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6화 (16/156)

출사객 (1)

* * *

지금 시각은 아침 7시.

어젯밤 3만 원 이하 모텔을 찾아오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아끼려 했다.

난 아침잠이 없어서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변 팀장도 잠을 잘 못 이루는 것 같았다.

“아……,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와.”

“…….”

“젠장.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다니. 출근하는 날도 아닌데.”

출근하는 날은 아니지만, 놀러 온 것도 아니다.

가만히 누워 있다가 난 물었다.

“잘 주무셨어요?”

“잘 자기는 했는데, 모텔에서 남자 둘이 자니까 좀 그렇긴 하다.”

“그냥 숙소라고 생각하면 돼죠, 뭐.”

20년은 되어 보이는 러브 모텔.

침대는 하트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물론 난 바닥에서 따로 잤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목적이 아주 뚜렷한 곳이었다.

“그래도 욕실은 투명 유리가 아니라 다행이네.”

투명 유리?

흠…….

뭔가 상상이 가려는 걸, 난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는 잠자코 누워만 있다가.

“팀장님, 혹시 다른 거 준비한 게 있으세요?”

“무슨 준비?”

“어제 신종국 씨 만난 것처럼요.”

“없는데?”

“아니 어제는 포기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더니.”

변 팀장이 버스에서 했던 의지 넘치는 말에 난 뭔가가 또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강 대리,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어.”

“…….”

“얼마 없는 시간, 너무 많은 걸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더 안 좋아. 지금은 어제 신종국 씨가 알려준 포인트 있잖아.”

포인트라……. 호소력과 생명력.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

“그 포인트 기준으로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어. 오늘부터는 일단 무조건 촬영해 보는 거야.”

“네……. 무조건 어디를 가면 좋을까요?”

“그건 이제 생각해 봐야지.”

“이제부터요?”

“응.”

“부산 잘 아세요?”

“모르지. 그러니까 선입견 없이 주제를 선정할 수 있는 거야.”

짜증 날 정도로 긍정적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최대한 참았다. 그래도 내 직장상사니까.

“그럼 선정해 보죠.”

“주제라…….”

벌떡.

갑자기 변 팀장이 일어났다.

“강 대리, 부산하면 떠오르는 게 뭐야?”

“…….”

“브레인스토밍 해보자고. 그러다 보면 뭔가 떠오를지도 모르잖아.”

3만 원짜리 모텔방은 갑자기 회의실로 바뀌었다.

“그냥 뭐…… 사투리, 한국전쟁, 해운대…….”

“너무 뻔한데.”

난 그의 말에.

“그럼 팀장님은요?”

“뭐…….”

변 팀장은 뭔가 많은 걸 얘기하려는 듯하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강 대리가 이미 다 말했네.”

부산을 대표할 만한 것들은 많겠지만, 나나 변 팀장이나 평소 여행 한번 잘 안 다녀보고 서울에만 살았던 사람들이다.

갑작스러운 출장. 딱히 떠오를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아, 부산항도 있네요. 수입, 수출. 그나마 우리 업무와 관계있는.”

“그럼 가서 뭐, 컨테이너 찍어?”

“…….”

아, 막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려 하니 더 막막하다.

공모전 출품이다.

뭔가 좀 더 특별하고, 달라야 한다.

오전 9시.

겨우 몇 가지 얘기하고, 계속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케이! 일단 여기로 가보자.”

“네?”

변 팀장은 핸드폰을 덮고 일어났다.

“잘 모를 때는 가장 유명한 출사 장소를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출사 나온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좀 보고.”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일단 움직여 보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 * *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해운대였다.

“그 유명한 해운대를 처음 와보네.”

“그러게요. 이곳을 이렇게 오게 될 줄이야. 그것도 변 팀장님이랑.”

“왜? 그래서 너무 좋아?”

“…….”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서 동백섬에서부터 달맞이 고개까지 걸어갔다.

역시 유명한 만큼 경치가 참 좋았다.

