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8화 (18/156)

누구나 재능은 있다 (1)

* * *

짠!

우리는 잔을 마주쳤다.

“강태평! 강태평!”

퇴근 후 온 회식 자리.

직원들은 내 이름을 연호했다.

난 처음엔 좀 민망했었는데, 점점 술이 들어가면서 적응이 되어갔다.

“하하. 감사합니다. 혼자 한 거 아니에요~.”

난 꾸벅 인사를 하며 연거푸 잔을 들이켰다.

발표가 난 그날 저녁.

민 사장의 특별지시로 진일상사는 전체 회식을 잡았다.

창사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민 사장은 완전 흥분한 상태였다.

“아~, 강 대리. 내가 승진시킬 때 진작에 알아봤다니까. 내가 뭐랬어? 응? 미리 승진시키는 거라고 했잖아~.”

“하하.”

민 사장의 말에 직원들은 웃었다.

“그때 승진 빠르다고 한 사람 누구야? 그렇게 생각하는 게 짧으니까 내가 사장이고 당신들은 직원인 거야. 으하하.”

“…….”

더 이상 아무도 웃지 않았다.

민 사장도 많이 취했고, 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취기에 기분까지 업되어 있으니, 옆에서 들어주기가 참……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잘난 얘기.

누가 보면 민 사장이 상 탄 줄 알겠다.

“강 대리! 일어~ 낫!”

도대체 자리에서 몇 번째 일어서는지 모르겠다.

“자~, 다시 한번~ 건배 한 번 할까?”

“잠깐만요.”

이번엔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변 팀장님, 홍지아 씨도 일어나세요.”

― 오~.

― 강 대리, 멋있다~.

두 사람은 안 일어나려 했으나, 내가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제가 계속 말씀드렸지만, 진짜 저 혼자 한 거 아닙니다. 저는 사진 찍기만 했고요. 이 일의 기획부터 모든 걸 두 분이 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웃으며 내 말을 경청했다.

“특히 변 팀장님이 고생 많으셨어요.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데, 정말 최고의 팀장님입니다.”

짝짝짝.

난 변 팀장을 향해 박수를 보냈고, 직원들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영업 1팀장과 2팀장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때 김민석 영업1 팀장이 빙글거리며 큰 소리로 물었다.

“뭐 때문에 최고의 팀장인데? 구체적으로 알려줘야지. 응?”

하하.

김민석 팀장의 말에 사람들이 웃었다.

변 팀장은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난 김민석 팀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 말씀드리죠. 팀원들한테 정말 잘해 주십니다.”

“뭘 잘하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시진 않습니다.”

내 말에 사람들은 갸우뚱했다.

― 뭐야? 강 대리, 술 취했나?

― 좋은 얘기 하려던 거 아니었어?

“다만, 우리가 싫어하는 일을 안 하시죠.”

“…….”

“그래서 전 변 팀장이 좋습니다. 사실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타인을 대할 때,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안 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난 똥손으로 살아갈 때, 계속 마음속에 염두했던 것이다.

뭘 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싫어했으니까.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들을 해줘도, 싫어하는 일을 저지르면 좋았던 일은 금세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와~, 강 대리 말을 어렵게 하네? 그냥 예를 들어줘. 잘난 변 팀장님 얘기 좀 들어보자.”

김민석 팀장님도 술 좀 마셨는지, 별것도 아닌 일에 집착했다.

“그럴까요?”

난 빙그레 웃었다.

“야근도 안 하시고, 업무 지시도 고압적으로 하지 않으시고요. 팀원들을 믿고 자율적으로 맡기십니다.”

그렇게 변 팀장의 장점을 몇 가지 얘기했더니, 김민석 팀장은 크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팀장이 그러니까 너네 팀이 그 모양 아니야. 이번엔 운이 좀 좋았다지만 얼마나 갈까?”

“…….”

김민석 팀장의 싸가지 없는 말에 분위기는 싸해졌다.

