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25화 (25/156)

두고 볼 수가 없다 (2)

* * *

“…….”

얼어붙은 분위기.

강태평의 한마디에 말 그대로 모두가 얼어버렸다.

“대, 대리님?”

홍지아 또한 황당하긴 마찬가지.

강태평이 이런 과격한 말을 하는 건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도 안 해봤다.

순딩 순딩 하고, 평소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강태평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뭐, 뭐야? 미쳤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남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말 그대로 강태평의 한 마디는 예고 없는 펀치였다.

“그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데? 왜 말이 반 토막이냐고?”

강태평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헛, 미쳤네?”

“나 알아? 나랑 친구 먹고 싶어?”

남자는 이제 좀 정신이 돌아온 듯,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었다.

“찍새를 불렀더니, 왜 또라이가 왔어?”

“칠순 잔치라고 해서 기대하고 왔더니, 구린내가 진동하네?”

“야!”

강태평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주최자 가족, 친지 여러 명이 모여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홍지아가 강태평의 팔을 잡아끌었다.

“대리님……. 대리님답지 않게 왜 그래요. 저 무서워요.”

강태평은 남자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유. 이걸 확 그냥.”

남자는 멱살이라도 잡을 듯 강태평을 향해 거칠게 걸어갔고.

그때 한 여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빠, 그만 해요. 오늘 어머니 잔칫날이야.”

“내가 잔칫날이라서 이러는 거야! 서비스를 하는 인간이 이렇게 고객 니즈를 못 맞춰도 되는 거야?”

“…….”

“사진 찍으러 왔으면 사진이나 찍고 가면 되지. 뭐 별것도 아닌 거로 핏대를 세우고.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면 몰라. 새파랗게 젊은 것이.”

“오빠, 그만해.”

“아, 됐어! 야! 돌아가! 촬영 기사 필요 없어!”

강태평은 이 말엔 피식 웃었다.

“땡큐. 홍지아 씨, 가자.”

그리곤 그 자리에서 돌아섰고.

여자는 흥분하여 소리쳤다.

“오빠! 대체 왜 그래?! 행사 시작 20분도 안 남았는데, 오빠가 사진 찍을 거야?”

“뭐?”

“엄마 칠순이라고!”

남자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별로 신임을 못 받는 듯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강태평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저, 기사님.”

하얀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강태평을 불렀다.

좀 전의 그 남자를 말리던, 동생 같아 보이는 여자.

“강태평 대리입니다.”

“아, 네. 강 대리님.”

여자는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우리 큰 오빠가 좀 개차반이에요.”

“아……. 네. 네?!”

강태평은 방금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방금 친오빠한테 개차반이라 그런 거야? 모르는 사람 앞에서?’

여자는 눈치를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집이 아주…… 고소한 콩가루 냄새가 나는구나.’

“근데 왜 그쪽이 사과합니까?”

“가족이니까요. 그리고 지금 강 대리님이 꼭 필요하거든요.”

아까 그 남자보다는 좀 예의가 있어 보였지만, 이 여자 또한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이 별로 없어 보였다.

“아, 뭐, 필요에 의한 사과 뭐, 그런 건가요?”

“그건 편할 대로 생각하시고요.”

그녀는 제안했다.

“제가 말로만 때우겠다는 건 아니에요. 100 더 드릴 테니, 기분 푸시고 예정대로 진행해 주세요.”

“됐습니다.”

“그럼 200.”

피식.

강태평은 대꾸 없이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섰다.

“얼마면 되는데요?”

여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이 말한 그 개차반이 사과한다면 생각해 볼게요.”

“네?”

“돈은 더 필요 없어요. 필요에 의한 사과든 뭐든 아까 그 아저씨가 나한테 사과하기 전까진 절대 안 해요.”

“헛…….”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하기 싫다는 거죠? 우리 오빠가 사과할 사람으로 보여요?”

“그러니까, 간다고요.”

여자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행사 시작까지 10분 남았다.

옆에서 조바심내며 보고 있던 홍지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강 대리님, 이 정도면 됐어요. 그냥 해줘요. 회사 명예도 있는데.”

“진일상사에 명예가 어딨어.”

“그거야 그렇지만…….”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방식이야 어쨌든 사과하면 된다는 거죠?”

