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26화 (26/156)

조금씩 달라지는 일상 (1)

* * *

전철 안.

홍지아는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대리님, 왜 그러셨어요?”

“뭐가?”

“아까 단체 사진이요.”

“…….”

“그 아저씨 일부러 얼차려 준 거 맞죠?”

“무슨 얼차려야. 그냥 열심히 찍은 거지.”

난 짐짓 모른 척했다.

티가 많이 났나?

“대리님, 제가 모를 줄 알아요? 오늘 좀 이상했어요. 평소랑 너무 다르셔서.”

“…….”

“난 대리님이 이렇게 집요한 분이실 줄은…….”

“집요한 거 아니야. 그 아저씨가 건드려서 그래.”

결국, 난 진실을 말해버렸다.

“건드린 게 뭔데요?”

갑질.

갑질만큼은 못 두고 본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하거나 무례한 지시를 하는 것.

똥손일 때는 온 세상이 내게 갑질을 했었고, 개인이 갑질하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입장이 많이 달라졌지만……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아 버렸다.

“그 얘기는 그만해. 별로 하고 싶지 않다.”

“…….”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져서는 차갑게 대꾸해 버렸고.

홍지아는 눈치를 보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우리는 가는 방향이 같다.

그렇게 한참을 전철 안에 함께 서 있는데.

― 자기야, 뭘 그렇게 봐?

― …….

― 나랑 있을 때는 핸드폰 좀 안 보면 안 돼?

앞자리에 앉은 두 커플이 투덕거리고 있었다.

여자 친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핸드폰 화면에 푹 빠져 있었다.

뭘 그렇게 보는지 완전히 혼이 나간 눈이었다.

― 헐……. 개쩐다, 진짜.

― 내 앞에서 험한 말도 하고.

남자 친구는 얼마나 핸드폰에 정신 팔린 건지 여자 친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급기야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의 무릎을 꼬집었다.

― 아얏! 왜 그래?

― 내가 하는 말 못 들었어?

― 뭐라고 했는데?

남자는 그러면서도 시선을 핸드폰에서 못 떼었다.

― 나랑 있을 때는 핸드폰 좀 그만 보라고! 뭘 그렇게 보는 건데?

― 아……. 미안.

남자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면서도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나도 궁금하다.

도대체 뭔데 저렇게까지.

여자 친구도 이쁘게 생겼구만.

― 오빠, 뭐 보는데 그런 거야?

여자 친구도 궁금했는지, 핸드폰을 집어넣자 물었다.

홍지아도 앞에 앉은 커플이 흥미로웠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아~.

남자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다시 꺼내었다.

―너도 한번 볼래?

남자는 핸드폰을 켜서 가로로 돌렸다. 내 위치에서 내려다보니, 핸드폰 화면이 보였다.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지…… 나도 궁금해서 살짝 훔쳐봤다.

―어머.

여자 친구는 기괴한 표정으로 살짝 몸을 떼면서 남자 친구를 바라봤다.

― 오빠, 이런 취미가 있었어? 무슨 종이접기야? 애들도 아니고?

헉스!

핸드폰 화면에 나오고 있는 건 ‘신의 학’이었고, 화면 속에 내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홍지아도 알아봤는지 동공이 커졌다.

― 일단 봐봐. 영상 짧으니까.

― …….

― 일단 보고 나면…… 은혜받을 테니까.

― 뭘 받어?

네모튜브에서 촬영했던 라이브 영상을 짧게 편집한 것이었다.

― 와…….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 친구의 입은 벌어졌고.

― 어때? 장난 아니지? 단순히 종이접기가 아니라니까.

― 와, 이거…… 힐링 돼.

타인의 핸드폰을 통해 내 영상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앞의 두 사람 못지않게, 나 또한 그 영상에 빠져들고 있었고.

홍지아의 얼굴도 두 커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앉아 있는 두 명과 그 앞에 선 둘.

이렇게 4명이 조그만 핸드폰 화면에 집중하는 요상한 그림이 연출되고 있었다.

― 이게 뭐라고?

― 신의 학~ 그리고 손의 주인공은 ‘네모의 신’.

여자 친구는 외우려는 듯 몇 번을 되뇌었다.

