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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15화 (215/251)

00215  바로세  =========================================================================

우드득 우득 우득!

인간 외형을 뚫고, 그 안에서 거대한 날개가 튀어나왔다. 더욱 단단해진 근육질 몸이 들어났다. 검은색 피부를 가진 바로세의 모습은 과히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태상이 날려버린 팔 부분은 끝내 재생하지 못했는지, 한 쪽 부분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기운이 더 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데미지는 그대로 축적 된 채로 변했고, 힘은 좀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면 될 듯했다.

바로세의 날카로운 이빨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침 같은 것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놈은 민머리였는데, 눈이 이마에 하나 더 달려 있었다. 새롭게 생긴 눈알을 이리저리 굴러가며 사방을 둘러 보고 있었다.

녀석의 몸집이 점점 더 커지니 그를 바라보는 일행들의 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한 번 더 필요하겠어.’

태상은 놈의 변신을 차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악마의 심장을 꺼내 마나건을 충전했다. 놈이 변신을 했다고 해서 그에게 걸린 무력화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바로세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크흐으윽...으으윽...”

바로세가 몸을 꿈틀거리며 헉헉 거친 숨을 쉬었다. 그는 자신의 변신으로 다시 한 번 태상에게 맞설 힘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세가 웅크린 몸을 서서히 일으키며 말했다.

“네 이놈들.....죽여 버릴....커어억!”

바로세가 말을 하면서 뒤를 돌았다가 경악했다. 그의 눈앞이 또 다시 방금 전에 있었던 환한 빛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너무 늦게 알아차려 피할 수도 없었다. 아니, 피할 몸 상태도 아니었다.

끄아아아아!!!!!

콰아아아앙!

온 몸이 타오를 듯 강하게 몰아붙이는 에너지가 바로세의 몸을 찢어 갈겼다.

태상이 놈을 향해 겨눴던 마나건을 거둬들였다. 이번엔 완전히 정통으로 바로세에게 먹혀 들어갔으니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뒤에서 여전히 거센 기운들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태상은 태연하게 뒤를 돌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전투조와 일행들에게 말했다.

“다들 수고했다.”

네? 저희요?

태상의 길드원들은 몰라도 전투조들은 그의 인사를 받을 자격이 못됐다. 그들은 막 도착했고, 뭔가 활약을 할 기회조차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태상은 전투조들에게 시선을 주며 말을 했기에 그의 인사치례를 받은 전투조원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하며 어색한 얼굴을 했다.

그때, 천계의 심장이 웅웅거리며 다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저기에 내 먹이가 있는데, 왜 준대놓고 안 주냐 항의라도 하는 듯 했다. 얌전하게 말 잘 들었으니 주기로 약속한 것을 줘야 했던 태상이 쯧 하고 혀를 한 번 차고, 축 늘어져 형태를 잘 알아보기 힘든 바로세의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

주변에 흙과 먼지들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천계의 심장이 하도 웅웅대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기운이 한 번 쏟아졌는데, 거기에 또 한 번 당한 터라 땅은 깊게 파여 붉은 피라도 흐를 듯해 보였다.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져 위에서 밑으로 뛰어내린다는 기분으로 가야 했다.

바로세의 몸에는 마치 김이라도 나듯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분명 단단했을 그의 살갗이 모두 벗겨져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태상이 놈의 몸에 손을 가까이 들이대자, 역시나 천계의 심장 속으로 놈의 시체가 연기처럼 바뀌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그의 감각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탕!

방금 전 집어넣던 마나건을 다시 꺼내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상이 망설임 없이 마나건을 쏘아내자, 그가 알아차린 기척이 그의 시야에 보였다.

“여자?”

하늘을 날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냥 평범한 여자는 아닌 게 분명했다.

남자 여럿 잡아먹었을 것 같이 야하게 생긴 여자가 볼에 난 상처를 슥 닦아냈다.

“난 이렇게 거친 남자가 좋더라.”

그녀의 붉은 입술이 씨익 호선을 그렸다.

