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알아보는 것
* * *
“네?”
나의 예상치 못한 말에 네모 씨는 당황해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전속 계약은 안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뭔가를 빠르게 궁리하는 것 같았다.
“자, 잠깐.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하시죠.”
네모 씨는 일어서 있는 날 자리에 끌다시피 앉혔다.
“음…….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이것은 제안이기 때문에 협의가 가능하다고요.”
“근데 협의할 생각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할지 말지만 결정하면 된다고.”
“하하!”
네모 씨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랬었죠.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는 조건이라는 게 항상 바뀔 수가 있거든요?”
“…….”
난 눈살을 찌푸리고 네모 씨를 바라봤다.
남자가 줏대 없게…….
“방금도 봐봐요. 금방 계약할 것처럼 하시더니, 통화 한번 하시고는 바로 맘 바꾸셨잖아요.”
“흠……. 그거야, 뭐.”
그의 말이 전혀 틀리지는 않기에 난 어깨를 으쓱했다.
네모 씨는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뭐 때문에 그러시나요? 우리…… 좀 더 얘기를 해 보는 게 어떨까요?”
“…….”
난 네모 씨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내가 판을 엎으려 하니까,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까.
변 팀장과 통화하다가 ‘전속 계약’이라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확 느껴졌다.
적절히 타협하면서 이 계약을 유지해야 할까?
……. 아니다.
나에겐 찬란한 금손이 있는데, 미래를 묶이게 둘 수는 없다.
“기간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그래요? 조정을 좀 해드릴게요.”
“조정이 안 되실 텐데.”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데요?”
“기간이 없기를 바랍니다.”
“……네?”
네모 씨는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계약 기간도 없이 어떻게 3억 원을 지급해 드려요?”
“그래서 관두려고요.”
“…….”
네모 씨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일까. 한숨을 쉬며 다시 한번 물었다.
“3억 원 급하게 필요하신 거 아니었어요?”
“급하긴 하지만, 이게 최선일까 싶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
너무 급하다.
사실 오늘 네모 씨와 상담을 하러 온 것이지, 결정하려고 온 게 아니었다.
3억 원을 금방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피식.
네모 씨는 웃으며 계약서를 덮었다.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네……. 좋은 제안 해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네모 씨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오늘은 바로 가지 마시고, 저녁 함께 어떠세요?”
“아…….”
“함께 일 시작한 지 1달이 다 되어 가는데, 밥 한 끼 못 했네요.”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시죠.”
* * *
사무실 근처의 삼겹살집.
정카의 안내에 따라 이곳으로 왔다.
근데, 어두운 밤인데도 네모 씨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아니, 왜 밤 중에 선글라스를.”
난 궁금하여 물었고, 옆에 있던 정카가 대신 대답했다.
“사람들이 네모 씨는 좀 알아보거든요.”
“아…….”
하긴 네모 씨는 네모튜브에서 가끔 얼굴을 비춘다.
구독자가 100만이 넘으니, 알아볼 만할 것 같다.
“흠. 이해 좀 해주세요.”
네모 씨는 헛기침하면서 말했고, 난 웃으며 대꾸했다.
“새삼 영광이네요. 유명 인사와 식사를 하는 것 같아서. 하하.”
“에이~, 놀리지 마세요.”
지글. 지글.
삼겹살을 구우며, 우리는 소주도 곁들였다.
매번 와서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촬영만 하고, 집에 가는 걸 반복했었다.
이들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막상 대화하다 보니, 이외의 것들이 많았다.
우선 네모 씨는 세 아이의 아빠였다.
“전 진짜 총각인 줄 알았어요. 아이가 셋이나 있을 줄은…….”
나보다 3살 더 많은데, 그럼 도대체 결혼을 언제 한 건지…….
“고등학교 동창이랑 일찍 결혼했거든요. 제가 뭐…… 이렇게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잘 벌어다 주니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아…….”
“아이는 뭐 계획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여유가 있으니까~ 못 낳을 것도 없고요.”