― 신의 학. 네모의 신……. 응?!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 사이의 거리는 약 40cm.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였다.

왜 전철에서 부대찌개 냄새가 나는지 생각했는데.

그녀의 숨결이 닿고 있었다.

“뭐에요?”

“네? 아, 네. 죄송합니다.”

자리에 앉은 두 남녀는 나와 홍지아를 이상한 눈길로 바라봤고.

난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등 뒤로 숨겼다.

혹시나 알아볼까 봐.

“흠!”

남자는 나와 홍지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보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콕콕.

홍지아가 손가락으로 내 팔을 찔렀고.

난 민망함에 헛기침하며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고, 홍지아가 뒤따라 왔다.

민망함이 어느 정도 사라졌을 때쯤.

“대리님.”

“응?”

“방금 대리님 영상 맞죠?”

“알면서 뭘 물어.”

“대박이다, 진짜.”

홍지아도 나 못지않게 신기해했다.

너튜브에 구독자 수, 조회 수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쨌든 숫자이기 때문에 확 체감이 오지는 않았다.

전혀 모르는 타인이 내 영상을 보고 있다는 걸 직접 목격하니.

완전히 실감이 났다.

홍지아는 어째 나보다 더 설레하는 거 같다.

“대리님, 이러다 완전 유명 인사 되는 거 아니에요?”

“에이~, 유명 인사는 무슨. 손만 나오는데.”

* * *

열심히 사진 촬영하고, 종이 접고.

그렇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반복된 생활을 해나갔다.

촬영이야 원래 하던 일이고, 나의 주 업무였지만.

종이접기는 내 삶에 새로 들어온 사건이다.

그로 인해 삶의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

퇴근하고 집으로 와서 쉬기 바빴는데, 이제는 퇴근하고 네모튜브 사무실로 다시 출근한다.

일주일에 두 번.

네모 씨는 내게 더 잦은 출연을 요청했으나, 이상하게 종이접기를 하고 나면 기 빨리는 기분이 들어서 이틀만 나가고 있다.

어쨌건 내 주 생활은 ‘진일상사’의 강 대리이기 때문에, 종이접기가 지장을 주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난 어차피 혼자이기 때문에 주말 촬영을 더 선호했지만.

라이브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주말 촬영은 안 한다고 했다. 나처럼 주말이 한가한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종이접기 자체에는 큰 매력을 못 느낀다.

하지만, 댓글 반응을 보는 게 재밌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가져 주고, 보잘것없는 종이학 하나에 열광해 주는 게 고맙고 신기했다.

사람들의 관심.

금손을 갖기 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거라서 재밌다고 느껴지는 걸까?

그때는 관심은커녕, 알고 지내던 사람도 날 외면하려 했으니까.

“컷! 강태평 씨~, 수고했어요!”

네모 씨의 컷 사인과 함께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어쨌든 난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큰 부담이 되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할 만하다.

그렇게 새로운 생활 패턴에 적응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이 신의 학 네 번째 버전이죠?”

“네.”

난 접을 줄 아는 게 종이학밖에 없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어서 다른 거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흠…….”

네모 씨는 뭔가를 생각하다가.

“지금 신의 학 시리즈를 하고 있잖아요. 다른 색깔 종이로 조금씩 차별화를 둬서요.”

“그렇죠.”

“아무래도 다음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네모 씨는 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잠깐 고민하고 꺼낸 말 같지는 않았다.

“강태평 씨 회사 다니고 있고, 시간 없는 거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제 입장에서도 괜한 모험을 했다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하고요.”

“맞아~. 지금도 좋은데, 왜.”

정카도 한마디 했다.

네모튜브에 모든 사람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시도를 했다가 ‘신의 학’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닐까.

이미 신의 학만으로도 네모튜브는 최근 제2의 전성기다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거든요.”

“…….”

“잘 나가고 있을 때, 바꿔야 해요. 그래야 변화라고 할 만하죠. 잘 안 되고 있을 때 바꾸는 건 ‘변화’가 아니라 ‘도피’거든요.”

“오…….”

네모 씨의 말에 네모삼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네모튜브의 성공 비결이지. 네모 씨의 탐구능력은 알아 줄만 해. 강태평 씨 섭외할 생각한 것도, 그걸 실현시킨 것도 네모 씨니까.”

