데…… 분명 팔라고 했지?
가격이나 물어볼까.
“마리당 얼마 쳐 줄 건데요?”
“호호. 마리당이요? 음……. 마리당이라…….”
사무장은 내 질문이 재밌었는지, 연신 웃으며 대답했다.
“7만 원 어때요?”
7만 원이면…… 1,000마리에 7천만 원인데…….
헉! 7천만 원?!
괜찮은데?!
근데, 학 한 마리 접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차분히 하루에 한 마리씩 접어볼까. 종이학 정기적금 든다고 생각하고.
“음……. 뭐, 괜찮네요.”
난 약간 가격 흥정하면서 수락해 볼 생각으로 운을 띄었다. 근데…….
“기한이 있어요. 일주일 안에 해 주셔야 돼요.”
“일주일?”
“네.”
“…….”
“천 마리 이상이면 다 사겠습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데?
근데 왜 일주일이야? 날 시험하는 건가?
“근데, 왜 일주일입니까?”
“제 딸 생일이 일주일 뒤거든요. 딸이 갖고 싶어 해요.”
“…….”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딸 생일 선물 주려고 7천만 원을 써요?”
“딸 위해서라면 내 전 재산을 줘도 아깝지 않죠. 그리고 저에겐 그게 아주 큰돈은 아니에요.”
사무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급기야,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네모 씨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저 여자 진짜 사무장 맞아요?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좀 이상하긴 하지만, 사무장 맞아요.]
[아니……. 근데 돈 지불할 능력은 있는 거예요? 직장인이 무슨 돈이 있다고.]
[여기 협회장님이 사무장의 아버님이세요.]
[아…….]
뭔 소린지 알겠다.
졸라 부자라는 얘기구나.
순간 생각을 해봤다.
일주일 동안 학을 미친 듯이 접어서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가치 투자를 할 것이냐.
난 지금 종이 조형의 창작을 배우는 중이고, 네모 형님과 다녀보니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돈이 급하긴 하지만, 지금 사무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건 아티스트가 아니라 노가다 가내 수공업이다.
아직 땅 주인한테 연락 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급하게 갈 필요가 있을까?
“…….”
무엇보다도 야시시한 눈길로 자꾸 내 손을 바라보고 있는 저 여자도 왠지 맘에 안 든다.
“죄송합니다. 제안은 사양하겠습니다.”
“오~.”
내 대답에 네모삼촌이 가장 큰 반응을 보였다.
감탄하는 눈길이었다.
돈보다 자존심을 지킨 예술가처럼 보인 건가?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 아쉽네요. 어쩔 수 없죠.”
사무장이 우릴 보자고 한 목적은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화는 곧 끝이 났고, 시간이 너무 늦어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 * *
“이야~, 강태평~ 남자다잉~.”
네모삼촌은 내 어깨를 두들기며 연신 웃었다.
“에이~, 뭘요. 그냥~ 아직은 계발을 해야 할 단계인 것 같아서요.”
“그래. 그래. 잘 생각했어~. 자기는 머지않아 큰돈 벌 수 있어. 무슨 딸 생일 선물 준다고 노가다를 해. 천하의 네모의 신이.”
네모 씨도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웃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전철역을 향해 걷는데.
위이잉―.
메시지 진동음이 울렸다.
이 시간에 문자라면…… 분명 캐시백 광고일 텐데.
그냥 무시하려다가, 혹시나 해서 켜봤다.
[평당 145만 원에 매입한다는 분이 나타났어요. 150만 원에 내놓긴 했지만, 그냥 팔려고 하거든요. 연락 달라고 하셔서 문자 드립니다.]
헉. 이렇게 갑자기?!
아니, 왜 남자가 줏대 없이! 150만 원에 내놨으면 150만 원에 팔아야지?!
헉. 헉.
내 추억. 내 보육원…… 우리 수녀 어머님, 동생들…….
안돼. 안돼.
“태평 씨…… 갑자기 왜 그래? 속 안 좋아?”
헉. 헉.
급격히 가빠진 내 숨소리에 네모삼촌이 놀라서 물었다.
“그러게요. 안색도 갑자기 안 좋아졌어요.”
난 재빨리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계약하기로 했습니까? 아직 가계약금 받은 건 아니죠?]
[네, 아직 계좌번호는 안 보내줬어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아티스트는 얼어 죽을.
급하면 노가다 뛰는 거지.
“네모 씨, 사무장님 핸드폰 번호 좀 알려줄래요?”
“네?”
“빨리요!”
“공일공 사사…….”
네모 씨가 불러주는 번호를 핸드폰에 찍으며 생각했다.
하아……. 몇 마리를 접어야 하는 거지.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땅 주인에게 보냈다.
[오늘 가계약금 넣을게요. 평당 150만 원으로 하겠습니다. 계좌번호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