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5화 (15/156)

부산행 (2)

* * *

“헉. 헉. 왜 이렇게 힘든 곳에 사는 거야?”

“일부러 여기 사는 게 아닐까요?”

마을버스를 타고 동네 앞에 내렸지만, 그래도 신종국의 집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감천문화마을.

그냥 산등성이의 달동네인데, 집 색깔이 알록달록하여 보기가 참 좋았다.

“예술가적 영감 때문에 이곳에 살지도. 그런데 진짜 멋지긴 하네요.”

문화마을 중앙에 서서 맞은 편에 멀리 반짝거리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산등성이의 알록달록한 집들과 파란 하늘과 하얀 바다.

현실감이 안 느껴질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헉. 헉. 멋지긴. 힘들어 죽겠구만.”

변 팀장은 숨을 헐떡이며 땀을 훔쳤다.

만날 시장 조사 다닌다면서, 이 정도 걷는 걸 힘들어하다니.

“주소가 있으면 뭐 해. 지금 도대체 몇 바퀴째냐. 찾기 더럽게 힘드네.”

“이쯤인 거 같은데.”

30분 정도 헤맸을 때쯤.

[감매1로 173번길 110―4]

집 앞에 놓인 조그만 팻말과 주소지를 대조해 보았다.

“하하. 맞네요. 휴~, 겨우 찾았네.”

“아오, 죽겠다.”

조그만 집 사이에 걸치듯이 끼어 있는 오래된 집.

지붕은 슬레이트로 되어 있고, 대문은 아주 작았다. 키가 큰 성인은 드나들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나 어릴 적 살던 집 같네.”

변 팀장은 집 모양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릴 적이요?”

“응. 노원구에 비슷한 곳 있었거든. 거기 오래 살았어.”

변 팀장은 찬찬히 집 모양을 살피었는데, 눈빛이 감회에 젖어 있었다.

“팀장님 이제 어떡해요?”

“뭘 어떡해. 문 두들겨야지.”

그리고 그는 가만히 있었다.

“강 대리? 뭐 해?”

“네?”

“어서 두들겨.”

내키지는 않지만, 팀장이 시키니까.

쿵. 쿵.

[…….]

우리는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좀 더 세게 두들겨 봐.”

“팀장님이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허. 빨리.”

쾅! 쾅!

[…….]

쾅! 쾅! 쾅!

문을 좀 더 세게 두들기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

인기척 소리에 난 크게 외쳐 봤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다.

“뭐지?”

다시 두들겨야 하나 멈칫하고 있는데, 갑자기 변 팀장이 소리쳤다.

“서울에서 왔습니다!”

부스럭.

“신종국 씨 안에 계십니까? 저희 서울에서 왔어요!”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난 궁금하여 변 팀장에게.

“갑자기 왜 서울 타령이에요?”

“그래야, 궁금해서 나타날 것 아니냐. 사실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아…….”

이래서 연륜은 무시 못 하는 건가.

확실히 누군가 문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어? 사투리가 아니네?”

의외였다. 당연히 부산 사투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왔습니다. 잠깐 문 좀 열어주시죠.”

[그러니까 무슨 일로 오셨는데요.]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작품과 관련된 일로 왔습니다.”

활짝!

이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활짝 열렸다.

“돼……, 됐어요?!”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 * *

“네?”

“저 된 건가요?”

“뭐가요?”

“사진 공모전 관계자분들 아니세요?”

“아…….”

5년 연속 부산국제사진공모전 은상 수상.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반기는 목소리.

얼굴 보자마자 공모전부터 물어보는 거로 봤을 때.

뭐 때문에 이러는지 약간 짐작이 되었다.

“아니요. 저희는…….”

소개하려고 하는데, 변 팀장이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었다.

“하하. 관계자는 아니지만, 공모전과 관계된 사람들은 맞는데요~.”

“혹시 기자분들?”

그의 표정이 너무 다급해 보였다.

잔뜩 기대가 실린 목소리라서, 쉽게 뭐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아니요~, 기자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요.”

