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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33화 (23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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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멀쩡히 걷던 태상이 걸음을 멈췄다. 일행은 그가 움직임을 멈추자 모두 따라서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가고 있어. 뒤따라갈 테니.”

카살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태상이 말했다.

“어디 가시려고요?”

어차피 움직일 경로를 모두 알고 있었기에 굳이 그가 그들과 함께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는 미묘하게 거슬리는 기척을 느꼈기에 그곳을 확인하고 뒤따를 생각이었다.

“거슬리는 기척이 있어.”

“주변에 악마는 없는데요?”

아이라가 말도 안 된다며 다시 한 번 능력을 써서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역시나 악마는 없었다. 있더라도 그다지 신경을 쓸만한 녀석들이 아니었고 말이다.

아이라의 능력 범위가 제법 늘어나서 이 근방에는 악마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악마가 아닌 것 같아. 사람일 거야.”

“아..!”

아이라가 사람이라는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말은 이곳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구하러 가시려는 거군요.”

“일반인이 있다면 구해야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로인해 시간이 좀 늦춰진다 해도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태상 혼자서 움직인다면 시간도 그다지 늦춰지지 않고 사람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확인해보고 있다면, 구조대를 보내줘야지.”

“그럼, 저희들은 계속 움직여요?”

“그렇게 해. 예정대로.”

태상이라면 낙오 된다 해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은 일행과 헤어져 기척이 느껴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몸놀림이 무너진 건물들 사이사이를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 무엇도 그의 앞을 방해할 수 없었다. 길이 막혀 있으면 마나건으로 뚫어버렸다. 그가 느낀 기척에 도착하자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깨달았다.

위가 아니라 아래다.

이 아래에 사람들이 있는 거였다.

태상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무너진 건물의 파편을 바라봤다. 이 아래에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 사람들이 살아서 숨 쉬고 있을 것이다. 태상은 이 건물이 백화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백화점이라.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됐겠군.

문제는 그가 섣불리 건드리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래서 백화점 아래에 갇힌 사람들이 지금까지 탈출하질 못했던 것이리라. 들어 갈 방법이 없으니 악마들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기에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태상은 혜연에게 연락을 넣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어. 구조대가 필요해.”

그가 이 잔해를 치우고 그들을 구해주진 못할 것이다. 이런 것은 전문가가 필요했다. 다만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말하기 위해서 그들과 얘기를 나눠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준비시킬....뭐?]

그때, 혜연이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급한 일이 아니었다면 그럴 리 없었기에 태상은 의아해하며 잠시 그녀를 기다렸다.

[죄송해요.]

“무슨 일이야?”

[대피소에 악마들이 침입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 잘 막아내고 있대요.]

태상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대피소에 있을 그의 가족들이 걱정됐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주둔시켜 놓은 계약자들이 있었기에 걱정하지 않으려 애썼다.

“구조대를 데려 올 수 있겠어?”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갈 수 있을 거에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대피소를 지키는 인력을 많이 빼지 않아서 충분할 거에요.]

“이 근처에 악마가 없긴 하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대피소 상황, 계속 보고 해줘.”

[네, 그럴게요.]

전화를 끊은 태상은 악마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자신들도 좀 더 빠르게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 잔해들이 그의 손에서 휙휙 종이장처럼 치워졌다. 함부로 건드려서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무척이나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살...........요!”

그때, 그의 귓가에 희미하지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태상은 빙고-!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계십니까?!”

태상의 목소리를 그들이 들었던 것인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Help!!!!““

목소리가 합쳐지니 당연하게도 더 선명하게 들렸다. 태상은 건물 잔해를 좀 더 치워 구멍을 크게 만들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태상의 시야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드디어 자신들이 탈출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했는지 환호하고 있었다.

곧 태상이 당장 저들을 구해주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시무룩해졌지만 말이다. 그래도 구조대가 온다는 말에 더할 나위 없이 안도하고 있었다.

태상은 악마들이 구멍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건물 잔해를 그 위에 놓아 은폐를 시키고 일행을 향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기척은 그에게 볼 일이 있었는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태상은 자리를 피해도 됐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태상오빠.”

“.......”

잠시 기다림 후에 그의 시야에 들어 온 한 여자. 그 익숙한 얼굴을 태상이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선 잠시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레베카.”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았는지 환하게 웃었다.

“네. 저에요.”

그녀의 모습은 그가 알던 것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그녀의 길었던 머리카락이 짧은 단발로 바뀌어 있었고, 옷 또한 나풀거리는 치마를 좋아하던 그녀답지 않게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달라붙는 소재의 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우연인가?”

