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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40화 (240/251)

00240  고립과 기다림  =========================================================================

“방향은?”

“이쪽으로....”

“앞장서.”

“예, 예!”

악마가 고개를 굽신 거리면서도 정말 가기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 걸어갔다.

주변에 있는 악마들은 자신들이 살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지 환호했다. 태상과 악마가 정보상인을 찾아가기 위해 사라지자 그들은 입을 모았다.

“저놈한테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 거야?”

“못 들었어? 저번에 죽이려고 몰려갔다가 몰살당한 거?”

“젠장! 대악마님께서 계셨더라면....”

“어차피 저놈은 곧 죽을 수밖에 없을 거야. 여긴 다른 곳도 아니고 심층부라고. 심층부에 들어 온 이상 우리가 굳이 손 쓸 필요도 없이 죽을 거야.”

“그래도 뒤통수에 뭐라도 한 대 갈겼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저놈 따라간 멍청한 새끼한테 명복이나 빌어주자고.”

그 덕분에 목숨을 살았으면서도 악마들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

“저게 뭐지?”

“응? 뭐가?”

대화를 나누던 악마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악마가 태상이 사라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게 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다들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가자 그들의 눈에도 빛이 보이고 있었다.

“뭐.....”

뭐야 저게? 라고 말 하려는 순간, 그 빛은 순식간에 그들 모두를 덥쳤다.

콰아아아아앙!!!!!!!!!!!!!!

“히이익...!”

태상과 함께 걸어가면서 자신은 베치라고 소개한 그가 뒤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불만 있나?”

태상이 힐끗 베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들은 태상이 생각보다 훨씬 청각이 좋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 뒤통수 칠 생각을 하는 놈들을 그냥 살려둘 순 없었다.

“걱정하지 마. 넌 살려줄 거니까.”

그걸 어떻게 믿어!!

베치가 애써 표정관리를 했다.

“가, 감사합니다.”

사실 베치도 그들이 죽은 것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악마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다니는 모습이 무섭고, 또 그 대상이 자신이 될까 걱정이 될 뿐이었다.

“이쪽입니다.”

베치가 터벅터벅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왔던 곳은 천막이 모두 사라진 채 시커먼 연기만을 피어 올리고 있었다.

“근데 타치다, 그놈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베치가 한참을 걷다가 계속 된 침묵에 심심해졌는지 아니면 간이 갑자기 부었는지 태상에게 말을 걸었다.

“.......”

태상은 베치의 말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베치가 입술을 삐죽이다가 부채처럼 커다란 귀를 나풀거리면서 말했다.

“그놈은 진짜 별 거 아닌 놈인데요. 저한테도 지는 놈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위~대하신 인간님이 찾는다는 게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가 천계와 마계를 들락날락 거릴 수 있었다고 들었다.”

계속해서 우물쭈물 거리면서 수다를 떠는 베치에게 결국 태상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아...물론 그렇죠. 그게 그놈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었으니까요.”

“난 그게 필요해.”

“허엉? 그게 말입니까? 하지만 천계는 무너져 버려서 갈 수도 없는데요.”

“천계를 가려는 게 아니니까.”

“그럼요?”

멍청하게도 베치는 그가 인간계에 가고 싶을 거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인간계로 갈 거야.”

“인간계!”

베치는 박수를 짝! 하고 치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인간계로 돌아갈 생각이셨군요!! 그래서 그놈이 필요한 거였구나. 아아~~ 이제 이해가 됐습니다. 하하! 인간계로 돌아간다라...그거 참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태상이 마계에서 사라져주면 가장 좋은 것은 악마들이었다. 태상이 악마들을 학살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이기엔 너무 강해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는 사정인데, 그가 인간계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만약 그의 앞에 태상이 없었다면 베치는 깨춤을 췄을 지도 모른다.

“너무 서운하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참 인연인데 말입니다. 헤헤”

“그만 좋아해라, 속 보인다.”

“흡!”

베치는 서둘러 얼굴에 힘 빡주고 미간을 찌푸리며 매우 아쉽다는 표정을 연기했다.

베치는 무척이나 수다쟁이었다.

그는 이것저것 태상이 대답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떠들면서 묻곤 했는데, 당연하게도 그의 텅 빈 오른팔이 그의 질문에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오른팔은 어쩌다 그러신 겁니까?”

만약 태상이 7개월 동안 혼자서 지내지 않았다면, 베치는 진작 주둥이가 꽁꽁 묶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썩 나쁘지 않았던 태상이 말했다.

“토다베스를 죽일 때 잘렸지.”

“.....”

베치는 지뢰를 밞은 것마냥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말하는 ‘토다베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악마는 없었다. 베치는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물었다.

“그....토...다베스라는 그...분이..설마...대악마....?”

“알고 있지 않나?”

그가 대악마들을 죽인 계약자라는 것을 아는 악마들이 있었는데, 베치는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가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이 휘청거렸다.

“모, 몰랐는데요.”

“이제 알았으면 됐네.”

너무 태평하게 말하는 바람에 베치는 지금 자신이 들은 게 정말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을 해야 했다. 베치는 한참을 말 없이 걸었다. 대악마를 죽인 인간이라는 소리가 꽤나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주둥이가 또 말썽이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자꾸만 입이 근질거렸다. 결국 베치가 슬금 태상의 눈치를 보더니 물었따.