변 팀장은 어색한 기색 하나 없이 말을 이어갔다.

“신종국 씨와 작품에 대해서 좀 논의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논의요? 서울에서 여기까지?”

그는 여전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분명 신종국이 뭔가 오해를 하는 거 같은데.

이러면 안 되지 않나?

하지만 변 팀장은 단도직입적이었다.

“왜 5년간 부산국제사진공모전에 참여하셨나요?”

“그거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모전 중에 하나니까요.”

“아하.”

“5회 연속 은상을 수상하셨던데, 실력이 대단하신가 봅니다. 경쟁률이 매우 치열한 거로 아는데.”

변 팀장은 수첩에 적으면서 물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자거나 잡지사의 편집자처럼 보였다.

“와아~, 저에 대해서 조사하고 오셨나 보네요?”

“물론이죠.”

신종국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5년간 은상 수상……. 그게 참 대단하기는 하죠.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

“목표는 대상이거든요. 아시잖아요?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 거.”

“아무래도 임팩트가 있으니까요.”

“손에 잡힐 듯해서, 계속 도전을 해왔는데. 제자리걸음이네요. 아예 가능성조차 안 보이면 관두겠는데, 5년 연속 은상이라니. 희망 고문이라는 말이 딱 이럴 때 어울리는 거 같아요.”

‘희망 고문’이라는 단어에 난 빨리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가 지금 거짓말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신종국은 분명 오해하고 있으니.

지금도 ‘희망 고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종국 씨,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희는 공모전 사무국에서 온 것도 아니며 기자도 아닙니다.”

“네?”

신종국은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다.

“강 대리, 지금 뭐 하는 거야?”

변 팀장은 얼굴을 붉혔지만, 결심한 이상 난 멈추지 않았다.

희망 고문……. 나도 수도 없이 겪어봤다.

똥손 때문에 인생 자체가 그랬었으니까.

“만약 오해시켜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밝게 웃고 있던 신종국의 얼굴이 굳어버렸고.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방어적인 태도로 물었다.

“그럼 누구신데요?”

휴우―.

변 팀장은 옆에서 크게 한숨을 쉬고는 표정을 싹 바꿨다.

이빨을 8개 보이며 명함을 내밀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진일상사의 촬영1 팀장 변성준이라고 합니다.”

“촬영 1팀?”

신종국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네, 저희가 이번에 부산국제사진공모전에 참여하려 그러는데, 아는 게 너무 없어서 가르침을 청하고자…….”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신종국은 얼굴이 벌게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경쟁자에게 노하우를 알려 달라고? 내가 은퇴했어? 이게 무슨 경우 없는 짓이야!”

신종국은 거친 숨을 내쉬며 씩씩거렸고, 그래도 변 팀장은 굽실거리고 있었다.

“저희는 이번에 반드시 수상해야 하거든요. 밥줄이 걸린 일입니다. 조금만 도와주시면…….”

“밥줄? 난 목숨이 걸렸어!”

급기야 그는 변 팀장의 멱살을 잡았고.

켁. 켁.

변 팀장은 그의 손에 붙잡힌 채 숨을 헐떡였다.

“어디! 비포장도로 한번 굴러 볼 테야?!”

그는 극도로 흥분해서 언덕 아래로 변 팀장을 밀어버릴 듯한 태세였다.

“자, 잠깐 고정하시고. 조금만 도와주세요.”

변 팀장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무대포의 극치.

“에잇! 진짜!”

확!

“어?!”

난 변 팀장의 멱살을 잡고 있는 신종국의 손목을 잡았다.

강태평은 낮은 소리로 정중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 이거 놔…… 요.”

강태평의 손에 붙잡히자 이상하게도 신종국의 목소리는 좀 누그러들었다.

‘이상하네. 왜 갑자기 화가 가라앉지.’

“여기 언덕이라 위험하니까요. 조금만 진정을…….”

강태평은 그의 손등을 토닥이며 차분히 말했다.