민 사장은 별말 없이 혼자 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변 팀장은 고개를 숙였다.

욱.

변 팀장의 얼굴을 보니, 뭔가 불끈 올라왔다.

“무엇보다도!”

난 김민석 팀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무래도 취기 때문일까.

“우리 팀장님은 예의가 있으시거든요. 팀원들한테도 막 대하지 않으시고요.”

“오호~, 그래?”

“네, 위아래 상관없이 말 툭툭 뱉는 그런 싸가지 없는 팀장이랑 일하면 시키는 것만 하게 되겠죠. 졸라 영혼 없이.”

“아~, 그래……. 뭐, 뭐어?”

김민석 팀장 들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너무 티 났나?

― 풉!

어디서 웃음 새는 소리가 나왔다.

― 어이쿠~, 맥주 맛 좋다~. 속이 시원하네.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듯한 말들이 나왔고, 김민석 팀장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민 사장은 자리가 파하기 전 날 따로 불렀다.

“강 대리.”

“네, 사장님.”

“약속대로 상금은 다 자기가 알아서 해. 그리고.”

그는 내게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촬영 1팀끼리 2차 가서 한잔 더 해.”

“엇…….”

이거 민 사장 콘셉트에 안 맞는데.

나중에 뭐 있는 거 아니야?

“뭐해? 안 받고?”

“이거…… 받아도 되는 겁니까?”

“응?”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문밖을 나갔다.

“앞으로 많이 바빠질 거야. 내가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거든. 하하.”

민 사장의 뒷모습.

뭔가 불길하다.

* * *

다음 날 아침. 회의실.

“전 이렇게 했으면 합니다.”

상금 분배에 대해, 난 변 팀장과 홍지아에게 먼저 제안했다.

나: 500만 원

변 팀장: 250만 원

홍지아: 250만 원

“전 동등하게 나누고 싶지만, 계속 거절을 하시니……. 이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편하시겠죠?”

“흠…….”

변 팀장은 뭔가 불편한 듯 입맛을 다셨고, 홍지아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팀장님, 어차피 강 대리님 결정에 따르기로 한 거잖아요. 여기서 더 거절하는 건 강 대리님의 마음을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되옵니다.”

홍지아는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어조로 의견을 개진했다.

“흠……. 그런가?”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홍지아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맞아요. 두 분은 거부권 없습니다. 상금에 대해서 제가 이렇게 하자고 결정한 거니까요. 팀장님, 받아들이시죠.”

변 팀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래. 알았네. 고마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자네가 다 가져도 뭐라 할 사람 없는데.”

내가 잘 되는 게 일 순위이긴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챙기고 싶다.

그리고 이번 일은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팀이 한 일이다.

“그럼 계약서 쓸까요?”

홍지아가 눈치 없이 말을 꺼냈고.

나와 변 팀장은 어이가 없어서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 왜요? 돈 관계는 확실히 하는 게 좋잖아요.”

변 팀장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앞으로는 나한테 얻어먹는 거 다 적어 놓을까?”

홍지아는 재빨리 일어나며 말했다.

“저 탕비실 갈 건데, 차 드실 분?”

이틀이 지났다.

촬영 1팀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조만간 수상 일정을 통보받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내가…… 우리 팀이…… 대상이라니.’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해가 어스레한 늦은 오후.

적막한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띠리리링.

평소보다 더 요란하게 울리는 듯한 벨 소리에 홍지아는 재빨리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진일상사 촬영 1팀입니다.”

난 홍지아의 통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사무실로 전화 올 곳은 제이엠인터내셜과 잘못 걸린 전화 말고는 없다.

“네? 동방일보요? 아, 네! 우리 팀 맞습니다.”

흡!

나와 변 팀장은 눈을 마주쳤다.

드디어 왔구나.

“아~, 네네. 알겠습니다. 장소요? 잠깐만요.”

