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재능은 있다 (2)
* * *
“와……. 그럼 이걸 운이라고 봐야 하나요?”
운이라…….
나의 너무 단순하고 명료한 대답에 대해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런 식으로 사진 찍는 사람은 참 많거든요. 저만 해도 오늘 출근길에 평소보다 피부가 좋아 보여서 그냥 한번 찍었거든요.”
“하하.”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작품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확실히 기자 양반이 똑똑하네.
그의 말이 맞다. 그런 식으로 하면 이 세상에 사진작가 아닐 사람이 없다.
사진 찍는 거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확실히 강태평 씨에게는 특출난 재능이 있나 봅니다. 준비 기간이 없었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찍으셨다면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니까요.”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후로 그는 나의 회사 생활.
왜 진일상사에서 공모전 참여를 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난 사실대로 설명해 주었고, 은연중에 홍보도 했다.
“아~, 영업팀이 이렇게 촬영팀으로 변경되기도 하는군요.”
“일반적인 회사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진일상사는요? 이 회사의 특징인가요?”
아니다. 진일상사 내에서도 이런 전례는 없었다.
매출 악화로 팀을 해체하기 전의 마지막 극약처방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자리에서 굳이 이런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다.
“저희 회사는 성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직원이 꽤 괜찮은 재능을 보이자, 그에 맞는 팀 개편을 곧바로 한 겁니다. 규모가 작은 회사라 가능한 거죠.”
“오……. 신기하네요. 마지 조직이 카멜레온 같은 거네요.”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공모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회사 성과를 올리기 위한 목적이었군요.”
“네, 우리 진일상사 촬영 1팀은 능력과 서비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부산국제사진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팀이 제품 사진을 촬영해 드린다면…… 믿음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
“일단 한번 기회를 주시면 절대 후회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기자는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이럴 땐 훅 들어가야 한다.
“사진 하나로 매출이 올라가는 마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는 02―457…….”
“잠깐만요. 여기까지만 하시죠. 연락처 공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상호 공개는 되었으니, 관심이 있는 곳에서는 연락이 올 것이다.
난 가슴에 ‘진일상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왔는데, 마지막에 최대한 그 이름표가 화면에 잘 찍히도록 신경 썼다.
“강태평 씨,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요. 오늘 인터뷰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박 기자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이끌어 주셔서요. 즐겁게 인터뷰했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목례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박 기자는 카메라를 향해 돌아앉았다.
“부산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상자 강태평 씨의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박 기자는 카메라를 향해 정리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우리는 꿈을 갖고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운 분들 많으시죠. 항상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피다 보면 강태평 씨처럼 인생을 바꿔줄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겁니다.”
“…….”
“대상 수상자 인터뷰를 하며 느끼는 게 많은 오늘입니다. 강태평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내가 가진 능력을 최선을 다해 펼치는 것.
그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나를 위한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박 기자에게 고마웠다.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마치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난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신문부터 펼쳤다.
[기적의 남자, 또 한 번 기적을 일으키다.]
동방일보 신문 3면에 내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속초 사고의 생존자 강태평 씨. 이번 부산국제사진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카메라 초보자가 대상을 차지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문 일로…….]
신문에 실린 내 모습과 이야기.
신기했다.
인터뷰를 했으니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긴 하지만, 실제 결과물을 보니 신기하고 얼떨떨했다.
[별다른 준비 기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을 쫓아 사진을 찍었다는 강태평 씨. 그의 놀라운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그리고 박 기자와 인터뷰를 나눈 내용이 게재되어 있었다.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고, 인터뷰 내용 대부분이 실려 있었다.
“하하하!”
오늘따라 변 팀장이 일찍 출근했다.
“강태평! 나이스!”
“하하.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기사 보셨어요?”
“당연히 봤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동방일보 사이트 먼저 켰는걸.”
“인터넷 기사로 보셨군요.”
변 팀장은 내 앞에 놓인 종이 신문을 보았다.
“동방일보야?”
“네, 하하. 언제 또 신문에 실릴까 싶어서 간직하려고 하나 샀습니다.”
“어디, 봐 봐.”
변 팀장은 신문을 펼쳐서 내 기사가 나온 지면을 보았다.
“캬~, 확실히 느낌 있네. 종이 신문에 실린 거 보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변 팀장은 내 어깨를 두들기며 연신 웃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어제 동방일보에서 인터뷰를 한 걸 전 직원이 알고 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난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 강태평 대리! 축하해!
― 인터뷰 잘 봤어~. 말 잘하던데? 하하.
― 회사 얘기를 왜 그렇게 많이 했어? 자기 얘기나 하지.
회사 생활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공모전 참여가 그 목적이기도 했고.
“강 대리! 하하.”
출근한 민 사장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해 있었다.
“인터뷰 잘했더라?”
“보셨습니까.”
“당연히 봤지! 우리 직원이 언론사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민 사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날 바라봤다.
“근데…… ‘진일상사 이름표’ 누구 아이디어야?”
“변 팀장님 의견이었습니다.”
“아~, 참나.”
민 사장은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변 팀장 요즘 일하는 게 너무 맘에 들어. 갑자기 왜 그런데? 하하.”
변 팀장은 자리에 앉아서 못 들은 척 귀만 쫑긋 세우고 있었다.
