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204화 (204/251)

00204  준비  =========================================================================

더욱이 실전을 경험해보고 싶다며 굳이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대회까지 했던 종구다. 비록 본선에서 지긴 했지만, 그만큼의 전투 경력을 쌓았으니 도움이 됐을 것이다.

태상은 표정을 굳혔다.

시간이 촉박하다.

그는 내일 전투조와 함께 마계로 가기 전에, 사전답사 같은 의미로 성희와 함께 마계에 갈 생각이었다.

성희가 말하길, 차원을 넘어서 이동을 하면 약 2~3일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 다시 인간계로 이동해올 수 있다고 했다. 확실히 차원을 넘는 게 그녀에게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

차원과 차원을 이동할 땐 2~3일, 장거리를 이동할 땐 1시간~24시간 중 거리양에 따라 달라지고, 눈에 보이는 정도의 거리는 딜레이가 없다고 했다.

결국 차원이동을 다시 한 번 하려면 적어도 2일, 최대 3일은 마계에서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차원을 이동한다 해도 능력을 2~3일 동안 아예 쓸 수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능력은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어서 한 가지를 못 쓴다고 나머지를 다 못 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차원이동,장거리이동,단거리이동 각각 따로 딜레이가 생기는 것이다.

즉 그녀가 완전히 짐짝 취급을 당하진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또한 그녀는 제법 공격 능력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긴, 그녀는 2세대가 아니라 1세대 계약자이니 기본적인 공격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음날 아침.

태상은 성희와 함께 각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서 있었다. 마계는 단 둘이 갈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을 끼워서 가야 더 안전하지 않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태상은 거추장스럽다며 됐다고 거절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가야 악마들을 따돌리거나, 상대할 때 태상이 훨씬 편했다.

“제가 이동할 곳이 마계이다 보니, 언제 악마가 튀어나올지 몰라요.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성희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태상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상이 1세대 계약자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의 능력이 상식 이상이라는 것은 몰랐다. 그런 능력을 보여주기엔 그녀가 태상과 함께 봤던 악마들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 (천계의 심장이 일반 악마한테 반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성희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태상은 괜한 소리를 한다며 말했다.

“마계 한 두번 가봐? 별 소릴 다하네.”

성희가 자신이 오버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태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이동할게요.”

태상은 그녀의 손을 잡지 않고, 바라만 보다가 물었다.

“근데 이동할 때 접촉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가?”

태상이 처음에는 그녀를 의심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했지만, 천계에서 생활 할 때 동료와 함께 이동한다고 접촉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성희는 그날 이후 이동을 할 때마다 그에게 손을 내밀곤 했다.

몇 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오늘은 문득 궁금해졌다. 성희가 그의 말을 듣더니 말했다.

“새삼스럽게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 나중에 전투조들 다 데리고 이동할 텐데, 그때도 접촉을 해야 하는 건가 싶어서.”

“그...건....굳이 필요가 없긴 하죠. 그, 근데 접촉을 하면 제가 좀 더 능력을 쓰기가 쉽긴 해요! 따, 딱히 잡고 싶어서 잡는 거 아니거든요?!”

성희가 재빨리 변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어색함이 다 티가 났기에 태상은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 계속해서 접촉을 하려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게 편하다고 하니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 할 이유가 없으니 그녀의 말이 맞겠거니 한 것이다.

태상이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성희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그녀의 손을 한 번에 다 감싸버릴 정도로 크고, 단단했다.

성희는 마음을 다잡으며 손에 힘을 꽉 쥐어 그의 단단한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고 곧 얼마 있지 않아, 둘의 주변에는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공간을 이동할 때 생기곤 하는 환한 빛이었다.

다시 눈을 떳을 때, 당연하게도 태상과 성희는 마계에 서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마계군.”

성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태상의 말에 동조했다.

“네. 이제부터 최대 3일은 이곳에서 버텨야 해요.”

그 3일 동안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마계의 중심부로 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중이떠중이들 상대하려고 마계에 온 게 아니었다.

태상이 노리고 있는 것은 대악마라는 존재다. 그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는 게 현재 태상의 목표였다. 더불어 안전하게 계약자들이 이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알아봐야 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이동했더니 악마가 득실거리는 곳으로 이동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태상이 성희에게 말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요? 하고 물었으나 대답을 해줘야 할 태상은 어느새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기척이 느껴지고 있던 악마의 멱살을 잡아 패대기를 쳤다.

“캭!”

그냥 땅에 던진 것뿐인데, 으드득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가슴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태상은 그리 큰 몸집이 아닌지라 악마의 목을 꽉 잡고 말했다.

“대악마에 대해 아는 걸 말해라.”

“캭캭캭! 캭!”

악마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태상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말 할 수 있다는 거 다 안다.”

몸집이 작고, 약해보이는 놈이라도 사실 C등급 악마였다. 태상은 정확한 등급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기운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단호하게 말한 것이다. 악마가 데굴데굴 눈을 굴리더니 자신의 엄살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태상은 입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섬뜩한 살기가 담겨 있는 미소였던 지라 그를 본 악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이 분명하긴 하지만, 그의 몸을 한 번에 부셔버린 어마어마한 실력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벗어나기 위해 방법을 구색하고 있었으나 소용이 없지 않은가.

“네가 뭘 알고 있는지는 아마 그때그때 다를 걸?”

태상이 손을 움직여 악마의 이마에 나 있는 뿔을 잡았다. 악마에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뿔이었다. 그걸 태상이 아는지 모르는지 악마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뿔을 부셔트려 버렸다.

우득!

“꺄아아아아악!!!”

악마가 여자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엔 절망이 가득했다.

태상은 부러진 뿔을 바닥에 휙 하고 던져버리고 말했다.