변 팀장의 멱살을 잡은 손에 조금씩 힘이 풀어지고 있었다.

“손이 참 고우시네요……. 헉!”

말을 뱉고 나서, 신종국은 입을 황급히 막았다.

‘젠장. 이 상황에 나올 소리는 아닌데. 내가 미쳤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손길이 너무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유 모를 호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제 좀 놓아주시죠.”

강태평은 살며시 손에 힘을 주어, 신종국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악수하며 말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진일상사의 강태평 대리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강태평은 고개를 숙였고, 신종국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일반 회사원인데요. 촬영 1팀에 배정을 받았고,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공모전에 참여하게 됐거든요.”

“…….”

“실례가 안 된다면 조그만 팁이라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신종국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저희 정말로 서울에서 왔습니다. 신종국 씨 뵈려고요. 대상 한 번 타신 분보다는 5년간 수상하신 분께 훨씬 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

변 팀장은 강태평의 언변에 살짝 놀랐다.

‘의왼데? 나보다 낫네?’

신종국은 그래도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저 카메라 만진 지 이제 겨우 한 달 됐습니다. 상대도 안 될 겁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한 달이요?”

“네.”

“하아…….”

신종국은 인상을 살짝 쓰더니.

“들어오세요.”

* * *

신종국의 집 안은 매우 단출했다.

아주 기본적인 가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나마 눈에 띌 만한 건 카메라가 굉장히 많다는 거였다.

“이야~, 확실히 사진 작가 집 같아 보이네요.”

좀 전까지 멱살 잡혀서 낑낑대던 변 팀장.

지금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근데, 뭐 하시는 분이에요?”

신종국은 날 향해 물었다.

“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 그냥 진일상사 촬영팀 직원입니다.”

“그게 다예요?”

“…….”

“좀 이상한데.”

그는 좀 전에 나와 악수했던 본인 손을 바라보며 갸우뚱했다.

“왜요?”

“아,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변 팀장은 눈치를 보다가 살며시 물었다.

“올해도 부산국제사진공모전 출품하셨나요?”

“했죠. 아마 이번 주까지 마감일 거예요. 저는 2주 전쯤에 제출했습니다.”

“아……, 5년 연속 은상을 수상하셨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모습. 대단하십니다. 전 격려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변 팀장이 뻔한 사탕발림에 신종국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도 듣기 나쁘지는 않았는지, 표정은 살짝 풀렸고.

변 팀장은 은근슬쩍 진도를 나갔다.

“일단 좀 앉을까요?”

“아니요. 내가 뭐에 홀린 건지…… 일단 두 분을 들이긴 했지만. 간략하게 설명 한 번만 해드리고 말 거니까.”

“아, 네.”

신종국은 날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보세요.”

“네.”

거실에 조그만 창이 하나 있었고, 그 창을 통해서 먼바다가 보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언덕 집 임에도 불구하고, 창밖 시야는 막히는 거 없이 트여 있었다.

“맞은 편 바다를 찍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찍으시겠어요?”

“…….”

창이 작아서, 창 안에 보이는 바다는 작았다.

하지만 창 가까이 가면, 시야가 트이므로 바다가 훨씬 넓게 보인다.

바다가 피사체라면 잘 보이게 찍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카메라를 창에 최대한 가까이 두고, 찍겠습니다. 아니면 창밖으로 내놓고 찍으면 막히는 거 없이 바다가 제대로 담길 것 같은데요.”

신종국은 피식 웃었다.

“거짓말은 아니군요.”

“네?”

“공모전 처음이라는 말이요.”

“…….”

그는 창에서 몇 걸음 떨어진 뒤에서 손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창과 바다가 모두 보이도록 구도를 잡았다.

“호소력.”

그는 한쪽 눈은 감고, 다른 쪽 눈으로 사각형 안을 통해 창을 보고 있었다.

“강렬한 첫 느낌은 호소력에서 시작됩니다. 호소력을 얻기 위해 사진 속에 또 다른 프레임을 넣어 시선을 집중 시켜야 하죠.”

