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1 민아 =========================================================================
“그래! 그러니까 태상 오빠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 걱정 된단 말이야....”
민아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쯧,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네.’
태상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머리를 긁적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그놈 좋아해봤자 네 손해야. 그놈은 너 안중에도 없다고.”
만약 그가 송이와 결혼을 했다 해도 민아는 아니었다. 그건 변하지 않는 확고한 생각이었다.
“.....네가 오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적어도 너보단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단호한 태상의 말에 민아의 몸이 축 늘어졌다. 확실히 자신은 태상에 대해 그보다 더 모를 지도 모른다. 그냥 혼자서 해오던 짝사랑 같은 거였으니 말이다. 저 남자의 말은 뼈아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오빠는 내 첫사랑이었어.”
“원래 첫사랑은 안 이루어지는 거다.”
그렇게 말해놓고 태상이 아차 싶었다. 여태까지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없던 태상은 어찌 보면 송이가 자신의 첫사랑일 수 있었다. 해서 그가 말을 덧붙였다.
“나만 빼고.”
“그게 뭐야!”
그의 말에 민아가 곧장 반박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강명진에 대해 조사했던 내용이 떠올라 물었다.
“oh my god! 당신 결혼했다더니 지금 아내가 첫사랑이야? 그 얼굴로 안 어울리게? 완전 순정파?”
민아의 흥미로운 얼굴에 태상이 조용이 중얼거렸다.
“건방진 꼬맹이.”
저렇게 나오니 자신이 건방진 꼬맹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거다. 태상은 팔짱을 끼고 너그럽게 생각해 그녀의 마음을 확실히 접을 수 있게 말을 꺼냈다.
“원래 이거 회사 주식 떨어질까 싶어서 안 알린 건데, 그놈은 지금 병에 걸려서 외국으로 치료 받으러 갔어. 결혼할 여자랑 함께.”
민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오빠가 병에 걸려서 외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결혼할 여자가 있었다고?!”
“어. 근데 그 병이 불치병이라 죽을 확률이 높다더라.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그놈은 너 같은 여자 안중에도 없다고.”
“어머! 정말?”
민아가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다가 그녀는 놀란 표정에서 비웃는 얼굴로 바꾸더니 흥! 하고 소리를 치며 말했다.
“내가 그 거짓말을 믿을 것 같아? 어디서 말도 안 돼는 소리를 하고 있어. 좀 더 말이 되는 거짓말 좀 해줄래? 그래야 내가 믿는 시늉이라도 할 것 아냐?”
“.......하아.”
태상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가뜩이나 이명진의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아 여간 찜찜한 게 아닌데, 얘는 또 갑자기 나타나서 왜 사람 인내심을 시험하는지 모르겠다. 이명진이 어디에 있는지만 찾으면 놈을 해치우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러질 못하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 아니겠는가.
놈을 확실하게 처리하면 떳떳하게 강태상이 죽었다 공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놈이 살아있는 바람에 그 일이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세연이 납치 당했을 때, 사용했었던 추적시계를 사용하고 싶었으나 그건 계약자들끼리는 사용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니 그걸 쓸 수도 없었다. 놈은 강태상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하고 있지 않았다.
신분을 통해 무언가를 했다면 강회장이 가장 먼저 알 수 있도록 조취를 취해놨기 때문에 그걸 알 수 있었다.
어서 빨리 이명진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서 그를 귀찮게 하기 전에 말이다. 태상은 어찌됐던 자신과 인연이 있었던 민아를 위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네가 이걸 믿건 안 믿건 내 사정이 아니니까 난 모르겠다. 네가 그를 생각하는 마음은 갸륵한데,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도 이게 다인 것 같다. 그냥 잊어라. 그게 네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일 테니까.”
태상이 정말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아가 당황해 그를 잡으려 일어났지만, 그것으론 그의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야! 어디 가는 거야?! 나 아직 할 말 남았단 말이야! 야!!!”