“…….”

“기다려봐요.”

여자는 남자에게로 가서, 한참을 투덕거렸고.

그 남자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집중포화를 받는 분위기였다.

한참을 그러다가 여자는 다시 강태평에게 돌아왔는데, 종이 하나 들고 있었다.

“여기요, 사과문.”

“…….”

[방금 말이 좀 심했소. 사과합니다.]

강태평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분들이 장난하나. 이게 저 아저씨가 쓴 건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와~, 기사님 꽤 집요하네.”

여자는 얼굴이 살짝 일그러져서는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사과문 위에 수신자에 제 이름 넣어주시고, 발신자에 저 아저씨 서명 넣으세요. 그리고 필기하는 모습이 여기서 보이도록 해야 돼요.”

“…….”

“나 또한 굳이 말 섞기 싫으니, 그 정도 하면 사과받아줄지 고려해 볼게요.”

훽―.

여자는 대꾸 없이 돌아섰고.

남자와 대화하는데, 약간의 고성 소리도 들렸다.

― 아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 그럼 어떻게 해! 오빠가 저질렀으니 오빠가 해결해야지.

― 빨리 못 해?!

어르신들이 윽박지르는 소리에 큰 오빠라는 사람은 마지 못해 적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자, 여기요.”

여자는 던지듯 종이를 내밀었고, 그곳엔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수신: 강태평 님, 발신: 배병규]

[방금 말이 좀 심했소. 사과합니다.]

“이 아저씨 이름이 배병규에요?”

“네, 맞아요.”

“민증 안 까봐도 되겠죠?”

“어머. 어머.”

여자는 완전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태평은 홍지아를 바라보았고.

홍지아는 간절함을 담아 강태평을 향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음이 전해졌다.

‘엥간이 좀 해라, 인간아.’

“알겠어요. 단 촬영지시에 잘 따르지 않으면 바로 관둘 겁니다. 전 결과로 증명할 테니, 이건 반드시 따라주세요.”

여자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알겠어요!”

* * *

“어르신 안녕하세요. 강태평이라고 합니다. 칠순 축하드립니다.”

난 어르신에게 다가가 깍듯이 인사했다.

“아이고. 잘 부탁드려요. 여기까지 와 줬는데, 맘 불편하게 미안해요.”

“어르신께서 그런 말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고운 한복을 입고 있었고, 눈가의 주름이 아주 멋졌다.

하지만 꽉 다문 입술 옆으로 팔자 주름이 움푹 파여 있는데, 꽤나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 같았다.

보아하니 자제가 다섯인 것 같고…… 할아버지는 안 보인다.

이런 고급 호텔에서 칠순 잔치를 할 정도면.

스스로 재산 축적을 잘했거나. 자식 농사를 잘 지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둘 다이거나.

어르신의 의지와 성취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

“할머니, 여기 보세요. 독사진 한번 찍겠습니다.”

“카메라는요?”

“요기 있죠.”

안 주머니에서 권총 카메라를 꺼내었다.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대고 포즈를 잡자, 할머니가 물었다.

“웃어요?”

“안 웃으셔도 돼요. 그냥 너무 의식하지 말고, 편안하게 카메라 바라보세요. 제가 알아서 찍을 테니까요.”

“…….”

난 앵글로 어르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해가 구름에 가려져 자연광이 살짝 옅어지고 있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양이 1/3 정도 줄어들었을 때쯤.

찰칵!

“됐습니다.”

“허허. 참나.”

어르신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이후로 행사 끝날 때까지, 난 밥을 먹었다.

홍지아와 함께 술도 약간 곁들이면서.

“대리님, 이거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다 찍고 있어.”

아마 홍지아에게는 내가 밥만 먹다가 생각날 때쯤 한 번씩 찍는 거로 보일 것이다.

생각날 때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동할 때 찍는 것이다.

비슷한 듯하지만, 완전 다른 의미.

난 계산하며 찍지 않는다.

그래서 난 밥 먹으면서도 계속 가족들을 관찰했다.

이제 사진 촬영에 있어서는…… 내 방식이 생겼고, 자신감도 있다.

“야, 저 인간 빨리 내쫓아야 하는 거 아니야?”