꿀꺽.

난 그의 말에 집중했다.

“사진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의 기본은 감정입니다. 그게 없으면…….”

그는 창에서 시선을 거두고 날 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뭔가 좀 어렵기도 하고 놀라웠다.

단순히 사진 찍는 것과는 다른 거구나.

근데, 문득 현타가 왔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감정을 실어라.

* * *

“강 대리?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

“네?”

“집중 안 할래? 지금 굉장히 중요한 얘기 하고 있으시잖아.”

“아, 네.”

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변 팀장은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

현자 타임에 빠져들지 않도록 바로 치고 들어왔다.

“제가 하는 말 이해했죠?”

신종국의 말에 난 물었다.

“사진 속의 프레임이라는 게 뭘 말하는 겁니까?”

“사진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죠. 그 안에 또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어 준다는 건데.”

알쏭달쏭하다. 정확히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바다를 향해 사진을 찍는다면, 앞에 있는 조그만 창이 사진 속의 프레임이 되는 겁니다.”

“아……, 네.”

난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변 팀장은 내게 손짓했다.

물어볼 수 있을 때, 빨리 다 물어보라는 듯.

“그럼 사진 속 프레임이라는 건 네모난 걸 의미하나요?”

“꼭 그렇진 않아요.”

그는 날 보고 말했다.

“제가 지금 프레임 얘기를 하니까, 거기에 집중하시는데, 프레임은 호소력을 전달하기 위한, 즉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아……, 어렵다.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저…… 그러면…….”

“여기까지.”

신종국은 말을 끊었다.

“호소력 전달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더 설명한다고 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중에 찬찬히 생각해보세요.”

“…….”

신종국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딱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요. 이게 마지막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변 팀장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생명력.”

호소력에 이어서 생명력인가.

“찍고자 하는 개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입체감 있게 느껴지는 것이죠.”

“어떻게요?”

“빛과 노출. 그것을 통해 질감과 입체감을 증가시켜주는 겁니다.”

“…….”

“우리가 보통 인물사진 찍을 때 어떻게 찍죠?”

변 팀장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얼굴에 빛이 한껏 들어와야 인상도 밝게 보이고, 그늘진 것도 없고…….”

“공모전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아는 척하려던 변 팀장은 머쓱 해져서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공모전 출품 사진들을 보면 측광과 역광 사진들이 많죠. 빛과 노출을 활용하여 의도한 연출이 돋보이게끔 한 것입니다.”

“네……, 측광과 역광.”

난 핸드폰에 그의 말을 기재하며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공식처럼 그걸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네?”

“핵심은 생명력이 느껴지는 연출을 하기 위해 빛을 활용한다입니다.”

또 절로 욕이 나올 것 같다.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럼 저는 할 말 다 한 거 같은데. 제가 말씀드린 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거예요.”

“…….”

“휴우―. 만날 혼자 있다가 오랜만에 말 많이 했더니 힘드네요.”

그는 감정 없는 눈으로 우릴 보았다.

“이만 가주실래요?”

“…….”

뭔가 중요한 조언을 들은 거 같기는 한데, 전혀 흡수를 하지 못했다.

느껴지는 성과가 없었다.

이대로 물러나기엔, 너무 멀리 왔다.

이 집 찾으려고 감천문화마을 3바퀴를 돌았다.

“잠깐만요.”

변 팀장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종국 씨~, 정말 감사한데요~, 좀 더 현실적인 팁 없습니까?”

“현실적인 팁이요?”

“뭐……, 셔터를 어떻게 누르라던지, 조리갯값을 몇으로 하라던지…… 좀 현실적이고 기술적인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

“저희가 너무 생초보라서요. 최소한 출품하는데, 기본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변 팀장은 고개를 숙였고, 나 또한 황급히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하아~”

신종국은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카메라 있어요?”

“아, 네, 있습니다.”

“꺼내 봐요.”

난 옆 가방에서 뒷주머니에도 쏙 들어갈 것 같은, 얇고 컴팩트한 디지털카메라를 꺼냈다.

