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5 기자회견, 그리고.... =========================================================================
종구는 계약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어릴 적 키가 작고 왜소한 몸집을 갖고 있어서 왕따를 당한 경험도 있었다. 그때마다 히어로가 되어 저런 나쁜 놈들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런 신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늘 똑같은 삶이 이어졌다. 그의 삶은 늘 그렇게 똑같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적이게도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갑자기 세상에 악마가 나타난 것이다. 놀랍게도 계약자라는 존재가 나타나 그런 악마들을 무찔러주었다.
종구는 자신도 계약자가 되어 히어로처럼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악마가 나타난 지 1개월...2개월...3개월.....시간이 계속해서 지나갔다. 하지만 종구의 삶은 예전보다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악마가 나타나자 종구는 더욱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곧 이 세계는 돈이 아니라 힘이 좌지우지하는 삶이 올 거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종구에겐 그런 힘이 없었던 것이다.
삐쩍 마른 그의 몸은 아무리 먹어도 체중이 늘지 않았고, 근육도 생기지 않았다.
계약자?
그런 희망은 옛날에 포기한지 오래였다. 악마가 나타났음에도 새로운 계약자가 됐다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악마를 무찔렀던 계약자들은 본래 그런 힘을 갖고 악마들을 상대해왔던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특별한’ 사람들인 거다.
종구와는 달리 말이다.
그런데, 그런 종구에게 처음으로 빛이 내려왔다.
[저희들은 연구를 통해 계약자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CMC회사 사장이라는 남자는 말 그대로 종구의 롤모델이 될 만큼 대단한 남자였다. 얼굴도 잘생겼고, 돈도 많았으며, 강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평생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말을 내뱉었다.
계약자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는 무료로 사람들에게 계약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는 히어로였다.
악마들이 곧 이 세계를 침략할 것이고, 우리들은 힘을 합쳐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종구의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종구를 히어로로 만들어 줄 그의 히어로다.
종구는 당장 계약자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예전에 포기했던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19세 이상 40세 미만의 신체 건강한 사람이 돼야 했다. 그래야 계약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종구의 몸은 너무 말랐고, 그렇다면 그 조건에 불합격 될지도 몰랐다.
그에겐 아직 계약자가 될 자격이 갖춰지지 않았다.
착실하게 운동을 하자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그런지 그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근육도 생겼다.
일반인이었던 이가 계약자가 되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경험담이 인터넷에 오르기 시작했다. 부작용은 없었다. 계약자가 된 그들은 자신의 삶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었다. 아직 힘이 약하지만, 다른 계약자들처럼 강해질 거라며 의지를 다졌다.
종구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CMC 회사 정문에 왔다.
드디어 계약자가 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낸 것이다. 발표가 난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CMC 회사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심심치 않게 외국인들도 보였다.
종구는 계약자가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떠한 일도 CMC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와 그 밖의 몇몇 서류들에 동의 한다고 서류를 써야했다. 그는 서류를 쓰는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건강검진 서류는 이미 일주일 전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CMC 회사로 올 수 있는 것도 통보를 받아내야 올 수 있는 거였다. 그렇게 미리 접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병원 침대처럼 생긴 것에 누울 수 있었다.
하루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장난이 아니었기에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종구는 오래 기다린 것에 대한 불만이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CMC 사장이 돈을 받고 계약자를 만들어주겠다고 해도 사람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CMC 사장은 진정한 히어로였다.
돈을 쌓을 수 있는 것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를 뒤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욕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다 뭣도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놈들도 아마 계약자가 되고 싶어 애가 달아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안 되니까 저렇게 욕을 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종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CMC 회사 사장이 얼마나 비범한 사람인지 잘 알았다.
간호사가 잠시 눈을 감으라는 말에 눈을 감자 그의 눈을 가리고, 팔 다리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종구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계약자가 되는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모두 조사해 알고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간호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종구에게 왜 이런 것들을 하는지 설명해주고 있었다. 불안해 할 이유가 없었다.
종구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계약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했다. 몸이 힘을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고통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찰나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이후에 얻게 될 것들을 생각하며 무슨 고통이든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간호사가 눈을 가린 그의 입 속에 무언가를 넣어주었다. 이것이 자신을 계약자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끔찍한 고통이 그를 찾아왔다. 차라리 기절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잠시 생각이 끊겼다.
종구는 자신을 구속하던 것이 모두 사라졌음을 뒤늦게 깨닫고 눈을 떴다.
고통이 사라졌다. 아니, 고통스러웠던 게 맞나?
그의 몸은 언제 고통스러웠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멀쩡했다. 아니, 그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묵직한 근육통이 모두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몸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늘 무리하게 운동을 했기에, 잘 느끼지 못했던 완벽한 컨디션이었다.
기다리고 노력했던 것에 비하면 허무할 정도로 빨리 끝난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시계를 보고 그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누웠을 때 시간이 3시인데, 지금은 5시가 되어 있었다.
기절할 것 같았던 게 아니라 진짜 기절을 했던 거였다.
“제, 제가 계약자가 된 건가요?”
종구가 자신을 안내했던 간호사를 불러 물었다. 간호사는 삑-삑-일정한 소리를 내며 종구의 바이탈을 알려주는 기계에 그의 상태가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계약자가 되셨네요. 저쪽 안내데스크에 가시면 정식 입학 절차를 알려드릴 겁니다.”
정식 입학 절차!
간호사가 말한 것은 계약자가 되어 자신의 힘에 적응하기 위해 반드시 걸쳐야 하는 곳이었다.
종구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펴며 달라진 것을 확인하려 애썼다. 하지만 제자리에서 뛰어도, 주먹을 꽉 쥐어도 뭔가 달라진 게 있나 싶었다.
