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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34화 (134/251)

00134  붉은하늘  =========================================================================

앞서 말했다시피 '스페어 로쉬'라는 모임은 후대를 이끌어 갈 후계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인맥을 쌓는 공간이었다. 인맥을 쌓는 게 누구보다 중요할 태상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모임이었다. 라고 강회장은 생각했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 이 모임에 들고 싶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스페어 로쉬는 기준에 미달하는 재벌은 절대 들어올 수없는 곳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태상은 그들의 가입 조건에 미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강회장의 입김으로 어쩔 수 없이 그를 받아야 했다.

해서 그에게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스페어 로쉬 회원이었던 태상의 친구들이었다. 물론 그들 중 새로운 후계자가 된 강명진이라는 사람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보일 우정 충만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호감을 보이며 친근하게 굴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신 발언은 우리들 모임을 무시하는 발언처럼 들려서 말이죠. 지금 그 말 책임져야 할 텐데, 괜찮으신가요?”

김도진이 불쾌함을 가득 담아 물었다.

태상은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렇게 당당하게 스페어 로쉬의 가입을 거절하는 이유는 그들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가 학연 지연 혈연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익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을 이들이 저들이다.

그리고 태상은 굳이 이 모임에 나가며 저들과 어울려야 할 정도로 이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게 아니었다. 이미 어떻게 굴러가는지, 그리고 저들과 어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태상은 저들과 인연을 억지로 붙일 만큼 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저들에게 이익이 되는 인물인 이상, 결국 자신과 혈연 지연 학연을 따져 친분을 다지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저들이 될 것이다.

“과연 제가 이 말을 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생길진 잘 모르겠군요.”

태상과 김도진이 서로 지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도진은 속으로 그가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쉬운 놈이 아니라 이거지?’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놈한테 강호그룹을 넘겨 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도진은 방금 그의 눈빛에서 태상을 느꼈다. 분명 놈은 강태상과 핏줄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태상과 놈이 이렇게까지 비슷하게 느껴질 리가 없었다.

태상은 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저놈은 능글맞은 척 행동하지만 아주 머리가 좋은 놈이었다. 분명 태상이 어떤 놈인지 감을 잡고 있을 것이다.

“제가 이 모임에 가입하지 않기로 마음을 결정했어도 파티에 나온 건, 제 뜻을 곡해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섭니다. 방금 전에 김도진씨가 했던 말처럼 말이죠.”

하긴, 확실히 애초부터 들고 싶지 않다 생각했다면 이 파티에 굳이 그가 참석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아내까지 데려와 참석을 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됐다.

“가입을 거절할 거라 생각하지 못해 당황스럽네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죠? 솔직히 짐작이 안 가서 말입니다.”

도진이 솔직하게 말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으니 그렇게 말을 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입을 거절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그에게 손해가 큰일이었다.

“전 이 모임을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파티에 굳이 참석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만 제가 후대를 책임지는 게 아니라 현재를 이끌어야 할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셔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러 온 겁니다.”

“후대가 아니라 현재....?"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지 그곳에서 태상과 도진의 말을 듣고 있던 이들이 웅성웅성 소음을 만들었다.

“전 강회장님께 모든 권한을 위임받게 될 겁니다. 그로인해 앞으로 많은 일들을 맡게 될 거고, 이끌어가야 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부디 제 사정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그래 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결코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태상은 말을 돌려하긴 했지만, 그의 말이 무엇임을 눈치 채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미 완성 된 사람이다.

그가 왕이라면 그들은 왕자.

왕이 왕자들의 모임에 낄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왕자들 중 누구도, 왕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은 이는 없었다.

태상이 말했다시피 그들은 적이 아니다.

언젠가 일을 하다보면 서로 돕는 날이 생기고, 뜻을 모와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럴 때를 위해 이 모임이 생긴 거다. 서로 안면을 익혀놓으면 후에 분명 필요가 있을 테니 말이다.

왕을 동경하지 않는 왕자들은 없다.

그들은 태상의 말에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그들에게 잘보여야 하는 건 태상이 아니다.

바로 자신들이었다.

**

파티는 순조로웠다.

더할나위 없이.

태상과 송이에게 모두들 호의적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 보다 할 발작 앞서 있는 그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얼굴에 연습해오던 미소를 피워냈으며, 서로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그와 친해지기 위해 같은 취미 거리를 떠들어댔다.

도진은 그 상황 변화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복수는커녕 갖은 아양은 다 떨고 있군.”

“그럴 수밖에 없잖아. 무려 강호그룹 후계자 아니, 곧 회장님이 될 사람일 텐데.”

“넌 강회장님이 저 어린놈한테 그룹을 넘겨줄 거라고 생각해?”

스페어 로쉬의 회원 중 한 명인 여진에게 도진이 물었다. 그녀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어머니쪽에서 타고 내려 온 서양인의 피 덕분에 서양적인 외모를 갖고 있었다. 성격 또한 시원해서 옛 남자친구인 도진과도 이렇게 거리낌 없이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음....솔직하게?”

“솔직하게.”

“넘겨 줄 수도 있다고 봐. 그리고 우리랑 동갑이라고 하던데?”

“그 말은 저놈이 물려받아도 충분할 나이라는 거냐?”