은근히 돈 많은 걸 자랑하는데, 약간 재수 없었다.
네모 씨와 동갑내기인 정카는 미혼이지만 애인은 있었고, 사십 대 후반의 네모삼촌은…… 솔로다.
“내 앞에서 자꾸 여자 얘기하지 마. 마음 아프니까.”
난 네모 씨가 어떻게 네모튜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하나의 종이가 있어요. 그냥 네모나고 평범한 종이죠. 그 종이에 손길이 닿으면 달라지죠. 태평 씨가 만든 것처럼 학이 되기도 하고요. 개, 소, 사람 등 여러 가지로 달라져요.”
“…….”
“전 그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꼈죠. 창조주가 되는 기분? 종이접기는 단순히 놀이가 아니에요. 종이에 영혼을 불어넣어, 피조물로 창조시키는 거죠.”
종이접기에 대한 네모 씨의 철학을 처음 들어보는 순간이었다.
“어릴 적 아이들과 놀 때, 전 그걸 본 거죠. 종이접기에 경외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계속 연구를 하다가 중학교 때 정카를 만난 거고. 이 놀라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죠.”
정카는 술잔을 들이켜고 말했다.
“대중에게 알려야겠다고 해서, 처음엔 제가 미친 짓이라고 말렸었어요. 근데 네모 씨는 완고하더라고요. 그래서 뭐…… 너튜브라는 게 생겼고, 업로드가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올리기 시작했죠.”
네모 씨는 잔을 높이 들었고, 우리는 다 함께 잔을 마주쳤다.
“처음엔 구독자 거의 없었어요. 근데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꾸준히 하자고 했죠.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는 거니까요.”
얘기를 나눌수록 네모 씨가 꽤 대단한 사람 같다고 느껴졌다.
역시……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은 특별함이 있다.
자신만의 철학과 꾸준함. 그리고 열정.
네모삼촌은 내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자~, 우리 얘기는 그만하고, 태평 씨 얘기 좀 들어보자고. 보아하니, 보통 사람이 아닌 거 같던데?”
“네?”
“검색해 봤어~.”
내 이름을 검색하면, 뭔가 나오나?
초록 창에 내 이름은 검색해 볼 생각은 안 해봤다.
네모삼촌의 이런 말이 신기했다.
“뭐가 나오는데요?”
네모삼촌은 대답 대신 내 핸드폰을 가리켰다.
“지금 검색해 봐.”
터치. 터치.
.
.
.
[부산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장자.]
[속초버스전복사고 기적의 생존자.]
정말이었다.
검색하니까, 바로 나왔다.
내 이름이 초록 창에……. 신기했다.
“허허. 뭐야, 놀라는 눈친데?”
네모삼촌은 이런 날 보며 웃었다.
“아, 네. 진짜 제가…… 뜨네요?”
“그러니까. 우리도 놀랐어.”
정카가 물었다.
“근데 회사 다니면서 사진 공모전 참가할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그거 전문가들도 오랜 시간 준비하는데……. 그래도 수상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거든요?”
아무래도 정카는 카메라를 다루다 보니, 좀 아는 듯싶었다.
“태평 씨가 수상한 공모전이 대단한 거야?”
네모 씨의 물음에 정카는 고개를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공모전 앞에 ‘국제’가 들어가잖아.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사진 공모전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 굉장히 권위 있는 공모전이라고.”
정카의 대답에 나도 놀랐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는 데 한계가 있는 거고, 누가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할 정도면, 적어도 10년은 먹고 사는 데 문제없을걸요? 잘만 연결시키면 평생 문제없을지도.”
“왜?”
“그 타이틀을 내걸고, 작품 활동을 해도 되고, 아니면 스튜디오를 개업해도 되지. 진짜 알아주는 공모전이라니까. 심지어 대상이잖아!”
꿀꺽.
이게 그 정도였어?
보석도 알아봐야 가치가 있다고.