“곧 있으면 정기 승진 철인데……. 이러면 고민이 많아지는데 말이야. 으하하!”
변 팀장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타이핑 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타타타닥.
그렇게 오전 시간은 인사받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오후가 되자 제이엠에서 연락이 왔다.
“네? 이번 주에 바로 촬영 일정이요? 네, 스케줄 잡고 연락 드릴게요.”
탁.
홍지아는 전화를 끊고는 투덜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당한 계약 같아요. 자유이용권이라지만, 너무 울궈먹네.”
“에이~, 원래 장사는 밑지면서 시작하는 거야. 투자라고 생각해. 투자.”
변 팀장의 말에도 홍지아는 입이 나와 있었다.
“해도 너무 하잖아요. 도대체 일주일에 강 대리님을 몇 번 부르는 거야. 상도덕이 없어.”
“그러지 마라~. 제이엠 아니었으면 애초에 시작도 못 했던 일이야.”
그래도 홍지아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변 팀장은 그저 웃었다.
“감사해라~. 감사하면 더 좋은 일이 생긴다.”
“칫. 알겠습니다. 무쟈게 감사합니당~.”
홍지아는 장난스럽게 중얼거렸고.
난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그때였다.
띠리링―!
사무실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제이엠으로부터 연락 오는 거 말고는 거의 울리지 않는 전화기.
제이엠과는 좀 전에 통화했었기에 좀 이상했다.
“안녕하세요. 진일상사 촬영 1팀입니다.”
홍지아는 전화를 받았고, 곧 눈이 동그래졌다.
“아~, 네네. 물론이죠. 오늘 3시요? 알겠습니다. 네에~.”
뚝…….
홍지아는 수화기를 내려놨다.
왠지 모를 이상한 낌새에 나와 변 팀장은 숨을 죽이고 홍지아를 바라봤다.
“저…… 팀장님.”
꿀꺽.
변 팀장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수주 들어왔습니다!”
“우아악―!”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변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어, 어딘데?!”
“처음 들어보는 회사인데요. 3시에 회사로 찾아오겠답니다.”
“하하하.”
변 팀장과 나는 얼싸안고 연신 웃었다.
“이야~, 효과 있네! 효과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오늘 아침 신문에 기사가 실렸는데, 바로 오후에 연락이 왔다.
어디든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은 있었다.
공모전 수상했다고 컨택을 해줄까 하는…….
하지만 연락이 왔다. 더욱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우하하. 촬영 1팀 파이팅!”
우리는 얼싸안으며 좋아했고, 다른 직원들은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띠리리링―!
그때 또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엇? 어서 받아봐!”
“네!”
홍지아는 전화를 받았고.
“네네. 아~, 네. 신문에 실린 그 진일상사 맞습니다~. 네~, 강태평 대리님 맞아요.”
또 왔구나! 나와 변 팀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좋아했다.
“오늘 3시요? 그때는 예약이 잡혀 있습니다~. 네네~, 그럼 4시에 뵙겠습니다~.”
뚝~.
“또 수주 들어왔습니당~.”
홍지아는 전화를 끊고 밝게 소리쳤다.
“하하하!”
변 팀장은 흥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어서 준비하자고! 서둘러! 단 한 건도 놓치지 않는다!”
“네!”
“낚시질 제대로 하자고! 하하!”
띠리리링!
또 전화기가 울렸다.
즐거운 비명.
그게 이럴 때 쓰는 표현이구나.
전화기는 불이 나고, 우리 세 사람은 정신이 없었다.
비명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그건 분명…… 즐거운 비명이었다.
* * *
2주가 지났다.
‘촬영 1팀’은 진일상사에서 가장 바쁘고 핫한 팀이 되어 있었다.
아직 매출 기록이 반영되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이 상태로 연말까지 가면, 촬영 1팀은 절대 영업 1, 2팀에 크게 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를 무시했던 영업 1, 2팀장은 요즘 근처에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 팀은 너무나 잘 나가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너무 바빠서 팀원들 얼굴 보기가 어렵다는 것.
한번은 변 팀장이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강 대리, 또 공모전 나가볼래? 이번엔 제주도에서 개최한다는데.”
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오더 수주 때문에 참여했던 공모전이었고, 마지막 기록이 대상 수상자로 남아야 홍보 효과가 있죠.”
“…….”
“만약 제주 공모전에서 입상 못 하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홍보 효과도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고요.”
“아……. 그렇네. 자네 말이 맞네. 이제 공모전은 안 하는 게 좋겠다.”
내 삶은 이렇게 순탄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이 상태로만 쭉 가면, 올해는 몰라도 내년에는 매출 1위 찍고.
몇 년 뒤. 난 회사의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실례합니다.”
업체에 보내야 할 제품 사진을 정신없이 리터칭 중이었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홍지아가 응대할 거라 생각하고, 난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에 집중했다.
“여기가 촬영 1팀 맞습니까?”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팀에 나밖에 없었다.
“네, 누구시죠?”
우리 회사는 외부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보안 시설 따위는 없기 때문에.
“저희는 ‘네모튜브’에서 나왔습니다.”
네모튜브?
두 남자였는데.
한 남자는 검은색 손가락만 한 마이크를 들고 있었고, 다른 남자는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여기 진일상사 맞죠?”
“네, 맞습니다.”
내 대답에 남자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혹시 강태평 씨 좀 뵐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