홍지아는 손으로 수화기를 막고, 날 불렀다.

“강태평, 대상 수상자님~.”

“응?”

“동방일보에서 연락 왔네요. 인터뷰하고 싶다고. 대리님 편한 곳에서 하겠다고 물어보시는데요? 어디가 편하세요? 사무실로 오라고 할까요?”

음…….

잠시 생각했다.

사무실도 나쁘진 않지만, 신문사 본사가 궁금했다. 그리고 분명 민 사장이 옆에서 잘난 척할 텐데, 그 꼴 보기도 싫고.

“본사로 방문하겠다고 해줄래?”

“넵! 알겠습니다!”

* * *

동방일보사.

우리나라 5대 메이저 신문사 중의 하나.

부산국제사진공모전은 부산시와 동방일보사가 주관하는 행사다.

인터뷰 당일, 수상자 명단이 신문에 게재되었고.

예정된 대로 대상 수상자에 내 이름은 올라와 있었다.

‘대상(출품자명:강태평, 작품명: 별 헤는 사람들)’

아침에 진일상사는 다시 한번 난리가 났었고, 민 사장은 왜 출품자명에 ‘진일상사’는 안 들어가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인터뷰 가서 확실히 하라고, 인터뷰 내용 자세히 보겠다며 출발하기 전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처음에 농담으로 받아들였는데,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서 오세요. 축하드립니다. 저는 동방일보 박인수 기자라고 합니다.”

그는 악수를 건네었고, 난 그의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진일상사 강태평 대리입니다.”

“네, 앉으시죠.”

그는 의자를 가리켰다.

주변은 하얀색 배경으로 되어 있었고, 의자 두 개만 놓여 있었다.

나와 박인수 기자.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여기 앉으면 되나요?”

“네.”

내가 자리에 앉자, 박 기자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인터뷰 시작하기 앞서서…… 혹시 속초 사고 생존자 강태평 씨 아니신가요?”

박 기자는 눈에 이채를 들어내며,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흠……. 네, 맞습니다.”

“오~.”

박 기자는 눈빛이 반짝였고, 동시에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졌다.

“기적의 남자가 또 기적을 일으키셨네요. 카메라를 잡은 지 한 달 좀 넘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아니, 근데 어떻게 국제공모전에서 대상 수상까지…….”

“그거야 저도 모르죠. 지금까지 저도 모르는 능력이 있었나 봅니다.”

“하하. 그래요?”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운 마음입니다. 하하.”

하아…… 제발 그냥 넘어가라. 설명할 길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한 분야에 천재성을 타고 태어났다. 그걸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

“강태평 씨는 본인의 천재성을 지금 찾으신 거군요.”

“오~, 맞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기자님이라 다르시네.”

고마웠다. 알아서 정리해줘서.

“하하. 네.”

기자는 옆에 놓은 커다란 화면의 전원을 켰고, <별 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상작을 보면요. 하늘의 색감과 부산항의 밝은 조명의 대비가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그리고 보통 불빛이 밝으면 별이 포착되기 힘든데, 사진 속에는 별의 잔상도 잘 담겨 있어요.”

“…….”

“무엇보다도 오랜 선원들이 깊은 주름과 웃음이…… 이 사진 속의 밤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감정과 기술의 절묘한 조화. 전 사진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거든요.”

“하하.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런 구도를 생각해 내신 겁니까? 많은 시간 공들이셨을 거 같은데.”

“…….”

당일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느낌이 좋아서 찍었다고 하면…… 안 믿겠지?

이걸 어떻게 대답해 줘야 하나.

“강태평 씨?”

내가 한참을 고민하자, 박 기자가 말했다.

“간단하게 얘기하셔도 됩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요.”

“아……, 네.”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사실인걸.

“준비 기간은 없었습니다.”

“오…….”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했고요. 제 눈에 들어온 가장 멋진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리고 난 허공에서 손가락 누르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그냥 찍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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