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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32화 (232/251)

00232  잠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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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이 레베카를 찾아가겠다고 생각한 그날, 갑작스런 일이 일어났다.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혜연이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태상에게 말했다. 그는 뭔가 일이 잘못 됐구나 싶은 생각이 덜컥 들었다. 그리고 그의 짐작은 틀리질 않았다.

“레베카씨가 사라졌어요. 계약자 다섯을 죽이고서요.”

“뭐?”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원인은 반의 부주의였다.

반은 태상이 돌아왔다는 것을 혜연의 전화로 알았다. 그리고 그는 사샤가 죽었고, 그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소식에 분노했다.

레베카에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떠드는 소리를 레베카가 모두 들어버렸다는 것에 있었다. 태상 일행이 마계에 있는 동안 레베카는 자신의 몸이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반에게서 태상이 그녀를 위해 고칠 방법을 찾으러 갔다는 소리를 듣게 됐었다.

레베카는 그 말에 삶의 의미를 다시 되찾을 수 있었었다.

‘더 이상 평범해지지 못해..? 이런 몸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레베카는 자신의 혐오스러운 몸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에 넋을 놓았다.

그녀는 그것을 끝내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해서 레베카는 반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자살을 하려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의 몸이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배가 갈려도 살아나는 그녀의 몸인데, 손목을 그었다고 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왜 죽질 않는 거야?!!!!

레베카는 아무리 손목을 그어 봐도, 목을 그어도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몸으로 태상의 곁에 있으려고 했는지 깨닫고 수치스러움이 몰려왔고 말이다.

그녀의 안전을 위해 CCTV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그곳에 찍혀 있었다.

레베카는 그대로 병실을 나와 도망쳤다. 그녀를 막는 계약자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말이다.

그녀는 힐러였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걸까?

그건 그녀의 몸이 여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변한 그녀의 몸은 엄청나게 강화된 상태였다. 예전에 발작하는 그녀를 막기 위해 사로나 반 카살라 등이 달려들었어야 했었던 적이 있었다.

더욱이 그들의 공격은 엄청난 재생력을 갖고 있는 그녀를 막지 못했다. 레베카는 그들을 기절시키는 대신 무자비하게 목숨을 빼앗았다.

레베카가 살인을 저질렀다.

계약자의 살인은 엄중하게 다스려야 하는 죄였다.

그런 상황에서 레베카가 범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혼란스러웠다 해도 사람을 함부로 죽인 죄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반은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며 레베카를 찾기 위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반이 좀 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면....그리고 태상이 좀 더 일찍 그녀를 만나러 왔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결국 그들의 바람일 뿐이고 소용없는 후회였다.

CCTV에는 그녀의 범죄 현장을 모두 찍었기에 그녀를 보호해줄 수가 없었다. 한 명을 죽인 것도 아니고, 다섯 명이나 되는 계약자를 죽였기에 그녀의 죄가 굉장히 무거웠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CCTV를 삭제시켜야 하나 하는 충동을 느끼긴 했지만 그건 공정하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한 명도 아니고 다섯의 죽음을 없던 일처럼 처리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법에 의해 죽임을 당할 지도 몰랐다. 그녀를 죽일 수 있는 건 태상밖에 없었으니 결국 그가 해야 하는 일이 될 테고 말이다.

어찌됐건 레베카를 찾아야 했다. 그녀는 혼자 두기엔 너무 위험한 상태였다.

그녀 혼자서 있을 때, 새끼 악마들이 인간계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들었는지는 다들 잘 아는 얘기였다.

레베카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태상은 부디 그녀가 너무 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태상은 현재 홀로 넓고 탁 트인 방 안에 서 있었다.

보통 체육단련을 하는 곳인데, 현재 사람이 없었기에 태상 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전투조원들이 훈련을 하는 곳이었지만, 지금 그들은 다른 곳에 있었기에 없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곧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레베카의 일을 해결하고 시작하려 했으나 그녀가 사라지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후우~.”

태상이 깊게 숨을 쉬었다.

며칠간 집에서 쉰 덕분에 몸 상태는 매우 좋았다. 마나건의 충전도 모두 최고로 채워놨기에 그는 현재 언제 어디서든 전투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띠띠- 띠띠- 띠띠띠- 띠띠-

태상이 마음을 다잡고 있을 무렵, 핸드폰에 설정해놓은 알람이 울렸다.

그가 이곳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악마와 전투하기 위한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 시작해볼까.”

미리 스트레칭을 해놨기에 언제든지 악마와 싸울 준비를 끝냈다. 성희가 악마들이 있는 본진으로 그를 안내해 줄 것이다.

그리고 태상은 오늘 반드시 토다베스라는 놈을 죽이고 말 것이라 다짐을 해놓은 상태였다.

폭풍전야인 지금.

누가 먼저 서로를 건드느냐가 중요했다. 서로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행동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대피소를 보호하는 인원은?”

“말씀하신대로 배치해놨어요.”

“좋아.”

태상은 대피소 인원을 소홀이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토다베스였다면, 가장 먼저 치고 싶은 곳이 민간인들이 있는 대피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상도 그와 마찬가지고 토다베스가 있는 곳을 찾아 그와 결전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 않은가. 그는 전투에 나서기 전에 충분한 계약자들을 대피소의 안전에 배치해두었다. 악마들과 시시때때로 싸움이 일어나는 전방에 있는 계약자들과 대피소의 안전을 지키는 계약자들의 비율이 6:4 정도 된다고 보면 됐다.