“물론 왕좌를 받기엔 많이 어린 나이긴 하지. 하지만 강회장님의 파격적인 횡보를 봤을 때, 그럴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아.”

전대 회장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 이상 혹은 스스로 회사를 세워 설립하는 케이스가 아닌 이상 이렇게 일찍이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 후계자는 그동안 없었다. 그런데도 여진은 그가 자리를 물려받을 확률이 높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들 모두 각자 후계자 자리를 두고 가족들이랑 다투고 있는데, 우리들보단 저 사람이 받을 확률이 더 높지. 쟨 라이벌이 피가 섞인 가족도 아니고, 여러 명도 아니니까. 한 사람만 처리하면 되고, 어쩌면 이미 처리했을 지도 모르지.”

“강명진 저놈한테 뭐가 있기에 강회장이 핏줄도 버린 거지? 도대체 왜 이사회는 움직이질 않아?”

“그만큼 강회장이라는 늙은 호랑이가 무서운 거겠지. 멋모르는 놈들은 강회장님이 이빨 빠졌다고 생각하는데, 늙긴 했어도 여전히 입 속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숨기고 있거든. 그런 강회장의 비호를 받는 한 이사회가 움직일 리 없어.”

“그걸 아니까 아버지가 나한테 저 족보 없는 놈을 들이라고 명령했겠지. 젠장, 정말 짜증나는군.”

여진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받겠다고 큰 결심하고 말했더니 정작 본인이 거절이라......너 좀 많이 쪽팔렸겠다.”

“더할 나위 없이.”

도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좀 끼는 게 어때? 저쪽 완전 화기애애하고 난리 났는데 궁금하잖아.”

여진이 도진의 팔을 당겼다. 생각보다 강명진은 그들을 대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보였다. 어디서 교육이라도 받은 모양인지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좌중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강명진을 바라보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명진이 크게 웃기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중심은 강명진이었다.

그걸 도진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고 말이다.

여진은 강명진이라는 남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무리를 보다가 저기에 끼기엔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가 아닌 다른 상대를 물색했다. 그녀가 도진에게서 멀어져 송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들이 시선을 받는 곳에 있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여자애들 사이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녀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어디 나왔어요?

혹시 두 분 캠퍼스 커플?

아버님은 뭐하시나요? 외국 계열 회사를 운영하시나요? 한국에선 뵌 적이 없는데~

하나같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들이었다.

송이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자신은 겨우 고졸이었으며,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다. 그와는 캠퍼스 커플이 아니라 고아원 커플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걸 고스란히 그대로 말할 순 없지 않은가.

혼자만 욕보이는 거였다면 이렇게까지 기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 때문에 태상이 욕보일 수 있었다.

저런 수준낮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 그의 얼굴을 깍아 먹을 테니 말이다.

그런 송이에게 구원이 되어주듯 다가와 말했다.

“저 질문들에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그거 알아서 어떻게든 자기랑 엮어 보려는 거니까.”

“여진아.”

“여진 언니!”

그녀들이 여진의 등장에 얼굴을 찌푸렸다. 다들 여진의 등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겉으로까지 여진을 반기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갑자기 등장해 공격적인 말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듣지 않은 것마냥 행동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디 갔다왔어? 너 한참 찾았는데."

"맞아, 맞아. 언니가 없으니까 파티가 시시하잖아."

"어머, 그랬어? 날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 팬들이 있을 줄은 몰랐네. 잠깐 도진이랑 얘기하느라고. 그런데 도대체 그런 유치한 질문은 언제까지 할 거야? 여기가 유치원인가? 왜 호구조사를 왜 하고 앉아 있지? 듣는 사람 짜증나게."

여진이 안 그러냐며 송이를 바라봤다. 송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찌 됐든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상황은 아까보다 나아진 건 맞았다.

저 여자들에게 만약 고졸이라는 걸 말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분명 그녀를 무시할 것이고, 태상을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건 정말 싫었다.

"나 이분이랑 할 얘기 있는데 좀 데려가도 될까?"

여진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여자들에게 물었다.

"뭐? 하지만 아직 얘기를 다 안 했..!"

"그럼 이만 데려간다~"

여진은 애초부터 그녀들의 허락이 필요치 않았다. 질문을 가장한 선언이었던 것이다.

여진이 송이의 팔목을 덥썩 잡아 함께 걸어갔다. 송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적어도 저 여자들 보단 그녀가 더 나아 보였기에 순순히 움직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여진이 송이를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자 송이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여진은 송이의 말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 인사로 당신이 적어도 인사치례는 진심으로 할 줄 아는 여자라는 걸 알게 됐군요. 반가워요. 적어도 그쪽이랑 대화할 땐 가식적인 모습은 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네요."

여진은 화끈하고 열정적인 여자였다. 그녀의 당당한 모습을 좋게 본송이가 미소를 지었다. 여진은 말을 이어서 했다.

"우선....그쪽은 분명 날 모를 테니까 소개부터 할게요. 난 홍여진이에요. 아버지가 시시콜콜하게 뭘 하고 있다는 걸 굳이 얘기해야 할까요?"

송이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임송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둘이 인연을 만들어가기엔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진도, 송이도말이다.

============================ 작품 후기 ============================

유티단장님께 작명센스 얻었습니다.

스페어 로쉬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부탁드릴....쿨럭;;

그외 의견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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