‘그냥 악마가 아니군.’

막 배부르게 바로세의 시체를 먹어 치워 잠잠해야 할 천계의 심장이 웅웅거리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저 여자가 대악마가 아니라면, 천계의 심장이 이렇게 반응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악마가 한 명 더 있는 줄은 몰랐는데. 끼지 그랬어? 같이 보내줄 수 있었는데.”

바로세를 죽이는 시간 동안 천계의 심장에 마찬가지로 반응을 해서 이곳으로 달려 온 게 분명했다. 만약 저 여자처럼 생긴 악마가 조금 더 일찍 왔다면 일이 더 어렵게 될 뻔했다. 그걸 알면서도 태상은 여유를 잃지 않고 말했다.

사샤가 그의 자신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그 말, 굉장히 귀여웠어. 근데 우리 대화를 나누려면 먼저 해야 할 게 있지 않아? 인간들은 그런 걸 많이 따진다고 들었는데."

"악마랑 통성명 하는 취미는 없지만, 네 이름은 좀 궁금하군."

"정말? 영광인데, 그럼 먼저 내 소개부터 해줄까? 음....난 사샤라고 해. 나름 동료라서 구해주려고 했는데, 한 발 늦어버렸네? 난 네가 방금 바로세를 잡아 먹은 걸 봐서 기분이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지. 그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거든."

사샤...!!

태상이 그녀의 이름을 듣자 이를 으드득 갈았다.

거하게 전투를 하고 난 후라서 곧바로 싸우는 것이 힘에 부치긴 했지만, 사샤라는 놈을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저놈에게 들을 말이 아주 많았다.

“어떤 놈일까 궁금했는데, 네놈이 그놈이구나.”

사샤의 몸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는 태상이 만들어 놓은 어마어마한 광경에 휘파람을 불었다.

"먼저 이름을 말해줬는데, 이렇게 예의없이 대화 할 거야?"

"말 했을 텐데? 악마랑 통성명 하고 다니는 취미 없다고."

사샤가 자신의 이름만 듣고 입을 닦았다며 굉장히 억울해했다.

"오빠 스타일이 나쁜 남자 컨셉이구나?"

"쓸데없는 인간 흉내 그만내지? 역겨우니까."

사샤가 그의 말에 깔깔 웃었다. 그럴까? 하고 말한 그녀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어떻게 앙키파랑 바로세를 죽였나 했더니 앙큼한 천계의 심장이 꾸민 짓인 줄은 몰랐어."

사실 사샤는 그에게 기척을 들키기 전에 이미 상황을 쭉 훑어본 상태였다.

그가 바로세를 구하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성공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샤는 바로세의 목숨보단 인간이 어떻게 대악마를 죽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했다.

해서 그는 방관했고, 바로세가 죽자 천계의 심장이 마계의 심장을 흡수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악마들이 천계의 심장을 얻으면, 그 힘을 쪼개 흡수하려고 했는데 도리어 천계의 심장이 마계의 심장을 먹고 있으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무엇도 아닌, 천계의 심장이 직접 움직여서 그들을 위협할 줄은 몰랐다.

확실히 마계의 심장이 쪼개져 있는 지금, 온전히 하나인 천계의 심장이 더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천계의 심장이 지켜야 할 천사들은 악마가 모두 죽여 버린 상황이었다.

납작 엎드려서 얌전히 흡수 될 일이지, 이렇게 인간들을 이용해서 깜찍한 짓을 할 줄 몰랐다.

사샤는 그의 힘이 온전히 그만의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천계의 심장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미 두 개의 마계의 심장을 흡수한 천계의 심장이라면, 사샤 혼자서는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네가 여왕을 만들었나?”

그의 입에서 ‘여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씨익 웃음을 짓는 그녀였다.

“음....내 계약자랑 친분이 있는 사이 일 거란 생각은 했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기에 자신의 계약자가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사샤가 레베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태상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얘기를 꺼내는 사샤를 향해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라!"

"무슨 짓? 난 그냥 그녀와 계약을 한 것밖에 없어. 난 조건을 지켰는데, 넌 그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지?"