민아가 아무리 소리쳐 봐도 태상은 가게 문을 열고 매정하게 나가버렸다. 그녀에겐 이 정도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세연의 얼굴을 봐서 해주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민아와 똑같진 않았다.
“날 이대로 그냥 두고 가? 말 끝나지도 않았는데....!!”
민아가 분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부터 태상에게 하고 싶은 말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어려운 시기에 자신이 힘이 되어 주겠다고 하며 자연스럽게 그와 가까워질 생각이었을 뿐이다.
민아는 이대로 포기 할 수 없었다. 태상을 찾기 위해서라도 강명진을 좀 더 찔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도 모른 채, 태상은 민아의 일이 모두 해결 됐다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물론 태상의 그런 가벼운 마음은 얼마 가질 못했다.
그가 체육관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벽에 몸을 숨겼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자신을 몰래 따라오는 누군가의 움직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태상은 자신이 사라지자 다급하게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왜 내 뒤를 따라왔지?”
“꺅!”
민아가 깜짝 놀라 핸드백을 내팽개쳤다. 태상이 하늘 위를 날았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핸드백을 가볍게 손에 쥐었다. 그녀는 자신을 놀라게 한 것이 태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깊게 안도했다.
“아 깜짝 놀랐잖아!!”
“피해자는 나라고 건방진 꼬맹이야. 놀랐으면 내가 더 놀랐어야지. 우리 서로 용건 끝난 거 아니었어?”
“용건이 끝나는 건 내가 정해!! 그리고 왜 자꾸 태상 오빠 말투를 따라하는 거야? 그거 굉장히 기분 나쁘거든?”
민아의 목소리가 꽤 커서 건물 안이 울렸다. 태상은 그녀의 말이 무척 억울했다. 자신이니 자신의 말투를 한 것 뿐인데, 그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태상은 깊게 한숨을 쉬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따라와.”
체육관을 열라는 말을 들은 지은이 미리 대기를 하고 있었다.
아래층 체육관 관장은 태상을 지은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고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화가 나 앞뒤 가리지 않고 태상에게 손가락질을 한 순간, 그는 오줌을 지릴 정도의 공포를 맛봐야 했다.
회원이 다니기 싫어 안 다닌다는데, 그가 항의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그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태상을 빼앗겼다는 분함에 다른 꼼수를 써선 안 됐다.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오셨어요.”
태상이 체육관 안으로 들어오자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던 지은이 나왔다. 그가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 말했다.
“볼 일 있으니까 잠깐 나가있어.”
지은의 시선이 그가 달고 온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애인인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체육관에서 조용히 나왔다. 민아가 짜증을 내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여긴 어디야?”
“내 체육관.”
지은에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주었으니 그렇게 말해도 충분했다.
“우리 태상 오빠 자리 꿰차서 이런 곳에나 투자하고 다니는 거야? 당신 감이 없구나?”
“난 땅에 투자 안 해. 그건 이미 충분히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다 해놨거든. 다만 사람한테 투자하는 건 좋아하지.”
태상은 내가 지금 이 여자한테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나 싶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확답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더 이상 우리 서로 볼 일 없이 깔끔하게 헤어졌으면 해. 네가 날 이렇게 따라 올 이유도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고.”
하지만 민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있어. 그리고 태상 오빠랑 만나게 해주지 않는 이상 깔끔하게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아주 끈질기게 딱 달라붙어 있을 거거든.”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민아였다.
“강태상한테 전해줄 말을 못해서 그런 거야? 그런 거라면 지금이라도 해. 들어서 아주 잘 전해줄 수 있으니까.”
이래서 민아가 아주 귀찮고 건방진 꼬맹이라는 거다. 지금도 저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인정할게, 내가 태상 오빠에 대해 아는 건 자격이 없는 일이 맞아. 하지만 난 알아야겠어. 그래서 지금부터 널 쫓아다닐 거야.”
“스토커가 되겠다는 말을 그렇게 당당하게 해도 되는 거냐?”
“나니까 괜찮아. 나처럼 예쁜 스토커 봤니?”