“궁금하시죠?”
그가 안내데스크에 서자 간호사가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종구가 저도 모르게 네...하고 대답을 했다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다들 그렇게 궁금해 하세요. 그럼 우선 이것부터 작성해주시겠어요?”
간호사가 내민 것은 입학 절차 서류였다. 종구는 고개를 끄덕여 서류를 받아들었다. 주변에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때, 어디에선가 온 향기가 종구의 콧구멍에 닿았다.
종구는 저도 모르게 강아지처럼 킁킁 냄새를 맡았다.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 향기로운 냄새보단 서류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너무 향기로워서 절로 종구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의 시야를 한 번에 사로잡은 것은 한 여자였다.
그녀를 향기로 모든 설명을 끝낼 순 없었다. 그런 존재였다. 그 여자는.
그녀는 맑게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간호사들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 간호사들은 어쩐지 종구에게 병풍처럼 느껴졌다. 그의 발걸음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아니, 종구의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다.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그랬기에 그렇게 느껴졌지 실제로 그는 여전히 안내데스크에 우뚝 서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서양인이었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종구의 심장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서양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척이나 한국말을 잘했다.
“그럼 보고 하고 올게요.”
“앗! 아이라! 이거 두고 가셨어요.”
아이라는 서류를 내미는 간호사에게서 그것을 받아 들고 멋쩍은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종종 걸음으로 그녀가 종구의 곁을 지나갔다. 또 다시 그를 홀렸던 향기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종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이라....”
“다 작성하셨어요?”
간호사의 말이 종구의 정신을 깨웠다. 그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가 더듬거리며 아, 아직이요! 그, 금방 쓰겠습니다. 하고 서둘러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간호사에게 꼼꼼히 작성한 서류를 내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혹시 아까 전에 지나갔던 외국인 여자 분에 대해 아시나요?”
간호사는 외국인 여자라는 말에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 확실히 그녀 말고도 이곳에는 외국인 여자가 많았다.
종구가 설명을 덧붙였다.
“엄청 예쁘게 생긴 여자요. 그...주변 분들이 아이라? 라고 부르시던데요.”
“아~ 아이라요? 이곳 담당 팀장님이세요.”
“티, 팀장이요?! 어려 보이던데....”
외국인들은 대부분 청소년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보기에 나이가 들어 보이곤 했다. 그런데 아이라는 오히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려보이는 동안 외모를 갖고 있었다. 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성인일 거란 생각도 전혀 못했고, CMC 회사 팀장이라는 것도 전혀 생각 못한 일이었다.
CMC 회사 팀장이 되려면 얼마나 대단해야 하는지 종구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어마어마한 여자였구나.....’
어쩐지 모래 씹은 듯 입이 썼다. 종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감히 자신이 쳐다보지 못할 곳에 있는 여자였다.
종구는 계약자가 되었다는 마음에 한껏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런 여자와 두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려면 얼마나 강해져야 할까?
자신은 이미 한참 뒤져 있었다. 종구가 주먹을 꽉 쥐었다.
강해질 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말이다.
**
태진이 힐끔 세연의 품에 안긴 녀석을 쳐다봤다. 그의 표정이 절로 흐물흐물 무너지며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가 이내 태상이 다가오자 커흐흠! 하고 시선을 TV로 돌렸다. 하지만 이미 송이는 태진의 흐물흐물 거리는 표정을 본 터라 속으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강회장이 세연의 옆에서 우쭈쭈 하며 자신의 증손자가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어머, 냄새난다. 유모~!”
세연이 손자를 어화둥둥 해주고 있다가 코를 찌르는 냄새에 유모를 불렀다. 송이는 내가 해도 되는데...하는 시선으로 세연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송이에게 그런 궂은일을 할 수 없게 했다. 그녀는 유모가 버젓이 있는데 그런 일을 왜 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했다.
태상은 소파에 앉으며 피곤한지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기자회견 효과는 엄청났다.
딱 한 번의 기자회견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놀랍도록 유명해졌다.
그 후로는 딱히 다른 곳에 얼굴을 비춘 적이 없어 망정이지, 활동을 좀 더 했으면 정말 연예인처럼 밖을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질 뻔했다. 여전히 인터넷에는 그의 기자회견 모습이 버젓이 돌아다녔다.
그에게 싸인을 해달라는 여고생이 요즘 고민이었다. 자꾸만 회사에 진을 치고 같잖은 짓을 하며 그를 귀찮게 만들었다. 무슨 팬클럽이니 뭐니라는데, 자긴 분명히 말하지만 연예인이 아니었다.
"우리 태우는 그런 고딩은 되지 말아라~"
태상이 기저귀를 갈고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말했다. 태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 보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태우의 그런 행동만으로도 행복한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얜 점점 예뻐지는 것 같아. 보통 애기들은 예쁜 게 아니라 귀여워야 하는 거 아니야?”
태상이 이상하게도 불만스러워 했다. 송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쁘면 좋지 왜 그래?”
“남자가 멋있어야지 예쁜 건 좀 아니지 않아?”
이럴 때마다 자신의 몸이 그리워진다. 태우는 태상과 송이를 반반씩 골고루 잘 닮아 태어났지만, 명진의 몸을 빌었기에 곱상했다. 태상의 본래 모습은 곱상과는 멀었고, 현재의 얼굴이 그다지 그의 취향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태우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그것이 그저 좀 아쉬울 뿐이었다. 명진의 얼굴이 제법 반반하니 태우도 크면 여자들 가슴을 여럿 불태울 듯 싶었다.
“근데 웬일로 이렇게 일찍 들어온 거야?”
송이는 태상이 얼마나 바쁜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의 회사에는 늘 사람들이 넘쳤고,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가 필요했다. 해서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인 시간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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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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