“푸하하.”

신종국은 내 카메라를 보더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와~, 어이없어. 이걸로 공모전 사진을 찍는다고요?”

“네, 전 심플한 걸 좋아해서요.”

“하하.”

회사 지원이 거지 같아서 이런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젠장.

“자동이고 좋잖아요. 많은 고민 안 해도 되고.”

“와~, 하하. 긍정적이시네.”

촬영 1팀의 공통점. 긍정적 마인드.

이런 마인드를 갖지 않고서는 진일상사에서 회사 생활하기 힘들다.

“흠. 그만 웃으시고요. 카메라 꺼냈는데,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는 뭐가 그렇게 웃긴 지, 여전히 쿡쿡대고 있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도움받으러 온 입장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거나 하나 찍어볼래요? 제가 사진 퀄리티 보고 얘기해 줄게요.”

“흠…….”

난 집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하얀색 컵이 보였다.

“그럼 저 컵 한번 찍어보겠습니다.”

“좋아요. 기술적인 부분만 볼 거긴 하지만, 이왕 찍는 거 아까 제가 말씀드린 호소력과 생명력을 생각하면서 찍어봐요.”

“호소력과 생명력…….”

호소력은 프레임 안에 시선과 관심을 끌 수 있는 프레임을 활용하고.

생명력은 빛과 노출을 이용해 연출하라고 했었다.

위잉―.

앵글 안에 컵을 담은 후, 노출값을 조정했다.

별로 어려울 건 없었다. 어차피 LCD 화면 터치만 하면 되니까.

흠…….

순백색의 컵.

마치 남편을 기다리는 새 신부 같은 감정을 담아보면 어떨까.

새하얀 컵 아래 놓인 붉은 컵 받침.

그곳에 초점을 맞추어, 컵의 수줍음을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답지 않게 왜 그래? 그냥 빨리 찍어.”

계속 구도를 잡고 있자, 옆에서 변 팀장이 말했다.

이전에 제품 사진을 찍는 건 순식간이었다.

위잉―.

초점을 다시 한번 맞추고.

내가 원하는 감정과 음영이 느끼면서.

찰칵!

휴우―.

셔터를 누른 후,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집중해서 사진을 찍어본 건 처음이었다.

“하하.”

신종국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옆에서 계속 웃고 있었다.

“왜요?”

“정말 기본도 안 배우셨나 보네. 그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찍으면 구도가 안정적이지가 않다고요.”

“…….”

“아무리 요즘 카메라가 좋아서 흔들림 보정이 된다지만……, 뭐, 그렇게 좋은 카메라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난 카메라를 건네었다.

피식.

그는 웃으며 카메라를 받았다.

“참 내. 공모전이 뉘 집 개 이름인가.”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잔뜩 경계하던 그였다.

내가 카메라를 꺼낸 순간부터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그는 한 곳을 가리키며.

“이 버튼 맞나요?”

“네, 그거 누르시면 됩니다.”

픽.

“응?”

신종국은 LCD 화면을 보고 얼굴이 굳어버렸다.

“어?”

그리고 날 바라봤다.

“네?”

“뭐지?”

그의 눈두덩이 흔들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운으로 이렇게 될 수가 없는데?!”

“왜 그러시는데요?”

후우― 후우―.

그는 대답은 않고, 거친 숨을 내쉬더니 황급히 LCD 화면을 여러 번 클릭했다.

그리고 던지듯이 내게 카메라를 건넸다.

“나가! 당장 나가!”

“왜, 왜 이래요?”

“야이, 사기꾼들아. 빨리 안 나가?!”

그는 거칠게 우리를 밀어냈고, 얼떨결에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쾅!

신종국은 두 사람을 집 밖으로 내보낸 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요즘은 사기도 아주 고단수네. 뭐? 사진 찍은 지 한 달 됐다고? 이 나쁜 놈들.”

그는 좀 전에 LCD 화면으로 본 강태평이 찍은 사진을 떠올렸다.