배병규는 강태평이 못마땅해 미칠 것 같았다.

저딴 식으로 일하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사과문까지 작성했다는 걸 생각하니 더 약올랐다.

“결과로 입증하겠데. 일단 두고 보자. 대안도 없어.”

“아오! 진짜!”

“나도 계속 찍고 있잖아…….”

여자도 부아가 치밀긴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 * *

[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가족, 친지분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주세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모든 가족은 앞에 섰다.

[촬영 기사님, 어디 계십니까?]

사회자의 외침에 난 빨고 있던 닭다리를 놓고, 손을 번쩍 들었다.

맥주로 입안을 헹구고, 찍을 자리로 재빨리 걸어갔다.

[어? 카메라는요?]

난 손바닥을 펼쳤다.

나의 앙증맞은 카메라는 손바닥 하나로 가려진다.

[…….]

“마이크 좀 주시겠어요?”

“아. 네.”

난 사회자에게 무선 마이크를 받았다.

“자자, 모두 밀착해서 서시고요. 자연스럽게 카메라 바라보시면 됩니다.”

“…….”

“표정 푸시고. 잡생각 하세요. 아무렇게나 해도 되니까, 카메라 의식만 하지 말아주세요.”

그때 어르신 옆에 서 있는 배병규가 보였다.

“어이, 거기 아저씨.”

“…….”

“삼자 이마에 눈 찢어진 아저씨.”

배병규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고.

“네네, 당신이요.”

풉!

주변 친지들이 키득거렸고, 배병규는 얼굴이 빨개졌다.

“무릎 구부리세요. 어르신이 너무 작아 보이잖아요.”

“…….”

배병규는 불안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난 피식 웃었다.

“더 구부려요. 더! 기마자세! 무릎 붙이고 자세 더 낮추고! 턱 들고! 시선은 정면!”

“…….”

“배 집어넣고! 배에 힘줍니다! 누가 무릎 피랬어요?! 구부려! 더 구부려!”

배병규가 내가 원하는 자세를 취한 이후에. 난 이제 옆의 사람들을 하나씩 돌아봤다.

“지금부터 디테일하게 표정 잡을 텐데, 제가 요청한 자세를 계속 유지해 주셔야 합니다.”

가족, 친지의 인원은 대략 40명.

나는 한명씩 온 맘과 성의를… 다해 자세를 봐주었다.

기마자세로 대기 중인 배병규.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표정은 썩어들어가고, 얼굴에서 땀을 비 오듯 쏟아 내고 있었다.

“어허! 모두 자세 유지하세요! 자세 틀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합니다!”

“아오, 씨바.”

배병규는 부들부들 떨면서 버텼고, 난 그를 주시하며 열심히 하던 일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세 잡아주기 전에 이미 사진은 찍었다는 거.

* * *

단체 촬영이 끝나고, 강태평 일행이 돌아간 뒤.

배병규는 개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 개새끼가. 사진 개떡 같기만 해봐. 내가 내일 당장 진똥상사인지 뭔지 찾아가서는!”

하지만…….

강태평이 이메일로 보내준 원본 사진을 보고는…….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우와…….

― 공모전 대상 수상자라더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강태평이 찍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걸작들이었다.

뻔할 수밖에 없는 구도에서도 뻔하지 않았고.

무난함 속에서도 1g의 특이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비슷한 사진을 여러 장 찍지 않았다.

필요한 상황에 필요한 사진 한 장씩만 있었는데.

선택할 필요가 없게끔 주제에 딱 맞게 정제된 사진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배병규는 강태평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마지막 단체 사진만 A컷 B컷이 있습니다. 취향에 맞게 고르시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A컷은 아주 자연스러운 구도였다.

한 명씩 자세 잡아주기 전에 찍은 듯 보였다.

B컷은 정돈된 구도였는데.

“…….”

누가 봐도, A컷이 훨씬 나았다.

B컷을 왜 찍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 마지막에 자세와 표정 잡느라 한참 시간이 걸렸던 건 B컷 때문인데.

“쳇.”

배병규는 이제 화도 나지 않았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날 아주 제대로 갖고 놀았네.”

바보가 아닌 이상, 강태평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30분 넘게 기마자세를 했던 그의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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