태상의 물음에 레베카가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 아이들이 알려줬어요. 사실 알려줘도 제가 안 오면 되긴 했지만,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오빠가 왔다는데 안 와 볼 수 가 없었으니까. 지금 아이들한테만 일을 맡기고 와서 불안하긴 하네요. 돌아가면 분명 혼나겠죠. 그래도 후회하진 않아요. 기회는 다음에 또 있을 테니까.”

“......”

태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하는 아이들이라는 말이 새끼악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을 맡았지? 누가 너한테 그런 걸 맡기고?”

태상은 그녀의 말에서 대부분의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알 던 레베카가 아닌 것 같았다.

“오빠를 데려오기 위한 준비죠.”

“준비?”

“오늘 계획한 일이 성공하면 오빠를 찾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절 찾아와주실 줄은 몰랐죠. 제가 없으니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전 좋아요. 오빠를 보는 건 늘 절 기분 좋게 만드니까요.”

레베카는 설레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 볼이 붉어져 있었다. 수줍어하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면서 태상은 불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늘 뭔가 일이 일어났다면 그건 방금 전 혜연에게 들은 일밖에 없었다. 대피소에 악마들이 침입했다는 것 말이다.

“대피소에 침입한 악마들이 설마 네 짓인 거냐?”

레베카가 태상의 말에 깜짝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깜빡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하!

태상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악마를 조종한다고? 레베카가?

“악마의 편에 선 거냐?”

그래서 악마의 땅을 저렇게 태연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고 말이다.

“....그건 비밀이에요. 전 그냥 오빠를 데려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뿐이에요. 누구의 편에 선 게 아니라요.”

“악마들을 이용해서 인간계를 습격해놓고 악마의 편이 아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물론 아니긴 하지만, 이건 그냥 잠깐 서로의 목적을 위해 잠시 동행하는 것뿐이에요. 오빠가 악마들을 죽이라고 하시면 죽일 수 있어요. 물론 제 쪽에서도 조건이 붙겠지만.”

“그 놈들 죽이는 데에 네 힘까지 필요하지 않아. 모두 그만두고 네 자리로 돌아 와. 아직 늦지 않았다고 쳐줄 테니까.”

이미 늦어도 많이 늦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상은 그녀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 듯 말했다. 하지만 레베카는 그의 말이 무척이나 신경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제 자리요? 제 자리가 어딘데요?”

레베카의 눈동자가 강렬하게 빛났다. 태상의 말 때문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정말 어딘지 몰라서 묻는 거야?”

“아뇨, 알아요. 결코 오빠 옆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죠!! 그래서 전 선택을 한 거에요. 오빠 곁에 있을 수 없다면, 오빠를 내 곁에 있게 만드는 거죠. 그와 손을 잡았으니 그럴 수 있어요. 시간문제일 뿐이라고요!”

“그? 그라면 설마 토다베스를 말하는 거야? 그놈이랑 손을 잡았어? 또 악마와 거래를 한 거야?”

태상은 어쩐지 거슬리는 ‘그’라는 단어를 캐치했다. 그러자 레베카가 잠시 실수 했다는 듯 눈을 굴렸다.

“그는....”

레베카는 그의 정체를 말해야 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그에게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었던 모양인지 조금 체념한 듯 보였다.

“맞아요. 거래를 했어요.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역시 들켜버렸네요.”

“....!!”

레베카의 말에 태상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불길함은 왜 늘 비켜가질 않는 걸까?

태상은 그녀가 토다베스의 능력에 당한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오른팔은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그의 언변에 넘어 간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거지? 악마와 손을 잡으면 결국엔 파멸밖에 남지 않아.”

악마와 손을 잡고 그녀는 여왕이 되었다. 그렇다면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그녀가 또 다시 악마와 손을 잡았단다.

레베카는 너무 어리석었다.

“.....방법이 이것밖엔 없으니까요.”

레베카 본인도 괴로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녀에게 내밀어진 손을 거절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변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레베카는 그의 가족을 죽일 것이고, 동료들을 죽일 것이다.

그를 갖기 위해서 말이다.

“이미 늦었어요. 모두 다 없앨 거에요. 그럼 오빠 곁에는 저밖에 남지 않겠죠. 그럼 되는 거에요.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을 거에요.”

레베카는 안타깝게도 태상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자신은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가졌으니, 그를 갖는 것이 시간문제라 여겼던 것이다.

태상은 안쓰러운 마음을 접기로 했다.

“더 이상 널 두고 볼 수가 없겠구나.”

오늘 그녀는 대피소를 공격하려 했다.

그리고 대피소에는 그의 가족이 있었다. 레베카는 그에게 너무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태상은 그녀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 작품 후기 ============================

레베카 부분을 너무 끌었네요. ㅠㅠ 저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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