“레베카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거다.”

“오~ 저런, 가여워라. 하지만 그녀는 충분히 내게 대가를 받아 갔어. 그러니 계약을 무효로 할 순 없지.”

사샤는 희극 배우가 된 것처럼 과장되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

"아니! 넌 그렇게 해야 해."

“계약은 이미 성립됐고, 난 네가 원하는 걸 하지 않을 거야. 든든하게 믿을 게 있다고 그게 언제까지나 네 편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

사샤가 태상의 오른쪽 손바닥에 있는 천계의 심장을 가리키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태상은 그녀의 경고를 무시했다. 왜냐면, 그는 애초부터 천계의 심장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 적 없었고, 그에게서 힘을 가져다 쓴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천계의 심장을 이용 할 생각이 없었고, 그러므로 천계의 심장은 그에게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태상이 자신의 손바닥을 사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힘이 두렵나? 너희들이 탐하려 했던 것 아닌가? 왜 이걸 뺏지 않는 거지? 네 꼴이 꼭 꼬리를 만 강아지 같군.”

태상의 도발에 사샤의 얼굴이 찌푸렸다.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감히 대악마인 자신에게 '꼬리 만 개'라는 비유를 사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샤는 그의 도발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항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하늘로 올리며 말했다.

“이거 어쩌지? 재밌게 대화 중이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다시 만날 때까지 내 계약자 잘 부탁해.”

사샤가 꺄르륵 웃으면서 그에게 윙크했다.

“내가 널 보내줄 줄 아나?!”

태상이 마나건을 검은색으로 바꾸었다.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몸을 묶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샤는 이미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위험 하다는 것을 직감한 상태였다. 그가 재빨리 몸을 피하기 위해 하늘 위로 올라갔다.

태상이 그녀의 뒤를 따라 뛰며 마나건을 그에게 쏘았다.

타앙!

검은색 마나사슬이 사샤의 몸을 옥죄기 위해 쏘아졌다. 하지만 마나사슬이 그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사샤의 몸이 스르륵 허공에서 사라졌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완전히 이곳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태상이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어서 주변을 살펴봤으나 사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라!!"

태상이 큰 목소리로 아이라를 불렀다. 무엇을 시키려고 하는 것인지는 알았으나, 아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라의 능력으로는 대악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추적할 수가 없었다.

태상이 아이라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주먹을 꽉 쥐고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분노를 토해낼 곳이 없으니 소리라도 지를 수밖에.

엉뚱한 악마를 잡고, 정작 유인하려고 한 악마는 놓쳐버린 상황이었다. 일단 저들이 자신에게 천계의 심장이 있다는 것을 들켰으니, 상황을 잘 파악해야 했다.

이 일이 그에게 득이 되는 일일지, 아니면 실이 되는 일일지 잘 생각해야 했다.

엉뚱한 악마가 나타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그래도 인간계에 있다는 정보는 얻었으니 다행이었다.

“동료를 죽인 걸 보고 도망을 쳤으니, 같은 방법으로 또 부르는 건 무리겠죠?”

태상이 일행을 향해 걸어오자, 혜연이 그를 맞이 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거였다. 지금 그들은 그 녀석이 오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놈이 언제 올지 그리고 누굴 데려 올지를 걱정해야 했다.

그의 손에 천계의 심장이 있는 이상, 절대 그들은 태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놈들이 원하는 건 천계의 심장이야. 그리고 그건 내가 갖고 있지. 놈들은 날 노리고 반드시 돌아 올 거다. 그들은 반드시 천계의 심장을 가져야 할 테니까.”

천계의 심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들켰으니 그의 위험도가 무척이나 올라갔다는 걸 뜻했다. 하지만 이미 2명의 대악마를 죽였고, 태상은 마계에 있는 대악마 한 명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5명의 대악마 중 절반 이상을 죽인다면 이 싸움의 승세가 그에게로 움직이는 것은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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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예상 하셨던 사샤 등장! 도망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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