너무 과한 보호 아니냐고 물을 수 있었지만, 태상은 어차피 소모전일 전쟁에 굳이 사람들을 많이 내보내서 목숨을 잃게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계라 해도 태상은 많은 이들을 데리고 전쟁을 치룰 생각이 없었다.

마계에 갔던 그 인원 그대로 태상은 이 전쟁을 멈출 것이다.

성희의 주변에는 마계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 서서 그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그들이 태상을 반기자 그가 얼굴에 미소를 피워내며 말했다.

“다들 얼굴이 훤해졌군. 잘 쉬었나봐.”

“그럼요.”

“그 얼굴 헬쓱 해지는 데 얼마 안 남았다는 거에 CMC 건물을 걸지.”

“와우.”

“이거 벌써부터 몸에 소름이 돋는대요?”

웃어넘길 수 없는 농담이었던 지라 그들의 표정에는 어느덧 긴장감이 맴돌았다.

태상은 성희에게 물었다.

“준비는?”

“제가 가봤던 곳이에요. 충분해요.”

성희는 자신의 능력을 인간계에서도 쓸 수 있게 된 후로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히 공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인데 안 쓰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성희는 제법 지리에 눈이 밝았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악마들이 자리를 잡은 곳의 지리를 성희는 잘 알고 있었다.

“움직인다.”

태상이 무겁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은 순식간에 그곳에서 자취를 감췄다.

**

치칙-치칙-

끊어진 전깃줄이 치칙거리며 간간히 아픔을 토해내고,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키익! 캭캭! 캬아아아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의 근원은 무너진 건물 사이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작은 크기의 악마들이었다. 놈들은 돌아다니면서 인간의 시체를 먹거나, 눈알을 꺼내 동료에게 건져서 장난을 치면서 놀았다.

전방에 서기엔 힘이 강하지 않아 이미 점령해 놓은 땅을 갖고 노는 쥐새끼같은 놈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없다면 이곳은 텅 빈 공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있는 거라고 해봐야 무너진 건물과 그 사이에 끼어 있거나 바닥에 늘어져 있는 인간들의 시체뿐이었으니 말이다.

악마들은 시체를 남기지 않았기에 그들의 시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그곳에 환한 빛이 서리고,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마법진은 처음엔 희미했다가 점점 진해졌는데, 몇 분 동안 계속해서 윙윙 거리는 소리를 냈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악마들이 그 주변에 몰려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이 마법진이 자신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화아아아악!

그때, 악마들이 슬금슬금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마법진 가까이로 움직이고 있을 무렵 환한 빛이 토해졌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졌을 때, 그들의 눈앞에는 여러 명의 인간들이 서 있었다.

악마들이 그것을 인지하고 놀라려는 순간, 그들의 몸은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계약자들이 악마들의 숨통을 순식간에 끊어놓았기 때문이다. 한 놈은 그대로 몸에 불이 나서 화르륵 타서 죽고, 한 놈은 목이 잘렸으며, 한 놈은 배에 구멍이 뻥 뚫려야 했다.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죽은 악마들을 감흥 없는 눈동자로 보며 태상은 주변을 쭉 훑었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로 주변을 살폈고 말이다.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네.”

“나쁜 놈들....이 거리가 얼마나 예뻤는데....”

성희는 당시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분노했다.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파괴 행위들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광경은 말 그대로 처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처리할 수가 없어 널려 있었다. 역한 냄새가 주변에서 계속 일행의 콧속을 자극했다.

“흩어져서 위험한 놈들 있는지 확인하고 와.”

태상의 말에 일행들은 각자 두 명씩 짝을 이뤄 흩어졌다.

그들은 대충 토다베스가 어디에 있을지 짐작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정찰을 해서 알게 된 정보는 아니었다.

정부에서 위성으로 악마들이 만든 기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은 그 기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은 짐작대로 별 다른 악마들은 없네요. 버려진 곳 같습니다.”

흩어진 일행이 얼마 후 돌아오고, 주변을 훑어본 결과를 말했다. 이곳에 남은 이들은 모두 쓸모없는 하급악마들 뿐이었다. 성희가 품에서 지도를 꺼내 팬으로 그들이 있는 지역에 X를 그려 넣었다.

“그럼 이곳을 안전구역으로 지정할게요.”

그들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위험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성희는 장거리로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자였기 때문에 위험할 때에 일행을 데리고 움직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다.

일행이 주변을 살피면서 하급악마들을 정리 했기에 당분간 이곳은 안전할 것이다.

“장거리 이동 쿨타임이 언제야?”

“6시간 정도요.”

토다베스가 있는 곳까지 천천히 이동을 하고, 그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새벽즈음 일을 시작하면 딱 알맞을 듯 싶었다.

태상 일행이 기지에 침입할 때, 다른 악마들의 눈을 현혹하기 위해 계약자들을 보내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혜연이 그것을 지휘하기로 했기에 그녀에게 이 소식을 전해 주어야 했다. 매번 먼저 싸움을 건 것은 악마들이었기에 이번 공격에 의미를 담을 게 분명했다.

놈이 그곳에 정신을 팔 동안, 태상은 토다베스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움직일 것이고 그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그럼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는 것이다.

“그쪽 상황은 어때?”

태상이 혜연에게 현재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물었다.

[모든 준비 끝내놨어요.]

“우린 베이스 캠프 지정해놨어. 이제 토다베스가 있는 곳으로 움직일 거야. 공격은 새벽에 시작하는 걸로 하자. 성희 이동 쿨타임이 6시간이라고 했어. 지금부터 8시간 정도 후에 시작하는 걸로 해.”

[네, 따로 문제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그들은 미리 이동경로를 짜왔기에 움직이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레베카 마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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