파란 파도와 높은 건물이 어우러진 모습이 참 이국적이라고 느껴졌다.

평일이고 가을에 가까운 시기임에도, 해변에는 꽤 사람들이 있었다.

한 이십여 분 걸었을까.

해운대 해변의 끝에 거의 다다르고 있을 때쯤.

“강 대리.”

“네.”

“계속 걷기만 할 거야?”

“네?”

“뭐라도 좀 찍어. 멋진 경치 보면 찍고 싶은 생각이 안 드나?”

“저는 예술가가 아니라서요…….”

놀러 온 것 같으면 그냥 몇 방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근데 우리가 바라는 사람들은 안 보이는데요.”

“출사 나온 사람들?”

이렇게 운에 맡기는 식으로 돌아다니면,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 팀장은 달맞이 고개를 가리켰다.

“일단 저기까지 가보자. 아무래도 높은 곳이 사진 찍기 좋잖아. 저기서 해운대랑 동백섬이 한눈에 들어올 테니.”

헉. 헉.

아래에서 볼 때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올라 와보니 꽤 숨이 찬다.

“젠장, 제발 하나만 걸려라.”

변 팀장은 올라오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서울에서도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보이던 출사객들이, 이상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뭐야? 여기도 없다고?”

우리는 어쨌든 달맞이 고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엇!”

앞, 옆으로 커다란 가방을 메고, 본인 얼굴 크기 만한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강 대리! 가자!”

“네…….”

우리는 출사객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 관찰했다.

먼바다를 향해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곧이어.

찰칵. 찰칵.

경쾌한 셔터음이 들렸다.

아담한 내 카메라와는 아주 다른 소리였다.

“흠…….”

그는 카메라 화면을 한참을 들여다봤고, 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힐끔.

그가 나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난 씨익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었다.

그는 고개만 살짝 까딱하고는 다시 카메라에 집중했다.

“아이고~, 사진 찍기 참 좋은 날씨네요~. 그죠?”

변 팀장이 은근슬쩍 다가오면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꺼?”

엇! 사투리 억양이었다.

부산에 온 지 이틀째. 드디어 진짜 부산 사람을 만났다.

“서울에서 사진 찍으러 왔습니다~.”

“사진 찍으러요?”

그 남자는 우리 행색을 위아래로 살피고는.

“사진 찍는 사람치고는 참 간편하네요.”

“아, 네. 멀리서 오다 보니, 짐을 최소화했습니다.”

“그럼, 일 보이소.”

더 말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는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카메라에만 집중했다.

바로 다시 말 걸기가 그래서, 우리는 옆에서 사진 찍는 시늉만 하다가 변 팀장이 살며시 또 말을 걸었다.

“혼자 오셨습니까?”

“…….”

남자는 대꾸가 없었다.

“카메라가 참 좋으시네…….”

“아, 거, 좀. 시끄럽구마.”

남자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신경질적으로 우릴 바라봤다.

“방해하지 마소.”

“알겠습니다. 근데,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역시, 변 팀장.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 찍으러 오신 듯한데, 여럿이서 찍으러 다니기도 하시잖아요? 혹시 그런 장소 아는 곳 있으십니까?”

“그건 왜요?”

“아~.”

이러면서 변 팀장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찾는 듯싶었다.

“커뮤니티에 끼고 싶어서요. 저희가 초보인 데다 부산을 워낙 몰라서…….”

“용궁사 가보이소.”

용궁사?

아……, 아침에 폰으로 찾았던 명소 중의 한 곳이다.

“강 대리, 가자.”

강 대리라는 말에 남자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강 대리?”

우리는 깍듯이 인사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감사합니다!”

* * *

해동 용궁사 도착.

달맞이 고개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후 표지판을 따라서 꽤나 들어가야 했다.

한참을 걸어가니, 십이지상과 함께 용궁사 입구가 보였고.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는데.

“오! 강 대리!”

“네! 팀장님! 찾았습니다. 하하.”