“대악마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아아아아아!!!!”

악마의 눈동자에 절망이 스쳤다. 지금 악마에게 태상은 악마보다 더한 악마였다.

**

성희는 태상이 얌전히 기다리라고 한 터라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시키는 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비릿한 혈향을 풍기며 태상이 성희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옷에도 피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가 뭘 하고 왔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악마들 죽이고 오신 거에요? 어떻게 됐어요?”

“대악마들에 대해 알아봤어.”

“대악마라면...그때 그 경기장에 나타났다던 그 악마 말씀하시는 거죠?”

대충 얘기를 들었기에 그녀가 아는 듯 말했다. 태상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악마는 앙키파, 바로세, 사샤, 토다베스, 카카로치. 5명의 악마라는 군. 그리고 우리가 있는 곳 근처에는 카카로치라는 대악마가 있다고 하고.”

그 중에서 자신이 죽인 놈이 앙키파라는 이름을 가진 놈이었으니 4명이 더 남았다는 뜻이었다.

“동쪽으로 쭉 가면 있다고 하니, 그쪽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태상은 그 전에 옷을 갈아입어야 하나 생각이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또 묻을 피였다. 이곳에서 깔끔을 떨어봤자 본인만 피곤해질 뿐이었다. 한 번 마계에서 고립 된 적이 있어서 배낭 안에는 악마의 심장과 먹거리를 잔뜩 준비해 놓은 태상이었다.

옷 조금 더러운 거 입는다고 적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진 않으니 현명하게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그렇게 준비를 한 것이었다.

“악마한테 무슨 짓을 했기에 그런 걸 줄줄이 불었대요? 거짓말이면 어떡하죠?”

그녀 또한 악마들한테 정보를 얻어 보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고급정보는 얻어내는데 매번 실패를 했다. 왜냐면 악마들은 거짓말을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마냥 믿을 수가 없었다.

겨우 정보를 얻었는데 나중에 보면 전부 다 거짓말이었던 적도 있었다. 해서 성희는 그 후로는 악마들에게 정보를 얻는 것을 잘 하지 않게 됐다.

태상도 그들이 거짓말을 잘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태상이 그리 확언을 하며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가 맞을 거라고 하니 성희는 그냥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또 그 정보가 거짓말이라고 해도 딱히 지금 방향을 잡을 마땅한 단서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결국 동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다.

태상과 성희는 그렇게 동쪽을 향해 첫걸음을 떼었다.

그가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은 악마 한 명에게 얻은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악마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여러 가지 정보 중 겹쳐지는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진 정보가 거짓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대악마가 10명이나 된다고 하는 놈도 있었고, 어떤 놈은 50명이나 된다고 하거나 어떤 놈은 5명인데 이름 모두가 다른 놈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이 이름을 내뱉는 것들 중 3번 이상 겹치는 것들이 바로 저 다섯이었다. 그리고 그 중 태상이 어렴풋이 들어봤던 이름이 무려 4명이나 됐다.

앙키파는 그가 죽였으니 당연히 알았고, 바로세는 과거 그가 처음으로 만났던 대악마일 거라 짐작 중이었다. 그때 그는 자신을 바로세라고 소개를 했었고, 태상은 그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세라는 놈 때문에 태상이 대악마라는 존재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고, 무력화가 통하지 않아 악마의 심장을 처음으로 먹고서 상대했던 놈이었다.

그의 공격에 시체를 남기지 않아 도망 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멀쩡히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토다베스. 그놈은 인간계가 뒤집힌 후, 마계로 왔을 때 들었던 이름이었다. 사령관이라고 불리고 있던데, 그놈이 대악마라고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샤.

사샤라는 이름을 기억해 낸 건 솔직히 운이 좋았다.

그 이름을 자신이 아직까지 기억해내고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태상이 그 이름을 들은 것은 바로 ‘여왕’에게서였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악마를 만나면 그에게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다. 그녀에게 끔찍한 삶을 준 악마의 이름이 분명 ‘사샤’라고 했다.

그리고 대악마라는 이들 중의 이름에 사샤라는 이름이 있었다. 과연 동명이인일 뿐일까?

분명 같은 인물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 여왕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과연 대악마 말고 또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얼결에 여왕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을 듯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5명의 악마 중 그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악마가 하필이면 그와 만난 적 없는 카카로치라는 점이었다.

대악마를 잡는 건 태상과 성희 둘이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앙키파를 죽였을 때 태상의 무력화에도 금방 죽지 않았었다. 그만큼 놈들의 체력이 강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한 번에 죽일 수 없는 존재라면 태상이 굳이 위험을 무릎 쓸 이유가 없었다.

그때, 태상은 멀리서 수많은 기척을 느끼고 성희의 허리를 덥석 잡아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

성희가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는 태상을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갑자기 그가 그녀를 끌어안는 이유를 모르는데도 그녀는 반항을 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붉히며 속으로 설마 여기서?! 하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상이 그녀의 몸을 바위 뒤에 숨겼다.

“쉿! 가만히 있어.”

태상이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성희는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계에 단 둘이 간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는데 역시나가 역시나였다.

속옷을 새로 사서 입고 온 걸 잘했다 싶었다. 성희는 얌전하게 눈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씩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

......?

성희는 입술을 움찔움찔 떨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깜깜 무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입술에 부드러운 것이 닿아도 한참 전에 닿았어야 하는 게 옳은데 말이다. 성희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만들어지고, 그녀는 슬며시 눈을 떴다.

“........”

성희의 앞에 있어야 할 태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뭐, 뭐지 이건?

성희가 눈을 깜빡였다.

============================ 작품 후기 ============================

뭐긴뭐야 삽질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