민아가 도도하게 콧대를 세우며 말했다. 그녀의 뻔뻔한 말에 태상은 결국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고 끄응....하는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걸 쥐어 패서 겁 줄 수도 없고.....'
태상은 그녀가 버티고 서 있자 일단 탈의실로 들어갔다. 민아가 그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민아는 들어 온 곳이 탈의실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태상이 그녀를 신경도 안 쓰고 옷을 훌훌 벗고 있었다.
“꺄악! 뭐하는 거야!”
“시끄러워. 여기 남자탈의실이거든? 나가라. 아예 가주면 더 좋고.”
그녀 때문에 어차피 제대로 된 운동은 못할 듯싶었다. 대충 몸만 풀고 갈 생각이었다. 민아가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서둘러 탈의실을 나갔다. 그의 등 근육을 생각지 못한 순간에 목격한 덕분에 민아는 쌘 척해야 한다는 것도 잊었다.
운동복을 갈아입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운동복으로 옷을 모두 갈아입고 탈의실을 나오려던 태상은 갑자기 민아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꺄아아악!!!!!
“이건 또 뭐야?”
비명소리의 심각성을 보아 민아가 장난을 치는 건 아닌 듯 보였다. 그가 서둘러 달려가자 역시나 그녀의 주변에 위협적으로 서 있는 덩치 큰 남자들이 서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 체육관 딸이 너 아니야? 왜 자꾸 발뺌하는데?”
그들은 민아를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그렇게 묻고 있었다.
민아는 당연히 아니라며 짜증을 부렸다.
“No!! 내가 이런 구질구질한 집안 딸일 것 같아? 너희 눈을 두 개나 달고도 내가 이딴 곳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여?!"
민아가 무섭지도 않은지 덩치 큰 남자들한테 바락바락 대들고 있었다. 남자들은 당연하게도 그런 민아가 어처구니없었는지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들 중 민머리인 남자가 민아에게 말했다.
“예쁘장하게 생겨서 적당히 하고 봐주려고 했더니, 상황파악을 이렇게 못하면 어쩌나 이 아가씨. 엉?!”
남자가 주먹을 쥐고, 민아의 얼굴 옆에 있는 벽을 위협적으로 치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위협하는 대신 아아악!!하고 비명을 질러야 했다.
태상이 그의 주먹을 한 손으로 쥐고, 으스러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개수작인지 모르겠네.”
태상이 스산하게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남자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덩치가 태상의 두 배는 되는 남자였는데도 마치 깃털처럼 남자가 휘잉 던져져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아아악! 끄으윽!!”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태상이 잡았던 손을 부여잡고 끙끙댔다.
“부러트리진 않았으니까 엄살 피우지 마. 내가 이 체육관 주인인데 무슨 일로 찾아 온 거지?”
태상이 덩치 큰 남자를 너무나도 손쉽게 한 손으로 제압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던지라 선뜻 덤벼들 수가 없었다. 더욱이 오늘 그들은 남자를 상대하러 온 게 아니었다.
“거, 거짓말 하지 마! 여기 주인은 여자라고 했다고!”
“그래? 이상하다. 여긴 내가 주인이 맞는데. 그럼 도대체 누가 그런 거짓말을 너희들한테 했을까?”
태상은 그게 누구일지 참 안타깝게도 예상이 됐다.
“아! 문득 생각이 났는데 예를 들어....아래층 체육관 관장 같은 사람일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
태상이 너무 정곡을 찔렀는지 남자들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인지 들어나 보자. 여긴 왜 왔지?”
“....그, 그건 그냥 여기 주인이 여자애라고 해서...."
"여자애라고 해서?"
태상이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남자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남자들은 어쩐지 오금이 저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졌다. 그들은 바닥을 바라보며 우물쭈물 말했다.
"우, 우린 그냥 겁이나 좀 주라고 해서 온 것뿐이야!”
"....야?"
태상이 스산하게 말하자 남자들이 아차 싶은 얼굴로 서둘러 변명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