난 대상의 영향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난 참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회사가 되게 잘 해주나 봐요? 월급이 많나? 그 경력을 쌓고도 착실히 회사 다니는 거 보면.”
“…….”
“다음 날 출근한다고 네모튜브 촬영도 짧게 하고 가잖아. 너무 신기하다니까. 이런 직원 만난 사장님은 복 받은 거지.”
그래 사장은 복 받은 거지.
난 호구인 거고.
젠장……. 호구도 보통 호구가 아니구나.
네모 씨는 내 표정을 살피다가, 더 뭔가를 말하려는 정카를 말렸다.
“정카야, 그만해. 다 자기만의 사정이 있는 거지. 꼭 돈 많이 받아야 회사 다니는 건 아니잖아. 복지가 좋다던가, 세제 혜택, 건강보험료 등……. 아니면 동료들이 가족 같다거나.”
딴 건 다 틀렸고, 가족 같다는 거 하나만 맞았다.
아……, 회사…….
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니야. 일단 지금은 3억에 집중하자.
어느덧 테이블에 빈 술병이 쌓여 갔다. 취기가 꽤 올랐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하지만 그냥 마셨다.
“태평 씨, 3억 어떻게 할 거예요?”
눈이 살짝 풀린 네모 씨가 물었다.
뾰족한 방법은 아직 없다.
“급하게 접근한 것 같아서요. 좀 시간을 두면서 상황을 지켜보려 해요.”
“…….”
“상황을 지켜보다 보면, 뭔가 좋은 방법이나 기회가 떠오를 것 같아서요. 좀 전에 말씀하신 공모전 대상의 영향력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고요.”
“흠…….”
많은 기회와 가능성에 날 노출시키고.
상황을 지켜본다.
난 이렇게 정리했다.
그 일환으로…….
“네모 씨, 네모삼촌.”
“응?”
“저번에 말씀하신 거 있죠.”
“뭐?”
“종이접기를 정식으로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신 거요. 그거 해보고 싶은데.”
이 말에 네모 씨와 네모삼촌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어?!”
“정말요?!”
두 사람은 동시에 반문했고, 난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네, 종이접기……. 계속하다 보니 매력도 느껴지고요.”
“…….”
“무엇보다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요.”
이 말에 세 사람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말해 뭐해. 이미 네모의 신인걸.”
“종이접기 계에 커다란 획이 그어지겠네.”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웠을까?
세 사람은 연거푸 술을 마시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하! 좋아! 좋아! 그럼 태평 씨! 언제부터 배워볼래?”
“말 나온 김에 내일부터 하죠. 네모삼촌이 시간 괜찮으시다면.”
“하하하.”
네모삼촌은 계속 웃기만 한다.
“괜찮다마다. 그럼 내일 봐~.”
네모튜브와의 첫 식사.
어찌 보면 첫 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종이접기를 정식으로 배워본다는 것.
내게는 사소한 결정이지만, 이들에게는 큰 사건이 되나 보다.
그리고 앞으로 촬영은 주 3회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일단, 벌 수 있는 건 최대한 바싹 모아야 한다.
* * *
다음 날 네모튜브 사무실.
오늘도 칼퇴를 했다.
저녁 촬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제 사무실에는 오래 안 있으려 한다.
“여어~, 태평 씨 왔어?”
오늘은 네모튜브 촬영이 없는 날.
사무실에는 네모삼촌 혼자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이쪽으로 앉아.”
네모튜브 사무실 바닥에 상 하나가 있었고, 그 위에는 파란색 정사각형 모양의 색종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바닥에 상은 왜 깔았을까.
“자기 바쁘니까, 바로 시작할까?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네, 바로 시작하시죠.”
네모삼촌은 정자세로 앉아 눈을 살짝 감았다.
“종이접기의 기본은 절대로 종이를 훼손하지 않는 거야.”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이어서 말했다.
“종이에 깃든 혼을 보존하기 위해서.”
“…….”
혼……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