그토록 찾아 헤맸던 사람들.

낚시하러 갔다가, 물고기 떼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와글. 와글.

제각각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니고 있었다.

눈빛이 장난 아니었는데, 영혼까지 끌어모아 모든 욕망의 덩어리가 눈빛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일제히 카메라를 향해 있었다.

30여 명 되어 보였는데, 하나같이 모두 진지하고 완전 몰입한 얼굴이었다.

“뭔가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그러게요. 약간 게이머 느낌 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이 사람들 앞에 있는 저 여신은 뭘까.

무리 앞에 미모의 여성이 있었고, 모두 그녀만 졸졸 쫓아다녔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

그녀의 손에 카메라는 없었다.

마치 여왕벌과 꿀벌들 같았다.

“모델이겠지?”

변 팀장도 신기했는지,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아마도요.”

“독특하다. 이런 광경을 처음 봐서 그런가.”

“좀 그렇긴 하네요.”

“근데…… 카메라맨들이 다들 공부 참 잘하게 생겼는데?”

“…….”

우리는 약간 거리를 두고 이들을 따라 다녔다.

조금씩 그들을 관찰했다.

생각보다 패턴은 아주 단순했다.

여신이 이리저리 다니며 포즈를 잡으면, 출사객들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간혹 포즈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여신이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강 대리, 뭐 해? 너도 찍어봐.”

“흠……, 왠지 그러면 안 될 거 같은데요.”

“왜?”

“저 여자분 무료봉사하는 게 아닐 거 같아서요.”

변 팀장은 눈을 굴리며 뭔가 계산을 하더니.

“그래,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도 있겠다. 일단 지금은 구경만 하자.”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무리 속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불특정 다수의 모임 같아 보였다.

서로 얘기도 잘 안 하고, 잘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닌 듯했다.

― 이럴 때는 셀렉티브 포커스로 촬영을 해야 해요.

― 난 아웃포커싱의 느낌을 좋아해서요. 내 취향대로 할게요.

― 배경과의 채도를 생각한다면 팬 포커스가 맞을 거 같은데.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혼잣말인지. 유체이탈 화법을 써가며, 제각기 너무 바빴다.

“음? 처음 뵙는 분 같은데?”

너무 가까이서 구경을 했나?

내 시선을 느낀 한 남자가 유심히 날 바라봤다.

“아, 네. 우리는 커뮤니티 가입 생각이 있는데, 어떤지 보고 결정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했던 걸까?

변 팀장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아……, 그래요?”

남자는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다시 카메라에 집중했다.

― 이상하네. 왜 이렇게 라인이 두껍게 나오지.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말했다.

― 조리갯값을 잘못 넣은 거 아니에요?”

― 이상하다. 4.2.8로 열었어요

― 좀 더 올려봐요.

찰칵.

그는 뭔가를 조작한 후 촬영을 했고,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 이젠 또 너무 얇게 나오는데.

― 적정값을 찾아야죠. 제 거는 9~13 정도로 조리갯값 맞추니까, 괜찮은데요.”

― 그 값으로 맞춰봐도 제대로 안 나와요.

어느덧 사람들이 이 남자 주변으로 모여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기 시작했고.

우리 또한 뒤에서 그의 카메라 화면을 보고 있었다.

“강 대리, 차이가 느껴지냐?”

“뭐, 약간요? 근데 큰 차이는 아닌 거 같은데.”

“난 도통 모르겠다. 차이도 모르겠고,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르겠고.”

조리개가 초점을 말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형체의 굵기와 관련된 건 조리갯값만은 아닐 거 같은데.

― ISO 감도는 어때요? 잘 맞췄어요?

― 주변이 밝아서 좀 낮게 맞췄죠.

제품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건데, 셔터의 감이라는 게 중요하다.

셔터를 누르는 속도가 사진 형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었다.

“셔터 스피드를 좀 올려보시면 어떨까요?”

“…….”

헉.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오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