네모 씨의 말이 수긍이 갔다.

신의 학 새로운 버전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요즘 조금씩 안 좋은 댓글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네모 씨도 그런 조짐을 모니터링하면서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네모 씨는 이번엔 네모삼촌을 힐끗 바라봤다.

“강태평 씨가 네모삼촌과 함께 일하고 싶은 조건으로 세운 이유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네모삼촌이 종이접기 경력이 20년이 넘은 엄청난 전문가 아닙니까?”

“뭐야? 왜 갑자기 극존칭을 하고 그래?”

네모삼촌은 살짝 거리를 두며 네모 씨를 바라봤다.

“종이접기를 네모삼촌한테 배워보는 게 어때요?”

“네?”

“뭐?”

나와 네모삼촌은 동시에 반문했다.

“아니, 종이접기 배울 게 뭐 있어요? 그냥 앞에서 몇 가지 보여 주시면 제가 따라 하면 되는데.”

“나보다 훨씬 잘 접는 사람한테 뭘 가르쳐 주라는 거야? 나 놀리는 거지?”

네모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 뜻은 그런 게 아닙니다.”

“…….”

“정식.”

그는 눈에 힘을 주고 날 바라봤다.

“정식으로 배워보는 게 어떻냐고 묻는 거예요. 네모삼촌이 ‘오리가미’의 한국 지부 권위자 중 한 명이니까.”

“뭐요? 오리가미?”

갑자기 뭔 소리야?

네모삼촌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종이접기를 뜻하는 국제 공식 공용어야. 오리가미.”

와……. 세상은 참 넓고도 깊구나.

종이접기가 국제 공용어가 있고, 게다가 뭐? 한국 지부?

“제가 종이접기는 잘 못 하지만, 아이 때 매력에 빠져서 지금 이렇게 업으로 삼고 있거든요.”

“…….”

“종이접기 실력은 없어도, 진짜를 볼 줄은 압니다.”

네모 씨는 내 어깨를 붙잡고 평소답지 않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평 씨는 종이접기의 역사를 바꿀 사람이에요. 부디, 정식으로 배워 주세요. 종이접기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탁드립니다.”

네모삼촌과 정카는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헐……. 뭐야.

이 쓸데없이 비장한 분위기.

“생각 좀 해볼게요.”

* * *

‘종이접기. 오리가미. 한국 지부.’

집에 가는 내내 네모 씨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의 말이 맞나 싶어서, ‘오리가미’를 초록창에 검색해 봤는데.

진짜였다.

오리가미는 일본어인데, ‘쓰나미’처럼 국제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또한 유명한 작가가 만든 종이접기 작품은 하나의 공예품으로도 인정받는다고 했다.

종이접기……. 단순히 애들 놀이용이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꽤 역사가 깊은 종목이었다.

“나보고 정식으로 배워달라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난 부업으로 하는 거고, 뭐, 이걸 앞으로 얼마나 하겠다고.

띠링!

메시지 소리에 핸드폰을 켜보니, 네모 씨였다.

[태평 씨, 2주간 고생 많았습니다. 저희는 정산을 2주마다 하거든요. 출연료와 후원금 받은 거 송금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하하. 네~, 고맙습니다.]

월급 외의 돈을 벌어 보네.

막상 실제로 받으니 신기하다.

상상도 안 해봤었다.

난 어플을 켜고, 송금 내역을 보았다.

[네모튜브 출연료 400만 원.]

오……, 진짜다. 약속한 대로 회차당 출연료 100만 원으로 쳐주었다.

기분이 묘했다. 새삼 믿기지 않았다. 이게 진짠가?

월급 말고 다른 돈을 받다니.

뭔가 자신감이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네모튜브 후원 200만 원.]

어?! 후원금이 200만 원?

후원금이 이렇게나 많다고?

‘구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보내는 후원금은 모두 드릴 겁니다.’

분명 네모 씨가 이렇게 얘기는 했었다.

끽해봐야 몇십만 원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200씩이나 될 줄은.

그렇다면…….

한 달도 아니고 2주간 했는데, 벌어들인 돈이 600만 원인거야?

잠깐, 나 회사 월급이 얼마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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