“그런데 말입니다. 대악마님들을 다 죽이셨는데, 마계를 지배하지 않으십니까? 왜 인간계로 돌아가려고 하시는 건가요?”

“내가 왜 마계를 지배해?”

그딴 걸 왜 하는가. 그는 그냥 인간계로 돌아가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베치는 태상의 말에 펄쩍 뛰었다.

“아니 그 무슨! 한 번 태어났으면 지배자의 꿈을 꾸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거기다가 인간님은 그럴 힘까지 있으시고요!”

“난 악마들 씨를 말리고 싶은 사람인데?”

“씨, 씨를...쿨럭! 저, 정말 그러셔야 하나요? 그냥 우리들을 지배해주시면 안 될까요? 사실 요즘 마계는 엉망진창입니다. 지배자를 잃어서 악마들 사이에서 약탈을 하고, 죽이고 난리가 아니죠. 만약에 인간님이 저희를 지배해주신다면 그런 혼란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종족이 인간이라는 것 때문에 싫어하는 악마들이 있긴 하겠지만, 인간님의 힘을 보여주면 분명 찍소리도 안 할 겁니다.”

태상은 베치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많은 악마를 봐왔지만, 인간님 인간님 하면서 비굴하게 굴고 심지어 그에게 우리를 지배해 달라는 말을 하는 놈은 처음이었다.

“너....좀 특이하구나?”

“옙?”

베치가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글주글 거리는 베치의 얼굴인지라 절대 귀엽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태상은 나름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말 속에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악마니 뭐니 그런 거 지겹다. 그러니 지배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평생 눈앞에 안 나타나줬으면 하지.”

호랑이가 사라지면 여우라도 나서서 왕 노릇을 하게 되는 법이었다. 마계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것이다.

“아! 저기 보이네요.”

베치가 태상의 말에 아쉬워 할 무렵, 그들의 시야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이 베치가 말하던 정보상인이 있는 곳이었다.

“근데 정보상인한테 줄 대가는 있으십니까? 그놈은 무지막지하게 돼지 같은 놈이라서 위협만으로는 정보를 주지 않을 겁니다.”

“글쎄. 넌 이제 그만 따라와도 된다. 갈 길 가. 살려줄 테니.”

“헉! 진짜요?”

베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살려주겠다고 했잖아.”

“그치만.....”

올 때 그가 죽였던 이들이 떠오른 베치였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안내해주긴 했지만, 자신이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태상이 정말 살려준다고 하니 얼떨떨했다.

태상은 베치가 얼떨떨해하는 것을 뒤로 하고 몸을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움직여 커다란 나무를 향해갔다.

베치는 휘이이잉! 하고 바람이 불더니 사라진 태상을 보고 벙찐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이 왔던 길과 커다란 나무 사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에라!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베치는 이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커다란 나무가 있는 쪽이었다. 바로, 태상이 갔던 곳 말이다.

**

“네가 정보상인인가?”

태상은 어두컴컴한 주변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갔다. 커다란 나무에 도착한 태상은 그곳에 나 있는 문을 발견하고 들어 온 참이었다.

어둠은 태상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이곳이 아침인 것처럼 환하게 모두 보이고 있었다. 해서 의자에 앉아 미동도 않고 있는 악마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악마는 태상이 올 거라는 걸 알았다는 것처럼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님이 오셨군요. 앉으시죠.”

그는 태상이 누구인지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태도로 말했다. 태상은 그가 권한 자리에 순순히 앉으며 말했다.

“타치다라는 악마에 대한 정보를 사러왔다.”

“타치다....타치다라.....”

악마는 태상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그 악마를 왜 찾으려고 하시는 거죠?”

“나는 정보를 사러 온 거지, 주려고 온 건 아닌데?”

태상의 말에 악마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외형이 나무와 비슷했다. 태상은 불에 취약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알겠습니다. 타치다라는 악마에 대해 알려드리지요.”

“장난이다. 난 지금 인간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찾고 있다. 타치다라는 놈이 천계와 마계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들어서 놈을 찾고 있는 거지.”

악마는 태상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완전히 자신을 갖고 놀고 있음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에 불만을 터트릴 순 없었다. 정보 상인답게 자신을 찾아 온 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이렇게 제게 말씀해주셔도 되는 겁니까?”

“네가 그걸 알아서 뭐에 쓰게? 설마 내가 인간계로 돌아가는 걸 막기라도 할 건가? 악마들은 내가 인간계로 가도록 도와줘도 시원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태상은 마계에 있는 동안 어마어마한 숫자의 악마들을 죽였다. 그러니 그들이 살고 싶다면 자신을 인간계로 돌려보내는 게 신상에 좋았다. 태상은 그것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인간계로 돌아가는 거에 안 좋아할 악마가 있나?”

“그건 없지요. 당신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악마들이 모두 벌벌 떨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미 태상의 악명은 널리 퍼졌다.

그를 누군가는 학살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음의 사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가 지나 온 곳은 악마들의 시체로 강을 이루게 되니 말이다.

“제게 정보를 얻으려면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걸 지불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놈의 목숨을 살려주는 걸 대가로 하겠다면 어떡하겠어?”

태상의 말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코멘에 예리하신 분이.....옙...마계의 심장은...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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