순백과 붉은색의 대비.

은은한 역광에 순백을 대조시켜서 수줍음을 표현하고, 한쪽을 은은하게 그늘지게 하여 미래의 불안함을 나타냈었다.

마치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 같은 새하얀 컵.

아주 잠시, 뭉클함마저 느껴졌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침대에 누웠다.

“젠장. 잠이나 자자.”

* * *

쾅!

갑자기 쫓겨난 우리는 황당해서 서로를 바라봤다.

“저 사람 뭐야? 갑자기?”

“그러게요.”

“강 대리, 뭐 실수했어?”

“제가 무슨 실수를 해요. 사진 찍은 거 말고는 한 게 없는데.”

“……. 이상한데.”

우리는 마을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변 팀장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깐. 강 대리, 아까 찍은 사진 한번 보자.”

“아, 네.”

난 카메라를 건네었다.

변 팀장은 한참을 조작하더니.

“어?”

“왜요?”

“왜 없지? 찍은 거 맞아?”

난 변 팀장으로부터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LCD 화면을 계속 넘겼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왜 없지?”

“진짜 찍은 거 맞아?”

“그럼요. 방금 신종국 씨가 확인하는 거 보셨잖아요.”

끼이익.

우리는 마을버스에 타서 빈자리에 앉았다.

“아…….”

신종국이 화면을 확인 후, 여러 번 LCD 화면을 클릭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아무래도 신종국 씨가 지운 거 같은데요.”

“왜 지워?”

“그야 저도 모르죠.”

변 팀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너무 잘 찍어서 지웠나? 아니면 갑자기 가르쳐 준 게 짜증 나서?”

“하아……. 글쎄요.”

갑자기 그는 활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어쨌든 좋은 신호다. 대수롭지 않았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겠지.”

“찍은 사진이 지워졌는데도요?”

“사진이야 다시 찍으면 되잖아. 좋은 신호야.”

참…… 긍정적이다.

이게 변 팀장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새삼 많은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정처 없이 계속 버스를 타고 갔다.

딱히 목적지가 없었다.

변 팀장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고.

난 핸드폰으로 작년 수상작들을 살폈다.

‘호소력과 생명력.’

신종국이 했던 말들을 생각하며 수상작들을 자세히 보았다.

계속 보다 보니 그가 했던 말의 의미가 약간은 이해될 듯싶었다.

사진의 주체는 제각각이었다.

인물, 자연, 동물 등…….

하지만 분명 뭔가가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고, 찰나의 순간을 담은 한 컷이지만.

그 한 컷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것 같았다.

사진의 어느 구석 하나, 의미 없는 건 없었다.

연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사진을 만들어내려면, 얼마의 기다림이 필요할까.

수상작들을 보면 볼수록.

불안했던 마음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변 팀장님.”

“응?”

“좀 알고 나면 진짜 어려움을 알게 된다는 말 아세요?”

“갑자기 그건 왜?”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골프가 참 쉬워 보이잖아요. 막상 해보면 장난 아니게 어려운데.”

“음. 그렇지.”

“오늘 신종국 씨에게 사진 얘기 좀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공모전 수상은 접어두고, 빨리 다른 걸 고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뭐어?!”

사진 공모전은 금손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예술적 감각은 금손과는 다른 얘기였다.

“강 대리, 무슨 소리야. 자네 능력 있어! 우리 할 수 있다고!”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진은 찍겠습니다. 공모전에 출품도 하고요. 그건 뭐 어려운 일 아니니까요.”

“…….”

“하지만 공모전 참가가 목적이 아니잖아요. 수상을 해야 하는 거지.”

변 팀장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판단한 듯, 그는 가만히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자충수를 둔 게 아닐까 싶어요.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아……, 강 대리.”

“출장비 아끼게 내일이라도 당장 올라가죠.”

휴우―.

변 팀장은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안돼. 절대 안 돼.”

“팀장님…….”

그의 눈빛은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잖아.”

“…….”

의지와 무모함은 다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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